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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과 인류사]"말 없는 수천 년 전 인류사, 게놈이 밝힐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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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과 인류사]"말 없는 수천 년 전 인류사, 게놈이 밝힐 수 있어요"

2020.06.01 18:00
정충원 서울대 교수 '게놈 기반해 베일 쌓인 고대인류사 조명'
중국 북동부의 5000년 전 유적지인 하민 망하에서 발견된 유골 집단 매장 유적이다. 수십 구의 유골이 뒤엉켜 묻혀 있다. 감염병 집단 감염 사태 등 당시 사회가 급속도로 커지는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서울대와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가 주도한 연구에서 이곳을 중심으로 중국 북동부 고대인의 유전자 특성을 연구한 결과가 발표됐다. 지린대 제공
중국 북동부의 5000년 전 유적지인 하민 망하에서 발견된 유골 집단 매장 유적이다. 수십 구의 유골이 뒤엉켜 묻혀 있다. 감염병 집단 감염 사태 등 당시 사회가 급속도로 커지는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서울대와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가 주도한 연구에서 이곳을 중심으로 중국 북동부 고대인의 유전자 특성을 연구한 결과가 발표됐다. 지린대 제공

“다양한 지역, 시대의 고대 인류 유전체(게놈) 분석을 통해 유전적 특징의 시간적, 지리적 변화를 파악하면 이런 이동과 섞임의 역사를 세밀하게 복원할 수 있습니다.


수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수천 년 전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인류 역사에는 밝혀지지 않은 '구멍'이 많다.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밟은 인류는 누구인지, ‘인류 문명의 발상지’ 서남아시아의 복잡한 인류집단은 어떻게 형성돼 유럽에 어떻게 퍼졌는지, 같은 계통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거대한 언어 공동체를 이뤘는지 등 수수께끼가 잇따른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와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아래 사진)가 참여하는 국제공동연구팀은 최근 이런 역사계의 '난제'를 푸는 최전선의 연구 결과로 주목 받고 있다. 유전체 분석과 역사, 고고학을 접목해 인류집단의 이동 및 교류 역사를 과학적으로 재조명하는 새로운 융합 학문 분야를 미국 하버드대팀과 함께 열었다는 평이다. '셀'이나 '사이언스', '네이처' 등 최정상급 학술지도 최근 잇따라 이들의 논문을 게재하며 새 분야를 적극 알리고 있다.


●보름 사이에 중국, 서남아시아, 유럽, 시베리아 등 주요 지역 연구 쏟아져


실제로 고대사 연구 곳곳에 이들 두 연구그룹의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정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신석기~청동기 시대 서남아시아 레반트 북쪽 지역의 인구 이동과 교류를 밝힌 논문을 생명과학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와 지금의 이란 및 이라크 지역인 자그로스 산맥 사이에 인류가 신석기 이후 지속적으로 교류해 왔으며, 이후 동질적인 유전적 특성을 지니게 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날 ’맞수’인 데이비드 라이히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 역시 그 바로 남쪽 지역에 위치한 이스라엘 등 레반트 남쪽 지역의 청동기시대(4500~3000년 전) 인구 이동 양상을 밝혀 역시 ‘셀’에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게놈 분석을 통해 수천~수만 년 전 역사를 재조명하는 연구를 독일, 미국 연구팀 등과 함께 이끌고 있다. 서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유럽 등 다양한 지역의 고대 역사를 연구 중이다. 서울대 제공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게놈 분석을 통해 수천~수만 년 전 역사를 재조명하는 연구를 독일, 미국 연구팀 등과 함께 이끌고 있다. 서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유럽 등 다양한 지역의 고대 역사를 연구 중이다. 서울대 제공

정 교수는 이 분야의 본격적인 발전을 이끈 주요 연구자 중 한 명이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집단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16년부터 독일 예나의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유럽과 서남아시아, 동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유전체 분석 연구를 해왔다. 집단유전학을 정통으로 공부한 생명과학자이자 역사 매니아로서 막스플랑크의 굵직한 연구에 다수 교신저자로 참여하며 유전정보 분석을 주도하고 있다. 덕분에 집단유전학 ‘불모지’였던 국내에서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의 과거를 조명하는 연구 논문이 활발히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중국과 시베리아 및 아메리카, 유럽 등의 수만~수천 년 전 인류 이동사를 재조명한 연구 결과가 지난 보름 사이에만 네 편 이상 쏟아져 나왔다. 1일 정 교수팀은 중국 동북부 요하 서쪽 유역을 중심으로 이 남쪽 지역인 중원(황하 중하류) 지역과 북쪽(아무르강 유역)에 거주하던 7500~1700년 전 사람 55명의 유골 55구를 게놈 해독, 분석해 이 지역 인류의 독특한 변천 과정을 세밀히 밝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공개했다. 이 지역은 최초로 기장을 재배하는 등 인류 문명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곳이다. 연구 결과 요하 서쪽 유역의 인류는 중원 지역에 거주하던 집단과, 아무르강 지역의 집단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 결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뚜렷히 보여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 교수는 “시료 채취가 더 필요하긴 하지만, 예를 들어 4200~3600년 전 랴오닝성 부근에서 발달했던 ‘샤가뎬하층문화’ 때는 사람들의 유전적 특성이 중원 사람과 비슷해졌다가, 이후 청동기시대이자 유목적 성격이 강한 '샤가뎬상층문화' 시대가 오면 아무르강 사람과 비슷해지는 특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생산방식의 차이로 추정된다. 쌀과 기장 등을 기르던 중원과 기장, 조 등을 키우던 아무르강 유역 인구집단의 경계 지역이 이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의 연구 결과를 보면, 고대 역사와 문화는 특별한 사건에 의해 급격히 형성되거나 변화하는 게 아니다. 어떤 인류 집단이 등장하고 이동하며 누구와 만나면서 서서히 서서히 형성되고 변화하는 게 역사다.

 

정 교수팀이 1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공개한 새 연구 결과다. 중국 요서지방에 7500~1700년 전 거주했던 사람들의 유전적 특징 중원지역(황하 중하류) 및 아무르강 유역 지역(극동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요서지역 인류의 유전적 특징이 시대에 따라 변화했으며, 이는 남북에 위치한 서로 다른 인류집단의 경계지역으로서 두 집단의 이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정 교수팀이 1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공개한 새 연구 결과다. 중국 요서지방에 7500~1700년 전 거주했던 사람들의 유전적 특징 중원지역(황하 중하류) 및 아무르강 유역 지역(극동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요서지역 인류의 유전적 특징이 시대에 따라 변화했으며, 이는 남북에 위치한 서로 다른 인류집단의 경계지역으로서 두 집단의 이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지난달 22일 셀에 발표한 논문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유라시아와 최초의 아메리카인이 주제였다. 연구팀은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서쪽 부근에 약 1만 년에 걸쳐 살던 후기 신석기~청동기 시대 인류 유골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최초로 미국에 건너간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여러 인류 집단의 복잡하고 오랜 교류에 의해 탄생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3만 년 전 이전에 지금의 타이가벨트 지역에 살던, 매머드 등 대형 동물을 사냥하던 수렵채집인과 동아시아인이 복잡하게 섞인 뒤 이들이 지금의 베링해 지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갈라져 나온 다양한 세부 인류집단의 '가계도'를 세밀하게 밝혔다.


지난달 30일에는 프랑스 지역의 중석기 수렵채집인과 신석기 농부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밝힌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고고학이 발달한 유럽은 이 시기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 있지만, 프랑스는 예외였다. 정 교수는 “유럽 신석기 문명은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스페인으로 이동해 온 그룹과 다뉴브강을 따라 스위스와 독일을 거쳐 중부유럽을 가로질러 간 그룹으로 나뉜다”며 “이들이 결국 만나는 곳이 프랑스인데 정작 이 지역은 연구가 부족했다. 이번 연구 결과 기존에 존재하던 수렵채집인과 양갈래로 온 신석기 농부들이 섞이는 유전적 특성 변화 과정을 시간과 지역에 따라 확인했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고대인류도 유전체 ‘증거’ 기반해 밝힐 것"


인류 집단의 이동과 만남이라는 주제를 들으면 언뜻 전쟁이나 정복 등의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과 그에 따른 역사 전개가 떠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는 해석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기 좋은 분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주도하거나 참여했던 연구에는 이런 언급이나 해석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해석하기 어려운 미묘한 유전자 분포와 관계만 건조하게 서술돼 있을 뿐이다. 


그는 “수십~100여 구의 유골을 바탕으로 연구해도 여전히 모든 지역, 모든 시대를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한계를 염두에 둬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자칫 ‘이야기’를 만들거나 부각시키는 데 집중하다 보면 불충분한 근거로 잘못된 역사 해석을 할 수 있다. 그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 환경이 좋던 독일에서 이 분야의 불모지인 한국에 돌아온 데 대해 “이미 자료 수집과 분석, 해석 등에 특화돼 여러 번 호흡을 맞춘 국제 ‘드림팀’이 있기에 한국에서 연구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특히 동아시아 쪽 데이터를 가장 많이 연구해 본 극소수의 전문가 중 한 명인 만큼 앞으로 중국과 몽골 등 동아시아 쪽 고대 인류 역사를 밝히는 연구에서도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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