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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노트] 이번엔 성공인 줄 알았다
Bio통신원(곽민준)
이번엔 성공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번에도 아니었다. 안타깝지만, 내 첫 줄기세포주 완성은 또 한 번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러고 보니 질환 돌연변이를 가진 줄기세포주를 만드는 이 일을 벌써 열 달 가까이 하고 있다. 올해 초 대학원 입학 이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첫 번째 목표였기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지만, 몇 번씩이나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마주하며 새로운 실패의 쓴맛을 보았고, 아직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라고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한두 달이면 쉽게 끝낼 수 있는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간단한 시험관 내 신경발달 질환 모델을 하나 만드는 것뿐이고, 과정도 단순하다. 먼저 줄기세포에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바이러스를 감염시킨다. 그리고 형광을 확인하여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만을 골라낸다. 그러면 완성이다. 우리가 관심 있는 질환 돌연변이를 가지는 안정적인 줄기세포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일은 예상만큼 순탄히 진행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어려울 게 전혀 없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번번이 무언가에 가로막혀 세포주를 만드는 과정이 중단되었다. 바이러스를 세포에 감염시키는 과정까지는 여태껏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골칫덩어리는 세포 중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들만 골라내는 두 번째 과정이었다.
우리가 만든 바이러스의 DNA는 형광 단백질을 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세포 분석을 통해 형광을 띄는 세포들만 골라내는 접근을 계획하고 있었다1). 그러나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줄기세포는 생각보다 훨씬 연약했고, 이 여린 친구들은 몇 시간 동안 진행되는 실험 과정을 제대로 버텨내지 못했다. 결국, 유세포 분석으로 형광을 띄는 세포들을 분류하는 방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기 대신 우리의 손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직접 현미경으로 세포의 형광을 관찰하며, 형광을 띄지 않는 세포, 즉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세포를 직접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형광을 띄는 감염된 세포만 선택적으로 배양하는 방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이 방법은 앞서 시도했던 유세포 분석보다 훨씬 손이 많이 드는 방법이다. 유세포 분석을 이용하면 바이러스 감염 세포들을 한 번에 골라낼 수 있지만, 직접 손으로 세포를 제거하면 몇 주간 세포를 배양해야 한다. 게다가 또 하나의 귀찮은 점이 있는데, 바로 줄기세포는 군집 형태로 자란다는 것이다. 수백 개의 세포가 서로 몸을 붙인 채 함께 자라므로 이들을 제거하려면 모두 함께 제거해야 하고, 키우려면 모두 함께 키워야 한다. 그런데 같은 군집에서 함께 사는 세포 중 어떤 아이는 형광을 띄고 어떤 아이는 형광을 띄지 않으니 정말 골치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세포들이 서로 떨어져서 큰다면, 눈으로 보며 형광을 띄는 세포들만 남겨서 키우면 된다. 그러나 군집 형태로 자라는 줄기세포는 그게 불가능하다. 확률상 형광을 띄는 세포와 형광을 띄지 않는 세포가 반드시 같은 군집에서 함께 자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형광을 띄는 세포와 띄지 않는 세포를 함께 가지는 군집 전체를 계속 배양해야 했다. 그리고 세포를 떼어냈다 다시 배양하는 과정에서 군집의 형광을 띄는 세포와 띄지 않는 세포들이 서로 분리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여, 결국에는 형광을 띄는 세포들로만 이루어진 군집을 만들어내는 걸 목표로 몇 달 동안 최선을 다했다.
군집colony 형태로 모여 자라는 인간 줄기 세포
말로만 들어도 복잡하고 성가신 이 과정을 한창 반복하던 지난 4월, 드디어 첫 번째 세포 배양 중단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키우던 세포에 무언가 오염된 게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그놈들의 정확한 정체가 뭔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박테리아는 분명히 아니었고, 곰팡이와도 생김새가 달랐다. 그렇다고 그냥 배양액에 이물질이 떨어진 거라기에는 모양이 꽤 특이했다. 며칠 고민하고, 지도교수님과 논의한 끝에 결국 세포 배양을 중단하기로 했다. 세포의 상태에 큰 문제를 일으킬 만한 오염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지만, 만들어질 줄기세포주가 앞으로 다양한 실험에 활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지금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 무언가 꺼림칙한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이 부분이 신경 쓰일 게 분명했고,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할 바에야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제 실험이 익숙해졌으니, 다시 시작하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실험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크게 절망하지 않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힘을 내서 두 번째 시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몇 달 동안 막노동을 반복한 끝에, 지난 7월 말 드디어 첫 번째 세포주를 완성했다. 줄기세포에 다시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후, 눈으로 세포의 형광을 확인하고 형광 세포가 없는 군집을 제거한 다음에 형광 세포를 가진 군집들의 세포를 분리해 다시 배양하는 과정을 몇 차례에 걸쳐 반복한 끝에 드디어 이뤄낸 쾌거였다. 총 3개의 세포주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완성된 것이었고, 대학원 입학 이후 사실상 처음 경험한 성공 같은 성공에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이제 출발선에 선 거나 다름없었기에 세포주가 만들어진 것 자체에 신났다기보다는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더 효율적인 실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굉장히 기뻤다. 첫 번째 세포주는 무려 한 학기에 걸쳐 완성했지만, 그 과정에서 실험의 효율이 조금씩 나아졌으므로, 나머지 것들은 금방 완료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 있게 나머지 두 세포주를 만드는 시도를 시작했지만, 원래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실험실은 역시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세포 배양 중단 사건을 마주했다.
세포 배양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스럽게 생각하고, 가장 조심하는 건 배양 중인 세포가 오염되는 거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배양을 중단한 적이 있기에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기도 하다. 다행히도 박테리아, 효모, 곰팡이 등 유력한 오염원들은 여러 방법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예방 및 제거도 가능하다. 그러나 눈으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아주 무서운 놈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름도 복잡한 마이코플라즈마라는 친구다. 박테리아의 한 종류인 마이코플라즈마는 세포벽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세포벽을 부숴 박테리아를 죽이는 여러 항생제에 내성이 있다. 게다가 세포에 붙어 기생해 자라는 이 친구는 현미경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포들 사이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어느새 내가 키우는 세포보다 훨씬 더 많아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친구다.
이쯤 자세히 설명한 걸 보면 이미 예상했겠지만, 내 세포들이 마이코플라즈마에 감염되었다. PCR을 통한 마이코플라즈마 검사 결과에서 세포들이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결과가 관찰되었다. 내 세포들은 다시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다시 한 달 동안의 노력이 저 멀리 날아갔고, 결국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왕 세포 배양을 중단한 거, 이전부터 찝찝했던 문제를 하나 해결하고 가려 했다. 처음으로 완성한 그 첫 번째 세포주가 정말로 100%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로만 구성되어있는지 확실히 확인하려 한 거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골라낼 때 형광을 현미경을 통해 우리 눈으로 확인했을 뿐이니, 세포주의 모든 세포가 정말 형광 단백질과 우리가 원하는 단백질을 발현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면역세포화학 염색을 진행했고, 슬프지만, 내 손에는 원하지 않던 결과가 도착했다.
실험을 열심히 하긴 했는지 최소 90% 이상의 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보였다. 그러나 누가 봐도 100%는 아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세포가 눈에 확실히 보였다. 한 학기 동안의 노력으로 해낸 내 첫 번째 성공이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성공은 무슨, 만들다 만 잡종 세포주였다. 추석 이틀 전, 신나는 명절 연휴 직전에 받아들인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이상하게 엄청 슬프지는 않았다. 불과 두 학기 만에 과학은 원래 실패하는 과정이란 걸 알아버린 건지, 이제는 기대했던 결과가 그대로 나오는 게 더 신기한 지경이 되어버렸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대학원생의 삶이 암담하고 슬프게만 보이겠지만, 그리고 내 연구 프로젝트가 완전히 망해가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대학원 생활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실험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게다가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다시 절치부심해서 새롭게 세포 배양을 시작했으며, 며칠 전 형광을 띄는 세포로만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 군집들을 발견했다. 그것도 이번엔 세포주 하나가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세 종류의 세포주 중 무려 두 종류에서 괜찮은 놈들을 발견했다. 이 친구들이 잘 자라주기만 한다면, 조만간 그토록 고대하던 세포주가 진짜로 완성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한 번에 두 개나!
그러나 설레발은 금물이라고, 지금까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언제나 예상치 못한 신선한 이유로 세포 배양을 중단해왔기에 이번에도 내 기대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언제 다시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어 실험이 끊길지 모른다. 당장 내일 놀라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래도 만약 별문제가 없다면, 아마 2~3주 이내에는 두 세포주가 완성될 것이다. 그러면 다음 연재쯤에는 어쩌면 지금까지처럼 어이없는 실수담, 뼈 아픈 실패담이 아닌 첫 성공 이야기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몇 주 후의 내가 또 한 번의 실패로 유익한 교훈을 얻게 될지, 아니면 첫 성공으로 실험에 자신감을 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왕이면 다음 연재 제목은 ‘한 번 더 실패’가 아닌 ‘드디어 성공’이길 바라며, 오늘도 애증의 세포 배양실로 향한다.
1) 유세포 분석에 관해 잘 소개된 BRIC 연재글.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18609&SOURCE=6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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