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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4000년 전 동아시아인은 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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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4000년 전 동아시아인은 코스모폴리탄

2020.10.30 03:00
몽골 '살킷' 인류 고게놈 분석 결과...데니소바인·시베리아인 등과 복잡하게 섞여
2006년 몽골 살킷 지역에서 발굴된 두개골 화석이다. 눈두덩이 커 보이는 특성 때문에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추정도 있었지만, 한국인 연구자들이 주도한 여러 연구를 통해 현재는 3만4000년 전 현생인류 화석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에 영국, 독일, 몽골, 한국 연구팀은 화석의 게놈을 해독해 3만4000~4만 년 전 전후 동아시아인의 복잡한 유전적 관계를 밝혔다. 몽골과학원 제공
2006년 몽골 살킷 지역에서 발굴된 두개골 화석이다. 눈두덩이 커 보이는 특성 때문에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추정도 있었지만, 한국인 연구자들이 주도한 여러 연구를 통해 현재는 3만4000년 전 현생인류 화석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에 영국, 독일, 몽골, 한국 연구팀은 화석의 게놈을 해독해 3만4000~4만 년 전 전후 동아시아인의 복잡한 유전적 관계를 밝혔다. 몽골과학원 제공

2006년 몽골 동부에서 발굴된 이래 독특한 형태로 논쟁을 일으켰던 고인류 화석의 정체가 고(古)게놈 해독 연구 결과 밝혀졌다. 화석의 주인공은 3만4000년 전 살았던 현생인류 여성으로, DNA에서 북시베리아인 및 서유럽인의 DNA와 친척 고인류인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발견돼 당시 동아시아인이 이미 다른 지역의 다양한 인구집단과 섞이며 복잡한 유전적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단장팀과 이선복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이정은 연구원팀은 영국 옥스퍼드대, 몽골과학원 팀과 함께 몽골 살킷 지역에서 발굴된 고인류 두개골 화석에서 시료를 채취해 게놈을 해독하는 데 성공해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9일자(현지시간)에 발표했다.

 

●몽골에서 발굴된 독특한 화석, 국내 연구자 주도로 구체적 연구 시작


살킷 화석은 2006년 몽골에서 발굴된 고인류화석이다. 몽골에서 나온 유일한 플라이스토세(약 258만~1만 년 전) 고인류 화석이다. 두개골 가운데 윗부분만 발굴됐는데, 눈두덩 부위가 발달해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 교수는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이 화석의 주인공이 호모 에렉투스라거나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연구가 거의 없이 무시되고 방치돼 왔다”고 말했다.


제대로 연대도 측정되지 않고 보존도 제대로 안 되고 있던 이 화석이 중요한 가치를 가진 연구 대상이 된 데에는 이 교수의 공이 컸다. 먼저 제자이자 국내 1호 고인류학 박사로 꼽히는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와 함께 몽골에서 직접 살킷 화석의 특성을 계측하는 연구를 해 화석의 주인공이 현생인류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상희 교수는 e메일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에는 훨씬 더 오래된 고인류 집단일 거란 추측이 있었지만 지금은 현생인류라는 데 이의가 없다”라며 “두개골에 크게 이야기할 만한 특징이 없어 그 동안 고인류학에서 많이 논의되지 않았지만 게놈 연구로 다시 주목 받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2015~2016년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이어 2017년에는 옥스퍼드대와 막스플랑크연구소, 몽골과학원 팀과 공동으로 이 화석에서 시료를 채취해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기술로 연대를 측정하고 미토콘드리아 DNA를 해독하는 작업을 했다. 이선복 교수는 “화석의 오염이 심해 매우 힘들었지만 새로운 기술로 해독에 성공했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를 통해 살킷 화석이 약 3만4000년 전에 살았으며 오늘날 유라시아인 사이에서 널리 발견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됐다.

 

살킷(흰 마름모)과 티앤유안(빨간 마름모)인의 게놈을 다른 고인류(마름모) 및 현대인(원) 게놈과 비교한 데이터다. 색이 비슷할수록 게놈 유사도가 높다. 동아시아 및 아메리카 대륙이 다른 곳보다 유사하다. 사이언스 논문 캡쳐
살킷(흰 마름모)과 티앤유안(빨간 마름모)인의 게놈을 다른 고인류(마름모) 및 현대인(원) 게놈과 비교한 데이터다. 색이 비슷할수록 게놈 유사도가 높다. 동아시아 및 아메리카 대륙이 다른 곳보다 유사하다. 사이언스 논문 캡쳐

이번 연구는 네 기관이 다시 모여 더 정밀하게 살킷 화석의 게놈을 분석하고 DNA에 남겨진 다양한 인구집단의 유전적 영향을 밝힌 연구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고인류 화석에서 자주 발견되는 염기서열 치환 현상을 이용해 오염된 DNA와 화석의 DNA를 구분하는 기술을 통해 오염이 심한 살킷 화석의 시료에서 원래 화석의 게놈만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유전적 영향 매우 복잡...오래 전부터 교류 활발한 '코스모폴리탄'이었을 것 


연구팀은 살킷 게놈 해독 결과를 유라시아의 다른 옛 현생인류의 게놈 해독 결과와 비교했다. 먼저 시기와 지역이 가장 가까운 중국 베이징 부근 티앤유안에서 발견된 4만 년 전 남성 화석 게놈과 살킷을 비교한 결과 유전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살킷 화석에서는 티앤유안 화석에는 발견되지 않는 3만1000년 전 북시베리아 인구집단(야나 족) DNA가 많이 발견돼 티앤유안인과 분리된 뒤 야나 족의 유전자가 섞인 것으로 추정됐다. 야나 족은 유라시아 서부(유럽)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인류로 유럽의 DNA를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살킷 역시 티앤유안인보다 유럽의 DNA가 많았다.

 

이선복 교수는 “북쪽 지역이 개방적인 초원지대인 만큼 수렵채집인 사이에 교류가 자주 있었을 것”이라며 “(유전자의) 확산 속도도 빨랐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이번 분석 결과를 통해 동아시아인의 유전적 영향을 정리한 그림이다. 네안데르탈인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쳤고, 이후 유라시아 서부와 동부 집단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서부 집단 일부는 북쪽 시베리아까지 영향을 미쳤고 이들과 일부 교류한 살킷 집단 역시 그 영향을 일부 받았다. 데니소바인은 살킷과 티앤유안인의 공통조상과 영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이언스 논문 캡쳐
이번 분석 결과를 통해 동아시아인의 유전적 영향을 정리한 그림이다. 네안데르탈인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쳤고, 이후 유라시아 서부와 동부 집단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서부 집단 일부는 북쪽 시베리아까지 영향을 미쳤고 이들과 일부 교류한 살킷 집단 역시 그 영향을 일부 받았다. 데니소바인은 살킷과 티앤유안인의 공통조상과 영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이언스 논문 캡쳐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수만 년 전 유라시아 지역에서 공존하며 서로 유전적 영향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데니소바인의 DNA는 살킷과 티앤유안인에게서 거의 비슷하게 발견됐다. 살킷과 티앤유안인의 공통조상 때 유입된 것으로 추정됐다. 논문 1저자인 디엔도 마실라니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연구원은 “3만5000년 전 이전에 유라시아 전역에서 이주와 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는 결과”라며 “동아시아인의 현생인류는 당시 이미 코스모폴리탄이었다”라고 말했다.


살킷에게 발견된 데니소바인 DNA는 한국과 중국, 캄보디아, 몽골 등 동아시아 전반에 널리 남아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하지만 데니소바인 유전자를 지닌 파푸아뉴기니 등 오세아니아 지역의 인류와는 전혀 달랐다. 일본인에게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마실라니 연구원은 “데니소바인과 현생인류의 유전자 혼합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선복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고인류학의 중요성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이선복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고인류학의 중요성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 “한국인 포함 동아시아인, 복잡한 형성 과정 거쳐…민족주의적 ’기원 찾기’ 집착 이젠 벗어나야”
-이선복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인터뷰


이선복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구석기 고고학 전문가다. 석기 등 유적을 발굴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대를 측정해 왔다. 특히 고고학과 인류학 국내에서 발굴된 인골 화석이나 석기 등이 구체적인 '물증' 없이 민족주의적인 열망에 의존해 수십만 년 전 화석이나 유적이라고 주장될 때마다 "정확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며 증거와 과학 기반의 고고학을 정립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28일 오전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이번 연구만 해도 과거에 여러 인류가 복잡하게 섞인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한국인의 기원을 찾거나 특출난 한국인의 특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사실상 무의미함에도 한국에서는 수십 년째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제는 이런 데에서 탈피해 인류의 진화와 문화의 변천을 다루는 고인류학과 고고학의 더 중요하고 큰 질문을 하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교수는 중요성에 비해 국내 전문가가 없는 고인류학 분야의 가치에 일찍 눈 떠 제자 중에 고인류학자를 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고인류학 박사1호로 꼽히는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그의 권고로 고인류학자가 된 대표적 제자다. 


또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았지만,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이용한 연구에도 왕성하게 참여하고 있다. 화석에서 게놈을 해독하는 기술을 발전시켜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해독하는 데 성공해 고게놈학의 전성기를 연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진화인류학연구소 단장,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토머스 히감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등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발표한 살킷 논문은 모두 이 같은 공동연구의 성과다.


이 교수는 올해 안식년을 맞아 원래 이맘때 막스플랑크연구소 및 옥스퍼드대팀과 몽골에 가 동아시아 인류의 진화를 밝힐 새로운 유적과 화석을 발굴하고 있었어야 했다. 발굴지역도 선정하고 모든 계획을 다 세워 둔 상태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발굴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 교수는 “정년이 2년 남았는데 그 때까지 코로나가 진정될지 모르겠다”라며 “정년이 되면 연구 기회가 거의 사라지는 한국에서 새로운 연구 기회를 더는 살리지 못할 것 같아 그게 하나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틈틈이 고고학 연구 경험을 집대성해 ‘한국의 고고학’(가제)이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집필하고 있다.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고고학 책을 쓰겠다는 집념이 제목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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