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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바이러스는 생물일까, 무생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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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바이러스는 생물일까, 무생물일까

2020.07.11 16:00
 

① 사람은 ‘세포’라는 기본단위로 이뤄져 있으며 
② 음식을 섭취해 에너지를 보충하는 ‘물질대사’를 하고 
③ 이에 따라 세포는 수를 늘리며 ‘생장’을 한다.
④ 이 와중에 외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으면 그에 따라 ‘반응’을 하면서도 
⑤ 체온과 같은 신체 상태는 일정하도록  유지하는 ‘항상성’을 띠며 
⑥ '생식’을 통해 부모 세대의 형질은 자손에게 ‘유전’된다. 
⑦ 이 과정이 거듭되면 서식 환경에 맞도록 신체나 생활 방식이 변하는 ‘적응’과 유전자 구성이 변하는 ‘진화’가 이뤄진다.

 

사람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이 일곱 가지 특성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생물로 인정받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이다. 이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무생물로 취급된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물질은 크게 생물과 무생물, 두 가지로 나뉜다.


이 관점에서 바이러스는 위치가 애매해진다. 일곱 가지 특성이 모두 나타나긴 하는데, 한 가지 조건이 더 붙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세포에 기생할 때만 이들 일곱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반대로 세포에 붙어 있지 않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생물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쯤이라는 애매한 위치에 바이러스를 놓고 있다. 여기까지가 현재 ‘교과서’에서 내리고 있는 생물의 정의다.


하지만 교과서 밖 세상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생물의 정의를 놓고 과학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 중에는 바이러스를 생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례로, 1990년대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지구 밖 외계 생명체를 찾기에 앞서 ‘생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논의 끝에 결론 내린 생물의 정의는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는 자립형 화학 시스템(A self-sustaining chemical system capable of Darwinian evolution)’이었다. 이는 물체가 분자구조를 이루고 있고, 이 구조는 자발적으로 형성되며, 물질대사나 생식 등을 조절할 수 있고, 자연선택에 따라 세대를 이어가면 생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NASA는 현재까지도 생물의 정의를 이렇게 유지하고 있으며, 외계 물질을 생명체로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기준에서는 바이러스도 생물의 정의를 만족하는 만큼 생물로 인정될 수 있다.


이외에도 그간 무수히 많은 생물의 정의가 나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섣불리 하나로 종합하지 못할 만큼 ‘생물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난제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바이러스가 생물인가에 대한 질문 역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만,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생물 분류 체계상에 바이러스는 포함돼 있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바이러스가 아직 생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크기이면서도 현 분류 체계상 생물에 포함된 박테리아(세균)와 자주 비교 대상이 된다. 종종, 아니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와 세균, 박테리아 등의 용어를 혼동한다. 
일상생활에서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들이어서 서로 구분이 쉽지 않다는 이유가 크겠지만,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한글로는 둘 다 ‘ㅂ(비읍)’으로 시작해 발음마저 비슷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하지만 세균은 세포로 이뤄져 있는 반면,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을 단백질이 둘러싼 단순한 구조라는 점부터 다르다. 혼선의 주범인 박테리아(bacteria)는 세균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바이러스(virus)와는 알파벳 첫 글자부터 다르다. 결국 이들의 관계를 종합하면 ‘바이러스≠세균=박테리아’로 요약할 수 있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유전물질을 갖고 있고,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실 많은 부분이 다르다. 우선 세균은 유전물질을 DNA로 저장하지만, 바이러스는 DNA뿐만 아니라 RNA로도 저장하고 있다. 


또 RNA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돌연변이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는 곧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세균성 질병보다 바이러스성 질병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더불어 평균적으로 세균은 0.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0.5mm인데 반해 바이러스는 세균의 50분의 1에서 100분의 1 수준으로 크기가 작다.


그런데 최근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계기는 바이러스 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이 내용은 바이러스는 얼마나 다양할까에서 자세히 나온다) 기존에 알려진 바이러스보다 좀 더 세균에 가까운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크기가 세균만큼 큰 거대 바이러스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 예로 2017년 발견된 클로스노이 바이러스는 유전체 크기가 무려 1.57Mb(메가베이스·1Mb는 100만 염기쌍)였다. 이는 유전체 크기가 작은 일부 세균들보다 더 큰 수치다. 


또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는 체계도 가졌다. 숙주의 도움 없이 스스로 단백질을 합성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유전적 체계는 완벽히 갖추고 있다.


2020년 2월 1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 결과도 바이러스와 세균을 조금 더 가까운 존재로 만들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유전체혁신연구소와 덴마크공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임신부의 대변, 티베트의 온천, 남아프리카의 생물반응기, 바다, 호수 등 40가지 이상의 환경에서 얻은 대규모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351개의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발견했다. 


염기서열 분석 결과 놀라웠던 점은, 일부 바이러스들이 리보솜과 관련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리보솜은 생물이 RNA를 활용해 단백질을 만들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세포소기관으로, 현 분류 체계상에서 생물과 바이러스를 가르는 지표이기도 하다.


바이러스가 갖고 있던 유전자는 리보솜을 구성하는 필수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였다. 연구팀은 바이러스가 스스로 리보솜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숙주인 세균이 바이러스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복제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본래 정해져 있는 상식을 깨부수는 것이 파급력이 있듯, 기존 생물 분류의 관념을 깨는 바이러스 연구 결과들이 계속해서 주목받고 있다. 아직 바이러스가 생물이란 걸 인정받진 못했지만, 바이러스는 점점 생물에 다가가고 있다.

 

▼이어지는 기사를 보려면? 

과학동아 7월 [바이러스 특집호] 

Chapter 2. 정체

바이러스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바이러스는 생물일까 무생물일까

바이러스는 얼마나 다양할까

좋은 바이러스도 있을까

바이러스는 생물학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바이러스가 우주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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