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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에게 보내는 철학 서신] 1-3 논리경험주의의 대두와 몰락 (2)
오피니언 갑오징어 (2019-11-28 09:36)

일러두기 

* 지난 글과 같은 절의 후미 부분임을 밝힌다. 이 에세이는 네 개 부분으로 나누어 업로드할 예정이다. 

 

일종의 겸손: 반 형이상학
 

면도날

그림 1 면도날. 이발소에서 지금도 활용되는 형태다. 오컴(14세기) 이래, 형이상학적 주장을 그 강도나 범위 면에서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의 상징으로 쓰인다. 

 

이번 절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번 연재 전체의 목적에 비춰보았을 때는 약간의 번외편 논의를 진행해 볼까 한다. 물론 이를 완전히 번외편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형이상학과 관련된 논의는 이번 서신 막바지에서 다룰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연재의 제2, 3부에서는 완전히 중심이 되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검증가능성 논제를 긍정하는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철학에게 한 가지 측면에서 겸손할 것을 요구한다. 형이상학적 작업을 통해 이 세계에 대한 어떤 실질적인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요구의 핵심이다. 물론 철학사를 들여다 보면, 이런 비판은 적어도 칸트 이래로 매우 익숙한 것이다. 예를 들어, 칸트는 개인의 영혼이 불멸한다는 추론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자기동일성을 미래로 무한정 확대 적용하다보니 나타난 오류 추리라고 지적한다1).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칸트 식의 형이상학 비판 방법은 인간의 심리학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며, 형이상학의 여러 논란은 다만 언어의 구조로 인해 생긴 논리적 오류라고 지적한다는 점에서 칸트와 구별된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철학자들은 세계 속에서 확인 가능한 개체를 어떤 속성, 그리고 그 속성이 소속되어 있으며 어떠한 속성과도 무관한 실체(좀 더 정확히 말해, ‘기체基體’)로 나누어 보았는데, 이런 식의 구분은 세계 그 자체로부터의 증거에 기반할 수는 없다. 아무런 속성도 없는 기체는 관찰 가능한 대상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구분은 주어와 술어로 이뤄진 인간의 자연언어 문장 구조에서 유래했을 뿐, 세계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없다는 것이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주장이다. 

흥미롭게도 개체의 구조와 같은 형이상학적 논의들은 20세기 후반 들어 영미권에서 다시 크게 부흥했다. 지금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긴 하지만, 헤겔 철학에 대한 공격 역시 이제는 부분적으로만 설득력을 가진 듯하다. 물론 20세기 후반 이후의 형이상학들은 과학의 현장에서 제기되는 여러 지적 도전들과는 그 거리가 상당히 먼 경우가 많긴 하다. 여하튼 이런 이야기는 정말로 번외편 중에서도 번외편이 될 것인 만큼, 각설하고, 과학과 형이상학의 관계에 대한 논리경험주의자들의 견해를 보여주는 한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더 살펴보기로 한다. 카르납은 자신의 스승이 생기론의 일종으로 제시한 논의를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드리쉬는 유기체들의 엔텔레키는 유기체들의 진화단계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고 주장한다 … 그 진화의 정도가 … 높아짐에 따라 엔텔레키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 엔텔레키는 신체의 각 세포들이 하는 것을 모두 좌우[한다]. … “그것[엔텔레키]는 유기체 전체와 관련해서 작용하는 것이지 유기체의 부분과 관련해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지요. .. [신체 내에서] 아무런 위치도 차지하고 있지 않지요.” 2)

 

드리쉬 주장의 핵심은, 엔텔레키는 생물의 각 유형마다 다르며, 이들의 신체 전체를 통괄하는 원리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카르납 등은 이렇게 묻는다. 엔텔레키가 정말로 모든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원리라면, 드리쉬나 그 지지자들은 엔텔레키가 어떤 조건에서 더 강하게 작용하고 다른 조건 하에서는 미약하게 작용하여 생명 현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제시할 수 있어야만 했다. 다시 말해, 엔텔레키의 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결과에 대해 예측을 해냈어야만 했다. 그러나 카르납에 따르면 드리쉬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엔텔레키는,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 무언가를 보태주는 개념처럼 보이지 않는다. 즉, 엔텔레키 없이도 생명 현상에 대해 동등한 설명이 가능해 보인다. 

이런 논박은,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우려, 또는 철학이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 겸손에 대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들은 과학이 다루는 여러 현상과 관련해 ‘엔텔레키’와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이 창궐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경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측면에서 존재 구조의 차이를 불러오는 수많은 개념들이 과학이 다루는 현상에 대해 제안될 수 있다고 보았다(실제로 이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님을 지난 연재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카르납 등이 이런 종류의 개념을 철학자들이(그리고 탐구 끝에 개념의 차원까지 도달한 현장 과학자들이) 제안할 때, 말하자면 겸손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들의 형이상학적 제안을 과학 탐구에서 진지하게 취급하려면, 결국 경험과의 관련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이 지적의 골자다. 물론 정말로 이런 지적이 얼마나 유효한 것인지는 2부와 3부에서 따져보아야 겠지만, 일단은 이 지적 자체는 분명 현장 과학자들의 직관과 부합하는 듯하다. 


일종의 과격: 언어적 전회

질문을 바꾸어 보자. 그렇다면 이제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방금 지적했듯, 철학은 그 전통적인 탐구 영역이었던 형이상학을 수행하기에 앞서 적어도 겸손해져야 하거나, 형이상학이란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다는 데 주목하고 그 지적 가치를 의심해야만 한다. 철학이 할 일은 기존의 전통에 대해 일종의 파괴적 태도를 취하는 일이다. 

물론 이런 파괴적 태도를 정당화하려면, 어떤 건설적인 지침이 제시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 지침을 완수할 수 있을 가능성 또한 제시되어야 한다. 이런 지침, 그리고 가능성의 핵심에는 바로 새로운 논리학이, 그리고 이를 통해 자연 언어의 문장이 가진 논리적 구조를 기존보다 더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20세기 초반 프레게나 러셀과 같은 인물들이 선보인 논리학의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당시까지 22세기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논리학에게 새로운 도구를 추가했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을 혼동시켜 온 난제를 극복하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러셀은 자신의 논리학으로 ‘현재의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와 같은 몇몇 이상한(=주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 선뜻 참 거짓을 말하기 어려운) 문장의 참 거짓을 명확히 밝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수학 체계 전체에 대해서도 이들을 논리학으로 환원하기 위한 시도를 보여준다(『수학 원리』). 논리경험주의자들은 논리학의 이런 혁신 속에서 파괴와 건설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지침을 찾았다고 믿었다. 과거의 철학이든, 과학의 논리적 구조든 이들이 제시한 불분명한 언어 구조를 모두 새로운 논리학과 같은 명료한 도구를 활용하여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분석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과업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이런 기본 입장 속에서, 카르납은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세계의 논리적 구조(“Aufbau”, 1928)』와 같은 영웅적 시도를 벌인다. 철학은, 언어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논리를 탐구하는 분야라는 생각이 팽배했다는 점에서, 많은 철학자들은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시도가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영웅적 시도가 성공리에 완수되었다면, 우리가 배우는 과학과 철학의 관계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모든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수학만큼이나 논리학을 배우면서 자신들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을 테니 그렇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자연언어 문장들이 가진 논리적 구조는 당시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했던데다3), 과학적 탐구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실제로 논리를 분석할 수 있을만큼 언어로 명시화된 것 이외에도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자연언어의 논리적 구조를 밝히는 것은 언어학의 주요 연구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지만4), 이를 통해 철학과 과학 전반의 구조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이제는 내가 아는 한 없는 것 같다.

 

___________________

검증 원리는 결국 두 수신자에게 서로 구별되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도구처럼 보인다. 과학을 향해 발언하려는 철학자들에게, 이들은 일종의 겸손을 요구한다. 즉 형이상학의 가치를 의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반면 다양한 전통에 서 있는 기존 철학자 집단 일반에게, 이들은 일종의 과격한 공격을 가한다. 즉, 이제 철학이 할 일은 언어 분석에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두 요구는, 결국 이 연재가 묻고자 하는 주요 질문, 즉 과학의 거대한 팽창 속에서 철학에게 대체 무슨 역할이 남아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답안이다.
 

 

주석

1. 지나친 압축이 아닐까 우려되는 분들은 『순수이성비판』의 오류추리론(시중의 여러 번역본도 원전의 쪽수를 표기해 놓고 있다. B406-B432에 해당한다)을 보면 좋다. 

2. R. 카르납, 윤용택 옮김, 『과학철학입문』, 서광사, 1993: 31~33쪽.

3. 프레게 · 러셀 논리학의 대표적인 혁신에서 쓰인 양화사(quantifier)를 생각해 보더라도 그렇다. 이들은 문장에서 언급된 개체를 나타내는 변항을 속박하기 위해 두 종류의 양화사, 즉 “어떤”과 “모든(추가하자면 그 부정)”만을 활용했다. 하지만 실제 자연 언어의 양화사는 훨씬 더 다양하다. 이들 두 양화사만을 가지고 ‘소수’, ‘둘’과 같은 이들 양화 표현을 나타낼 경우 극히 복잡한 표현을 활용해야만 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집합 이론을 응용한 ‘일반 양화사’를 활용하자는 논의가 진행중이다. R. Cann, Formal Semant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reprinted in 2003): pp. 187-195.

4. 앞서 인용한 ‘형식 의미론’이 이런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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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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