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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과학, 이제 새롭게 시작할 때
오피니언 곽민준 (2020-01-10 10:28)

글을 쓸 때 제일 어려운 건 첫 문단, 첫 문장을 시작하는 거다. 어떻게 시작해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그리고 독자들이 이를 흥미롭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느껴지지 않겠지만, 지금 이 세 줄을 적는 데도 생각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갔다.

 사실 시작이 어려운 건 글뿐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에서 마찬가지다. 물론 시작은 설레고 기다려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마주하면 참 어렵고, 또 두렵다. 시작이 정말 두렵게 느껴지는 건 단지 어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작은 어렵지만,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특히 두렵다. 시작 없이 해낼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 무언가 해내려면 어려운 시작을 무조건 해야만 한다는 것이 시작을 더욱 두렵게 한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시작을 망설이게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학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두려움 때문인듯하다. 우리나라 국민 중 과학기술의 필요성에 동감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을 거다. 그러나 직접 과학을 배우고 체험하려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 고등학교, 혹은 중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과학을 다시 시작하는 게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혹은 도대체 과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막막한 것은 아닐까? 사실 과학의 시작은 전혀 어려울 게 없는 간단한 일인데도 말이다. 

 전통적인 과학적 과정은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과학을 처음 접하는 대중들 역시 자연을 관찰하는 걸 통해 과학을 시작할 수 있을 거다. 유서 깊은 과학 문화를 자랑하는 영국 등의 나라에서는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연관찰을 즐기며, 이를 통해 과학을 배우기 시작한다. 일부 유럽 국가들의 주택은 대부분 미니 정원을 포함하고 있다. 정원이라고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냥 작은 화단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 작은 정원을 통해 우리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느낀다. 집값이 비싸다고 소문난 런던 시민들조차 건물의 반지하 테라스 혹은 창문에 작더라도 최소한 하나의 미니 정원을 만들려고 애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는 식물과 자연을 도심 속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자연 친화적인 도시의 시민 중에는 도심 속 식물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곤충 혹은 새를 관찰하는 걸 취미로 즐기는 이들도 많다. 이런 자연을 향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과학에 대한 흥미로 이어진다. 과학 문화가 자리 잡은 국가의 시민 과학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이처럼 자연을 가까이에서 만나다 보니, 자연 친화적인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연사랑도 매우 극진하다. 우리나라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이 식품들이 우리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오해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이 저항에 부딪히는 이유는 유전자 조작이 그들의 아름다운 자연이 망가트릴지도 모른다는 시민들의 걱정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반대하는 서로 다른 두 이유는 우리와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자연을 필요한 자원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아끼는 이들은 자연을 정말 자신의 친구로 여기는 듯하다. 노력하는 이는 즐기는 이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나 자연을 좋아하고 즐기는 이들이 가득한 사회를 우리가 어찌 과학으로 이기겠는가.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쉽고 재미있게 과학을 시작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럼 도대체 우리 사회가 과학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시작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세기 초 일제에 의해 서양 과학문물을 받아들였다. 당시의 과학은 곧 국가경쟁력이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20세기의 과학기술은 국력의 핵심 요소였고, 과학자들의 연구는 국가와 사회에 의해 조직적으로 설계 및 진행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 역시 과학을 국가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였다. 당시 처음으로 열린 대한민국의 학회는 과학 분야의 학회가 아닌 발명학회였다. 우리는 시작부터 과학을 그저 기술발전을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본 것이다.
 
  처음 과학을 받아들일 때, 기술과 사회발전의 측면에서만 이를 바라봤던 20세기 방식의 사고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아직도, 사회와 시민은 과학이 내놓는 실용적인 결과와 연구의 활용 가치에만 집중한다. 당연히 과학적 과정은 외면받는다. 그러다 보니 과학자들은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보다 얼른 쉬운 그럴싸한 연구를 빠르게 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초과학 연구는 무시당하고 있고 말이다. 게다가 사회가 과학의 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다 보니, 대중들은 과학을 전문가의 일이라고만 받아들인다. 그래서 과학을 더 배우려 하지 않는 듯하다. 사실 과학은 하나의 시스템이자 문화며, 따라서 최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이런 상황에서는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결국, 우리 과학의 방향성에 문제가 있는 건 다 첫 단추를 잘못 꿰맨 탓이다. 과학의 가치를 과정이 아닌 결과에서 찾는 잘못된 풍토는 시민의 과학과 전문가의 과학, 양쪽을 모두 해치고 있다.

 이렇게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었을 때는 오히려 아예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수도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가다가는 새로운 시작이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새로운 10년을 여는 2020년 새해를 맞아, 우리 한 번 과학을 새롭게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성과 위주의 과학계 풍토를 벗어나, 자연을 인간의 감각으로 느끼는 아주 순수한 과학에서부터 다시 모든 걸 시작해보는 거다. 전문가들은 실용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는 기초 연구에도 힘을 쏟고, 시민들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자연을 만나며 자연과 과학을 향한 관심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작은 분명 우리 과학을 한층 성장시킬 것이다. 한국 과학, 이제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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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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