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주역] KIST 안전보안관 강택관 전문위원
기관 내 안전 관련 HW·SW 매뉴얼 만들어
"연구실안전 쓴소리 불편한 자리지만···내 몸 위해 습관돼야"
매년 늘어나는 안전사고 "연구자 고민도 필요해"

"우리는 평생을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려면 연구실 안전을 지켜야죠. 안전으로 무장해야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사진=강택관 전문위원]
"우리는 평생을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려면 연구실 안전을 지켜야죠. 안전으로 무장해야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사진=강택관 전문위원]
KIST 역사(66년 설립)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해온 연구자가 있다. 올해로 입사 45년차, 강택관 전문위원이다. 청정신기술연구본부 에너지저장연구센터 소속인 강 전문위원은 연구실 안전 개념이 제대로 정착되기 전부터 '안전'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덕분에 KIST에서 많은 연구자가 안전하면 그를 떠올린다. 

그는 연구실 랩 특성에 맞는 맞춤안전매뉴얼 틀을 만들어 보급했다. 안전하면서도 많은 시약을 보관할 수 있는 시약장을 만드는 등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가릴 것 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한다. 안전에 늘 솔선수범했기에, 오랜 연구원 경력을 살려 10여 년간을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임명돼 활동도 하고 있다. 실험실 등 연구현장 안전점검 및 지도개선, 안전·보건 자문 업무를 수행 중이다. 

◆ 안전개념 없던 과거 연구실 "안전, 나만 잘한다고 지켜지는 거 아니더라" 

"연구실 안전에 대한 개념이 잡힌 건 정말 몇 년 안 됩니다. 1977년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연구실은 안전개념 무풍지대였죠."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기능직으로 KIST에 입사했다. 제1세대 화학공학자의 대표주자인 故 윤창구 박사의 실험실 랩에서 처음 일을 배웠다. 우라늄 관련 연구를 활발히 했던 랩이었기에 처음으로 새로운 광물들도 접했다. 연구에 푹 빠졌고 주경야독으로 학업과 연구를 병행했다.

하지만 강 전문위원은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 연구실 안전개념은 거의 없었다"고 회고한다. 연구실 분위기는 역동적이었지만 인터넷 등으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 때도 아니어서 머크인덱스(약물 및 생물학적 백과사전)를 뒤져 약물이 미치는 인체영향, 취급방법, 폐기 등을 일일이 나열하는 열악한 시절이었다. 

강 전문위원은 안전관련 강사교육을 받아 신입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위험성과 그동안의 사고 사례 등을 연구원들에게 공유한다.[사진=강 전문위원 제공]
강 전문위원은 안전관련 강사교육을 받아 신입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위험성과 그동안의 사고 사례 등을 연구원들에게 공유한다.[사진=강 전문위원 제공]
그런 그에게 연구실 안전이 정말 중요하다 느낀 사건이 일어났다.  2000년 중반 연구실 화재다. 화재는 강 전문위원이 근무하던 옆 동에서 발생했다. 동간을 잇는 구름다리를 타고 연기가 다른 랩까지 타고 넘어갔는데, 장비 그을음이 고장을 일으켰다. 

그가 근무하던 2차전지 연구실도 고장을 피할 수 없었다.  충·방전 테스트 장치 수백 개도 먹통이 됐다. 수리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오랜 시간 공들인 연구 자료를 날려버린 연구원들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연구를 평생 하려면 내 몸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또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한다 생각했다.

"연구실 안전을 위해 연구하며 레이아웃변경 및 설계 등을 새로 했지만 나 혼자 준비해서는 달라지는게 없다고 느꼈습니다. 사고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만 어떻게 대처하고 조치하느냐에 따라 큰 사고로 이어지냐 마느냐가 결정되기도 하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연구원들이 가져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 전문위원은 사고를 계기로 장비나 컴퓨터에 그을음이 생겼을 때 대처방법 등을 게시판에 공지하며 연구원 교육을 자처했다. 이후 안전관련 강사교육을 받아 신입직원을 대상으로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위험성과 그동안의 사고 사례 등을 연구원들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안전시설팀과 논의해 위험요소 사전 방지 등에도 힘썼다. 이런 공로로 강 전문위원은 2022연구실 안전유공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KIST 내 300여개의 연구 랩이 개별 맞춤안전매뉴얼을 가질 수 있도록 틀을 만들고 보급도 했다.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인 일이다.  일반 안전매뉴얼의 경우 두껍고 포괄적이라 시간적 여유가 없는 연구원들이 일일이 보고 반영하기 어렵다. 그는 20~40p정도의 실험실 맞춤형 매뉴얼을 만들 수 있도록 틀을 짰다. 

그는 "랩마다 시약, 장비가 다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것만 모았다. 초안을 만들어 연구자들에게 필요요소를 써 맞춤형으로 쓰도록 했다. 신입생의 경우 의무집체교육 2시간 이상을 받아야 랩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는데 기본 자료로도 쓸 수 있다"면서 "단, 매년 달라지는 시약과 장비로 업데이트 등이 필요하다보니  맞춤형 안전매뉴얼에 대한 활용도가 점점 낮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방치된 매뉴얼을 다시 끄집어내 업데이트 하는 것이 앞으로 계획"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 레일식 환기 안전 시약장도 만들었다. 이미 상용화된 환기식 시약장이 많지만 그는 시약장 안에 레일을 설치해 많은 시약을 보관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기존 시약장은 구석에 있는 시약이 잘 안보여 꺼내 쓰기 힘들다. 시약도 다 국민세금인데 3~4년 후 사용기간이 지나 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며 "도서관에 갔다가 시약장도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 실험실의 시약장들은 이렇게 개조돼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 매년 늘어나는 연구실 안전사고 "평생 연구하고 싶다면 안전으로 무장해야"

"안전을 지키는 일은 연구자들에게 불편한 일인걸 잘 압니다. 하지지만 내 몸,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위험상황에 몸이 즉각 반응하도록 안전을 일상화해야합니다."[사진=강 전문위원]
지난 2006년 연구실안전환경조성법이 발효, 시행되면서 KIST는 안전환경책임자제도를 통해 층별로 안전보안관을 선임하고 있다. KIST뿐 아니라 다른 출연연과 대학 연구실에서도 연구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연구실 안전사고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조승래 의원이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2017년 147건이던 연구실 사고는 2021년 278건 일어나는 등 최근 5년간 증가하고 있다.

사고 증가원인으로 연구실 개념이 실험실 내 뿐 아니라 산, 바다, 항공 등으로 넓어진 것이 꼽힌다. 하지만 강 전문연구위원은 "기반도, 의식도 높아졌는데 사고율이 왜 증가하는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연구원들도 스스로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고기준 설정을 어떻게 잡을지도 봐야한다"고 조언하며 "초동조치를 잘해 피해가 없는 사례까지 사고로 볼지 등 기준을 제대로 잡고 통계를 내야 향후 사고 대처 방안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전보안관이란 타이틀이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실험실을 불쑥 찾아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놔야하는 불편한 자리다. 30여년 이상 R&D현장연구원으로 오랜 시간 실험실을 지켜왔기에 쓴소리를 불편해하는 연구자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는 "불편한 만큼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평생 연구실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닌가. 위험한 장비와 가스, 시약이 많은 실험실에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의식적으로 무장돼있지 않으면 연구실생활을 오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평생하기 위해서라도, 내 몸,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위험상황에 몸이 즉각 반응하도록 안전을 일상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연구동사람들과 함께. [사진=강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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