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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험실 이야기] 박사란 무엇일까요? 정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나요?
종합 hbond (2022-05-09)

여러분은 레고 만들기를 좋아하시나요? 혹은 장난감 조립 같은 것 말이죠.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100원이 생기면 문방구에서 파는 조립식 장난감을 사서 만들곤 했습니다. 가끔 아는 분들에게 용돈을 받으면 좀 더 비싼 장난감을 만드는데, 확실히 100원짜리 보다는 조립이 조금 더 어려웠습니다.

며칠 전 옆방 교수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부탁을 하십니다. "잠깐만 우리 방 포닥 좀 도와주면 좋겠다. 새로 온 포닥이 레이저 빔 조정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그 연구실에 가서 새로 온 포닥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레이저 분광학을 하는 사람들은 레이저 사용법을 압니다. 마치 우리가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레이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스스로 수리하는 일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자동차를 스스로 고치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 온 포닥은 레이저로 박사를 받았고, 포닥도 경험을 했지만, 레이저를 사용했지 레이저를 수리해 본 경험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레이저로 실험을 하려고 했지, 고장 난 레이저를 고치려고 박사를 받은 것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은 생물학과 관련이 되셨으니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작게는 사용하던 마이크로 파이펫이 어이없이 고장 나는 경우, 혹은 파이펫을 정기적으로 교정(calibrate)할 때가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면, 사용하는 기기들, HPLC, MS, Flow, 현미경, plate reader 등등의 기계들이 오작동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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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 실험실에서 사용하던 flash column이라는 기기가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실험실에서 고장 난 기기들을 취미로 고치곤 했는데, 자꾸 하다 보니 사람들이 아예 저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기계가 없으면 화학 합성을 한 후에 생성물 분리를 위해서 옛날 방식(수동)으로 column을 내려야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용매의 소비량도 큽니다. 게다가 신참들은 처음부터 일을 flash column으로 배워서 옛날 방식으로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화학합성 연구실에 대재앙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저는 이번에, 일부러 모른 척, 발을 빼고 있었습니다.), 용감하게도 1년 차 박사과정 학생이 나섰습니다. 제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길래, 회사에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회사에 전화에 전화를 해서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오늘 아침, 3년 차 박사과정 학생이 제게 묻기를, 언제 기기를 수리할 거냐고 묻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일을 해서 결과를 내지 않으면 지도교수님께 강한 압박을 받게 되고, 기기는 고장이 났고, 사면초가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 친구에게 대답하길, 이미 1년 차 학생이 회사에서 받은 매뉴얼이 있으니, 네가 직접 하면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3년 차 학생은 옆에 있던 '용감한 1년 차'에게 언제 작업을 할 거냐고 묻습니다. '용감한 1년차'는 지금은 바쁘니 내일이나 하자고 합니다. 사실 두 학생은 모두 기기 수리에 대한 경험이 없음에도 3년 차 학생은 엄두를 못 내고 있었고, 1년 차 학생은 곧 시작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박사학위 과정 학생들 중에서, 마치 조립 설계도를 보고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설계도'가 없으면 일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사실 처음 6개월에서 1년은 연구실에 이미 축적해 놓은 실험 스킬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니 그럴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은 학부 과정에서 이미 연구 경력을 쌓기 때문에, 잘 배운 학생들의 경우,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시점에서도 이미 어느 정도 실험을 할 줄 아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 정도 일을 할 줄 아는 단계에 올라서면, 이제는 스스로 실험도 설계하고, 필요한 실험이라면, 설계도가 없어서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는데, 이것을 수행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남을 의지하게 되고, 스스로 프로젝트를 밀고 나갈 추진력이 약해집니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어떤 학생들은 이런 능력은 떨어지는데, 수완이 좋아서 이래저래 인맥을 통해서, 또는 협업을 해서 보충하는 학생들도 보았습니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논문의 1저자가 되려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연구를 계획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것을 뚫고 나갈 적극성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대학생원 및 연구원 구인공고에 보시면 항상 "적극적", "주도적"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짝 '수완 좋은' 학생을 언급했습니다. 우리 연구실에서 처음으로 미토콘드리아 연구에 돌입하기 시작했을 때, 한 대학원생에게 미션이 하달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이전에 미토콘드리아 연구에 대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열심히 관련된 내용 및 논문을 숙지하고, 구글을 이용해서 실험 Kit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제공하는 매뉴얼들을 차례대로 읽은 다음, 우리 학교에서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연락하고, 물어봅니다. 문자 그대로, 그냥 들이댑니다. 결국은 이 친구는 그 실험을 할 수 있었고, 좋은 실험 결과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능력은 박사과정의 학생이 배워야 할 필수적 요소입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포닥이 되어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때도, 실제적으로 박사과정에서 했던 일과 다른 일을 하게 될 확률이 큽니다. 더 나아가, 독립적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도, 이전에 배운 것들과 다른 내용의 연구를 해야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이미 만들어진 '설계도'에 익숙한 분들은 새로운 일을 계획하기도 쉽지 않기만, 수행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설계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연구를 개척합니다. 가끔은 그런 분들 중에서 완전히 새로운 학문의 분야로 넘어가서 일을 하시거나, 혹은 아예 학계를 떠나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시는데도 여전히 잘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학계도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사를 받고도 학계에 계속 남을 확률이 점점 작아집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박사 학위를 받고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그런 능력과 자신감, 그리고 용기가 있다면 크게 걱정할 것 없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이 글을 읽고 걱정이 되시나요? 전혀 걱정하지 마시고, 바로 오늘을 Day 1으로 삼아,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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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University of Kentucky)

연구실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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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miRNA  (2022-05-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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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이든 회사든 가장 유용한 박사는 쩝쩝박사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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