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하는 과정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새로운 인체 세포 표면 분자가 발견됐다. 이 분자를 제거하거나 바이러스와 결합하지 못하게 막으면 코로나19 바이러스 침투를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널리 쓰이는 혈액 항응고제가 이 분자와 바이러스의 결합을 효율적으로 막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새로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프리 에스코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의대 교수팀은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가 인체세포에 감염될 때 세포 표면의 ‘헤파란황산염(헤파란 설페이트)’라는 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과정을 막으면 감염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 15일자에 발표했다.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인체세포에 감염될 때 자신이 가진 돌기 단백질(스파이크 단백질)로 인체세포 표면의 안지오텐신전환효소2(ACE2)라는 단백질을 인식해 붙잡으면서 침투를 시작한다. 비유하면 바이러스의 손(스파이크 단백질)으로 문고리(ACE2)를 잡아 여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과정이 바이러스 침투와 증식의 첫 단계라 많은 치료제와 백신 후보물질이 이 과정을 표적으로 삼아 개발되고 있다. 한때 코로나19 재창출 치료제 후보물질로 연구되던 인플루엔자 치료제 아비돌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ACE2와 결합하는 과정을 좀더 자세히 연구했다. 그 결과 스파이크 단백질이 ACE2와 혼자 결합하지 못하고, 인체세포 표면에 돋아나 있는 길다란 당 분자인 헤파란황산염의 도움이 필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인플루엔자나 헤르페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 많은 바이러스가 세포 표면의 당 분자와 결합하도록 진화했다”며 헤라판황산염도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대표적 표면 당 분자로 코로나19와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헤파란황산염은 당 분자가 진주목걸이처럼 길게 이어진 사슬 모양 분자로 인체 모든 조직에서 발견되며 폐 세포에서도 발견된다. 혈액응고를 방지하는 약으로 쓰이는 헤파린과 구조가 비슷하다.
연구팀은 폐포에서 채취한 세포 두 종과 흑색종 피부세포 한 종, 간암세포 한 종을 준비한 뒤, 헤파란황산염을 제거하는 효소를 투입하고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를 감염시켰다. 그 결과 스파이크 단백질과 ACE2의 결합이 80~90% 감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바이러스 침투 가능성이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뜻이다. 헤파란황산염을 만드는 효소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제거해도 비슷했다. 또 세포에 헤파린을 넣은 결과 스파이크 단백질이 헤파린과 결합하는 대신 헤파란설파이트와 결합하지 않으면서 역시 최대 90%까지 결합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헤파란황산염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새로운 치료제 표적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헤파린 등 헤파란황산염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저해제를 약물재창출을 통해 코로나19 치료제로 바꿀 가능성도 제시했다. 에스코 교수는 “다만 동물실험부터 새롭게 진행해야 하는 만큼 헤파린이나 비슷한 저해제를 치료제로 활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