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질환표적구조연구센터 연구원들이 단백질의 3차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생명연 제공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질환표적구조연구센터 연구원들이 단백질의 3차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생명연 제공
보통 단백질이라고 하면 삼겹살의 주성분 혹은 운동 선수들이 즐겨 먹는 근육 생성의 재료물질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단백질은 실제로 우리 몸속에서 꽤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몸을 구성하는 세포 내에선 수많은 생체반응이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생명체의 생존 및 작동을 위해선 유전자를 복제하고 그 내용을 해석하며, 다양한 물질을 필요에 따라 만들고 분해해야 한다.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도 찾아내 제거해야 하는데, 세포 안팎에서 이 모든 과정을 하는 것이 단백질로 구성된 생체분자기계다.

○생체시료 급속냉각해 손상 줄여

부품 하나만 잘못 망가져도 기계의 가동이 멈출 수 있듯이 단백질이 돌연변이로 인해 고장나면 생체분자기계들이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암이나 대사질환, 퇴행성 뇌질환 등 수많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생명현상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각종 질병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단백질에 대해 연구해 왔다. 생체분자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위치에 잘 맞는 부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단백질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분석하는 구조생물학은 단백질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분야다.

지금까지 단백질 구조생물학은 크게 두 가지 방법에 의존해 왔다. 첫 번째는 병원에서 골격 혹은 내부 장기를 촬영할 때 사용하는 X선을 활용해 단백질을 분석하는 X선 결정학 방법이다. 두 번째는 병원에서 사람 몸속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할 때 사용하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응용해 단백질을 분석하는 핵자기공명법이다.

과학자들은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수많은 단백질의 3차 구조를 분석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단백질 부품 각각의 생김새와 역할은 알아낼 수 있었지만 많게는 수백 개로 이뤄진 거대한 생체분자기계의 전체적인 모양과 작동 방식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계는 수십 년간의 노력을 통해 극저온 전자현미경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극저온 전자현미경은 액체 헬륨으로 관찰하고자 하는 시료를 냉각시킨 뒤 관찰하는 방식이다. 기존 현미경은 주로 시료를 진공 내에서 건조시켜서 관찰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료가 잘 손상됐다. 극저온 전자현미경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기존에 확인이 불가능했던 수많은 생체분자기계의 거대구조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구조 규명한 주역

이런 극저온 전자현미경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난 게 코로나19 대유행 때였다. 극저온 전자현미경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 세포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3차 구조를 빠르게 규명함으로써 백신 개발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었다.

또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할 때마다 과학자들은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변이 바이러스의 변형된 구조를 확인했다. 인류가 변이 바이러스 맞춤형 전략을 짤 수 있게 핵심 정보를 제공한 셈이다.

미국과 중국 등 생명과학 선도 국가에서는 100대 이상의 극저온 전자현미경 설비를 갖추고 단백질 구조 연구에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흐름에 따라 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기초과학연구원(IBS), 서울대, KAIST, 포스텍 세포막연구소 등에 해당 장비가 잇달아 설치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에도 2023년 가동을 목표로 설치 중이다.

코로나 구조 규명에 결정적 역할 한 '극저온 전자현미경'
극저온 전자현미경은 기존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서 생명현상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저분자화합물 기반 신약, 혹은 항체의약품 개발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생체분자기계의 약물 표적 지점과 조절 방법에 대한 핵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향후 우리 바이오산업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