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나오는 지적이 올해도 회자되는 모양새다. 다국적사가 국내에 투자한 실제 연구개발비 문제다. 유한회사 등으로 공시를 적지 않고 공시가 있는 곳 역시 연구개발에 쓴 비용을 공개하지 않고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 회사의 상황이나 연구개발비 항목의 투명화 이야기와 함께 국내사의 역차별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19일 약업계 관계자 일부에서는 다국적사의 국내 연구개발 투자현황이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 아비 벤쇼산)는 19일 31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8년 국내 R&D 투자 현황' 결과에서 시작한다. 해당 조사는 전체 회원사 44개 중 응답한 회사의 의견을 모은 것이다.
KRPIA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사 31곳에서 2018년 임상연구에 투자된 R&D 총비용(해외 본사에서 직접 외주한 R&D 비용 제외)은 약 4706억원이었다. 이중 2016년부터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조사에 참여한 28개 회원사를 기준으로 그 증감을 살펴보면 전체 R&D 투자가 2017년 4000억원에서 2018년 4641억원으로 전년대비 1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KRPIA가 발표한 회원사 연구개발 추이
임상연구용 의약품 직접비도 증가해 2018년에는 2017년 1290억원) 대비 19.3% 증가한 1540억원이 임상시험용 의약품 직접비로 쓰였다.
조사에 참여한 31개사의 연구개발 인력 역시 총 1717명으로 증가했으며 28개 회원사의 경우 1678명 고용으로 2017년 1551명 대비 8.2% 증가했다.
이 밖에 지난해 회원사 31곳에서 임상연구가 1486건 수행됐으며 암과 희귀질환 임상연구 비율 역시 49%(583건), 5%(63건)로 전체 임상연구 중 암과 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임상연구 비율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등 환자의 치료 접근성 등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 KRPIA의 설명이다.
KRPIA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전세계 제약사 주도의 임상시험 프로토콜 국가별 비율에서 한국은 2017년 5위(3.51%)에서 2018년 6위(3.39%)를 기록했다. 중국이 최근 의약품 및 임상시험용 의약품 허가 제도개혁 등 규제개혁을 통해 5위(3.7%)에서 3위(4.66%)로 두 단계 상승했는데 이는 우리나라도 임상시험의 경쟁우위를 지속하고 투자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시사한다"며 "다국적 초기 임상시험 참여 기회 확대는 물론 글로벌 R&D 투자를 유치해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의 생태계 조성을 위해 유관 부처의 적극적인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내 제약사의 시각은 썩 달갑지만은 않다는 반응이다. 의문은 매년 연구개발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만 회사의 응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KRPIA 역시 설문에 참여하는 회사를 늘리고 임상의약품 항목을 별도로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각 지사의 회계기준에 따라 금액이 책정될 수 밖에 없어 지사의 정확한 금액을 협회조차 알 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이어진다.
실제 지난해 KRPIA 전체 회원사 중 전자공시시스템 내 경상연구개발비 혹은 경상연구비 항목을 만들어 사업보고서를 꾸리는 곳은 한국애보트, 한국애브비, 한국엘러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바이엘코리아,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젠자임코리아,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컨슈머헬스케어, 한국얀센, 한국머크, 한국MSD동물약품, 한국노바티스, 한국화이자제약, 한국로슈, 사노피파스퇴르, 한국유씨비 뿐이다.
지난 2017~2018년 KRPIA 회원사 중 제무제표 내 연구개발비 항목을 포함한 회사의 연구개발금액
나머지 회사는 유한회사 등으로 공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거나 사업보고서 내 연구 관련 항목이 제무제표 내에 없다.
이 경우 이들 제약사의 전체 금액은 1300억원 남짓으로 전년 1217억원 대비 6.7% 인상에 불과하다. 화이자와 노바티스, 로슈, 아스트라제네카 등 국내에서 매출이 높은 기업을 포함해 17개사가 포진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4700억원이라는 금액이 어떻게 도출됐는지를 지적하는 게 국내사의 반응이다.
국내사의 여러 관계자는 경상연구개발비의 투명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이같은 결과는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말도 꺼낸다.
한 국내사 관계자는 "경상연구개발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욱이 자체 경상연구개발비를 공시 내에 공개하지 않는 곳은 사실상 자체 연구개발 없이 본사의 임상용역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임상시험 용역을 수행할 경우 임상 원가에 용역비를 더해 회사(지사)에 다시 제공하는 회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국내 지사가 본사의 용역을 받아 매출을 늘리고 그 중 일부가 다시 배당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같은 자료가 결과적으로는 국내사에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다소 날선 이야기도 꺼낸다.
이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경우 공시를 통해 개발비 항목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지만 다국적사는 기준을 지키지 않는 곳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상 인프라 구축 필요 등의 지적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다국적사의 '혁신신약' 우대를 위한 이미지 만들기로 비춰질 소지도 있다"고 비판했다.
KRPIA 관계자는 이같은 지적에 "이번 조사의 경우 협회와 함께 외부 조사기관이 참여해 항목을 세분화했으며 참여사를 늘렸다"며 "향후 지적받는 부분을 개선해 좀 더 명확한 조사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