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임계전이 그리고 계산역학읽음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
[과학 오디세이]메르스, 임계전이 그리고 계산역학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전쟁과 전염병은 인류를 위협하는 대표적 사건이다. 14세기, 1억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흑사병이나 1920년 5000만명을 사망케 한 스페인 독감은 대표적인 지구적 전염병이다. 이후 과학 지식의 증가와 개인별 위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이전과 같이 수백만명 단위의 사망자는 생기지 않지만 전 지구적 수준의 전염병 출현 빈도는 더 잦아지고 있다.



전염병 퇴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병원체와 감염경로를 확증하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 확산 범위를 예측하고, 중요 길목을 지켜 더 이상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지도를 펼쳐 발원지에 중심을 둔 동그란 원을 그려 그 구역을 격리하는 방식은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나 통할 방법이다. 도시화가 완성된 공간에서의 거리는 교통망으로 결정된다. 뉴욕에서 밀워키로 가는 사람의 수보다 런던으로 가는 사람의 수가 더 많기 때문에 물리적 직선거리로 반경을 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도시의 중심에서 10분에 도달할 수 있는 모든 도착점을 모아보면 그 경계는 원이 아니고 교통망을 중심으로 길쭉한 소시지 모양의 타원체가 될 것이다.

전염병이 번지는 범위가 교통망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전염병 확산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또 모든 사람이 똑같은 정도로 남을 감염시킨다는 식의 단순 계산법으로는 전염병 확산 형태를 예측할 수 없다. 미국 연구팀은 4000개의 공항과 4만개의 항공편, 이동 인원까지 고려한 전염병 확산 모형을 가지고 있다. 또 에피심스(EpiSimS)라는 전염병 확산 예측 시스템도 활용하고 있다.

에피심스는 고속도로, 버스, 지하철망, 각 구간별의 이동 인구 수를 그대로 고려한다. 또한 개인별 이동패턴, 타인과의 접촉 정도를 15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주로 집에만 있는 노인과 직장인은 행동반경이나 접촉하는 사람의 수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휴교나 강제 격리, 공항이나 터미널의 폐쇄까지도 고려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백신 접종의 상황도 예측 모형에 넣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대형 분산 컴퓨터에서 구동되는 에피심스를 활용하면 최대 3년까지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에피심스를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삼가고 가정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회적 격리를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인 홍보나 계도를 통하면 참여도는 높일 수 있다.

정부의 홍보와 정보 공개의 수준을 10단계로 나눠 실험을 해본 결과 홍보에 있어서 두 단계 이상의 추가 투자가 확산 방지에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즉 찔끔찔끔 보여주기식의 행정 시책은 무효하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도 나왔다. 전체 인구의 60% 접종을 목표로 2주 간격으로 10%씩 6번 하는 것과 15%씩 4번 하는 것, 그러니까 목표를 한 달 앞당기는 것은 사망률에서 20%의 감소 효과를 보여주었다. 즉 백신 투입은 무리를 해서라도 초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염병 확산은 임계전이(critical transition)의 대표적인 예이다. 전염병, 폭동, 눈사태, 동식물의 멸종, 사막화, 인기 연예인의 몰락 등은 임계전이의 좋은 사례이며, 죽음은 임계전이의 완전한 예이다.

임계전이는 파국 바로 직전까지도 별 조짐을 드러내지 않아 예측이 아주 어렵다. 게다가 임계전이 이후 다시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 일반적인 전이와 다른 점이다. 어획량이 좀 줄었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이미 해당 물고기가 멸종의 단계로 접어든 상황이라면 그 복원에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의 사하라 사막을 초기 상태의 푸른 숲으로 바꾸는 일을 생각해보면 감이 잡힐 것이다. 따라서 임계전이가 있는 시스템이라면 초기 상태부터 극단의 노력으로 시스템이 문턱을 넘지 않도록 방어해야 한다.

파국으로 인한 엄청난 손해와 비교하면 어떤 초기 비용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국가 경제와도 직접 맞닿은 작금의 메르스 사태에, 호들갑을 떤다느니, 감기 수준에 과잉 대응이다라는 식의 발상은 임계전이 현상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메르스를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궐기대회나 결연한 각오, 유언비어 발본색원 등 정치적 과시가 아니라 계산이다. 지금은 계산역학(computational epidemiology)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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