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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 11회 - 자본주의 시대의 연구비사용에 관한 연구윤리
Bio통신원(박수경)
자본주의 시대의 돈, 대형 국책 R&D 연구비
그야말로 ‘돈’의 시대입니다. 연구 분야도 ‘돈’벌기 경쟁이 치열합니다. 5년 이상의 장기간 연구와 총 정부출연금이 100억이 넘어가는 대형 국책 R&D 연구로 국한시켜 살펴볼 때, 연구비 부정 관련 뉴스들을 보면 혼‘돈’의 연속일 경우가 많습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교수들의 연구비 부정사용의 사례는 적은 액수부터 큰 액수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열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주체가 학계뿐 아니라 정부산하의 공공연구기관과 상위기관도 적발되는 상황이니 누가 누구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것인지, 열심히 세금을 낸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정부부처 연구 사업에 참여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연구비가 연구주제에 부합하도록, 그리고 공공의 이익에 환원되는 방향으로 사용되도록, 비목별로 행정처리가 원활하도록 관리 감독하는 역할은 일차적으로 연구책임자에 있고 주관 기관에 있습니다. 또한 전문 관리기관(예를 들어 보건복지부의 사업인 경우 보건산업진흥원과 같은)에도 책임이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연구비 부정사용의 사례들이 적발되거나 신고되는 것을 보면 누군가가 관리 감독이 소홀한 것만이 그 이유가 아니라, 실제 연구비를 실행하고 집행하고 사용하는 당사자 개인이 어떻게든 정해지지 않은 방법대로 돈을 사용해서 사적 유용을 포함하여 그렇지 않더라도 연구목적과 부합하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충만한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윤리원칙과 규제도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개인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연구비는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실제 연구 설계와 수행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충당하는 것을 넘어서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교가 정부의 대형 연구 과제를 수주했다는 것은 대형 연구비를 운용할 수 있다는 하나의 ‘능력’의 표상일 뿐 아니라, 기관의 명예와 훈장과 같은 일이 되어 버렸기에 연구를 위해 연구비가 필요하다기 보다는 연구비 수주를 위해 없던 연구를 만들어내는 일도 종종 목격되곤 합니다.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국회의원, 공무원, 관리기관과 일정 관계를 유지하면서 과제 예산 선정을 위해 기획하고 발로 뛰는 여러 기관들과 교수들의 노고가 안쓰럽기도 합니다.
연구비 사용에서 연구자가 지니는 윤리적 사고의 틀
어떤 요인들이 연구의 성과와 결과를 위해 집행되어야 할 연구비를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방법들로 사용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몇 가지 사례를 짚어보면 그 기저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의 동인을 파악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스를 통해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부정사례는 목적과 주제에 부합하지 않는 곳에 돈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연구자가 연구비의 소유권과 사용권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숙고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책과제 연구비의 소유권은 국민 세금이 출처이므로 공공에 있고, 사용권에 대한 권한만을 부여받았음을 대체적인 교수님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돈이 들어오면 사용권뿐 아니라 소유권도 연구책임자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구목적과 주제에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돈을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쉽게 무너집니다. 연구 참여의 3책 5공의 원칙에 따라, 만약 3개의 연구책임자를 겸하여 하는 경우 A, B, C 연구과제의 주제와 성격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A과제의 연구임에도 B와 C로부터 돈을 끌어와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수적으로 문서의 위조와 허위영수증 발급을 위한 카드결제 등의 절차가 뒤따릅니다. 그렇지만 연구책임자의 입장에서는 모두 본인이 수주한 연구이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유도리만 잘 발휘한다면 돈을 혼용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스스로의 합리적인 윤리 원칙이 서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 학생들이 부정사례로 신고하거나 고민의 글로 많이 올라오는 것이 인센티브나 인건비를 학생에게 지급했다가 다시 돌려받아 공공 통장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연구책임자가 구성원 공동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라면 절차적으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고에서 출발합니다. 연구수당인 인센티브의 경우는 소득급여가 높은 교수 본인이 떼는 세금보다 학생들이 떼는 세금이 적기 때문에 학생들을 통해 다시 돌려받는 경우가 있고, 인건비를 학생에게 지급했다가 다시 공동의 통장으로 돌리는 것은 공동 회의비나 기타재료비를 연구비목에서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 과정은 교수 학생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므로 위계에 의해 거절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기도 하고, 실제로 학생도 목적상 합당하다고 판단하여 동의하여 진행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부정여부를 가릴 때 여러모로 고려할 사항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절차적으로 이 과정을 처리하는 연구비 담당 학생은 학교에서 여러 부정한 절차를 배우게 되고 처리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동 통장의 명의가 연구책임자가 아닌 학생이나 제 3의 명의를 사용하는 것을 살펴볼 때 연구책임자의 책임회피의 윤리성도 생각해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실제로 연구에 마땅히 사용하여야할 돈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상위 기관에서 연구비목이나 회계상 처리가 규정적으로 불합리하게 설정되어 있어 연구 진행을 위해서는 부정하게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매우 소수의 경우가 있겠습니다. 이는 관리기관에 건의하여 규정의 수정을 요청하는 방향을 진행되기도 하나 매우 절차가 오래 걸리고 복잡하여 연구자 입장에서는 당장 연구수행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방식을 선택하여 연구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연구책임자 교육은 포기하더라도
대체로 연구책임자는 무척 바쁩니다. 대형 연구과제의 담당자는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연구책임자에게 연구비 교육을 한다는 것은 해당 과제의 연구비 집행 결정에 권한은 없으나 연구비행정을 처리해야하는 실무진들이 대리하여 듣곤 합니다. 사이버 교육의 경우는 아이디만 있으면 되니 편안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관련 교육을 통해 학생이나 실무자들의 연구윤리의식 함양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연구책임자에게 교육하여 얻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일부 교수들은 이에 관해 관습적인 사고를 통해 과거 답습되어 온 관례로 현재로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부정하다고 판단되는 방식을 추구하고 이를 본인의 합리적인 행동원칙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가 쉽지 않습니다. 또 부정사례로 적발된다고 하더라도 같은 동료집단에서 넘어가주거나, 처벌이 강하지 않아서 계속해서 연구 사회에 머물며 권력을 사용할 수 있거나, 연구진행에 별 무리가 없어 으레 연구비 부정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연구비를 사용하기로 의지가 확고한 연구책임자를 교육하여 연구비부정을 막고 세금을 목적에 부합하도록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보다는 도리어 이러한 연구책임자 밑에서 배우는 후속 학문세대들이 부정한 절차와 의식에 젖지 않도록 하는 후속세대의 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현재의 상황과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연구책임자가 될 사람들이 의미 있는 연구 성과와 이를 위한 연구비 사용에 깨어있는 학자들 밑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연구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성실 청렴 교수 연구자를 알 수 있도록 해서 좋은 성과와 연구윤리의식을 가진 연구팀에 더 많은 후속세대가 배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연구 사회 신뢰망 구축의 투자로서 연구윤리 확보의 중요성
청년들에게 공정성이 화두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 신뢰망이 그만큼 약하다는 증거이겠습니다. 연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수-제자관계, 저자표기, 연구 성과, 연구비 등 여러 연구윤리의 원칙을 만들고 지키려고 하는 근저에는 타자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의 신뢰 구축이라는 큰 목적이 있습니다. 연구를 함에 있어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연구 성과 도출과 결과물에 대한 합의의 과정과 절차에 무게가 실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연구비를 포함한 연구윤리를 지키고 확보하는 것은 부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신뢰의 감소와 기회 비용을 현저하게 미리 줄여줄 수 있는 방책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감시하고 관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발적이고 의지적으로 부정한 절차보다 합당한 절차를 지키려고 개개인 연구자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연구윤리를 지키는데 과도기적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연구자들이 연구윤리를 지키고 확보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번거로운 족쇄처럼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으로는 연구 사회 신뢰망 구축을 위한 선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투자하는 값이 별로 비싸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 표기에 부정을 저지르거나 연구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연구비 부정으로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은 궁극적으로 연구자 자신에게 화살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는 세계적으로까지 유명해졌던 한국의 여러 연구부정사례를 통해 얼마나 연구 사회의 명예와 이미지가 추락했었는지, 그 회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면 자명합니다.
예부터 사회는 과거와 현실과 미래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해 학자들을 곁에 두고 혜안을 얻었습니다. 자본은 가치가 있는 곳에 집중되며 우리는 그것을 화폐로 환산하여 값을 매깁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어디에 투자해야 더 의미있는 가치를 확보하는 것일까요. 학자와 연구자가 눈 앞의 순간의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투자 안목을 놓친다면 학자와 연구자에 기대하는 사회적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일 것입니다. 학문 후속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연구윤리에 대한 고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참고자료
“유명 대학병원 교수들 연구부정과 징계 시효”(2019.11.09.), 고재우기자, 데일리메디
“내년도 기초과학연구 1조 5200억원 투입…연구부정행위자는 국가연구비 지원 차단”(2019.11.07.), 유용하기자, 서울신문
“'눈먼 돈' R&D예산, 관리도 소홀.. 부정집행 적발 환수율 32% 불과”(2019.10.27.), 권승현기자, 파이낸셜뉴스
“보건의료연구원, 두 달에 한번 해외출장 가고 연구비로 포켓몬 인형 사고…”(2019.10.08.), 김양중기자, 한겨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 (2019.9.1.시행), 법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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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는 생명과학(Biology)을 전공하고 생명윤리학(Bioethics) 박사수료생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의 생명윤리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저자는 생명윤리교육, 유전자윤리, ELSI(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이 연재에서는 누구나 마주하기 쉬운 생명의료기술과 관련된 생명윤리 주제들을 편안한 글을 통해 살펴보고 연구자 및 대중들과 함께 생각하는 장을 제공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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