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과학에세이 304
정말 우연이겠지만 요즘 시청률 1, 2, 3위인 드라마 모두 공교롭게도 막판에 이야기 전개의 전환점으로 간이식을 써먹고 있다. 1위 드라마는 남이, 2위와 3위 드라마는 형제가 간을 준다. 두 개인 신장은 하나를 통째로 주지만 하나인 간은 반을 떼어 준다. 그러면 각자의 몸 안에서 자라 크기를 회복한다고 한다. 우리 몸에서 이 정도 재생능력이 있는 장기는 간밖에 없다.
반면 심장은 하나일뿐더러 미니 화학 공장이 모여 있는 공단인 간과는 달리 생체 펌프이기 때문에 일부를 떼어 줘봐야 둘 다 죽는다. 사실 이식은 고사하고 심장을 이루는 심근세포 자체가 재생력이 미미하다. 따라서 허혈재관류처럼 심각한 스트레스로 심근세포가 손상을 입으면 회복이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심근경색을 비롯한 심장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이유다.
이런 현상은 사람뿐 아니라 많은 포유류에서도 나타난다. 반면 어류나 양서류, 파충류는 심근세포가 손상돼도 남아있는 건강한 세포가 분열해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는 미스터리였다.
정온 동물이 되는 대가
학술지 ‘사이언스’ 3월 7일자 온라인판에는 그 이유를 밝힌 논문이 실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변온 동물이 정온 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그 대가로 심장의 재생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심근세포의 분열능력과 체온 조절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가 주축이 된 미국의 공동연구자들은 변온 동물과 정온 동물의 심근세포 상태가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즉 포유류의 심근세포는 대부분 세포분열이 멈춘 상태이고 다배체(polyploid), 즉 염색체 한 쌍(2n)이 아니라 그 이상(4n, 6n,…)이다. 반면 변온 동물의 심근세포는 다수가 평범한 이배체(2n)라 분열능력이 있다.
아래 그래프는 계통분류학에 따른 동물 배치에서 심근세포에서 이배체의 비율을 나타낸다. 포유류 가운데서도 원시적인 계열로 분류되는 오리너구리나 가시두더지는 여전히 절반 정도가 이배체이지만 전형적인 포유류로 가면서 급격히 떨어져 생쥐는 9%, 사람은 4%에 불과하다.
이 그래프를 분석한 결과 이배체 심근세포의 비율은 몸무게나 심박수, 혈압과 유의미한 관계가 없었다. 대신 표준대사율과 뚜렷한 반비례 관계로 드러났다. 표준대사율(standard metabolic rate. MR0으로 표기)은 단위 몸무게에서의 기초대사율(MR)이다.
어떤 동물의 기초대사율은 표준대사율에 몸무게의 4분의 3승(0.75)을 곱한 값이라는 게 그 유명한 ‘클라이버 법칙(Kleiber’s Law)’이다(MR=MR0M0.75). 예를 들어 표준대사율이 같다면 몸무게가 생쥐의 16배인 토끼의 기초대사율은 생쥐의 16배가 아니라 8배라는 말이다.
그런데 변온 동물인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의 표준대사율이 평균 0.21W㎏-0.75인 반면 정온 동물인 포유류의 표준대사율은 평균 3.35로 열 배가 넘는다. 즉 몸무게가 같을 때 대사율이 열 배 이상이다.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그 대가로 많은 포유류가 지구 곳곳으로 퍼졌고 온도가 떨어지는 밤과 겨울에도 활동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포유류의 체온 범위는 30~39도에 이르고 이에 따라 표준대사율이 차이가 난다. 즉 오리너구리나 가시두더지처럼 체온이 낮은 포유류는 표준대사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따라서 심근세포의 이배체 비율이 꽤 된다는 말이다.
갑상샘 호르몬 투입하면 어류도 심장 재생능력 줄어
연구자들은 갑상샘 호르몬이 체온 조절에 관여한다는 사실에서 혈장의 갑상샘 호르몬(T4) 수치와 이배체 심근세포 비율을 조사해봤다. 그 결과 둘은 뚜렷한 반비례 관계를 보였다.
흥미롭게도 생쥐가 태어나면 갑상샘 호르몬 수치가 50배 이상 급등하면서 심근세포가 분열을 멈추고 세포 하나에 핵이 두 개가 되면서 재생능력을 잃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갓 태어난 생쥐에 갑상샘 호르몬 수용체를 방해하는 물질인 암모니아를 주사했다. 그 결과 생후 14일 차에 대조군에 비해 분열능력이 4배 더 높았다.
갑상샘 호르몬 수용체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생쥐 역시 생후 14일 차에 정상 생쥐에 비해 심장 무게가 21% 더 나갔고 세포 수는 2.3배나 됐다. 반면 몸무게는 비슷했다. 심근세포의 30%가 이배체였고 세포 평균 크기(부피)는 47% 작았다. 즉 갑상샘 호르몬의 신호가 약하면 작은 심장세포가 많이 만들어진 결과 심장이 약간 더 커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갑상샘 호르몬 신호는 어떤 경로로 심장에 작용할까.
유전자 발현 패턴을 분석한 결과 심근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들이 영향을 받았다. 즉 정온 동물은 변온 동물에 비해 갑상샘 호르몬 수치가 높아 미토콘드리아가 더 활발하고 그 결과 노폐물인 활성산소의 농도도 높은데 이게 심근세포의 재생능력이 낮아진 것과 관련돼 있다.
실제 심근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개수가 적은 돌연변이 생쥐를 보면 정상 생쥐에 비해 심장이 37% 더 컸고 심근세포 수도 2배나 됐다. 그리고 심근세포의 19%가 이배체였다. 외과수술로 허혈재관류를 유도한 뒤 회복과정을 본 결과 돌연변이 생쥐의 심근세포 분열이 3~10배 더 많았고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주원인인 심장 섬유화는 62%나 적었다.
한편 변온 동물로 심근세포의 98%가 이배체인 제브라피시(zebrafish)에게 갑상샘 호르몬을 투여하자 심근세포 분열이 45% 줄었고 핵이 두 개인 세포도 5배나 늘었다.
이런 뚜렷한 상관관계가 드러났음에도 갑상샘 호르몬의 작용을 통한 정온성 획득이 왜 심근세포의 재생능력 상실과 함께 진화했는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갑상샘 항진증의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가 두근거림(심계항진)이라고 한다. 그리고 갑상샘 항진증이 오래되면 심부전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이번 연구결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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