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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모델생물 운동] 독극물 공장장, 코브라
Bio통신원(김준)
숲이 우거진 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유독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동물이 많이 목격됐습니다. 담배 피우다가 멧돼지 만난 썰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고 1년에 한두 번쯤은 멧돼지 사냥 중이니 조심하라는 공지가 뜨기도 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멸종위기라는 고라니는 또 어찌나 많은지, 기숙사 돌아오는 길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차 앞으로 뛰어드는 덩치 큰 놈을 두세 번은 봤을 정돕니다. 학교 정문 쪽에는 왜가리도 단체로 방문하곤 했는데, 얘들은 또 어찌나 싸대는지 한여름에도 폭설이 내린 것처럼 새하얗게 변한 숲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큰 동물들은 하도 흔하게 보고 듣다 보니 저도 모르는 새 정이 들어 무섭지는 않았는데, 가끔 한 글자만 봐도 소름 끼치는 동물이 나왔다는 소식도 들리곤 했습니다. 바로 뱀입니다.
지금이야 파충류가 매끈하고 부들부들한 질감을 지닌 아주 사랑스러운 생물이란 걸 알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뱀은 상상만 해도 이미 물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두려운 생물이었습니다. 생김새도 척추동물이라곤 믿기지 않게 팔다리 하나 없이 길쭉하게 뻗어있어 이질감이 드는 데다가 상상하기로는 뾰족한 송곳니가 먼저 떠올라 더욱 무시무시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송곳니가 뾰족하지 않은 뱀이 많은데도 다양한 매체에서 뱀의 상징으로 뾰족한 송곳니를 그리는 일이 워낙 흔해야죠. 또 실제로 뱀독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도 한몫 할 겁니다. 세계보건기구 통계로는 매년 약 3백만 명이 독사에 물리고 이 중 약 10만 명이 사망에 이르며, 30만 명은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것을 포함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고 합니다(World Health Organization).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뱀술 담갔다가 몇 달이 지나도 뱀이 죽질 않아 술 마시려다 물려 죽었다는 기사를 왕왕 들었으니, 그리 먼 일만도 아닌 듯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 뱀독이 무지하게 다양하고 복잡한 독극물이 뒤섞인 칵테일이라 그 실체를 알기가 아주 까다롭다는 사실입니다. 뱀은 척추동물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단백질을 포함한 다양한 뱀독 단백질을 조합해 뱀독으로 완성시키는데, 얼마나 많은 뱀독 단백질이 있는지, 또 이게 어떤 세포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뱀독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런 뱀독을 예방하거나 해독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돼야 하는데, 이에 대해 온전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 보니 값싸고 효과 좋은 치료제 개발이 더욱 어려웠던 것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풀기가 정말 쉽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급격한 기술 발전에 힘입어 하나둘씩 빠르게 해소되고 있습니다.
뱀독 연구를 크게 앞당길 첫 번째 발판은 바로 인도 코브라의 유전 정보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과정입니다. 뱀독에 들어있는 다양한 뱀독 단백질의 정체를 밝히려면 이것들이 각각 어떤 아미노산을 어떻게 엮어 만들어낸 단백질인지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기술로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순서를 알아내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더 쉬운 DNA 정보로부터 접근을 합니다. 뱀독 단백질이 있다면 그 단백질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 DNA 유전 정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생물의 DNA를 분석하는 기법은 단백질을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루기 쉽고 간편하기 때문에, 뱀독 유전자의 DNA 순서를 먼저 해독하고 이 DNA 순서로부터 어떤 아미노산 순서로 단백질이 만들어질 것인지 예상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독사 중에서 가장 자세하게 유전 정보가 밝혀진 것은 바로 인도 코브라입니다. 인도에는 1년에 5만 명이 단 4종류의 독사에게 물려 사망할 정도로 독사는 심각한 위험요인인데, 이 사천왕 중 하나가 바로 인도 코브라입니다. 인도 코브라의 뱀독을 해독하려면 현재도 큰 돈이 들기에 해독제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사망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인도 코브라 뱀독이 어떤 단백질들로 구성돼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면 각 단백질을 하나씩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물질을 좀 더 값싸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유전 정보를 자세히 분석해 뱀독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했던 거죠. 2020년, 마침내 아주 품질이 높은 인도 코브라 유전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고, 뱀독 유전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이 유전 정보는 현존하는 기술을 거의 모든 기술을 투입해서 만들어낸 최고급 물건입니다. 사람과 같은 진핵생물의 유전 정보는 염색체라는 실에 담겨있는데, 물고기를 대량으로 낚을 때 쓰는 주낙처럼, 기다란 실에 달린 낚시바늘에 알파벳 4종류가 바늘 하나당 하나씩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양새입니다. 주낙을 감아올리듯 실을 감아올려 바늘마다 어떤 알파벳이 매달려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서 유전 정보를 읽을 수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염색체는 생각보다 아주 연약해서 물만 닿아도 이 실이 끊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염색체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단번에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런 실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원래 형태, 즉 염색체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따로 필요합니다. 만약 같은 염색체를 여러 번 더 읽어낼 수 있다면 더 좋은데, 이러면 끊어지는 위치가 다르다보니 이전 정보와 비교해보면 한쪽에서는 찢어졌지만 다른 쪽에서는 찢어지지 않은 부분을 찾을 수가 있어서 찢어진 부분을 이어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직소퍼즐을 맞추듯 서로 겹치는 부분을 이어 붙이는 셈인데, 조각 10개짜리 퍼즐을 맞추는 게 조각 1000개짜리 퍼즐 맞추는 것보다 쉽듯이, 실 조각이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인도 코브라 유전 정보를 재구성하는 데에는 현재로서는 가장 긴 실 조각을 읽어내는 기법이 쓰였고, 여기에 다른 기법까지 동원돼 거의 염색체 수준까지 재구성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Suryamohan et al., 2020).
현재까지 알려진 인도 코브라 뱀독 유전자는 33종류, 총 139개로 아주 복잡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19개는 다른 조직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않고 뱀독 분비선에서만 작동하는 유전자로, 아마 가장 중요한 뱀독 유전자가 아닐까 내다보고 있습니다(Suryamohan et al., 2020). 이제는 이런 뱀독 유전자들을 이용해 단백질을 생산하기에 더 적합한 세포 공장을 구성하고, 이 세포 공장에서 뱀독 단백질을 대량 생산해 뱀독을 효과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죠.
그런데 운이 없으면 앞으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이렇게 개별 뱀독 단백질을 생산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이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뱀독 단백질이 뱀 말고 다른 생물에서는 제대로 안 만들어질 수도 있고, 19개의 핵심 뱀독 단백질을 열심히 만들어 놨더니 다른 게 더 중요하다는 게 밝혀질 수도 있는 등 연구가 중간에 자빠질 수 있는 요인은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뱀독을 만들어내는 뱀독 분비선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게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뱀독 분비선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까요? 매번 독사를 잡고 해부해서 뱀독 분비선을 꺼내는 일은 여러모로 고통스러운 일일 겁니다. 이걸 대체할 방안이 필요하죠. 연구실에서 뱀독 분비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 이게 두 번째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바로 독사가 지닌 뱀독 분비선을 연구실에서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는 뱀독 분비선 유사 장기, 오가노이드(organoid)입니다.
오가노이드는 연구실에서 키워낸 아주 자그마한 장기 유사체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창자와 아주 비슷한 창자 오가노이드인데, 줄기세포가 사는 곳을 창자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주면 실제로 이 줄기세포가 창자에 있는 줄기세포인 것처럼 비슷하게 자라 큼지막한 세포 덩어리를 이룹니다. 이처럼 줄기세포로부터 특정 조직과 비슷하게 키워낸 것을 오가노이드라고 부르며, 최근에 다양한 조직을 모사해 연구를 더 수월하게 돕는 수많은 오가노이드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조직이나 장기를 구하기 위해 매번 생물을 죽일 필요도 없고 사람 세포로부터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 최근에 아주 각광 받고 있는 기법입니다.
뱀독 분비선으로부터 만들어낸 오가노이드는 이제 갓 개발된 따끈따끈한 신작이라 상용화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존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뱀독 연구를 가능케 할 중요한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뱀독 분비선 오가노이드는 독사의 뱀독 분비선에 있는 세포로부터 곧장 만들어낸 것인데, 어린 독사의 뱀독 분비선을 분리하고 이 분비선 안에 있는 세포를 하나하나 떨어뜨린 뒤 뱀의 체온과 비슷한 32도씨에서 몇 가지 성장인자들과 버무려주면 오가노이드가 뚝딱 만들어진다고 합니다(Post et al., 2020). 물론 실제로는 훨씬 어렵겠죠. 저처럼 초보자가 시도한다면 오가노이드를 만들기는 커녕 어린 독사 마주친 순간 물려서 황천길 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정화돼 표준이라 할 수 있을 뱀독 분비선 오가노이드 개발이 아주 중요할 것입니다.
이 뱀독 분비선 오가노이드는 실제 뱀독 분비선이 지닌 구조와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지녀 독사를 대체하는 용도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새롭게 개발된 오가노이드가 실제 장기나 조직과 얼마나 비슷한지 파악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단계인데, 뱀독 분비선을 통째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분비선 안에 있는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일일이 뜯어보는 것까지 가능하게 하는 기술 덕분에 구조 비교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이전에는 요리 수만 그릇을 한데 모아 뒤섞은 다음 한 그릇 크게 떠서 맛을 보고 섞기 전 각 그릇에 어떤 재료가 있었을지 추정하던 시대였는데, 이제는 수만 그릇에서 각각 한 숟갈씩 떠서 각 그릇마다 어떤 게 들어있었을지 좀 더 정교하게 추측하는 게 가능해진 셈입니다. 덕분에 예전에는 싹 다 뒤섞여 간장부터 케첩, 똠얌꿍 등등 별별 맛이 한번에 다 나는 괴식인 줄만 알았는데, 각 그릇을 따로 먹어보니 그래도 어떤 건 간장달걀밥이고 어떤 건 오므라이스 볶음밥이고 어떤 건 향신료 듬뿍 들어간 태국 요리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뱀독 분비선 연구도 비슷해서, 예전에는 온갖 세포(=그릇)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유전자(=식재료)를 한번에 뒤섞어 놓고 비교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한 그릇에서 한 숟갈씩 뜨듯 한 세포에서 작동하고 있는 유전자를 조금씩 떼어내서 하나하나 살펴보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그렇게 비교해본 결과 뱀독이 복잡한 이유는 사실 모든 세포가 다양한 뱀독 단백질 여러 개를 생산해내기 때문이 아니라, 분비선 안에도 세포들 기능이 나뉘어 있어 어떤 세포는 특정한 뱀독 유전자만, 어떤 세포는 그와는 또 다른 독특한 뱀독 유전자만 작동시키는 식으로 분업을 한다는 점 또한 알게 됐습니다(Post et al., 2020). 흥미롭게도 이처럼 세포마다 서로 다른 뱀독 유전자만 작동시키는 현상은 오가노이드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었죠. 이처럼 특화된 세포들을 연구해서 뱀독 생산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가노이드가 정말 뱀독 분비선 대신 연구에 쓰일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처럼 뱀독 유전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밝혀지고 뱀독 공장을 모방한 뱀독 분비샘 오가노이드가 만들어지면서, 뱀독 치료제를 더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이 이제 막 갖춰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뱀독을 대량으로 생산하거나 그 해독제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지만, 갑자기 빛이 비친 것처럼 아주 재밌는 연구 결과가 쏟아져 흥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더 멋진 연구가 계속되길,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값싸고 다양한 해독제가 출시돼 더 많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김준 위원
형질 유잼도 ★★★★☆
유전체 수준 ★★★★★
유전학 기법 ★★☆☆☆
배양 난이도 ★★☆☆☆
귀여움 정도 ★★★★☆
총평 ★★★★☆
정말 키워보고 싶은 생물이지만 독사는 거절! 독 없는 뱀과 비교해 뱀독 진화 연구하면 아주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오가노이드가 가능한 종에 한정될 거라 갈 길은 먼 듯. 하 그리고 이 정도 유전체에 5점 줬어야 했는데 플라나리아에 만점 준 게 후회된다. 정말 훌륭한 유전체.
김천아 위원
형질 유잼도 ★★★★☆
유전체 수준 ★★★★★
유전학 기법 ★★☆☆☆
배양 난이도 ★★☆☆☆
귀여움 정도 ★☆☆☆☆
총평 ★★★★☆
장인정신으로 한땀한땀 만들어낸 엄청난 유전체. 싱글셀, 오가노이드까지. 쪼매 겁나는 것 말고는 사실상 단점이 안보인다. 뱀의 모양, 크기, 무늬 같은 다른 형질의 다양성을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하나의 종이 될 듯.
참고자료
Post, Y., Puschhof, J., Beumer, J., Kerkkamp, H.M., de Bakker, M.A.G., Slagboom, J., de Barbanson, B., Wevers, N.R., Spijkers, X.M., Olivier, T., et al. (2020). Snake Venom Gland Organoids. Cell 180, 233-247.e221.
Suryamohan, K., Krishnankutty, S.P., Guillory, J., Jevit, M., Schröder, M.S., Wu, M., Kuriakose, B., Mathew, O.K., Perumal, R.C., Koludarov, I., et al. (2020). The Indian cobra reference genome and transcriptome enables comprehensive identification of venom toxins. Nature Genetics 52, 106-117.
World Health Organization Snakebite envenoming. https://wwwwhoint/news-room/fact-sheets/detail/snakebite-enven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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