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퇴행성 신경질환에는 공통점이 있다. 형태와 성질이 달라진 미세한 단백질 알갱이(clump)가 뇌 조직에 쌓인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의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신경반·plaque)나, 파킨슨병의 변성 알파 시뉴클린 결합체(aggregate) 등이 바로 그런 예다.
이런 변성 단백질이 어떻게 뇌에 쌓여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미국 록펠러대 과학자들이 동물실험에서 밝혀냈다.
단백질 분해 효소 복합체인 프로테아좀(proteasome)을 신경세포(뉴런) 말단까지 운반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록펠러대 ‘스트랭(Strang) 세포 자멸사·암 생물학 실험실’의 헤르만 스텔러 석좌교수팀은 이런 내용의 논문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했다.
이 대학이 3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프로테아좀이 신경 말단으로 옮겨져 이런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처음이다.
프로테아좀은, 세포에 더 필요하지 않거나 세포의 건강을 위협하는 단백질을 분해해 재활용하는 데 작용하는 일종의 ‘세포 장의사’ 같은 존재다.
프로테아좀의 상세한 기능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프로테아좀의 기능이 떨어져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런의 세포체(세포핵을 포함한 중심부 구조)에서 생성되는 프로테아좀이 제 기능을 하려면, 하나의 뉴런(신경세포)이 다른 뉴런과 연결되는 신경 말단까지 이동해야 한다. 프로테아좀의 이동 경로는 때때로 1m를 넘기도 한다.
그런데 프로테아솜이 신경 말단에 도달하지 못하면 신경 퇴행이 시작된다는 게 이번 연구 결과의 요지다.
너무 오래 지체해 손상을 입은 단백질이 뭉쳐 뉴런의 기능을 교란하고, 시간이 더 지나면 신경 섬유의 퇴행과 세포 사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연구팀은 초파리의 프로테아좀 운반 시스템을 연구하다가 P131이라는 단백질을 발견했다.
당시 연구팀은 저널 ‘세포 발달(Developmental Cell)’에 발표한 논문에서, P131 유전자가 프로테아솜의 세포 운반체 결합을 강화하고 이동을 촉진한다는 걸 입증했다.
뉴런에 P131이 없으면 프로테아솜의 이동도 즉시 중단된다는 게 초파리와 생쥐 실험에서 동시에 확인됐다. 이는 여러 생물 종이 프로테아좀 운반 메커니즘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번 연구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가, P131이 없으면 프로테아좀이 이동하지 못해 신경 말단에서 비정상적인 단백질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걸 발견했다. 이런 뉴런의 신경 돌기와 시냅스(뉴런 연접 부위)는 기이한 모습으로 변형됐다.
스텔러 교수는 “뉴런의 이런 구조적 변화는 나이가 들면서 더 심해진다”라면서 “(초파리와 생쥐) 뉴런의 P131 발현을 억제하면, 인간의 퇴행성 신경질환에서 관찰되듯이, 행동과 해부학적 구조의 결함을 연상시키는 일이 벌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 발견은 다른 관점에서도 주목된다고 한다.
일례로 P131의 활성화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PARK15이라는 유전자가 있는데, 심각한 초기 파킨슨병에서 PARK15의 돌연변이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물론 P131의 돌연변이가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돼 있다는 것도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스텔러 교수는 변형된 단백질 알갱이의 형성이 직접적으로 질병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모든 것이 프로테아좀의 결함에서 시작되고, 그 뒤에 단백질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는 단계가 이어지며, 단백질 알갱이가 뭉쳐지는 건 그다음이라는 추론이다.
스텔러 교수와 동료 과학자들의 다음 목표는, 프로테아좀이 신경 말단까지 잘 도달하게 운반 경로를 자극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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