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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백신 둘러싼 인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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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백신 둘러싼 인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전쟁

2021.11.04 11:00
mRNA 백신의 길고 지루한 역사 (4)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대부분 감염병의 백신과 치료제는 민간 기업에서 이뤄지고 있어 이로 인해 수익성이 없는 치료제ㆍ백신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효과 있는 백신이 빠르게 제조되고 현장에서 쓰이게 하려면 정부 지원과 연구가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 컬럼비아의대 빈센트 카니엘로 교수

 

“가난한 국가에서 더 많은 의료시설을 짓는 데 쓰일 수 있는 귀중한 예산이 이 강력한 기업(화이자)의 CEO와 주주들에게 약탈당하고 있다.” -옥스팜 건강정책관리자 안나 매리어트


거대제약사는 왜 mRNA 백신개발을 주저했을까


2000년대 후반이 되면, 굵직한 거대제약사들이 메신저리보핵산(mRNA) 치료제 시장에 뛰어든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mRNA 백신 연구를 위한 연구개발팀을 구성했고,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 샤이어도 치료제를 목표로 연구개발을 시작한다. 바이오엔테크사가 이 즈음 시작했고, 2015년엔 현재 화이자와 함께 mRNA백신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모더나사가 설립된다. 모더나는 유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약 1조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창업자 데릭 로시가 떠나고 스테판 반셀이 새로운 대표가 되면서 mRNA 백신으로 목표를 긴급 수정한다.

 

투자자들이 보기에 모더나의 목표 수정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왜냐하면 백신 생산을 위해 세워진 플랫폼은 다른 유전자 치료제 생산에 전용하기 어려운데다, 특히 백신은 거대제약사에게 그다지 수지타산이 맞는 사업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탈린 카리코 현 바이오엔테크 부사장과 드류 와이스만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발견으로 mRNA가 우리 몸에 일으키는 면역반응을 조절할 수 있게 됐고 이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생화학과 피터 컬리스 교수의 발명으로 mRNA와 같은 핵산을 세포내로 매우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약사는 이 기술로 백신을 만들기보다 암과 같은 질병 치료제를 개발하기를 원했다. 백신은 큰 돈이 되지 않는 의약산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다국적 거대제약사가 백신 프로젝트에 큰 자금투입을 꺼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본주의적 의생명과학기술과 거대제약사의 자본주의


첫째, 백신개발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잘 알려진 것처럼 코로나19 mRNA 백신 이전에는 백신개발을 위해 최소 3~5년이 필요했다. 전세계가 팬데믹의 혼란에 접어들 무렵, 미국 정부가 모더나의 mRNA 백신 임상시험을 빠르게 허가해준 이유 또한 바로 백신개발에 필요한 속도전 때문이었음을 감안한다면, mRNA 백신이 등장하기 이전 많은 거대제약사들이 백신개발을 꺼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mRNA 백신은 기존의 사백신이나 생백신과 달리 바이러스의 유전체 서열정보만 있으면 이론상으로는 바로 다음날 백신개발에 착수할 수 있다. 코로나19 mRNA 백신이 코로나19 뿐 아니라, 백신산업 전체의 판도를 바꾼 기술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백신개발의 성공여부는 지나치게 불투명하다. 물론 제약사들의 치료제 연구개발 성공여부 또한 불확실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신개발은 개발시간 및 수익율 대비 성공율이 낮다. 거대 제약사가 백신개발을 꺼리는 이유다. 셋째, 백신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에서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들 나라는 백신의 높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한다. 즉, 거대제약사 입장에선 돈 안되는 장사인 것이다. 실제로 브라질 등에서 유행했던 지카 바이러스 백신을 연구하고 개발했던 회사들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제약사는 한 번의 접종으로 해당 질병에 평생 면역력을 갖게 되는 백신개발사업에 결코 뛰어들지 않는다. 거대제약사들 중에서 백신으로 큰 수익을 내는 회사는 매년 맞아야 하는 독감백신을 생산하는 회사 뿐이다. 당연히 거대제약사가 선호하는 코로나19 관련 연구개발사업은 백신이 아니라 치료제일 수 밖에 없다. 중소형 제약사에 불과하던 길리어드사를 한 순간 거대제약사로 만들어준 독감치료제 ‘타미플루’와 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지금 이순간에도 거대제약사들은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백신이라는 과학의 선물은 분명 한 번의 접종으로 무시무시한 전염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한다는 인본주의에 기대고 있지만,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기업인 거대제약사의 자본주의적 속성과는 애초부터 공존이 불가능한 셈이다.

 

WHO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백신 공급률에 대한 불평등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며 전 세계 국가들이 연말까지 추가접종(부스터샷) 도입을 늦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접종한 수는 인구 대비 3%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은 9월 8일 기준 국가별 코로나19 백신 접종율을 나타낸 지도. 색깔이 짙어질수록 접종자가 많다는 뜻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 제공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수는 인구 대비 3%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은 9월 8일 기준 국가별 코로나19 백신 접종율을 나타낸 지도. 색깔이 짙어질수록 접종자가 많다는 뜻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 제공

코로나19 백신의 권리


코로나19는 모든 인류에게 고통과 인내의 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mRNA 백신개발에 성공한 모더나, 화이자 같은 기업에겐 성공과 환희의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얼마전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는 줄어들지 않는 확진자 증가세를 막기 위해 자국민에게 부스터샷 접종을 승인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는 이런 결정이 나오자마자 추가접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전세계의 심각한 백신 공급 격차가 탐욕 때문에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백신이 정말 필요한 곳은 가난한 나라들이다. 하지만 섣부른 방역해제 등으로 자국민 통제에 실패한 미국 정부는, 그 실수를 부스터샷 접종으로 막으려 하고 있고, 모더나와 화이자사는 이를 격렬하게 환영하며 부스터샷이 필요하다는 뉴스를 연일 흘리고 있다. 무능하고 반인본주의적인 정부의 정책적 의사결정이 탐욕적인 거대제약사의 이익추구와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모더나는 백신 생산 물량의 대부분을 부자 나라에만 수출하고 있으며, 겨우 계약을 맺은 저소득 국가엔 겨우 100만 회분을 그것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았다. 코로나19 백신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는 모더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르지만, 전세계를 공황으로 만든 팬데믹 상황에서 과연 백신을 생산하는 거대제약사가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 역사는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백신 가격 인상을 인상하고 있지만, 이들이 각국과 맺은 계약은 비밀서약 때문에 공개조차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각 제약사와 체결한 기밀유지협약(CDA) 및 선구매 계약서상 기밀유지조항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개발에 들어간 자금은 대부분 정부와 비영리기관에서 나왔다. 과학 데이터를 분석하는 에어피니티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들은 백신개발에 약 9조 4472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비영리단체들은 약 2조 1801억을 지원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투자한 자금은 약 3조 7789억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모더나는 미국 정부로부터 개발비 등으로 공적자금 6조 6040억원을 지원받았고, 화이자와 바이오앤체크는 독일 정부로부터 공적 자금 2조 8700억원을 지원받았다. 특히 모더나의 mRNA 백신개발비는 거의 대부분 정부의 공적자금과 비영리단체의 지원금으로만 이뤄져 있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백신은 공공재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화면 출처 BBC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5298977

백신개발엔 각국정부의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 이는 국민의 세금이다. 하지만 mRNA 백신개발사들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여러조치를 취하고 있다. 백신을 둘러싼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상주의자의 인본주의도, 현실주의자의 자본주의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 필요한 이념이다. 

 

백신을 둘러싼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살펴보았듯이, 코로나19 mRNA 백신개발은 거대제약사와 민간의 엄청난 투자가 없었으면 불가능했겠지만, 그 개발의 여정은 결코 거대제약사의 자본주의적 실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공여부가 불투명했던 상황에서 mRNA 백신으로 인류를 구하겠다는 인본주의적 희망을 잃지 않았던 몇몇 과학자들의 끈기가, 결국 불가능해보였던 mRNA 백신기술의 활로를 찾게 만들었다. 개발과정에서 나타난 인본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등은, mRNA 백신이 생산되고 전세계에 수급되는 상황에선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거대제약사는 정부와 시민의 눈치를 보면서도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고, 이 와중에 저소득국가는 백신수급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국기구(OECD)는 5월에 발표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백신이 전 세계에 신속하게 골고루 분배된다면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5~6%까지 오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3%로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단지 인본주의적인 가치 때문이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백신이 저소득국가에 공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결국 거대제약사가 속해 있는 제약업계는 물론 모든 산업에 이익으로 돌아온다. 즉, mRNA 백신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만 공급하는 현재의 상황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실수라는 뜻이다. 

 

과학기술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분명 mRNA 백신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인류에 제공했다. 하지만 이렇게 제공된 기술이 인본주의적인 이상에 기반해 사용되리라 기대하는건, 나이브하고 무책임한 태도다.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과학기술자의 역할이 지식을 발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작업을 넘어서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코로나19 mRNA 백신을 과학기술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방식은,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백신이라는 과학기술의 결정체는, 과학기술 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의 총체적 맥락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인은 그 논의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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