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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출판의 급진적 변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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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출판의 급진적 변화를 위해

2020.02.13 14:00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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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액세스 지지자들도 연구 개념의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술논문 독자는 특히 인문·사회 과학의 경우, 교수나 연구자 같은 학계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가진 모든 대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출판의 대안적인 수익모델 개발은 ‘지식은 누구에게 속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과 다름없다.” -자비에 몰레나, 과학출판계 화두 ‘오픈 사이언스’ 중에서⁠

 

선의의 어두운 면, 오픈액세스

 

이제 과학기술계에 속한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과학출판에 분명한 문제가 있다는걸 알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네이처, 스프링어, 엘스비어 등의 거대독점 출판사들은, 과학자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한다는 명분 하나로 지난 세기 오히려 과학계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이들 거대독점출판사들로 인해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된 연구결과인 논문이 국민에게 무료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이 바로 오픈액세스다. 오픈액세스는 2000년 전후에 과학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운동으로, 공공재인 과학지식을 대중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정당성을 가지고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 문제가 불거진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도서관의 논문구독료가 거대독점학술지들에 의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대학이 논문을 온라인으로 구독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간행물 공황’ 때문이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한국의 카이스트 같은 대학도 몇 달간 온라인 논문구독을 할 수 없었던 사건이 있었다⁠.

 

이 심각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학술지 ‘과학의 공공도서관(PLoS)’가 설립되었고, 이후 수많은 오픈액세스 학술지가 만들어졌다⁠3. 각종 민간과학연구재단과 미국과유럽연합 등의 정부기구가 연구자들에게 오픈액세스 출판을 강요하면서, 어쩔 수 없이 기존 거대독점학술지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이제 대부분의 논문은 오픈액세스를 통해 출판되며, 그 비율도 60%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오픈액세스는 학술시장의 부패를 막기는 커녕, 학술시장의 건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오픈액세스가 학술시장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논문 게재료의 불공정성 때문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를 한 작가는 원고 게재료를 받고, 신문이나 잡지는 광고를 판매하거나 독자에게 돈을 받아 사업을 운영한다. 하지만 학술지 시장에선 이 과정이 전부 뒤틀려 있다. 학술지들은 논문을 게재하는 댓가로 수백만원에 달하는 논문 게재료를 요구하고, 이 논문을 읽는 독자에게도 논문 구독료를 받는다. 게다가 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은 동료심사라는 명목으로 무료봉사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심지어 논문을 처리하는 편집자들조차 대부분 무보수로 학술지에 봉사를 하는 방식이다. 엘스비어의 수익률은 애플의 수익률을 넘어서는 40%로, 이쯤되면 거대독점학술지들이 그동안 얼마나 쉬운 사업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지난 20세기 성장한 거대독점학술지들은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처럼 과학계와 정부 그리고 세금을 내는 국민 모두를 상대로 지식공유를 가로막으며 거대한 사기를 쳐온 셈이다. 오픈액세스는 논문의 구독료를 폐지하는 일에는 성공했지만, 거대독점학술지의 주요 수입원인 논문 게재료와 논문심사과정의 무료봉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픈액세스가 야기한 학술시장의 두번째 문제는 범람하는 '약탈적 학술지'의 등장이다. 오픈액세스는 분명 과학지식은 인류의 공공재이며 공유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확산된 운동이었지만, 오픈액세스가 확산되고 거대독점학술지가 이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으면서, 왜곡된 학술시장의 틈을 타고 약탈적 학술지 시장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약탈적 학술지란, 최근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던 가짜학회 및 가짜학회지를 만드는 사업체들로, 전통적인 학술시장의 틈을 타고 들어와 공정한 절차나 심사 없이 돈만 내면 논문을 출판해주고, 학회 실적을 제공하는 곳을 말한다⁠5. 오픈액세스의 확산과 약탈적 학술지의 확산 시점은 거의 정확하게 겹치는데, 이는 오픈액세스의 비즈니스모델, 즉 수익구조가 논문구독료를 포기하는 대신 논문 게재료를 통해 유지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약탈적 학술지들은 논문을 조금이라도 쉽게 출판하고 싶어하던 연구자들의 욕망과 논문 게재료 장사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이용해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는대로다.


오픈사이언스는 학술시장의 구세주일까

 

구독료의 완전한 폐지를 통해 학술시장의 부패를 막으려했지만, 그 선의는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로 남았다. 논문게재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논의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오픈사이언스라는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오픈사이언스는 원래 학자간의 교류로 시작된 학술지가 거대독점학술지들에 의해 중앙집권화된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온라인의 여러 도구들을 사용해 다시 학술지를 탈중앙집권화시키는 방식으로 과학학술시장을 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픈사이언스는 연구결과와 연구과정 모두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방안으로 학술시장의 부패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KISTI 제공
오픈사이언스는 연구결과와 연구과정 모두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방안으로 학술시장의 부패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KISTI 제공

 

과학에서 공유는 오래된 연구 규범이다.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공유주의를 과학자사회의 첫 규범으로 꼽았고⁠, 과학지식의 공유가 과학이 작동하기 위한 중요한 필수조건임을 간파했다.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작품에는 저작권이 존재하고, 예술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여러 장치들이 만들어졌지만, 과학에는 저작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민간 학술지플랫폼회사들은 자신들이 과학자들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논문을 오픈액세스로 만들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예술가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작품과는 달리, 현대의 과학연구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공공재에 가깝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었느냐의 여부와는 별개로, 개인적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술작품과는 달리, 인류의 건강과 안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학지식은 당연히 공유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픈사이언스는 공공정책의 한 수단으로 오픈사이언스가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부 지원으로 창출된 공공연구의 성과물들을 디지털화된 방식으로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이, 과학지식을 공공재로 만드는 첫 걸음이라는 뜻이다. 오픈사이언스는 과학연구의 전 과정과 결과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구결과는 오픈액세스를 통해 공개하고, 연구과정은 오픈데이터라는 플랫폼을 통해 공개하도록 유도한다.

 

오픈사이언스의 이상은 오픈액세스처럼 선의로 가득차 있고, 정당한 요구임에 분명하다. 오픈사이언스는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운영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네이처와 같은 학술지가 영향력지표를 무기로 여전히 오픈액세스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연구자들에게 오픈액세스 학술지에만 논문을 투고하라고 강요하는건 현실을 모르는 정책일 수 있다. 게다가 논문 데이터를 오픈데이터 형태로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연구자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수 없다면, 빚 좋은 개살구가 될 수 밖에 없다. 오픈사이언스가 오픈액세스의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학술시장의 부패를 개혁하는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을 현장 중심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프리프린트, 논문심사과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통적인 논문의 출판에는 최소한 몇 달이 넘는 시간이 소모되고, 몇 년이 걸려도 출판이 되지 못하는 논문도 부지기수다. 특히 논문 영향력지수가 높은 학술지일 수록, 논문 심사과정은 엄격하다 못해 바늘방석을 방불케 하며, 논문 심사위원들의 요구도 도를 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현대 과학연구자들이 논문 심사과정에 쏟는 에너지는 연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스트레스로 인해 과학계는 물론 사회가 받는 피해도 크다. 특히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지식의 성장을 생각하면, 전통적인 논문 심사과정 때문에 새로운 과학지식이 과학자사회에 빠르게 공개되지 못하는건 큰 문제가 된다. 과학자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멋진 방안을 이미 마련해두고 있다. 그게 바로 논문을 심사 전에 미리 아카이브에 저장해서 모두에게 공개하는 프리프린트 서버다.

 

프리프린트 서버는 학술지와는 달리 논문의 내용을 심사하지 않는다. 논문 저자의 신원과 논문의 기본적인 형태가 확인되면 누구나 프리프린트에 심사전 논문을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공유된 프리프린트는 논문은 아니지만 디지털 개체 식별자(DOI)를 부여하므로, 혹시 누가 이 프리프린트를 표절하거나 도용해서 논문을 작성하더라도 발견의 우선권은 프리프린트를 먼저 출판한 이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보장한다. 프리프린트의 역사는 오픈액세스보다 오래됐다. 

 

1960년대 미국립보건원(NIH)가 의생물학 분야의 논문을 프리프린트로 저장하는 서비스를 가장 먼저 개발했지만, 사용의 미비로 인해 1967년 중단되었고, 이후 1991년이 되면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 아카이브(arXiv)가 만들어져, 물리학/수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논문 심사 전에 프리프린트에 논문을 저장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 되었다. 경제학 분야에는 RePEc가 등장했고, 2013년이 되자 생물학 분야에서도 바이오아카이브(bioRxiv)가 등장했다. 생물학 분야는 프리프린트를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2013년이 되어서야 프리프린트가 일상화되었는데, 그 전까지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 연구자들이 논문 도용을 우려해 프리프린트를 꺼렸던 것이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DOI가 부여되고, 학술논문 심사과정의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연구자들은 논문도용에 대한 두려움보다, 논문을 우선 공유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여러 연구비기관이나 대학이 프리프린트를 업적으로 어느정도 인정해주는 등의 노력을 했고, 프리프린트에 등록을 해도 주요학술지에 게재하는데 아무런 장벽이 없어지는 등, 이제 프리프린트는 가장 많은 수의 논문이 출판되는 생물학 분야에서도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 한 달에 2000여 편이 넘는 논문이 프리프린트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프리프린트로 공개되는 논문숫자의 증나타닌ㄹㅇ고
프리프린트로 공개되는 논문숫자의 증가 추이. KISTI 제공

  프리프린트는 학술지와의 저작권 문제 없이 과학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제도다. 개별 학술지들 중에서 여전히 프리프린트에 공개된 논문에 대한 게재를 꺼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적폐 학술지들은 시대정신의 진행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프리프린트는 현재의 학술 출판 환경이 가진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과학지식의 개방과 공유라는 시대정신 속에서 순항 중이다. 우선 프리프린트는 연구결과를 빠르게 과학자 사회에 배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이를 연구도용에 대한 걱정 없는 선점권 부여를 통해 동기부여할 수 있다.

 

또 프리프린트로 출판된 논문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개되면서, 과학자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전통적인 학술지를 넘어 확장하고 있다. 프리프린트는 연구비지원기관이나 대학 등에 연구를 증빙할 수 있는 좋은 도구로도 작동하며, 학회나 출판사 등이 해당 주제의 논문을 검색하고 저자를 초청하는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리프린트는 연구의 빠른 공유를 통해 학문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한다. 

 

프리프린트는 모든 분야의 학문에 적용가능하다. 최근 OSF Preprint는 오픈소스 툴을 통해 누구나 프리프린트 서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소스를 공개했다.
프리프린트는 모든 분야의 학문에 적용가능하다. 최근 OSF Preprint는 오픈소스 툴을 통해 누구나 프리프린트 서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소스를 공개했다.

※참고자료

-이코노미인사이트, 자비나 몰레나,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1

-한겨레, 과학지식 상업적 독점의 벽을 깨라,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5/06/009100003200506161547001.html
-한겨레, [야! 한국사회] 과학지식의 공유, 김우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07888.html
-오픈 액세스를 둘러싼 엘스비어와 유럽 연구자 컨소시엄들 간의 대립, https://www.enago.co.kr/academy/move-boycott-elsevier-journals-deal-near-dead/
-[공감세상] 사이비 학문과 공정위, 김우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9219.html
- 오픈액세스 학술출판 동향과 추진 방안 https://www.kisti.re.kr/promote/post/researchreport/4326?cPage=2&t=1568178673327#
-머튼의 규범에 관해선 다음 글을 참고.  동아사이언스, 과학이 삶에 봉사하는 방식에 대해: ‘과학적 삶의 양식’에 대한 소고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3671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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