[어게인 2030]①이상엽 KAIST 연구부총장
'시스템 대사공학' 창시자···최초 타이틀엔 오롯이 '노력'
변함없는 제자사랑 "열심히 하면 언젠간 기회는 온다"
"아직 하고 싶은 것 많아···국가 성장에 이바지하고 싶어"

2003년, 대덕넷(HelloDD)은 과학기술계 2030들을 조명한 바 있습니다. 연구계, 산업계, 학계 등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젊은 과학도들입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올해는 대덕연구단지 출범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대덕넷(HelloDD)은 신년 기획 첫 번째인 '어게인 2030'으로 이들을 재조명합니다. 그 자리 그대로, 혹은 또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역량을 빌드업하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지역 발전, 국가 성장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향후 연구계, 산업계, 학계 등을 대표해 한 명씩 릴레이 보도할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지난 1월 2일 KAIST 부총장실에서 만난 이상엽 교수. 특훈교수 임명으로 정년을 10여년 남겨 놓은 상태였지만 그의 연구 열정은 20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사진=이유진 기자] 
지난 1월 2일 KAIST 부총장실에서 만난 이상엽 교수. 특훈교수 임명으로 정년을 10여년 남겨 놓은 상태였지만 그의 연구 열정은 20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사진=이유진 기자] 

2003년 2월, 39세의 한 젊은 교수는 '벤츠 타는 과학자'를 지향했다.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쥔 젊은 과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후배들이 그 길을 따라간다는 의미에서다. 과학자가 스스로의 연구 역량에 따른 적절한 보상과 대접을 받는 사회야말로 선진국의 표본이라고 강조했다. 

"어렸을 적 멋모르고 한 얘기죠(웃음). 당시 외국 교수들을 만나면 제 연봉은 창피해서 말도 못 꺼낼 정도였어요. 그들은 창업 등 제약도 없어서 능력만 있다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았었죠. 우리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에 저런 말을 했던 거 같아요. 벌써 20년 전 얘긴데, 어제 한 얘기라고 해도 믿을만하다는 게 좀 씁쓸하네요."

그로부터 20년 뒤. 과학도들의 미래 걱정에 여념이 없던 이 교수는 현재 KAIST의 기둥이 됐다. 전 세계로 이름을 떨쳤지만 어떠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자리 그대로를 지키고 있다. 배우고 익힌 모든 것은 오롯이 자국을 위해 써야 한다는 굳건한 이념은 20년 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이상엽 KAIST 연구부총장은 "당시 모시던 소장님을 보고 똑똑한 학생들과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는 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교수가 됐다. 한국에서, 그것도 굳이 대전에 왜 있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사명감이 있는 곳이 KAIST기에 당연했다. 30여년간 한결같이 곁을 지켜준 제자들에게 감사하다. 이 모든 것들을 큰 불편함 없이 제공해 준 KAIST는 내 평생의 보금자리"라고 덧붙였다. 

◆ 노력 하나로 '최초' 쓰다
 

이상엽 연구부총장 연구팀이 개발, 공개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지도. 미생물을 이용해 화학물질을 합성할 수 있는 경로와 기존 화학반응 공정이 정리된 지도로, 지난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발표된 바 있다. 네이처 측 요청으로 전 세계 산업계·학계에 무료로 배포됐다. [사진=대덕넷DB]
이상엽 연구부총장 연구팀이 개발, 공개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지도. 미생물을 이용해 화학물질을 합성할 수 있는 경로와 기존 화학반응 공정이 정리된 지도로, 지난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발표된 바 있다. 네이처 측 요청으로 전 세계 산업계·학계에 무료로 배포됐다. [사진=대덕넷DB]
이 부총장은 '시스템 대사공학' 분야 창시자다. 그가 대사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해당 단어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사공학 역사와 궤를 같이 한 인물이다.  

시스템 대사공학이란 미생물을 활용해 사람에게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분야다. 비식용 바이오매스로부터 미생물을 이용해 휘발유나 나일론, 플라스틱 같은 석유 화학 제품을 만든다. 시스템 대사공학을 시작한 이래 그가 이 분야에서 학술지에 공식 출간한 논문만 현재까지 600여편에 달한다. 전 세계 단일랩 중 가장 많은 기록이다. 이 부총장 연구팀이 만든 미생물-화학물질 생산 합성지도는 네이처 측의 요청으로 포스터로 제작, 전 세계에 무료 배포된 바 있다. 

최고과학기술인상, 한국인 최초 영국 왕립학회 회원 선정, 덴마크 공대 명예박사학위 수여, 아시아인 첫 美 찰스 스콧상 수상 등 이 부총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만 해도 여럿이다.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잠깐 메일함을 보지 않으면 몇 백개는 기본으로 쌓인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이 부총장은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해결한다. 매일이 힘들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우선이라고 한다.

"보직을 맡으면서 학생까지 봐야 하니 24시간이 모자라요. 매일이 힘들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죠.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힘든 건 한 순간이거든요. 결국은 이 또한 지나간다는 걸 여러 번 겪었어요. 노력한 만큼 성취하는 그 쾌감도 자주 맛봤고요. 힘든 것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천재적인 재능도 한 몫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 부총장은 "스스로 열심히 산 건 맞다"며 "머리가 나쁘진 않았지만 천재적인 건 조금도 없다. 무조건 노력이었다. 내가 해야겠다 맘먹은 건 미루지 않고 열심히 했다. 조그마한 아이디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이 분야에 점을 찍으려 최선을 다했다"고 되돌아봤다.

◆ "열심히 하면 때는 언젠간 온다"
 

이상엽 연구부총장과 그의 제자들. 그가 이제까지 배출한 석박사 제자들만 110명이 넘는다. 그는 이들을 자신의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이상엽 연구부총장 제공]
이상엽 연구부총장과 그의 제자들. 그가 이제까지 배출한 석박사 제자들만 110명이 넘는다. 그는 이들을 자신의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이상엽 연구부총장 제공]
이 부총장의 제자사랑은 여전하다. 보직을 맡으면서도 24시간 제자들과의 메신저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배출한 석박사 제자들만 110명이 넘는다. 그는 이들을 '자신의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이 부총장은 모든 제자들에게 빠짐없이 '미래이력서'를 받아놓는다고 한다. 지금부터 향후 65세까지 학생들 자신의 이력서다. 매년 업데이트도 잊지 않는다.

"보면 몇 년 후 박사 따고 포스닥, 조교수, 부교수, 미국공학한림원·국립학술원 멤버····. 내 이력서를 따라 하나 싶을 정도로 제자들이 다 한다고 해요. 학교 총장하겠다는 애들만 7명이라니깐요(웃음). 제자들이랑 있을 때만큼 행복할 때가 없죠. 마음 같아선 한 명당 한 시간씩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싶은데 그럼 연구는 언제 해요. 만나면 '이거 했냐 저거 했냐' 결론만 물어보는 이유죠. 미안한 마음도 커요. 그럼에도 애들이 다 알고 따라와 주는 게 고맙죠."

한 학생은 자신이 65세가 되면 모교에 2조원을 기부하고 이 부총장에게 교내 석림의 종(까리용 종) 밑에서 소주 한 잔 대접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이 대목만 봐도 그가 학생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제가 늘 학생들한테 말해요. 자기가 하고 있는 걸 열심히 잘하면 돈, 명예는 저절로 따라온다고요. 돈을 쫓아가면 돈은 도망갑니다. 특허 팔겠다는 목적으로 연구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죠."

"모든 직업이 그렇듯 본인이 하는 만큼 대접받게 돼있습니다. 물론 그 시점은 불공평할 순 있어요. 하지만 언젠간 온다고 제자들에게 말해요. 하나님이 너무 바빠서 다 못 보는 것뿐이다. 시차가 있을 뿐, 네가 포기하지 않으면 그 순간은 언젠간 무조건 온다.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은 버려지지 않는다." 

◆ 앞으로의 20년

이 부총장은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한다. 그게 뭐가 됐든 그에게 1순위는 '국가에 이바지'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으로 위촉된 이유기도 하다. 은퇴 후 거취가 산업계든 학계든 자국에 도움이 될 만한 일에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한 건물을 통째로 주겠다는 곳도 있었어요. 안 가죠. 이유는 단순해요. 여기가 제일 좋으니깐요. 여기서 국가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하고 싶어요. 유능한 제자들을 키우는 것도 그중 하나죠. 제자들도 어딜 가든 가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스승으로서 바라는 점입니다."  

그는 기회 하나만큼은 20년 전에 비해 지금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과학도들이 걸어갈 미래도 지금보다 더욱 밝을 것이란 게 이 부총장의 입장이다.

그는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기회 하나는 많아졌다. 창업만 하더라도 그땐 '연구 못하니 저거 한다'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젊은이들이 더욱 과학하고 싶어지는 세상이 될 거고, 돼야만 한다. 그런 세상에서 제자들이 살아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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