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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복·붙’ 즐기다 복구 못할 나락으로 '연구부정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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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복·붙’ 즐기다 복구 못할 나락으로 '연구부정행위'

2021.02.20 09: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좋은 연구자가 되려면 연구자의 기본 소통 수단인 논문을 잘 써야 한다. 잘 쓴 논문은 다른 연구결과를 정확히 인용하고 데이터를 임의로 가공하지 않는 등 연구윤리를 준수해야 한다. 최근 일부 연예인이 학위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도 기본적인 연구윤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자를 꿈꾼다면 꿈에서도 주의해야 할 연구부정행위 실태를 점검해봤다.

 

지난해 11월 국민일보는 박사 출신 가수로 유명한 홍진영 씨의 석사 학위 논문 표절률(논문 유사도)이 74%에 달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얼마 후 스타강사 설민석 씨의 석사 학위 논문도 52%가 다른 논문과 똑같다며 표절 시비가 붙었다. 연이은 유명인들의 논문 표절 시비는 이런 ‘표절률’을 근거로 이뤄진다. 정말 그들은 남의 논문을 74%, 52%나 똑같이 베낀 걸까. 

 

 

 

‘카피킬러’ 점수가 전부는 아니야
논문 유사도 검사 프로그램 ‘턴잇인’의 결과지. 논문 유사도 검사는 지금까지 발행된 논문 데이터베이스와 새 논문의 유사도를 비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논문 표절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학위 논문 제출 시 논문 유사도 검사 결과를 함께 첨부해야 하는 연구기관이 늘고 있다. 턴인잇 제공
논문 유사도 검사 프로그램 ‘턴잇인’의 결과지. 논문 유사도 검사는 지금까지 발행된 논문 데이터베이스와 새 논문의 유사도를 비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논문 표절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학위 논문 제출 시 논문 유사도 검사 결과를 함께 첨부해야 하는 연구기관이 늘고 있다. 턴잇인 제공

 

많은 이들이 유명인의 논문 표절에 관한 의혹을 제기할 때에는 논문 유사도 검사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논문 유사도 검사는 지금까지 발행된 논문 데이터베이스와 내 논문의 유사도를 비교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표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프로그램으로는 카피킬러, 턴잇인(Turnitin) 등이 있다.


하지만 표절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제대로 된 검증을 거쳐 제출된, 표절이 아닌 정상적인 논문도 이 프로그램을 돌려보면 대부분 논문 유사도 수치가 20~30% 정도로 나온다. 현실적으로 0%가 나오기는 힘들다. 


논문에는 저자가 직접 생각한 연구 아이디어를 실험해 증명한 내용이 담긴다. 이를 설명하려면 기존 연구의 배경이나 연구결과, 검증된 실험 방법 등을 언급해야 한다. 이때 논문의 저자는 자신이 참고한 내용의 출처를 밝히거나 참고논문을 언급하는 방법으로 ‘인용’한다. 본인이 직접 생각해 증명하지 않은 모든 내용은 인용하는 게 원칙이다. 출처만 정확히 표기했다면 같은 내용을 쓰거나, 심지어 똑같이 쓰더라도 표절이 아니다.


따라서 논문 유사도 74%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 수 없다. 74%의 내용이 얼마나 적절하게 인용돼 있는지 여부가 표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인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먼저 인용 표시 대상에는 자신이나 논문을 지도하고 있는 지도교수가 쓴 논문도 포함된다. 인용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논문 내용을 쓰면 표절이다. 개인적인 허락을 받더라도 마찬가지다. 2015년, 당시 18세의 나이로 국내 최연소 박사를 꿈꾸던 송유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천문우주과학 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의 경우,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에 투고한 논문이 지도교수의 프로시딩(학술대회 보고서)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표절로 판명된 사례가 있다.


논문 유사도 검사 수치가 낮다고 해서 무조건 표절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유사도가 낮더라도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가 없다면 독창적인 저술로서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다. 인용을 지우고 읽었을 때 논문이 독창적으로 담고 있는 학술적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표절이다. 특히 핵심 아이디어는 1%라도 도용으로 판정되면 바로 표절로 판명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격해지는 연구부정행위

 

“당시 관례로 여겨졌던 것들인데….” 홍 씨를 비롯한 표절 시비의 당사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다. 엄창섭 고려대 의대 교수(대학연구윤리협의회장)는 “시대가 바뀌며 표절을 비롯한 연구부정행위의 기준이 달라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며 “하지만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대다수 표절을 옹호하는 변명이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생명과학 논문에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이나 ‘전기영동’ 같이 생명과학 실험실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언급할 경우, 이 기술이 현재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돼 특별히 기술 출처를 인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합의가 형성돼 있다면 인용을 생략할 수 있다. 그 내용이 자신이 창조한 새로운 방법인 것처럼만 작성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실험 기법조차 논문에 사용하려면 어떤 논문에 나온 방법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정확히 인용해야 했다.


시대에 따라서 논문 작성 트렌드도 달라진다. 논문은 초록, 서론, 연구방법, 결과, 토의로 구성되는데, 1980~1990년대에는 논문의 서론 부분이 굉장히 길었다. 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2~3장에 걸쳐 포괄적으로 다뤘다. 하지만 최근 많은 논문들이 서론을 줄이고 전체적인 논문의 분량을 줄이는 추세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네이처’ 등에서는 1쪽짜리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구글링으로 전문적인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며 논문의 모양새도 바뀌었다. 엄 교수는 “1980~1990년대 논문들은 서론에서 연구주제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만큼 서로 겹치는 내용도 많다”며 “이 당시 논문의 표절 여부를 심사할 때는 서론보다는 결과를 위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내용을 쓰더라도 학술지의 성격에 따라 표절 여부 판가름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일례로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명제는 과학적인 상식에 해당하므로 인용 없이 사용해도 되지만,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대답도 가능한 문학 학술지라면 꼭 인용을 해야한다. 


분명한 점은 연구윤리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차 엄격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는 위·변조, 표절 등에 국한됐던 연구부정행위가 생명안전법, 정보보호법 등으로 확대되며 연구부정행위를 더욱 엄격하게 제재할 수 있게 됐다. 


대학원, 연구소 등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윤리 교육도 점차 확대되는 중이다. 엄 교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연구윤리 과목을 정식 커리큘럼에 넣어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며 “연구활동을 하는 당사자가 아닌 교무위원, 행정직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연구윤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된 연구 지원 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연구부정행위

최근에 이슈가 된 표절 이외에도 위·변조, 부당한 저자 등재, 부당한 중복 게재 등 다양한 연구부정행위가 있다. 연구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되면 담당 연구기관의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본조사, 이의신청, 재조사의 단계를 거쳐 연구부정행위 여부를 가린다. 보통 6개월에서 1년가량 걸리지만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연구부정행위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학계에서 매장당할 수 있을 정도로 학자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일이다.

 

데이터 위·변조

 

위조는 실제 없는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연구부정 유형이다. 설문지를 조작하거나 실험을 실제 수행하지 않고 적당한 사진으로 데이터를 채우는 식이다. 변조는 마치 ‘답정너’처럼 미리 결론을 내린 채 원하는 방향으로 나온 결과만을 취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형이다.


특히 과학계에서는 데이터에 조금이라도 손댄 흔적이 있으면 연구부정행위로 간주할 정도로 데이터 위·변조에 엄격하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 연구실에서 2017년 발표한 논문이 데이터 변조 의혹을 받고, 교토대 연구공정조사위원회에 의해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이 논문은 2018년 철회됐다.

 

부당한 저자 표시

 

연구가 시작되기 전에 실험이나 논문 작성 등 각자 할 일을 분배하고 저자권(authorship)을 먼저 합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신저자는 전체 논문의 아이디어를 내고 전반적인 데이터를 점검하며, 논문작성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논문상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은 제1저자가 된다. 만약 연구책임자가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자권을 설정하거나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등재한다면 부당한 저자 표시로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한다.


2019년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2012년 발표한 소 복제 관련 논문에 당시 고등학생이던 본인의 아들을 제2저자로 넣고, 이를 강원대 수의대 편입 입시에 활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이를 연구부정행위로 판정했고, 아들의 강원대 수의대 입학은 취소됐다.

 

부당한 중복 게재

 

연구자가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내용을 출처 표시 없이 게재하는 유형이다. 실적을 올리거나 연구비를 수령하는 등의 부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한다. ‘셀프표절’도 안된다는 말이다.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은 곧 공적인 내용이 된다는 의미로, 자신이 쓴 논문이라도 마음대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연세대 공대의 한 연구원이 2004년 국제학술지 ‘응용물리학레터스(APL)’에 발표한 논문이 다른 학술지에 이미 발표된 것을 짜깁기한 내용이라는 사실이 2006년 밝혀진 사건이 있다. 당시 연구원의 소속 대학은 그의 박사학위를 취소했고, 교신저자였던 교수는 1년간 정직, 3년간 연구 활동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례적으로 APL 편집팀은 교신저자에게 비윤리적인 행위 및 국제 저작권 위반을 이유로 사과문을 게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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