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5년 후 전 세계 당나귀 1/2로 감소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세계수의학협회, 당나귀 국제무역 비난 성명

바다로 이어지는 긴 계단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에서는 당나귀가 최고의 운송수단이다. 그 계단들은 항구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해 교역을 위해서라도 주민들에게는 당나귀가 꼭 필요하다.

내연기관의 등장으로 당나귀의 노동력은 예전보다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또한 말처럼 승마용으로는 인기가 없어 사육하는 농가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빈국들의 시골 지역에서는 여전히 당나귀의 인기가 높다. 그들에겐 차비나 연료비보다는 당나귀를 이용하는 게 아직도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수의학협회에서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당나귀의 무역 행태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의 무역업자들이 브라질이나 파키스탄,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는 당나귀의 거래 과정이 매우 비참할 뿐더러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무역으로 인해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는 당나귀 수가 지난 12년 동안 39%나 감소했다. ⓒ publicdomainpictures.net

중국이 전 세계 당나귀의 블랙홀이 된 이유는 2000여 년 전부터 고급 보양제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어자오(阿膠)’ 때문이다. 어자오는 중국 산둥성에서 나는 광천수와 당나귀 가죽을 쪄서 추출한 콜라겐을 합쳐 1년 중 특정 시간에 행해지는 99단계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주로 산둥성 둥어현에서 제조되므로 ‘둥어 어자오’라고도 불린다.

이 약재는 설사와 기침, 이질을 낫게 하고, 여성들의 생리 및 출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빈혈 증상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장기 복용하게 되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력이 보충된다고도 한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인삼, 녹용과 함께 3대 전통 보양제로 꼽힌다.

예전에는 주로 황실에 진상되던 귀하고 비싼 약재였지만, 지금은 건강에 대한 관심과 소득수준 향상으로 중산층에 주로 팔리고 있다. 덕분에 어자오의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해 중국의 당나귀 사육수가 줄어든 탓에 국제무역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수년간 당나귀 가격 4배 이상 급등

미국의 승마 전문매체 ‘더호스(TheHorse)’에 의하면, 중국의 어자오 산업은 매년 480만 마리의 당나귀 가죽을 필요로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사육되고 있는 당나귀는 총 260만 마리정도다.

이로 인해 보츠와나에서는 당나귀 수가 지난 12년 동안 39%나 감소했다. 대신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최근 수년간 당나귀 가격이 4배 이상 급등했다.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앞으로 5년 내에 전 세계 당나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의 당나귀 싹쓸이로 인한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동물보호단체 ‘동키 생츄어리(The Donkey Sanctuary, 당나귀 보호소)’는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당나귀 거래는 탄저균 확산과 같은 국제 생물학적 보안 위협 증가, 생태학적 오염, 동물 복지, 개발도상국의 여성 및 어린이 노동 착취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당나귀를 도살해 가죽을 벗기기 위한 도살장들이 곳곳에 설치되면서 심각한 환경오염 및 질병 확산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도살장에서 나온 당나귀의 피가 상수원으로 흘러든 사건도 있었다. 도살장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들판 아무 곳에서나 불법으로 도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또한 도살장까지 끌려가기까지 수일이 걸리지만 그동안 당나귀에게는 음식이나 물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도축업자 입장에서는 마르고 탈수된 당나귀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당나귀들이 운송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 트럭에서 꼼짝 못 하게 팔다리가 묶여서 운송되는 탓에 도중에 팔다리가 부러지는 당나귀들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동료의 사체를 등에 짊어지고 도살장에 도착하는 당나귀들도 많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당나귀 가죽뿐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대안으로 떠오른 세포 농업

당나귀 값이 비싸진 탓에 절도 사건도 빈번히 일어난다. 따라서 농민들은 당나귀를 집 안에 놓거나 심지어 침실 창문에 묶어놓고 자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당나귀를 도둑맞을 경우 대부분은 새 당나귀를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때 당나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물이나 장작을 운반하는 당나귀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 아이들은 학교와 공부를 포기해야 한다. 이는 자진해서 당나귀를 판매한 가정도 마찬가지다. 즉, 당나귀 무역이 아프리카의 새로운 복지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어자오는 수천 년간 전해온 중국의 유산이자 문화적 문제이므로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 문제를 가장 이상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중국이 당나귀를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사육업자들은 당나귀 성장을 촉진하는 새로운 영양 프로그램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나귀는 출생 후 2년이 되어야 체형이 성인 개체만큼 성장한다. 그런데 그들은 18개월 만에 성인 크기의 당나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다른 과학적 대안은 ‘세포 농업(Cellular agriculture)’이라는 분야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의 연구진은 4년 전에 실험실에서 털이 없고 핏기도 없는 말의 가죽을 최초로 발육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실험실에서 당나귀 가죽을 기르는 것도 가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영국의 한 대학이 최근에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중국의 어자오 소비자들 중 48%는 이런 제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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