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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기술 날개 단 고인류학, 인류 기원 비밀 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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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사이언스&]노벨 생리의학상으로 본 고유전체학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한 고인류인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과 오랜 기간 공존의 기간을 보내면서 서로 DNA를 교환해가며 진화했다. [사진 노벨위원회]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한 고인류인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과 오랜 기간 공존의 기간을 보내면서 서로 DNA를 교환해가며 진화했다. [사진 노벨위원회]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해서 지금의 모습이 됐을까. 과거 이런 근원에 대한 궁금증의 해법은 고고학과 인류학이었다. 어딘가 동굴이나 무덤 속에서 발굴된 뼈와 유물 등을 통해서 작게는 민족, 크게는 인류가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짐작했다. 특히 국내에선 고고학과 인류학이 이공계열이 아닌 인문ㆍ사회과학 계열로 분류된 이유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고고학과 인류학마저도 바꿔놓고 있다. DNA와 게놈(유전체) 분석이라는 첨단 바이오 과학의 틀을 통해 고인류와 현생인류의 본질을 염기서열 단위까지 들여다보는 세상이 됐다. 게놈은 이제 지구상에 살아있는, 그리고 과거 살아있었던 모든 것들의 비밀을 풀어놓을 태세다.

스반테 페보(1955~ ). 이달 초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단독 수상자로 선정된 스웨덴 출신 진화유전학자의 이름이다. 1997년부터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유전학 분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고유전체학’(paleogenomics)의 창설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한국 내에서도 2015년 출간된 단행본『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로 대중에게 비교적 잘 알려졌다. 그는 대학원생 시절이던 1981년 지도교수 몰래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DNA를 추출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독일 네안더 계곡에서 발견된 뼈를 통해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유전체)까지 해독했다. 또 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한 손가락 뼈에서 DNA를 추출, 뼈의 주인공이 또 다른 고인류라는 것을 밝혀냈다. 데니소바인 발견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스웨덴 출신의 유전학자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반테 페보 교수. 그는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등 고유전체학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다. [EPA=연합뉴스]

스웨덴 출신의 유전학자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반테 페보 교수. 그는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등 고유전체학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다. [EPA=연합뉴스]

페보 박사는 현생 인류가 이미 오래전 지구상에서 사라진 네안데르탈인ㆍ데니소바인과 DNA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혀냈다. ‘순종’호모 사피엔스는 없었다. 그는 노벨상 선정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인류와 유럽 등지에서 수만 년 동안 공존했다”고 말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 서술했던‘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사실상 멸종시켰다’는 주장은 적어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인 셈이다.  노벨위원회는 페보 박사를 멸종한 호미닌(homininsㆍ사람아족)의 게놈과 인류 진화에 관한 발견의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유전체학은 멸종된 종의 유전체 정보를 재구성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다. 또한 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은 고 DNA에 대한 분석을 고곡학 및 인류학적 증거와 교차검증함으로써 인류사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정립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두 학문 모두 고 DNA가 연구대상이다. 문제는 수만~수십만년 된 고 DNA가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오래된 뼈에서 시료를 채취할 때 남아있는 DNA 자체가 극히 적은데다, 미생물 등의 DNA가 섞여 분석이 어렵다. 페보 박사는 오랜 연구기간 동안 이렇게 오래되고 오염된 시료 속에서 원하는 DNA를 골라낼 수 있었다. 이후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술적 발전은 고DNA 연구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첫째가 고DNA의 양을 급격하게 증폭시킬 수 있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시료의 유전체 전체를 단시간에 모두 분석하는 전장유전체 염기서열분석(whole genome sequencing)이 가능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유전체 해독의 시간과 비용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게놈 분석을 통해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가설이 증명되고, 무엇이 가짜 과학인지 알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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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분석을 이용하면 전설의 영역으로만 남아있는 혈통의 비밀도 밝혀낼 수 있다.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김해 허씨의 시조 허황옥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속 DNA를 비교 분석하는 방법이다. 박종화 UNIST 생명공학과 교수는“아직 국내 학계에서는 고고학이 게놈과 같은 과학적 분석과 융합 연구하는 풍토가 드물다”며 “연구비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허황옥의 전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현대 생명과학은 게놈 분석을 넘어 수십만년 전 DNA를 이용해 고인류의 뇌를 미니뇌 형태로 복원하는데까지 진화하고 있다. 줄기세포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사람의 DNA 중 신경세포 발달과 관련한 유전자 부위를 고인류의 DNA에 맞게 바꾸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아직 게놈 분석을 통한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는 갈 길이 멀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페보 박사의 연구로 고인류와 현생인류 진화의 비밀이 다 밝혀진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유전체 분석 기술 덕분에 고인류학 연구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현재 분석 기술로는 아직 고대인 유전체를 완전히 해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뒤집어 얘기하면 향후 분석기술이 발전할 수록 양적으로 질적으로 옛 유전자의 비밀도 더 많이 풀린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고유전체 연구의 국내 사정은 어떨까. 서울대 인류학과 생물인류학 실험실 연구진이 펴낸 ‘고고유전학의 분석 원리와 최근 고유전체 연구동향’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고유전체 연구는 아직 부진한 실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나마 박종화 UNIST 교수가 러시아 극동 지방의 ‘악마문(Devil’s gate)’ 동굴에서 채취한 고대인의 머리뼈 게놈 분석을 통한 것과, 최근의 1700년전의 삼국시대 가야인의 고유전체를 통합 분석한 것이 한민족의 기원을 밝힌 대표적인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한민족은 3만~4만 년 전 동남아~중국 동부 해안을 거쳐 극동지방으로 흘러 들어와 북방인이 된 남방계 수렵 채취인과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1만 년 전 같은 경로로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의 피가 섞여 형성됐다. 특히 4000~5000년 전 청동기 철기시대에 농경민족의 인구폭발로 현재의 동북아시아계 한국인의 유전적 주류의 정체성이 확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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