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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 like] 『행복』 천연마약 엔도르핀
Bio통신원(쏘르빈)
천연마약 엔도르핀
* 지난 주제 ‘매운맛’에 이어서 ‘엔도르핀’과 행복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봐요!
고통이 예상된다면 피하기 마련이다.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 100km/h로 빠르게 날아오는 공.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지면 뜨거울 것’이고, ‘맞으면 아플 것’을 안다.
다가올 고통을 알고 있기에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피하려는 고통뿐만 아니라 스스로 맞이하려는 고통들도 존재한다. 누군가는 극강의 매운맛에 도전하기도 하고 인간의 한계에 다다르는 마라톤에 출전하며, 암벽등반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도 즐긴다.
왜 이런 고통들을 스스로 찾아 즐기는 걸까?
그 고통이 사라지며 찾아오는 행복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행복이라고도 불리는 뇌 속의 호르몬 ‘엔도르핀’. 이 ‘엔도르핀’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어떤 행복인지 생각해보자.
엔도르핀(Endorphin)의 정확한 이름은 Endogenous Morphine, ‘몸 안에서 분비되는 모르핀’이다. 호르몬 ‘엔도르핀’과 마약 ‘모르핀’ 둘 다 우리 몸에 진통과 쾌락을 준다. 실제로 이 둘의 분자구조를 살펴보면 닮은 구석이 있다. 왼쪽 아래 끝부분이 특히 닮아있는데, 이 부분은 우리 몸에 들어와 반응을 일으키는 ‘열쇠’ 역할을 한다. 즉, 모르핀이 엔도르핀과 비슷한 열쇠를 가졌기에 몸속에서 엔도르핀을 위한 열쇠구멍 (수용기, receptor)에 반응할 수 있게 되어 마약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핀은 엔도르핀의 짝퉁에 불과하다. 엔도르핀은 오리지널답게 몸속의 수용기들과 훨씬 더 많이 반응하며 모르핀의 몇백 배에 달하는 마약 효과를 낸다. 엔도르핀은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태어났지만 가격은 ‘0원’인 효과 좋은 천연 마약인 셈이다.
하지만 이 쾌락은 오래가지 못한다. 엔도르핀은 보통 십여 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펩타이드’ 구조라서 몸속에서 쉽게 분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과 지속시간으로만 보자면 작은 분자 구조를 가진 모르핀의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된다.
(출처 : Pearson Education)
이러한 천연마약 엔도르핀은 언제 우리 뇌에서 분비될까?
‘웃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이런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엔도르핀은 웃음 호르몬, 행복 호르몬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행복이란 타이틀이 허무하게도 엔도르핀의 분비는 대게 고통에서 시작된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신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몸을 마비시키려 하고, 이때 분비하는 호르몬이 ‘엔도르핀’인 것이다. 즉, 고통으로 몸 전체가 위험해지기 전에 강력한 진통제를 내뿜어서 몸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또한 이 천연마약 ‘엔도르핀’은 실제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 일상의 크고 작은 고통에 의해서도 분비되므로 엔도르핀으로 인한 쾌락을 경험한 사람들은 중독의 길로 빠지곤 한다.
대표적인 상황이 이전 글에서 언급하였던 ‘매운 음식 중독’이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혀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엔도르핀이 분비되는데 이로 인해 스트레스가 풀리게 된다. 이를 경험한 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매운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30분 이상 달렸을 때 몸이 힘든 느낌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러너스 하이’ 현상도 있다. 무릎과 근육에 무리가 가서 힘든 상황이지만 엔도르핀을 통해 고통을 잠재우고 더 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운동을 하는 도중 러너스 하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으며, 이 느낌에 중독되어 몸에 무리가 온 상태에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전형적인 마약중독과 같은 현상이다.
하지만 명확히 생각해야 할 것은, 엔도르핀은 고통을 잊기 위해 분비되는 것이지 쾌락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러너스 하이’는 아주 오래전 인간이 사냥이나 도주의 급박한 상황에서 조금 더 버티고 뛰어서 생존하고자 진화한 결과라고 여겨지는 만큼 말이다.
앞의 상황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엔도르핀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는 순간이 있다.
훨씬 큰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따라와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다.
큰 교통사고, 신체 절단으로 인한 충격, 죽기 직전의 순간.
이처럼 몸에 다가오는 고통이 클수록 순간적인 엔도르핀의 분비량도 커지고 몸은 더욱 편안해진다. 기절하는 순간 몸이 편안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서로 억지로 기절을 시키는 ‘기절놀이’가 유행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울감,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일부러 몸에 고통을 주기도 한다.
엔도르핀은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꼭 필요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상황을 돌이켜보면서, 엔도르핀의 쾌락을 악용하는 것은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때로 삶이 단조롭고 형편없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합법적인 쾌락에 의존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엔도르핀을 악용하기 시작하면 잠시 고통을 잊는 대가로 많은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엔도르핀은 말 그대로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드는 ‘마취제’이지 고통 자체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는 아니다. 그리고 마취제로 고통을 더 잘 견디게 되는 것과 더 행복해지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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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현상을 넘어선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누군가가 삶 속에서 과학을 발견한다면, 저는 과학 속에서 삶을 발견하며 이것을 글로 기록합니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즌 2에서는 여러 생명과학 기술과 이를 예술적인 견해로 바라본 시선, 이로써 만들어진 과학예술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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