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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직장맘이 된 첫날
종합 닥터리 (2020-09-10)

직장맘이 된 첫날

아기의 100일 사진


출산 후 언제 출근하냐는 교수님 물음에 나는 아기 100일까지는 키우고 연구실에 나가겠다고 했다.

그냥 교수님은 알았다고 하셨지만, 연구실 후배에게 들은 후문으로는 100일이면 거의 3개월 반인데, 박사과정이 너무 길게 쉬는 것은 아니냐, 쉬는 동안에 인건비를 지급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 등 여러 불만의 목소리를 내셨다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연구실 후배는 왜 그 이야기를 굳이 나에게 전해 주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도 많이 있는데...

너무 여과 없이 전달해 주는 연구실과 교수님에 대한 소식이 지금까지도 맘속에 앙금으로 남는다.
그렇게 들었던 말들이 결국 출산휴가 동안 논문 revision과 과제 연차실적계획서 2개를 작성을 더욱 빈틈없이 하도록 나를 몰아간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엄마가 그렇듯 나는 아기 건강에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중 하나가 모유 수유를 하는 것이었다.

특히 직장맘들은 출근하면서 완모 (완전 모유 수유)가 쉬운 일은 아니기에 아기와 함께 있는 동안 모유 수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본 모유량이 많은 엄마들과는 달리 난 여전히 모유량이 적어서 먹는 것도 신경 쓰고, 아기가 다 먹은 뒤에 유선 자극차 유축을 좀 더 하였다.

다행히 점점 아기가 먹는 양만큼 모유가 생겼고, 나와 아기는 어느 정도 모유 수유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모유 수유를 하면서 정말 신기했던 것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모유의 구성 성분이 수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수유 직후에 나오는 맑고 투명한 전유는 수분과 유당이 많고 지방 함량이 적으며 달큰한 맛이 나서 아기의 목을 축여주고,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의 역할을 하고, 젖 양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수유 시작 5~6분 후부터 나오는 뽀얗고 불투명한 후유는 단백질과 지방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고소한 맛이 나고 아이에게 포만감과 영양을 제공하며, 젖 양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그래서 전유, 후유를 모두 먹이려면 한쪽 가슴에서 약 15분간 수유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늘 색깔로 전유, 후유의 존재를 확인해보고, 시간을 재면서 수유를 했다.
전유, 후유 불균형은 아기의 설사나 변비, 성장 둔화로 연결된다고 했다.

난 이러한 인체의 신비가 정말 흥미로웠다.

또 하나 신기했던 것은 바로 ‘사출 반사’였다.

모유의 분비에는 아기가 빠는 것과 유두의 자극을 통한 반사작용이 작용한다.

아기가 젖을 빨면 뇌하수체 전엽에서 프로락틴 분비되어 유선을 발달시켜 모유가 나오는 길을 생성하고, 뇌하수체 후엽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유선의 근세포를 수축시켜 모유를 짜내게 된다.

사출 반사는 아기가 모유를 빨기 시작하면서 옥시토신 분비로 유선 근세포가 수축되어 아기가 계속 빨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물총처럼 젖이 발사(?) 되는 현상이다.

처음에는 아기가 젖을 빨다가 가만히 있다가 또 젖을 빨다가 하길래 힘들어서 가만히 있나 보구나 하고 잠시 수유를 멈추느라 아이를 젖에서 떼어냈는데, 실은 사출반사로 엄마젖이 물총처럼 여러 가닥이 나오고 있어서 아기가 그냥 받아먹는 상황이었다. 아기가 빨다가 사출 반사가 일어나면 편하게 입을 벌리고 젖을 먹는 이 현상이 난 정말 경이롭고 신기했다.

어찌 되었든 신기한 모유 수유를 하다 보니 어느덧 출근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보통 엄마들이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서는 출근을 앞두고 모유를 유축하여 팩에 넣어 냉동을 시킨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3시간 간격으로 유축하여 보관하였다가 엄마가 일하는 동안 유축된 모유를 우윳병에 넣어 아기에게 먹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출근을 3주 앞두고 유축도 시작하고, 아기에게 젖병으로 모유 먹이는 연습도 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아기가 젖병을 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엄마젖에 익숙한 아기에게 실리콘 젖병 꼭지는 상당히 낯설었을테지만, 유난히도 젖병에 대한 거부가 심했다.
입을 꾹 다물고 아예 벌리지도 않고, 자지러지게 울면서 고집을 피웠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브랜드마다 젖병 꼭지 모양이 다르니 아이에게 맞는 젖병을 찾아보라 했다.
나와 남편은 시중에 파는 10가지가 넘는 브랜드의 젖병을 다 사 와서 시도해보았지만,
아기가 너무 거부를 하니 출근 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젖먹이기에 진땀을 뺐다.

곁에서 지켜보시던 친정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출근하면 어차피 젖 못 먹이는데, 그때까지는 아기가 원하는 대로 그냥 편히 지내자.”
“출근하고 나서 상황이 바뀌면 다 적응하고 젖병으로 먹게 되어 있으니까 얼마 남지 않은 휴가 기간 동안이라도 아기도 너도 편했으면 좋겠어.”

엄마 말씀처럼 그렇게 평온하게 나머지 시간을 보내며 나 또한 출근을 위한 시스템을 준비했다.

요즈음에는 100일 된 아기도 맡아주는 어린이집이 많이 있지만, 12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는 무상이나 당시에는 어린이집 한달에 37만 원 가량을 지불하고 다녀야 했고, 그마저도 돌 지난 아기를 받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베이비시터를 구해볼까도 생각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친정 엄마가 아기가 너무 어리니 어린이집 보낼 때까지 엄마가 돌보아 주신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각각 3남매인데,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양쪽 집안의 5명의 부부 중 직장맘은 나뿐이었다.
그러니 친정도, 시댁도 직장맘이 아기를 키우는 부분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 또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
요즈음은 직장맘이 많이 있지만, 내가 출산했던 그 시절은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출근을 앞두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이 되었다.

우선 엄마한테 아기를 맡기는 것은 해결되었는데, 그럼 사례를 어는 정도로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풀타임 베이비 시터의 급여를 알아보았다.
대략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줄 때 한 달에 80만원~120만 원까지 범위가 나왔다.
나는 돈으로 고용하는 베이비 시터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우리 아기를 돌보아주실 친정엄마께 그에 맞는 최소한의 대우를 해드리고 싶었다. 엄마니까 용돈 조금 드리고 아기를 맡기는 게 아니라, 시중의 베이비 시터 급여의 평균은 당연히 드리고도 이것저것 필요하신 부분을 챙겨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정한 금액이 한 달에 100만 원.
박사과정 말 당시 내가 연구실에서 받던 인건비와 동일한 금액이었다.

엄마한테 제안을 드렸을 때, 엄마는 말씀하셨다.

“야.. 남남도 아니고 무슨 돈을 내? 그냥 내 손주 봐주는 건데...”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엄마 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아기가 어린이집 갈 때까지 꼬박꼬박 입금을 해드렸다. 엄마는 그 돈을 하나도 안 쓰고 그냥 두셨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엄마 당신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대가를 지불하였기에 나도 엄마에게 어느 정도 떳떳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첫 출근 날이 되었다.

아침 7시 30분에 모유 수유를 하고, 아기에게 잘 지내라 인사를 건네고, 드디어 직장맘으로서 첫 발을 떼었다. 연구실에 도착하여 랩미팅을 참석하고, 그동안의 실험실 연구를 검토하고, 새롭게 실험 셋팅을 위해서 buffer를 만들어놓고 이것저것 바쁜 시간이었다.

3시간에 한 번씩 암실에 들어가 유축기로 모유를 짜내어 보관 팩에 담으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아기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싶었다.

오후 3시 반경에 집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아기 잘 지내고 있어요?” 반갑게 안부를 물었다.

“야야..! 나 이렇게 고집 센 아기 처음 본다. 너 가고 나서 젖병 물리느라 노력을 했는데, 하도 안 먹길래 배고프면 포기하겠지 했는데, 이 시간이 되도록 입을 안 벌리고 있어!”

“이러다가 아기 아플 것 같고, 나도 얘랑 씨름하려니 속이 다 울렁거린다. 애기 데리고 지금 아빠 차 타고 연구실로 가고 있으니까 언능 나와봐.”

세상에.. 모유는 금방 배가 꺼져서 2-3시간 간격으로 먹여야 하는데, 아침 7시 반에 먹고 지금까지 시위하면서 쫄쫄 굶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교수님께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씀드리러 교수님 방에 갔다가, 나는 그만 교수님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내가 학위 받아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연구실에 나와서 내 새끼는 굶고 있게 하고, 울 엄마는 하루 종일 고생시키는 건지...”

지난 5년간 학위과정을 지내면서 랩미팅 시간에 깨지고, 논문 쓰면서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던 내가 이 상황이 너무 서럽고, 아기에게 미안해서 꺼이꺼이 울었다.

당황한 교수님은 참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셨다.

“그렇게 운다고 뭐 해결되니?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정 그러면, 엄마한테 택시비를 드릴 테니 맨날 아기를 데리고 와서 젖 먹이고 가시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려봐. 그게 아기도, 어머님도, 너도 다 잘 지내는 방법 아니겠어?”

나는 엄마 전화를 받고 연구실 1층으로 내려가 아빠 차 안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루 종일 굶은 우리 딸내미는 허겁지겁 젖을 먹고 잠이 들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얘가 보통 고집이 있는 게 아니더라고. 어차피 지하철로 두 정거장이니 차라리 내가 매일 점심에 지하철역 수유실로 아기를 데리고 올테니 니가 점심밥 후딱 먹고 그냥 지하철역으로 와서 아기 젖 먹이고 가는 게 어떨까? 내가 집에서 애랑 씨름하느니 매일 젖 먹이러 오는 게 낫겠다.”

이렇게 나는 요란하게 직장맘으로서 첫 발을 떼었다.

  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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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 (필명)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현재 연구교수로 척수손상과 척추관협착증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본 연재를 통해 박사과정부터 시작된 저의 두 아이 육아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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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만박사  (2020-09-1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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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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