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논문 프로세스 바꿨다

검토 시간 단축되고 자금 지원 속도 빨라져

전 세계인의 일상을 변화시킨 코로나19가 과학 논문의 출판 과정 및 관련 자금 지원 행태까지 바꾸어 놓았다. 미국의 인터넷매체 ‘복스(Vox)’에 의하면, 논문을 게재하는 국제학술지들의 검토 시간이 대폭 단축된 반면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최근 의학 논문 사전 인쇄 플랫폼 ‘medRxiv’에서는 열람 및 다운로드가 100배 이상 증가하고, 새롭게 업로드된 논문의 수도 5배 이상 늘어났다. 이처럼 동료 검토를 받지 않은 논문을 게시하는 사전 인쇄 플랫폼의 이용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다.

의학 관련 저널들 역시 전례 없이 많은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다. 세계적인 의과학 저널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는 하루에 110~150건의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논문들이 게재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관련 논문의 검토 과정이 대폭 축소돼 논문 발표 수가 크게 증대했다. ⓒ fernando zhiminaicela(Pixabay)

저널들이 많은 논문들을 최대한 빨리 게재하기 위해선 검토 시간을 대폭 단축해야 한다. NEJM의 미디어 담당 이사인 제니퍼 제이스는 “예전에는 몇 주가 걸릴 수 있는 검토 과정이 최근 들어 48시간 이하로 단축될 만큼 짧아졌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발발 초기인 1월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만약 그때 논문을 과학 저널에 제출했다면 게재 승인 소식은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쯤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수정까지 4~5주 정도 걸리므로 자신의 논문이 실린 최종 인쇄본은 7월이 되어서야 받아볼 수 있다. 이는 동료들의 검토에 수개월이 걸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더 빨리 개발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생물학‧의학 분야 사전 인쇄 플랫폼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게재되는 사전 인쇄 논문이 14개 저널에 게재되는 시간을 조사한 결과 예전보다 절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코로나19의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의 단서가 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핵심 단백질에 관한 논문은 ‘사이언스’지에 제출된 지 9일 만에 발간되기도 했다. ‘사이언스’ 편집장인 홀든 소프 미국 워싱턴대 화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과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의 검토 단축화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칫 검토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심각한 결함이 있는 연구 결과가 미디어에서 널리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고, 다른 과학자들의 소중한 시간이 낭비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의학 논문 사전 인쇄 플랫폼 ‘medRxiv’에서는 열람 및 다운로드가 100배 이상 증가하고, 새롭게 업로드된 논문의 수도 5배 이상 늘어났다. medRxiv 홈페이지 캡처 화면. ⓒ medrxiv.org

사전 인쇄 플랫폼에 게재되는 논문의 경우 동료 검토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전 인쇄 논문들은 그대로 혹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저널에 발표되지만, 심각한 오류로 인해 검토 과정에서 취소되는 논문들도 상당히 많다. 또한 철저한 동료 검토 과정을 거쳐도 모든 오류를 잡아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이처럼 빠른 논문 검토 및 발표 과정은 이점이 엄청나다. 치료제 및 백신을 더 빨리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단지 팬데믹에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훌륭한 논문의 빠른 발표 과정은 암이나 대기오염, 기후변화 같은 위협에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복스’는 지적했다.

새로운 논문 프로세스 지속 여부에 관심

코로나19 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 속도가 빨라진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자금 지원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고, 자금 지급 검토 및 승인까지 다시 수개월이 더 소요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비롯해 각국 관련 기관들은 코로나 관련 연구자들을 위한 자금 지원 과정을 대폭 축소해 그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자금 승인 과정을 줄이게 되면 객관적인 관점에서 철저히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대신 유명 연구자나 명문 대학의 연구자들에 대해 먼저 승인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과학 저널 담당자들의 고충 또한 크다. 영국의 유명 의학저널 ‘랜싯’의 편집장인 리처드 호튼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우리가 논문 출판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의 진로에 위험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감을 가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이후의 빨라진 과학 현장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다. 그동안 동료 검토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고, 검토 및 승인 시간이 그만큼 낭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뜻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된 후에도 과연 이처럼 빨라진 새로운 논문 프로세스가 지속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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