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공론은 국내 제약바이오 분야 최고의 석학 15명을 초빙해 '제약전문평론위원' 제도를 운영한다. 이들은 9월 첫째 주부터 정기적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신약개발 및 마케팅 분야에서 최신의 트렌드는 물론 그간 쌓아온 경험의 '정수'를 선보일 전망이다. 이에 약사공론은 각 평론위원의 첫 번째 평론에 앞서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진단해 보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들어봤다. <편집자 주>
안바이오컨설팅 안해영 대표는 한국인 출신으로 FDA에서 27년을 근무하며 입지전적인 경력을 쌓은 인물이자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가 만나고 싶어하는 이 중 하나다. 가장 뛰어난 규제당국에서도 의약품 허가심사의 선두에 섰던 수많은 경험과 경력에서다.
이화여대 약학대학에서 학사, 서울대 약대에서 약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83년 미국으로 건너가 웨스트버지니아대 약대에서 박사학위, 미시간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친다.
이후 안 대표는 고민했다. 제약업계 이외의 길이 눈에 보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었다.
안해영 제약전문평론위원(안바이오컨설팅 대표)
"제약회사와 FDA를 놓고 고민을 했었습니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신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FDA에서 그런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런 제 결정이 학교 친구 등 주위 사람들에게 현명한 것으로 여겨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후 FDA에서 1990년부터 공직생활을 한 그는 1995년부터 국내 식약처 의약품안전국과 같은 기능을 하는 의약품평가연구센터(CDER, Center for Drug Evaluation and Research) 융복합 의료제품 사무소에서 임상약리팀장을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2년만에 팀장으로 승진을 했을 뿐만 아니라 FDA 내에서 수여하는 리더십상과 팀 우수상을 다회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2006년부터 2017년까지는 부국장(Deputy Division Director, OCP, CDER, FDA)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일이다.
또 2000년부터 2002년에는 센터 내 규제연구원을,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임상약리 리뷰어를 맡는 등 의약품 내 허가·규제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중 특히 안 대표의 당시 핵심업무 중 하나는 최근 세계적으로 하나는 최근 한국에서도 가장 뜨거운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바이오의약품 심사였다. 실제 국내사의 제품 들도 심사 과정에서 안 대표의 손을 거쳤다.
"실제로 FDA에서 일하면서 신약 개발은 회사가 한다지만, 시장의 요구에 따른 과학적 창의력이 안전을 염두에 두는 규제와 균형을 이룰 때, 효과 있고 안전한 약이 개발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FDA에 근무하며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많은 신약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수 많은 임상 데이터를 대할 수 있었습니다. 또 많은 경우 제약사들과 문제점들을 함께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재미도 있고 보람있는 생활이었습니다."
의약품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관으로 알려진 FDA인만큼 그 역시 오랜 시간동안의 에피소드 역시 많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미국에서 희귀질환의 정의는 미국내 환자가 20만명 미만의 질환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적은 환자들이 보고되는 희귀질환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소아 희귀질환들은 몇 십 명의 환자군이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임상 약리 팀 리더가 되고 얼마 안 있어 한 회사가 소아 희귀질환을 연구하겠다고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너무 환자 수가 적고, 아직 승인된 약도 없고 해서 저희 FDA 허가팀이 참조할 정보가 많지 않았습니다."
"신청 회사가 그 약을 개발하는 것을 돕고자 FDA 심사관들이 같이 고민하고 연구하며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 약이 FDA로부터 승인을 받았을 때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자부심마저 느꼈습니다. 그 후로도 희귀의약품 신청서를 리뷰하고 승인할 때마다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같은 그의 경력은 알아줄만큼 지난 2006년부터는 미국을 비롯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십 수번의 초청 강연을 벌일만큼 그 위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만큼 국내 보건당국과의 연도 깊다.
"한국 식약처 연구관들을 제가 있는 부서로 해외연수 형태 (18개월)를 갖춰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FDA 체계 안에서 한국 연구관들이 비교적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요건들을 처리했습니다 언어 소통의 불편함도 있고 한국 식약처와 미국 FDA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락되는 모든 프로젝트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허가팀의의 일원으로 내부 회의, IND심사, FDA-제약회사 회의 까지 참석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또 FDA 심사관들과 함께 논문도 쓰며 한국 식약처의 대변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렇게 한국 식약처 연구관들과 FDA에서 함께 일했던 경험은 개인적으로 큰 기쁨이었으며 이 연구관들의 FDA 경험이 한국 식약처 발전에 조그마한 모퉁이 돌이 됐으면 바랍니다."
아메리칸 드림' 이루기 위해서는
국내 업계 '소통' 통한 '큰 그림' 필요성도의약품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미국답게 전세계 제약사가 그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하지만 국내 업계에서 미국 시장에 진출함은 '아메리칸 드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꿈꾸는 업계에 의약품 심사허가의 선두에 서있었던 안해영 대표는 '기초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저는 신약개발이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개발 과정에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 더 이상의 진전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성급히 신약 개발, 특히 임상시험에 진입하기보다는 기초를 충분히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제조공정에서 부터 불순물을 관리하고 제조공정 매 과정을 조절하며 기록을 남겨 나중에 FDA나 다른 규제 기관에서 실사를 나올 때 보여줄 수 있는 기록 보관이 돼야 합니다. 이것이 cGMP의 골자 입니다. 또 비임상, 동물시험을 통해 약물 기전과 잠재적 안전성을 충분히 연구한 후 임상시험을 시작해야 합니다."
"FDA의 신약 심사기준은 세계 어느 규제기관보다 높습니다. 특별히 안전성에 대해서는 무척 보수적입니다. 임상 계획서가 승인받지 대부분의 이유는 임상 시험 참가자들 안전에 불순물이나 동물시험 대비 용량에 따른 부작용 등등 위험 부담이 있다고 FDA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임상 1상, 2상, 3상이 다 성공적으로 끝나고 NDA나 BLA를 제출한 후에도 cGMP에 문제가 있고 약의 품질에 문제가 있어 안전성이 의심된다면 그 약은 FDA로 부터 승인받지 못합니다."
물론 이 가운데서도 국내 제약업계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사례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경쟁력 부재와 부족한 체계화, 구하기 어려운 전문가그룹 등은 선결과제로 남아있다.
안해영 대표는 여기에 '큰 그림'과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체를 보고 그 과정을 이루며 이를 보건당국과 발맞춰야 시장을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많은 한국 제약 회사나 벤처가 신약 개발에 뛰어들지만 자금력 부족 등으로 인해 대다수가 임상 1상 후, 2상 초기에 기술 수출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을 시작합니다. 기술 수출이 목적이다 보니 규제와 약물개발, 비즈니스 등 신약 개발의 전체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단계적인 것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비임상 단계, 임상 초기 단계 부터 개발 전략을 짜고 FDA와 소통하며 전체 그림을 그렸으면 합니다."
"신약개발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공률이 낮은 프로젝트다보니 각각의 회사가 독립적으로 개발하기 보다는 컨소시움을 만들어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미국에서는 제약사 혹은 바이오업계에서 많은 컨소시움을 만들어 특정한 사항을 놓고 같이 고민하고 때로는 FDA와 회의를 하며 의견을 교환합니다. 실제 FDA재직 당시 여러번 컨소시엄-FDA meeting에 참석했는데 무척 유익하다고 느꼈습니다."
베테랑 규제과학자의 새 도전
'정확한 환자에게, 정확한 약으로, 정확한 분량에, 정확한 시간에'수많은 경험과 경력을 모아온 안해영 대표는 FDA를 퇴직한 후 안바이오컨설팅을 세웠다. 그간의 경험을 업계에 전하고 다듬으며 제약업계가 그 경험으로 시장에 도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안바이오컨설팅의 주요업무는 인허가 관련 컨설팅과 신약 개발 관련 컨설팅 입니다. 인허가 관련 컨설팅에는 Pre-IND (비임상 시험) 단계부터 신약 및 생물의약품 허가신청에 이르기까지 규제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FDA 의 신속심사 제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또 신약 개발 관련 컨설팅은 포괄적인 신약 개발 플랜 (CMC, 비임상 약효/독성, 임상약리, cGMP)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고 임상시험 승인신청서와 의약품 허가 신청서를 검토하며 각종 FDA와의 회의 지원과 FDA회의록 해석및 FDA recommendation에 따른 다음 전략을 도와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규제/임상시험 위탁기관 (CRO) 가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회사와 CRO사이에서 liaison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회사의 주요 업무가 FDA와 관련된 업무이기에 저희는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FDA에서 오랫동안 일한 FDA 출신 자문관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안 대표가 추구하는 의약품의 목표에 부합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제가 FDA에 근무할 때 제 부서의 모토는 '정확한 환자에게, 정확한 약으로, 정확한 분량에, 정확한 시간(에 투여하는 것)'(right patient, right drug, right dose, right time)이었습니다. 이는 신약개발자와 규제하는 이의 공동의 목표입니다."
"요사이 세계적으로 항암제 개발이 무척 활발합니다. 하지만 모든 약이 모든 환자한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2004년에 대장암 치료제로 개발된 '얼비툭스'는 모는 대장암 환자한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K-Ras 변이가 안 생긴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또 다발성 골수종 및 고형암으로 인한 골전이 환자에게 사용되는 '조메타'는 신장 장애가 있는 환자에게는 용량이 적게 투여해야 하지요."
"가령 노인들은 중년 환자들 보다 약물 대사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약에 따라서는 용량이 낮아져야 합니다. 소아도 작은 성인이 아닙니다. 약물의 흡수, 대사, 배설 기능이 성인과 다르고 약물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소아에 대한 용량은 따로 연구해야 합니다. 또 개발하고자 하는 약물을 단일 용법으로 개발할 것인지 다른 약물과 병용 용법으로 개발할지에 따라 비임상, 임상시험 전략이 달라져야 합니다."
안 대표는 이를 통해 환자에게 맞는 환자중심적 개발을 위한 제약업계의 노력도 더해져야 함을 강조했다.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약물 후보 물질의 작용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파악하고 효능을 연구하며 타깃 환자군을 정해야 합니다. 환자군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임상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개발 속도를 높이고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실수하면 특수 환자군에서 효과가 있는 것을 효과가 없다고 잘못 판단할 수도 있고 특정 환자군에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승인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개발 초기 단계부터 환자 중심적 개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