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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에서 특정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물질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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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에서 특정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물질 찾았다

2020.08.05 18:30
인도산 후추 속 '파이퍼롱구민'…부작용 적고 개인맞춤 항암제 개발 가능
건강한 세포(분홍색)로 둘러싸인 성장하는 암세포(보라색)가 혈관을 통해 다른 신체 기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 셀(Darryl Leja, NHGRI) 제공
건강한 세포(분홍색)로 둘러싸인 성장하는 암세포(보라색)가 혈관을 통해 다른 신체 기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 '셀(Darryl Leja, NHGRI)' 제공

국내 연구팀이 인도산 후추에서 정상세포는 죽이지 않고 특정 암세포만 골라 죽일 수 있는 새로운 항암 물질을 발굴했다. 식품에 함유된 성분으로 향후 구조 개선을 통해 항암제 후보물질로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물질이 작용하는 구체적 과정도 밝혀, 향후 이 과정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할 가능성도 커졌다.


변상균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와 신승호, 이지수, 장지아민 연구원팀은 인도산 후추에 함유된 ‘파이퍼롱구민(PL)’이라는 물질이 특정 암세포만을 골라 죽이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히고 그 원리를 규명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지난달 3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엠토르(mTOR)’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이 암세포에서 특히 활성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mTOR는 토르(TOR)라는 미생물 단백질의 포유류 버전이다. 세포 증식과 대사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변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mTOR는 노화와 수명, 당뇨, 암 등 다양한 질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특히 암 유발하는 다양한 신호전달경로가 mTOR를 경유해 제약사에서도 항암 목적으로 큰 관심을 갖는 단백질”이라고 말했다.


기존 연구는 주로 mTOR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항암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게 ‘라파마이신’이라는 물질과 그 유사체다. 토르라는 이름 자체가 ‘라파마이신 표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은 암세포 성장을 느리게 할 뿐 죽이지는 않아 임상 효과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팀은 발상을 바꿔 mTOR를 억제하지 않고 mTOR의 활성이 높은 세포를 암세포로 식별해 골라 죽이는 방법을 떠올렸다. mTOR 활성을 일종의 암세포의 ‘식별표’로 활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mTOR 단백질의 신호전달체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mTOR단백질복합체1(mTORC1)의 활성이 낮은 암세포와, 반대로 이 단백질의 활성을 유전적인 방법으로 높인 암세포를 준비했다. 그 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물과 생리활성물질 1576가지를 직접 일일이 세포에 주입해 배양하는 방법으로 mTOR의 활성이 높은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항암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변 교수는 “최근 컴퓨터를 이용해 후보약물을 발굴하는 연구도 많지만, 실제 세포가 가장 정확해 세포 실험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mTOR단백질복합체1(mTORC1)의 활성이 낮은 세포에서는 DNA 손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낮아서 RUVBL1/2-TTT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이 경우에는 RUVBL1/2-TTT를 억제하는 파이퍼롱구민(PL)이 있어도 세포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왼쪽). 하지만 mTORC1의 활성이 높은 암세포에서는 DNA 손상 스트레스가 높기 때문에 파이퍼롱구민이 RUVBL1/2-TTT를 억제하면 암세포가 DNA 손상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죽게 된다. 연세대 제공
mTOR단백질복합체1(mTORC1)의 활성이 낮은 세포에서는 DNA 손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낮아서 RUVBL1/2-TTT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이 경우에는 RUVBL1/2-TTT를 억제하는 파이퍼롱구민(PL)이 있어도 세포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왼쪽). 하지만 mTORC1의 활성이 높은 암세포에서는 DNA 손상 스트레스가 높기 때문에 파이퍼롱구민이 RUVBL1/2-TTT를 억제하면 암세포가 DNA 손상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죽게 된다. 연세대 제공

그 결과 인도산 후추에 들어있는 성분인 파이퍼롱구민이 정상 세포는 공격하지 않고 mTORC1 활성이 높은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밝혔다. 환자에게 채취한 종양 조직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파이퍼롱구민이 mTORC1 활성이 높은 암세포의 어떤 신호경로에 작용해 항암 효과를 내는지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 mTORC1 활성이 높은 암세포는 DNA 손상 스트레스가 큰데, 파이퍼롱구민은 이 과정을 조절하는 신호전달체계(RUVBL1/2-TTT)를 방해해 DNA 손상을 유도하고 암세포를 사멸로 이끌었다.


연구팀은 발굴한 신호전달체계를 방해하는 물질을 이용하면 다양한 새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변 교수는 “파이퍼롱구민의 항암 효능을 발굴한 것도 성과지만, 새로운 항암 표적을 찾은 게 더 큰 성과”라며 “mTORC1의 활성이 높은 종양을 가진 사람을 조직검사를 통해 선별한 뒤 이 표적에 작용하는 항암제를 사용하면 부작용이 적고 효과는 우수한 개인맞춤형 항암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변상균 교수와의 e메일 인터뷰 내용이다.

변상균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
변상균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

Q. TOR는 노화 연구자에게도 매우 유명한 단백질로 연구가 많이 되고 있다. 암세포와 관련해 주목한 이유는.
- mTOR는 노화, 수명, 당뇨, 암 등의 다양한 질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특히 암을 유발하는 다양한 신호전달경로(EGFR, PI3K, Ras 등)가 mTOR를 경유해서 암의 형질을 보여주기 때문에 제약회사와 학계 모두에서 mTOR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이에 mTOR를 억제하는 라파마이신 당의 약물이 개발됐으나, mTOR를 직접으로 억제하면 암세포의 성장이 느려지기는 하나 죽지는 않는 문제가 생겨서 실제 임상에서 효과는 예상보다 좋지 않다. 따라서 mTOR의 활성이 높은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됐다. 하지만 대부분 라파마이신과 병용처리를 해서 암세포 사멸효과를 찾는 방법이었기에 라파마이신 없이 mTOR에 중독된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는 새로운 물질 및 신규 표적을 찾는 연구를 생각하게 됐다.

 

Q. 암세포에서도 이 단백질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이미 연구가 돼 있었는데 그 동안 이를 억제하는 새로운 물질을 발굴하는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mTOR와 그 관련 신호전달체계는 항암 치료에서 매우 잘 알려진 주목받는 항암 표적이다. 임상 시험중인 억제제도 많다. 라파마이신 유사체나 TOR를 더 강하게 억제하는 다양한 약물들도 개발돼 연구중이다. 이번 연구의 특이점은 mTOR에 중독된 암세포들을 죽이는 방법으로 직접 mTOR를 억제하지 않고, mTORC1의 활성이 높은 암세포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적인 부분을 표적으로 해 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Q. 스크리닝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해 구조와 결합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을 먼저 추리는 방법도 널리 쓰이는데 직접 실험을 통해 스크리닝을 한 이유는.
-컴퓨터를 이용한 신실리코스크리닝(in silico screening)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들에서는 지금도 실제 스크리닝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실제 세포에 처리하는 것을 대체할 방법일 뿐 절대 실제 세포 결과만큼 정확하지 않다. 비용과 시간이 허용이 된다면 실제 스크리닝이 더 확실한 결과를 보여준다.

 

Q. 파이퍼롱구민을 발굴한 것도 성과지만, 약이 작용하는 구체적 신호전달체계를 밝히고 새 표적을 찾은 게 더 큰 성과 같다. 다른 약물이 발굴될 가능성은.
-맞다. mTORC1 의존적인 암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표적을 찾은 것이 사실 가장 큰 성과다. 스크리닝에서 나온 다른 물질도 후보가 될 수 있고, 이 논문에서 찾은 파이퍼롱구민의 유도체를 만들어서 더 우수한 효과를 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RUVBL1/2를 억제하는 더 우수한 물질들을 앞으로 합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약물로써 더 적합한 RUVBL1/2 억제제가 개발되면 좋을 것이다.

 

Q. 세포에는 하나의 신호경로 체계를 대체할 다른 경로가 많다. 파이퍼롱구민으로 RUVBL1/2-TTT를 억제하더라도 다른 경로로 다시 해당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은 없나.
-맞다. 신호전달체계가 복잡하고, 특히 암세포들 중에는 특이한 형질을 가지고 있는 소수가 있기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변종이 나중에 나올 확률이 있을 수도 있다. 다른 모든 항암 표적이나 항암제처럼 RUVBL1/2-TTT 억제도 모든 경우에서 효과를 볼 수는 없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mTORC1이 높은 종양을 가진 사람을 조직검사를 통해 선별해서 적용한다면 부작용이 적으면서 효과가 우수한 개인 맞춤형 치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Q. 식품 유래 성질이지만 단순 섭취한다고 암세포가 사멸되지는 않을 것 같다.
-섭취를 통한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파이퍼롱구민을 다룬 기존 연구를 보면 대부분 주사를 이용한 복강 투여 등의 방식을 사용했을 때에는 종양 억제 효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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