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릴새우 삼키다 꿀꺽… 수염고래, 매일 미세플라스틱 43kg 먹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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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구팀, 9년간 191마리 추적 관찰
먹이에 축적된 양이 전체 99% 달해… 최근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도 급증
사람의 혈액-모유-태반 등에서 발견… 입자 크기 작을수록 독성 가능성 커

먹이를 먹고 있는 수염고래들. 연구팀은 2010∼2019년 수염고래 등 뒤에 측정기를 달고 먹이 섭취 등 행동을 관찰해왔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먹이를 먹고 있는 수염고래들. 연구팀은 2010∼2019년 수염고래 등 뒤에 측정기를 달고 먹이 섭취 등 행동을 관찰해왔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몸길이가 최대 27m에 달하는 수염고래가 하루 약 1000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주로 크릴새우 등 먹이를 통해 축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선 등 해양 생물을 섭취하는 인간의 체내에도 많은 양의 미세 플라스틱이 축적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연구결과다. 국내 해양 전문가들은 한반도 주변 바닷물에서 미세 플라스틱 농도가 높아져 체내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 어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에 대한 미세 플라스틱의 위협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수염고래, 하루 약 43.6kg의 미세 플라스틱 섭취

매슈 사보카 미국 스탠퍼드대 홉킨스해양연구소 연구원과 샤이럴 카헤인라포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원은 2010∼2019년 미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만 주변에 서식하는 수염고래 191마리를 관찰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2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연구팀은 수염고래의 등 뒤에 행동 측정기를 달고 추적한 결과 주로 수심 50∼250m에서 먹이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심은 미세 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부유하는 곳이다. 연구팀은 해당 수심에 부유하는 평균 미세 플라스틱의 양, 수염고래가 먹는 먹이의 양, 빈도 등을 기반으로 미세 플라스틱 섭취 정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수염고래 한 마리가 하루 약 1000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게로 따지면 약 43.6kg의 미세 플라스틱을 먹는 것이다. 바닷물에 들어있는 미세 플라스틱 자체보다 수염고래가 먹이로 삼는 크릴새우 등에 축적된 미세 플라스틱의 양이 98∼99%를 차지했다.

연구팀은 “사람이 먹는 멸치나 정어리가 먹이로 삼는 크릴새우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다”며 “결국 사람도 많은 양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세 플라스틱은 통상 직경이 1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5mm 크기의 플라스틱을 일컫는다. 플라스틱이 마모되거나 태양광 분해 등으로 잘게 부서지며 생성된다. 낚싯줄이나 스티로폼 부표, 페트병, 섬유 등에서 주로 만들어진다. 얼굴에 발라 문지르다가 물로 씻어내는 클렌징이나 스크럽 제품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5대 환류대 연구소’가 2007∼2013년 24회에 걸쳐 바다 표본을 채취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더니 지구 전체 해양에 약 26만9000t에 이르는 미세 플라스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 중 15∼31%가 미세 플라스틱이라고 분석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이 늘면서 해양 속 미세 플라스틱의 양은 더욱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해양생물에 축적되는 미세 플라스틱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뉴질랜드 환경부가 지난달 1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질랜드 근해 어류 4마리 중 3마리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홍상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생태위해성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는 국내 어종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미세 플라스틱의 체내 축적으로 인류에 악영향 우려

미세 플라스틱은 입자 크기가 작을수록 독성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세포막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산화방지제 같은 첨가제도 다량 포함돼 있어 생명체 내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데다 해양 환경에서 주변 오염물질이 흡착될 수 있다. 미세 플라스틱 축적 양이 많을수록 독성도 높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미세 플라스틱 축적에 따른 악영향은 증명되고 있다. 2월 김진수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의학연구소 선임연구원팀은 미세 플라스틱이 난치성 신경발달장애인 자폐스펙트럼을 유발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다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희귀난치질환연구센터 선임연구원팀은 지난해 12월 미세 플라스틱이 영·유아의 뇌 발달 이상을 유발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선임연구원은 “사람의 혈액이나 모유, 대변, 태반 등에서 미세 플라스틱 축적이 발견되고 있다”며 “미세 플라스틱 축적량이 많을수록 악영향도 클 것으로 분석되는데 이를 증명하는 연구들이 최근 2년 사이 쏟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수염고래#미세플라스틱#섭취#인류 악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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