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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과학자 이야기 22. 『언덕 위의 저택』
종합 과학작가 박재용 (2020-01-13)

로마 일곱 언덕 위의 신전처럼 토스카나 대공은 자신의 신전을 토스카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짓기로 결심했다. 다만 로마의 신전은 신들과 제사장이 거주했던 것에 반하여 토스카나의 별장 저택은 대공이 살고 자신에게 영예로움을 주는 것이 달랐다. 벌써 이년 째 공사 중인 저택은 이제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건물 주변으로는 그에 맞는 정원이 꾸며지는 중이었다. 이 즈음 한 가지 난관이 생겼다. 정원의 가운데 이탈리아 반도 모양의 연못을 꾸미려는데 아무리 땅을 파도 지하수가 나오지 않았던 것. 
결국 언덕 아래의 개천에서 물을 끌어올리기로 하였다. 흔히 하는 방식대로 긴 대롱을 만들어 개천에서 언덕까지 연결하고 펌프를 설치했다. 족히 14미터는 되는 높이여서 그런지 아무리 해도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빗물로 채우려 해도 비도 잘 오지 않는 곳이라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골치를 앓던 토스카나 대공은 마지막으로 갈릴레오에게 해결책을 구하기로 한다. 

그 즈음 갈릴레오는 토스카나 대공의 배려로 아르체리트의 별장에 머물고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교황의 명령에 의해 무기한 감금을 명령받은 터여서 감금 장소인 아르체리트에서 나갈 수 없는 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전에 머물던 곳에 비하면 아르체리트는 거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아르체리트 별장 자체가 토스카나 대공이 가끔씩 머물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 넓기도 했거니와 안락했으며 토스카나 대공의 명으로 갈릴레오에게 필요한 물품은 부족함 없이 제공되고 있었다. 몇몇 친우들과의 연락도 크게 제한 받지 않고 있었다. 
이미 거의 눈이 보이지도 않았고, 기력도 많이 떨어진 갈릴레오로선 굳이 이곳을 벗어날 이유도 크게 없었다. 더구나 제자인 토리첼리는 아주 싹싹하면서도 세심한 젊은이여서 나름 갈릴레오로서도 만족스러운 나날이었다. 토리첼리는 원래 갈릴레오의 친구인 카스테리의 문하생으로 10년을 이미 지낸 터였다. 카스테리는 토리첼리의 수학적 재능을 염두에 두고 갈릴레오에게 소개를 했고, 지금 토리첼리는 ‘토스카나 대공 전하 전속 수학자 겸 철학자’로서 갈릴레오의 연구를 도와주고 있었다. 

토리첼리가 토스카나 대공의 편지를 들고 갈릴레오의 방을 들어선 건 오후 2시쯤이었다. 문을 열고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빛 아래 오수를 즐기고 있는 갈릴레오 옆으로 다가간다. 

오 토리첼리 무슨 일인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도 갈릴레오는 토리첼리인 걸 안다. 어려서부터 박자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걸음소리 만으로도 누군지 알아채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토스카나 대공에게서 편지가 왔네요. 

생기발랄한 토리첼리는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편이었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갈릴레오에게 거의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갈릴레오도 딱히 싫어하진 않는 눈치다. 평생 까탈스럽고 까칠하게 살았던 그. 유독 딸과 이 청년 토리첼리에게만은 살가운 모습을 보인다.  

대공께서? 직접 편지를 주시다니 흔한 일이 아니군. 자네가 한 번 읽어보게나. 

토리첼리가 읽어나가는 편지엔 언제나 그렇듯 용건만 간단히 적혀 있다. 갈릴레오는 눈을 감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갈릴레오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좋아 좋아. 자네가 읽었으니 알겠지만 알다시피 난 이제 그런 일을 하기엔 너무 늙었어. 토리첼리 자네가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네. 자네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지 암. 

하이고 스승님. 제가 어찌 토스카나 대공이 직접 부탁하신 일을 맡겠어요. 더구나 지금 스승님이 하라고 주신 수학 문제 처리도 만만하진 않아요.   

아냐 아냐 자네도 토스카나 대공 전하 전속 수학자 겸 철학자가 아닌가. 자격이야 당연히 있지. 그리고 능력도 있어. 카스테리에게서 10년 간 배운 것도 있고, 내게 와서도 맡은 일을 아주 잘 하고 있지 않나. 이번 일을 잘 해결하면 토스카나 대공이 자네[를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고, 이탈리아 전체에서도 자네 명성이 달라질 터이네  

겨우 펌프로 물 올리는 문제 해결하는 게 뭐라고 전 이탈리아에 명성을 떨친다는 건가요. 좀 과장이 심하신 거 아니에요?

후훗 겨우 펌프 문제라. 그리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야.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냐. 이거 아주 재미있는 거거든. 

토리첼리는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갈릴레오를 보고 있다. 그걸 아는지 갈릴레오 뜸을 좀 들이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자네 내가 평생 아리스토텔레스 영감을 거꾸러트리는 일만 해온 건 알지? 천문학에서도 역학에서도 나름 성과를 거두었네. 로마의 멍청이들이야 구제불능이니 제치고 온 유럽의 자연철학자들은 이제 모두 지동설이 맞다는 사실에 토를 달지 못하지. 물론 코페르니쿠스가 주장이야 먼저 했지만 그리 따지면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코스가 가장 먼저 주장을 한 셈이지. 결국 중요한 건 지동설이 맞다는 걸 ‘증명’하는 것 아니겠나? 내가 그걸 해냈단 말씀이야. 
더구나 관성의 법칙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아리스토 영감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멈춘다고 했지만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걸,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영원히 등속 원운동을 한다는 걸 밝혀냈지 않나? 

에이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제가 카스테리 스승이 시키는 대로 여기에 온 이유도 그 때문인데요. 스승님이야말로 고루한 스콜라철학자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인 분이시지요. 

클클 한 방이 아니라 서너 방쯤 된다고 이야기해줘. 실제로 그러니까 말야. 그런데 이 펌프 문제가 아리스토 영감하고 스콜라 늙은이들에게 또 한 방 먹이는 게 될 수 있단 말야. 더구나 이 문젠 로마에서도 별 신경 쓸 것도 아니고 말야. 

정말요? 토스카나 대공 밑에도 꽤 한다는 기술자들이 여럿 있는데 해결을 못한 걸 보면 까다로운 문제일 거란 생각은 했는데 이게 그렇게나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니 저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자 저 의자를 당겨와 앉게나. 천천히 이야길 해줌세. 

토리첼리가 옆의 의자를 당겨와 갈릴레이 옆에 앉았다. 살짝 흥분한 듯 눈이 조금 더 커지고 등은 곧추세워 갈릴레이가 이야길 계속 하길 기다린다. 

자 생각해보게. 아리스토 영감이 말했지.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건 공기가 원래 우주의 중심에서 벋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자연스런 운동이라고 했네. 그래서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자신의 속성에 따라 위로 올라간다고 말야. 불길도 위로 치솟는 건 마찬가지로 자신의 위치, 별과 달이 떠 있는 천상계로 올라가려는 속성이라고 했지. 반대로 돌멩이나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건 그들의 원래 자리가 우주의 중심, 즉 지구의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달라. 이제 우린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란 걸 안단 말야. 그럼 돌멩이가 태양을 향해 떨어져야 하는데 어디 그런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걸 감안하면 낮이란 태양이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을 때이고, 밤이란 태양이 반대쪽 즉 우리의 발 아래쪽에 있을 때란 말이지. 그렇다면 낮과 밤에 돌멩이와 수증기의 운동은 서로 반대가 되어야 하질 않나

네 말씀대로입니다. 낮에는 수증기가 하늘을 향해야 하고 밤에는 수증기가 발 아래를 향해야 하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지. 매일 우리가 눈으로 보듯이 돌멩이는 항상 대지를 향해 떨어지고 불은 하늘을 향하지. 그렇다면 아리스토 영감이 한 말이 틀렸다는 이야기지. 클클 

그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그것과 펌프 문제가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요?

자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세. 공기가 태양을 향하거나 반대쪽을 향하지 않고 이 지구 주변을 둘러싼 채 존재한다면 이는 공기가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게 지구가 잡아당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 

그 말씀은? 토리첼리도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렇다네. 그 힘이 무엇인지는 아직 나도 정확히 모르네. 윌리엄 길버트는 그런 종류의 힘으로 자기력을 이야기하네만 내 생각에 그건 아닌 거 같고. 어찌되었건 공기도 지구가 잡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고. 그래서 알프스 산맥처럼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공기가 적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 지구가 잡아 당기고 있으니 아래쪽은 공기가 많고 위쪽은 조금밖에 없다는 거지. 

그렇다면, 반대로 지구가 잡아 당겨도 공기들이 모두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유가 분명해지는군요. 공기입자들이 내려오다가 다른 공기 입자와 부딪쳐서 위로 올라가고, 다시 그 위의 입자들도 아래로 내려오다가 아래의 입자와 부딪쳐 다시 올라가고, 그러니 아래쪽에 공기 입자들이 조밀하게 있어서 위쪽의 입자들이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흘흘 척하면 착이군. 맞아 맞아 그거네. 그런데 공기 입자들이 단지 자기들끼리만 부딪치겠나? 주변의 다른 물질들하고도 마구 부딪칠 거란 말이지. 그럼 펌프 문제로 돌아가 보세.  
펌프의 손잡이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펌프 아래쪽 물과 펌프 사이의 공기를 빼내는 거지. 그러면 펌프 아래쪽 물에 부딪치는 공기 입자들이 사라지겠지. 

갈릴레이가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위쪽으로 향했다. 

자 이제 이 손바닥이 물의 표면이라고 생각해보게. 팔을 통해서 물이 양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왼쪽 손바닥은 펌프 아래에 있고, 오른쪽 손바닥은 그냥 개천의 표면이야. 왼쪽 손바닥을 때리는 공기는 사라졌고, 오른쪽 손바닥을 때리는 공기는 여전하네. 어떻게 되겠나? 

갈릴레이가 개구쟁이같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토리첼리도 같은 웃음을 띠며 자신의 양 손으로 갈릴레이의 두 손을 각기 잡았다. 

하하 오른손은 공기의 힘으로 아래로, 왼손은 그에 따라 위로. 이게 펌프의 원리였군요. 

그렇지. 그렇지. 이제 남은 건 공기의 힘이 물을 얼마나 높이 끌어올릴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걸세. 아마 대공의 연못은 그보다 더 높아서 불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싶어. 만약 그렇다면 중간에 연못을 하나 더 파면 될 것이네 아래쪽 개천에서 중간 높이의 연못으로 물을 올리고, 그 연못에서 다시 물을 끌어올리면 토스카나 대공 문제는 해결이야. 

그럼 제가 할 일은 공기의 힘이 끌어올릴 수 있는 물의 높이를 확인하는 것이겠군요. 

그렇지 그렇지. 그리고 그 힘이 토스카나든 베네치아든 어디든 똑 같다는 걸 확인하는 것도 필요할거야.

그러면 토스카나 대공의 문제도 해결하고, 아리스토 영감님의 사원소설도 박살내고 꿩먹고 알먹기군요.  

토리첼리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자네의 명성도 올라가고 ㅎㅎ, 그런데 여기 더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있다는 걸 알겠나? 

토리첼리의 눈이 다시 뭔가를 생각한다. 나이가 든 갈릴레오는 이제 젊은이의 기다려줄 만큼 여유가 생겼다. 한참을 기다린 뒤 토리첼리가 서늘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했다.  

설마 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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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년 10월 15일 - 1647년 10월 25일)는 이탈리아의 수학자며 물리학자이다.

파엔짜(Faenza) 출생으로, 로마에 와서 처음엔 수학자 베네디토 카스텔리의 비서를 했다. 1641년부터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제자가 되어, 갈릴레이가 죽을 때까지 연구를 함께 했다. 그 후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 수학자·철학자로서 초대되었다. 1644년 유속과 기압의 법칙을 적은 토리첼리의 정리를 발표했다. 수은으로 실험한 대기압의 연구로도 유명하며 수은기압계를 발명하기도 했다.

깊이가 대략 10.5미터 이상인 우물에서부터 물을 직접 퍼올리지 못하는 것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1643년 토리첼리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실험을 실시한다. 한쪽이 닫힌 유리관에 넣은 수은주를 세우면, 물로 같은 실험을 할 때의 14분의 1 정도인 약 76 cm의 높이까지 밖에 올라오지 않으며, 그 위 부분은 진공(물론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의미의 진공은 아니고, 매우 낮은 밀도의 수은 기체 등이 존재할 것이다)이 되는 것을 발견한다. 물과 수은의 밀도가 약 1:14인 사실로부터, 공기에 의한 압력 즉 대기압에 의해서 액체가 눌리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와 함께 수은주의 높이가 날마다 미묘하게 변화하는 현상도 발견했다. 이것은 수은기압계의 원리이다. 따라서 수은기압계의 발명자로 여겨지고 있다. 또, 압력의 단위 토르(Torr)는 토리첼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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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오래된 공부 못하는 학생, 과학 작가, 사단법인 ESC 회원 )
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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