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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물로 본 의학의 역사] 조지프 갈, 골상학은 유사과학일까 아니면 나쁜 과학일까?
오피니언 글깎는의사 (2019-12-02 11:20)

1825년 에드워드 헐(Edward Hull)이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만화

그림. 1825년 에드워드 헐(Edward Hull)이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만화로, 왼쪽의 등장인물이 머리를 만져 젊은 여성의 정신 능력을 확인하려 하고 있다. 뒤에는 다양한 형태의 안면 석고상과 두개골이 보인다. 과연 골상학을 과학이라고 불러도 될까?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신경과학이 발전하면서 여러 곳에서 자유의지라는 오래된, 인간에게 무척 중요하게 여겨져 온 개념에 의문이 제기되는 일이 왕왕 있습니다. 자유의지란 말 그대로 인간이 자유로운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고, 이를 부정하는 사례로 1980년대에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 벤저민 리벳이 한 실험이 회자하곤 하지요. 피험자에게 원할 때 손목을 움직여보라고 요청한 뒤, 뇌 활동을 관찰했더니 손이 움직이기 최대 1초 전에 뇌에서 신호가 감지되었다고 하는 실험입니다. 그 결과를 해석한다면 인간은 그저 뇌와 그 속 신경 신호에 묶인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의식은 환상일 뿐일까요.

이런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생각은 아마 자유의지가 없어지면 법과 윤리가 위험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걸 거예요. 법은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한 일에 죄를 묻지요. 제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한 행동이나 모르고 한 행동에 대해 피해보상을 해야 할지언정 제가 죄를 범한 일은 아닐 거예요. 어떤 범죄자가 살해 위협을 하면서 어떤 물건을 훔치라고 강요했고 저에게 반항할 방법이 없는 경우, 이 지시를 따랐다고 하여 죄를 묻는 것은 과한 일일 수 있지요. 그래서 철학자들은 어떤 존재가 인간을 조종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한 인간이 조종에 따라 행위를 한 경우를 놓고 자유의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외계인이 현재 우리 기술론 알 수 없는 기계로 저를 조종하여 앞에 있는 병을 깨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그 안에 당장 환자에게 주사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하는 약이 들어있는 경우 저는 잘못일까요? 등등.

도덕심리학과 같이 신경과학의 결과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여 윤리학을 전개하는 학문에선 신경과학적 발견이 모든 자유의지 관련 문제를 망가뜨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fMRI 촬영이 뇌의 인과를 밝히는 방법론이 아니며 신경과학이 결정론을 구축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문제가 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예컨대, 번스와 스웨들로가 2003년에 발표한 논문에 등장하는 페데르 씨가 그런 경우인데요.[1] 페데르 씨는 40세 남성으로 의붓딸을 부적절하게 만졌다는 이유로 고발당합니다. 그는 성범죄 치료 과정을 밟기로 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부적절한 행동을 하죠. 그 과정에서 페데르 씨는 두통을 호소하고, MRI 촬영에서 뇌종양이 있음이 밝혀집니다. 종양을 제거하자 그의 부적절한 행동도 멈추게 되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다시금 MRI에서 종양이 재발했음이 확인됩니다. 이 경우, 페데르 씨는 자기 행동에 책임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겠지만 어느 정도 선을 그을 필요는 있겠지요. 무조건 다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가 될 테니까요. 관련 논의는 당분간 이어질 거예요. 신경과학이 던지는 이슈를 전통 윤리학이 받아들여 의지와 책임의 문제에 상당한 변형을 가하게 되겠죠. 자유의지에 관해 조금 길게 생각해본 이유는, 100년 전 이런 생각에 빠졌던 한 해부학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상학(Phrenology)으로 오명을 남긴 프란츠 조지프 갈(Franz Joseph Gall, 1758~1828)이죠. 동양 관상학이랑 어찌 보면 비슷한 부분이 있는 그의 생각은 당대와 그 이후에 여러 영향을 미쳤어요. 골상학 때문에 진로를 결정한 여러 유명인이 있기도 했고, 나치와 노예제 옹호자는 자신의 인종차별적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골상학을 활용하려 했죠. 그 명맥은 범죄학자 체사레 롬브로조(Cesare Lombroso, 1835~1909)로 이어져 생래적 범죄인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범죄자와 일반인 간에는 얼굴과 뇌 형태의 차이가 있다는 생각은 상당히 오래 남아 동성애자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지요. 자, 오늘은 이 중심에 있는 조지프 갈과 골상학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고, 그 생각이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려 해요. 생각보다, 골상학은 우리 편견에 그대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골상학을 그런 학문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요.

 

조지프 갈, 인간 정신을 계측하려 하다

흔히 조지프 갈은 머리를 더듬어 그 소유자의 능력을 알 수 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사기꾼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이것은 최근에 이뤄진 평가만은 아니에요. 이미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도 그와 동료들이 내놓은 주장은 이미 엉터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2]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사람이 골상학자로 활동하기도 했죠. 그가 했던 주장이 어떤 것이길래 그랬을까요?

조지프 갈은 독일 소도시 티펜브론에서 태어났어요. 성장하면서 스트라스부르와 빈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학위를 마친 후 바로 개업을 선택합니다. 그는 진료 과정에서 경험적 접근법이 지닌 중요성을 깨닫고,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기 시작합니다. 18세기 말, 유럽 의학은 지오반니 모르가니(Giovanni Morgagni, 1682~1771)의 병리 해부학과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의 외과학 실험이 주목받으면서 이제 과학적 의학으로 넘어가는 도중에 있었어요. 조지프 갈도 그런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이죠. 그가 주목했던 것은 인간 정신의 능력들, 즉 인식, 인지, 기억 등이었습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명쾌했습니다. 인간의 두뇌 구조에는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에 따라 정신 능력이 다르게 발현한다. 이 주장에서 별다른 문제를 찾긴 어려워요. 오히려, 아직 뇌 구조와 그 동작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에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 놀랍습니다. 한 세기 뒤에 활동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조지프 갈과 같이 인간 정신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 했지만, 여전히 당대 신경과학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 없음을 깨닫고 재빨리 환자의 말과 꿈에 집중하기 시작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갈의 주장에는 놀라운 구석이 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지프 갈은 두뇌 구조 차이를 이미 측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두뇌의 형태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는 두개골 표본을 수집하고 두뇌계측학적 접근을 활용합니다. 두개골에서 뇌를 임의로 구획하고 그 크기를 측정한 것이죠. 지금에서야 그러는 것이 의미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말 조지프 갈의 방식은 혁명적이었어요. 정신 능력을 밖에서 평가할 수 있다니! 아이작 뉴턴(Issac Newton, 1642~1726)이 물리학의 법칙을 발견한 이래 프랑스 수학자, 공학자 피에르-시몬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1749~1827)가 과학적 결정론에 관한 정식화(1814년, 라플라스는 모든 입자의 상태를 알 수 있다면 우주의 다음 순간을 계산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이를 이후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부릅니다)를 내놓는 시대임을 떠올린다면, 조지프 갈이 시대와 어떻게 조응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전 시대 철학이 내놓은 정신에 관한 사변을 물리치고 실증적으로 정신 능력에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정신 역량을 27개 분야로 나누어 개개인이 뛰어난 부분과 모자란 부분이 있음을 설명하려 했지요.[3] 각 역량은 두개골의 27개 융기(튀어나온 부분)에 할당되었어요. 이제 인간 능력을 측정할 방법이 생긴 것이지요. 두개골의 융기를 측정하면 되니까요. 천재에 관해 설명하고자 했던 수학자, 우생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이 천재는 모든 부분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것에 비교하면 훨씬 그럴듯한 주장을 펴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더구나 그가 수행했던 뇌 해부 작업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뇌를 적당히 잘라 관찰하던 시절, 조지프 골은 전체 해부 구조물을 확인하고 사이에 이어진 경로를 추적하고자 했으니까요.[2] 그의 두뇌 생리학(‘Schädellehre’)은 일곱 가지 원칙을 따릅니다.

첫째, 소질과 경향성(즉, 역량)은 인간과 동물에서 선천적이다.
둘째, 이런 소질과 경향성은 뇌에 그 자리와 기초를 가지고 있다.
셋째, 소질과 경향성은 그저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에서 분리되어 있으며 서로 독립되어 있다.
넷째, 따라서 소질과 경향성은 뇌의 다른, 독립적인 부분에 위치한다.
다섯째, 다양한 기관의 다양한 구획과 발전은 뇌의 형태 차이에서 기원한다.
여섯째, 특정 기관의 구성과 발전은 뇌의 특정 부분이나 구획의 특정 형태에서 기원한다.
일곱째, 태아에서 성인까지 두개골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골격의 외형은 뇌의 형태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두개골의 외부와 내부는 일치하고, 그 형태에 따라 특정한 소질과 경향성이 따라 나온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4]

우리가 골상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오래된 믿음 중 하나였어요. 동양에서 관상학이 발달할 때, 서양이라고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지요. 고대 그리스에선 외모와 성격이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받아들여 외모를 통해 성품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는 『관상학』 (Phusiognömonika)에서 신체에 정신의 속성이 드러난다고 적었지요.[5] 훈련이 성격에 영향을 미치고, 몸에도 변화를 가져오니 이런 생각이 틀렸다고 보기만은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사라졌던 전통을 되살린 것이 조지프 갈 뿐만이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예컨대, 네덜란드 해부학자 피터르 캄퍼르(Petrus Camper, 1722~1789)는 안면각(facial angle)을 측정해 인종을 구분하려 했어요. 하지만 19세기 초, 이런 생각에 중심축을 마련하고 유럽 전역에 퍼뜨린 것은 조지프 갈과 그가 떠난 강연 여행, 그리고 동료들이었어요.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흥미로운 강연을 펼쳤고,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청중의 눈에 엄정한 과학으로 비췄던 그의 방법론은 그를 떠돌이 지식상이라고 비난한 학계와 무관하게 널리 퍼지게 된 것이죠.

 

1883년에 그려진 골상학 도해

그림. 1883년에 그려진 골상학 도해. 성격이 두뇌 각 부분에서 나타난다는 골상학의 생각을 만화로 잘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나 조지프 갈이 정립했던 정신 역량의 위치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골상학은 정신의 객관화를 추구했지만, 내부적 정합성도 확보하지 못했던 탓에 과학 이론으로 받아들여질 순 없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더구나 프랑스 해부학자 피에르 폴 브로카(Pierre Paul Broca, 1824~1880)가 대뇌의 왼쪽에 언어 조정 영역(이후 브로카 영역이라고 불리며, 전두엽의 후배측영역에 위치하여 이 부위에 손상이 발생하면 제대로 언어 표현을 할 수 없게 됩니다)이 있음을 발견합니다.[6] 그는 1865년, 간질로 뇌가 손상된 이후 계속 탄(Tan)이라는 말만 반복해 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환자를 보고했지요. 환자가 사망한 후 브로카는 부검에서 뇌 좌반구에 손상이 있음을 발견했어요. 언어 활동이 뇌의 특정 부분에 의해 조절된다는 증거를 제시했던 셈입니다. 이렇게, 조지프 갈의 원칙은 이후 과학의 발견과 함께 뇌의 국소화 이론(cerebral localization theory)으로 변형, 정립되어 나갔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

물론 그가 두개골의 여러 융기에 배정했던 언어 감각, 색깔 인식, 음정 인식, 시적 능력, 도덕감각 등(27개의 두뇌 역량 중 19개는 동물과 공유하는 반면, 8개는 인간에게만 독특한 것으로 구분하였다)은 현재의 신경과학적 구분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지요.[7] 당시에도 이미 장 피에르 플로렌스(Marie Jean Pierre Flourens, 1794~1867)를 필두로 한 실험생리학파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았지요. 플로렌스는 국소화 이론을 엄밀하게 밀고 나가길 원했고, 따라서 동물의 뇌 일부를 제거한 후 행동 변화를 관찰합니다. 실험에서 그는 대뇌 반구를 제거하면 인지, 운동 자극, 판단력 등이, 소뇌를 제거하면 평형감과 운동 협응(개별 운동의 통합) 능력이 상실되는 것을 발견하지요. 플로렌스의 주장은 당시 학계를 이끌던 조지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조지프 갈을 압도합니다. 그는 플로렌스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고, 쓸쓸하게 생을 마치게 되지요. 뛰어난 직관과 관찰은 올바른 연결점을 찾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한 학설로 끝나게 됩니다.

 

골상학의 역사

그렇다면 골상학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조지프 갈의 제자이자 이후 골상학을 밀고 나간 요한 스푸르츠하임(Johann Spurzheim, 1776~1832)의 영향이 컸어요. 그는 조지프 갈의 주장을 수정하여 미국에 소개합니다.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골상학은 오손 파울러(Orson Fowler, 1809~1887)와 로렌조 파울러(Lorenzo Fowler, 1811~1896) 형제의 손으로 개작되어 다시 전 세계로 수출되기에 이르지요. 하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골상학은 엄밀한 학문이라기보다는 대중적 영향력을 누리는 유사과학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골상학자는 점술가처럼 시장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돈을 받는 장사치로 자리 잡지요. 이것이 다시 학계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과학적 인종차별주의와 범죄학이 부각하면서부터였어요.

우선 과학적 인종차별주의부터 살펴볼까요? 당시 다른 인종과 문화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했지요. 무엇보다, 인종 간 위계를 설정할 수 있는 학문에 관한 요청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길 원하니까요. 그것을 과학이 증명해주면 금상첨화인 것이죠. 진화론과 우생학이 그렇게 활용되었고, 골상학 또한 신체 생리학의 이름으로 이 대열에 합류합니다. 예컨대 사무엘 모턴(Samuel George Morton, 1799~1851)은 두개골 용적에 따라 인종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앞서 말씀드린 브로카는 캄퍼르의 안면각 이론과 두개골 비율 등을 활용 인종 간 우열 관계를 증명하려 했어요.[8] 프랑스 의사 프랑수아 브루세(François-Joseph-Victor Broussais, 1772~1838)는 골상학을 근거로 백인의 아름다움을 주장했고, 아들 카슈미르 브루세(Casimir-Anne-Marie Broussais, 1803~1847)는 알제리에서 사로잡힌 베두인족 족장의 머리를 측정하곤 지성이 없고 살인 본능이 가득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지요.[9]

 

얼굴로 대상의 특성을 판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그림. 얼굴로 대상의 특성을 판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2017년 왕과 코신스키는 얼굴 사진을 딥 러닝 기법으로 분석하여 사진에 찍힌 사람의 성적 지향을 남성의 경우 81% 정확도로 구분할 수 있음을 발표하여 논란을 불러왔다. 그림은 논문에 실린 것으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얼굴형 차이를 평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구분할 수 있는 것과 구분해도 되는 것이 언제나 같진 않다는 것이다. 출처: PsyArXiv[10]

 

범죄학도 비슷한 길을 걸어요. 골상학은 범죄자의 기질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제시됩니다. 살인자, 광인, 도둑 등을 골상학을 통해 판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시되지요.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범죄자가 이미 정해져 있기에 엄격한 처벌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 대신 범죄자를 교화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죠.[11] 골상학자가 보기에 범죄자는 죄를 받아들일 만큼 도덕감각이 발달하지 못한 존재예요. 이들에게 아무리 처벌을 해봐야 소용없고, 오히려 악화하는 결과만 나타난다는 것이죠. 오히려, 이들은 “도덕적 환자”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골상학자들은 주장했어요.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들을 다시 갱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물론, 폭력의 수위가 낮아졌다고 더 인간적이라고 볼 순 없음을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웅변한 적이 있지요. 더불어 골상학자들의 주장은 롬브로조의 범죄학으로 이어집니다. ‘범죄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그는 범죄자는 인간보다 원시인이나 유인원에 가까운 존재로 얼굴의 형태나 팔 길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지요. 롬브로조가 관심을 가진 대상 중에는 성범죄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런 생각은 20세기 중엽 동성애자를 얼굴 형태나 두뇌 특징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

우생학과 골상학은 모두 나치, 일본제국이 인종차별과 멸절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이후 망령된 이름으로 일컬어지곤 했어요. 하지만 세심하게 구분할 필요는 있지요. 두 이론이 인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선 같지만, 우생학과 골상학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르니까요. 우생학 자체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지요. 우생학은 당시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민족의 신체라는 상상에 적용되었어요. 민족의 신체를 구성하는 개인 각각이 더 뛰어난 사람이 될 때 민족의 신체 또한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소위 ‘건전한’ 청년끼리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적극적 우생학으로 이어졌습니다. 민족의 신체를 오염시키는 외부의 병소, 즉 열등한 외부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은 인종 멸절을 향한 부정적 우생학으로 실현되었지요. 후자는 앞으로도 다시 살려내선 안 될 끔찍한 악몽이지만, 전자는 얼마 전까지 학습을 통한 계층 구분으로, 최근 유전자 조작과 디자이너 베이비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적극적 우생학에 관해 앞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이유지요.

골상학은 이런 생각과 또 달라요. 골상학 자체는 인간 정신 능력 간 나타나는 차이를 계량화하려는 시도 중 하나였어요.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IQ나, 최근 감성이 중요하다면서 등장한 EQ와 의도에선 큰 차이가 없는 방법론이라는 것이죠. 물론, 골상학은 과학적으로 자신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이론이라는 점은 주목받아야 하겠지만요. 이 객관적 차이 측정이라는 도구에 우리가 가진 편견이 결합하였을 때 비로소 골상학은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되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우리는 흔히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다른 것은 차이, 틀린 것은 잘못된 것을 의미하므로 문자적으로 차이가 있는 표현인데 혼동한다는 말이지만, 이 표현은 그 안에 인간 속 깊이 내재해 있는 편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도 다른 것을 구분해서 거부하지요. 심리학은 인간이 다른 것을 쉽게 발견하는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고 여기에 대상의 현저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현저성은 대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바로 이어지지요. 즉, 다른 것과 틀린 것이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혼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겐 다른 것이 틀린 것이라는 편견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외국어에선 다른 것(different)과 틀린 것(wrong)이 어휘가 전혀 다르지만, 편견은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화를, 그 이후에도 수많은 비극과 악행을 겪고 나서야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인종 멸절이 인류에게 남긴 교훈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생각을 외부화하길 좋아합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고, 악을 행한 남에게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죠. 이런 다름과 틀림의 편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1994년 미국에서 IQ를 인종차별의 증거로 활용한 책이 나온 걸 생각하면, 이런 편견은 여전히 우리 옆을 배회하고 있어요.[12] 골상학이 악의 도구로 활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편견, 즉 다름을 객관적으로 증명한 다음, 이를 틀림의 증거로 활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지요.

다시 글을 열었던 자유의지에 관한 생각으로 돌아가 봅니다. 만약 이런 편견이 우리의 본성에 심겨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본성에 반하여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거예요. 심지어 실험을 통해 자유의지에 관해 이의를 제기한 리벳도 이렇게 결론 내렸어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개시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의지는 문제가 있지만,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을 자유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우리 안에 있는 편견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부할 의무가 있는 셈입니다. 다시 과거의 악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참고문헌

1. Burns JM, Swerdlow RH. Right orbitofrontal tumor with pedophilia symptom and constructional apraxia sign. Arch Neurol 2003;60(3):437-440.
2. Marshall JC, Gurd JM. Franz Joseph Gall: Genius or Charlatan? J Neurolinguistics 1994;8(4):289-293.
3. Eling P, Finger S. Franz Joseph Gall on the Cerebellum as the Organ for the Reproductive Drive. Front Neuroanat 2019;13:40.
4. van Wyhe J. The Authority of Human Nature: The “Schädellehre” of Franz Joseph Gall. Brit J Hist Sci 2002;35(1):17-42.
5. 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옮김. 관상학. 길; 2014.
6. Lazar RM, Mohr JP. Revisiting the Contributions of Paul Broca to the Study of Aphasia. Neuropsychol Rev 2011;21:236-239.
7. Simpson D. Phronology and the Neurosciences: Contributions of F. J. Gall and J. G. Spurzheim. ANZ J Surg 2005;75:475-482.
8. Ashok SS. The History of Race in Anthropology: Paul Broca and the Question of Human Hybridity [dissertation on the Internet]. Philadelphia (PA): University of Pennsylvania; 2017. 
9. Staum MS. Labeling People: French Scholars on Society, Race, and Empire, 1815-1848.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2003.
10. Wang Y, Kosinski M. Deep neural networks are more accurate than humans at detecting sexual orientation from facial images. PsyArXiv 2017. doi: 10.31234/osf.io/hv28a.
11. Lyons SL. Species, Serpents, Spirits, and Skulls: Science at the Margins in the Victorian Ag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9.
12. Herrstein RJ, Murray C. The Bell Curve: Intelligence and Class Structure in American Life. Free Press;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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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연구센터)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아치과 전문의가 된 다음, 새로 공부를 시작해서 국내에서 의료인문학 박사를, 미국에서 의료윤리 석사를 취득했다. 철학에 바탕을 두고 의학에 관한 서사적 접근과 의료 정의론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겨례>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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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회원작성글 dhleemd  (2019-12-03 03:13)
'문제적 인물'이 어법에 맞는가? 아마도 중국식 표현인것 같으나 '문제의 인물'이 어법에 맞다. 번역은 영문법만큼 국문법과 국어의 사용도 중요하다.
회원작성글 글깎는의사  (2019-12-03 10:19)
관심 감사합니다. 칼럼 쓴 사람입니다. 궁금하신 내용에 관해 설명드리면, "~적"과 "~의" 모두 맞춤법이나 어법에 맞으나 "~의"는 일본식 표현이라 하여 사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습니다. 쉬운 예로 TV 프로그램 “문제적남자”를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연재하고 있는 내용은 번역이 아닌 순수 창작임을 밝힙니다. 다시 한번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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