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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물로 본 의학의 역사] 벅스턴과 왕슈핑, 내부고발자가 딛는 위험하지만 귀중한 한 걸음
오피니언 글깎는의사 (2019-11-01 10:52)

의학에 관한 이야기는 보통 영웅을 등장시키곤 하지요. 수많은 사람을 살린 수술법을 개발한 명의, 그야말로 역사를 바꾼 약을 개발한 과학자, 공중보건과 정책을 바꿔 사회와 삶을 바꾼 정치가와 운동가를 찾아 그들의 열정과 공로를 치하하는 일은 아름다우니까요. 하지만, 현대 의학의 지형을 만든 여러 인물을 살피는 이 칼럼은 영웅담을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고민하고 있지요.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영웅담을 나누려 합니다. 조금 특별한 영웅인데요, 아마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문제적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바로, 내부고발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부고발자 하면 아직도 미국 국가안보국의 프리즘(PRISM)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 1983~)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미국 정부가 개인을 대량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언제든 감시, 감청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죠. 스노든 본인은 러시아로 임시 망명했으며 미국 언론은 한동안 그를 물어뜯느라 분주해 보였는데, 이는 내부고발자가 받는 대우를 잘 보여주는 예시일 겁니다. 폭로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적 또는 배신자로 만들기도 하니까요.

보건의료 계열에도 여러 내부고발자가 있지요. 영화 <인사이더> (2000)에 나온 제프리 와이갠드(Jeffrey Wigand, 1942~)는 유명 담배회사에서 근무하던 화학자로, 회사가 담배에 화학물질을 첨가하여 중독 효과를 높인다는 사실을 폭로하여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폭로는 사실이었지만 회사는 그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을 유포하고 주변을 통해 압력을 가했고, 와이갠드는 한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내부고발자는 두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피터 벅스턴(Peter Buxtun, 1937~)이고 다른 한 사람은 2019년 9월 세상을 떠난 중국인 의사 왕슈핑(王淑平, 1959~2019)인데요. 익숙한 이름은 아니실 것 같아요. 하지만 이들이 한 역할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국가가 초래한 보건의료의 문제를 폭로했다는 것이지요. 벅스턴은 미국 공중위생국(U.S Public Health Service, 이후 미국 보건교육복지부로 통합)이 벌인 비윤리적 실험인 ‘흑인 남성에서 치료하지 않은 매독에 관한 터스키기 연구’, 줄여서 터스키기 연구를 1972년 폭로하여 이후 생명윤리의 탄생과 연구윤리의 정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0년대 중국 중부 지방에서 일하던 왕 선생은 중국 정부가 헌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C형 간염과 에이즈가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지요. 본인은 외국으로 도망쳐야 했지만 이후 중국 정부가 에이즈 감염을 방조하였음을 시인하고 관련 지침을 개선하여 수만 명의 목숨을 살리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두 내부고발자의 이야기는 내부고발이 사회에 어떤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지, 한편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더불어, 내부고발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합니다. 예컨대, 황우석 사태에서 내부고발자였던 유영준 교수는 이후 오랫동안 자신을 숨겨야 했지요. 어찌보면 내부고발자는 영웅과 문제아 취급을 동시에 받는 인물일 겁니다. 자신이 속한 기관 또는 집단을 부정해야 하는 이들의 역할은 무엇이며,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벅스턴, ‘터스키기’를 세상에 알리다

 

먼저 터스키기 연구에 관해 간략히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여러 번 들어보셨겠지만, 터스키기 연구란 미국 정부가 매독의 자연사를 연구하기 위해 40년 동안 매독에 걸린 흑인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계속 관찰하기만 했던 전체 연구 과정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자연사란 치료 등 개입을 외부에서 가하지 않을 때 질병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를 관찰하기 위해선 질병을 치료하지 않아야겠지요. 물론, 질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는 경우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이를 치료하지 않고 놓아둔다고 하여 비난할 수는 없지요. 아직 치료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문제는, 터스키기 연구가 시작된 1930년대엔 이미 매독에 관한 효과적인 치료제가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이 푸른곰팡이에서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항생제 페니실린이 매독에 아주 효과적인 치료제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페니실린 대량생산이 어려웠고 병사들을 치료하는 데에 페니실린 생산량의 대부분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변명거리라도 있었습니다만, 전쟁이 끝나고 페니실린을 쉽게 접하게 될 수 있던 1950년대에도 치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미국은 승전국으로서 유대인, 장애인, 전쟁 포로 등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수행한 나치 의사들을 전범으로 형을 내린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Doctor’s trial, 1946)을 이끈 바 있었습니다. 나치 의사에게 형이 내려진 이유 중 하나가 대상의 동의 없이 의학 실험을 시행했다는 것이었죠. 나치 치하 벌어진 끔찍한 실험에 대해선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 미국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관련 정보를 숨기면서 의학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던 거죠. 더구나, 사건이 폭로된 1972년은 흑인 인권 운동을 벌이던 마틴 루서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가 저격당한 지 4년, 여전히 미국이 인종 갈등으로 들썩이던 때였습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주로 흑인 거주지였던 앨라배마 터스키기에 대한 지역차별에 더해 인간 대상 연구에 관한 기준이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던 시절의 윤리적 기준 미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이 사건은 미국 전체를 시끄럽게 하기에 충분했죠.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에서 사형 언도를 받는 히틀러의 주치의이자 보건위생국장 칼 브란트

그림.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에서 사형 언도를 받는 히틀러의 주치의이자 보건위생국장 칼 브란트(Karl Brandt, 1904~1948). 피험자 동의 없는 인간 대상 실험과 병약자 대상 안락사 정책 시행이 그 근거였다. 이 재판은 현대 생명윤리와 연구윤리를 정립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신기한 것은, 40년이나 진행된 터스키기 연구가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벅스턴 이전 왜 이 연구는 주목받지 못했던 걸까요. 간략하게, 벅스턴이 연구를 폭로하게 되기까지의 경로를 정리해 보죠.

1960년대 초까지 사람들은 인간 대상 연구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 없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나치 의사들의 실험은 호러 소설에나 나올 끔찍한 것이었고, 실험이 대상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면 그 실험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인간 대상 실험은 그것이 대상자 또는 인류 전체에 가져올 이득이 위해보다 크면 시행할 수 있다는 조건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당시 이 ‘이득’이 생각보다 범위가 넓었다는 데 있습니다. 터스키기 연구 참여자들은 무료 건강 진단, 보험, 무료 식사, 약간의 보수를 받았어요. 기획자들은 그만큼이면 연구 참여에 상당하는 이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1]

1965년 벅스턴은 공중위생국에 취직했습니다. 성병에 관한 역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던 부서에서 벅스턴은 독일사(史) 전공을 살려 보고서를 작성했지요. 그러던 와중, 연구실에서 그는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한 나이 많은 직원이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터스키기 지역에 60대 환자가 있었는데 정신이상이었다는 거지요. 매독 감염이 오래되어 이차 증상으로 나타난 정신이상으로 보이는 환자에게 의사가 페니실린을 주사해 치료했는데, 연구대상자를 ‘망쳤다’는 이유로 위생국 관리자가 나중에 그 의사를 타박했다는 것입니다. 

 

터스키기 연구 참여자에 관해 요약한 자료로 1969년에 작성되었다

그림. 터스키기 연구 참여자에 관해 요약한 자료로 1969년에 작성되었다. 30년 동안 관찰한 결과 매독 감염자 군의 사망률이 9% 높았음에도 보건위생국과 질병관리센터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매독이 사망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대상자에겐 이것이 “나쁜 피(bad blood)”에 관한 치료라는 설명이 주어졌을 뿐이었다. 출처: NARA

 

벅스턴은 동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발행된 보고서를 수집해서 읽은 벅스턴은 터스키기의 현실과 연구 보고서 사이의 괴리에 다시 한번 놀랐어요. 보고서에는 이런 이야기는 언급도 되지 않았던 것이죠. 정보를 충분히 모은 벅스턴은 터스키기 연구를 뉘른베르크 재판과 비교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제출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보고서는 무시당했지요. 1966년, 벅스턴은 당시 질병관리센터 성병관리국 국장 윌리엄 브라운(William J. Brown)에게 다시 문제를 제기했지만, 연구대상자는 충분히 보상을 받고 있으며 참여는 자발적이고, 연구 결과는 귀중하므로 중단할 수 없다는 응답을 들었을 뿐이었어요.

1968년, 벅스턴은 일을 그만두고 법학대학원에 진학합니다. 그해 마틴 루서 킹의 암살과 시위를 보고 벅스턴은 브라운에게 다시 편지를 쓰죠. 이번엔 터스키기 연구는 인종차별이며 공중위생국과 질병관리센터는 정치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연구 참여자가 모두 흑인이었으니까요. 이에 관해 브라운은 전문가를 소집하여 회의를 열고 의견을 모으지만, 전문가로 참여한 의사들은 과학적 부분에는 문제가 없고 단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대상자의 복지에 좀 더 신경을 쓰자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벅스턴에게 주어진 답은 전문가가 아니니 이 건에 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친구들한테 터스키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다니던 벅스턴은 젊은 AP 통신 기자 에디트 레더러(Edith Lederer, 1943~)를 우연히 만납니다. 엄청난 일을 만났음을 직감한 레더러는 벅스턴을 충실히 취재해 보도국에 가져가고, 상사는 경험이 많은 기자 진 헬러(Jean Heller)를 붙여 추가 취재를 시켰지요. 1972년 7월 26일, AP 통신은 “미국에서 매독 연구 피해자가 40년 동안 치료를 받지 못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기사가 나가자, 더 변명을 늘어놓는 일은 불가능했지요.

벅스턴 이전에도, 벅스턴 퇴사 후에도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목소리는 무시당했어요. 그들은 과학 발전이 가져올 사회의 이득을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거나, 충분한 보상을 받는 자들에게 굳이 무언가를 더 얹어 주려는 것처럼 여겨졌지요. 하지만 터스키기 실험에서 문제는 이득이 아니었습니다. 국가 기관이 정보를 숨기고 시민을 대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연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 과정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지요. 이에 터스키기는 두 가지 유산을 남깁니다. 하나는 다른 여러 판례와 함께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 원칙을 확립했다는 것입니다. 의학적 치료와 인간 대상 연구에서 의사와 연구자는 해당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고, 환자와 대상자는 이를 이해한 다음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 법적, 윤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게 되었지요. 다른 하나는 임상연구심의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IRB)의 설치입니다. 인간 대상 연구의 윤리성과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 의사나 과학자의 심사와 판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외부 인사가 참여하여 연구를 심의, 승인하도록 하는 제도는 터스키기 이전에도 이미 논의됐지만, 이것이 법적, 제도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터스키기 연구 때문이었습니다.

 

왕슈핑, 에이즈 대유행을 막다

 

작가 위화(余華, 1960~)의 『허삼관 매혈기』는 위기 때마다 피를 팔아 가족을 건사하는 가장 허삼관의 이야기입니다. 그 뒤에는 국공내전, 문화대혁명과 같은 중국 근대사의 거대한 사건들이 자리 잡고 있지요. 여기에서 피를 팔아 돈을 버는 일은 과거의 안타까운 기억처럼 보이지만, 1990년대까지 중국에선 사람들이 피를 팔곤 했습니다. 특히 중부의 가난한 지역에선 매혈은 여전히 쏠쏠한 벌이였지요.

피를 파는 것도 신체 일부를 판매하는 일이기에 윤리적 질문을 던지긴 합니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는 중국 정부가 채혈과 수혈 과정에서 필요한 조처를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혈액 채취용 튜브와 주삿바늘을 재사용했고, 여러 공여자(donor)에게서 나온 혈액을 별다른 검사 절차 없이 뒤섞었어요.[2] 공여자가 만약 혈액 매개 감염 질병을 앓고 있다면, 그 질병은 뒤섞인 혈액과 함께 여러 사람에게 쉽게 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간염 전문가였던 왕 선생은 1991년 저우커우에 있는 혈액원에서 일하게 됩니다.[3] 왕 선생은 채혈하러 내원하는 지역 주민들 여럿이 C형 간염에 걸린 것 같다고 생각하고 조사에 들어갔어요. 왕 선생의 회고에 의하면 조사 결과 당시 C형 간염 양성(C형 간염 검사에서 간염이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경우) 비율이 84.3%였다고 해요. 끔찍한 결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절차를 개선하고 혈액 검사를 도입해야 했고, 이는 채혈 비용을 증가시키게 될 터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죠. 왕 선생은 중국 위생부에 상황을 보고했고, 1993년부터 채혈 시에 공여자가 C형 간염에 걸렸는지 아닌지를 검사하는 절차가 추가되었지요. 하지만 밉보인 탓에 왕 선생은 지역 위생국으로 좌천됩니다.

 

왕 선생이 문제를 제기해서 바꿔낸 것은 채혈

그림. 왕 선생이 문제를 제기해서 바꿔낸 것은 채혈·수혈 절차만이 아니다. 그는 중국 보건의료 체계에 도전했고, 그 신화를 허물어뜨렸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고 다시 만드는 일이다. 출처: 뉴욕 타임즈[4]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어요. 20세기 말 미국에서 에이즈가 발견되고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었지만, 중국은 자국 내에서 에이즈가 발생하리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단지 미국에서 혈액을 수입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어요. 이미 중국 내에도 HIV 감염자가 있었지만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고, 채혈하러 온 감염자를 인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HIV는 급속도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이미 C형 간염이 어떻게 퍼졌는지 잘 알고 있던 왕 선생은 에이즈 또한 같은 경로로 확산할 거로 생각했고, 상부에 보고했지만 역시 비용 문제로 무시당합니다. 직접 혈액 표본을 검사해본 왕 선생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어요. 400개의 혈액 표본 중 13%에서 에이즈 양성 반응이 나왔고, 이는 중국 중부 지역에 이미 에이즈가 확산했다는 증거였어요.

공산 국가는 대부분 국가 주도 보건의료 체계에 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구소련과 쿠바가 대표적이었죠.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는 환자가 있는 미국을 비웃으면서요. 중국도 마찬가지였어요. 90년대 초까진 사회보장과 건강보험에 관한 믿음이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의료 체계는 점차 사영화되어 공공 보건 의료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왕 선생은 산부인과 의사 가오야오제(高耀潔, 1927~)와 함께 에이즈 캠페인을 벌여 중국 국민에게 채혈을 통한 에이즈 감염의 실상을 알렸고, 이는 국가 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신뢰를 허물어뜨립니다.

두 사람의 노력 덕분에 중국 정부는 혈액 관리 체계를 점검하게 되고, 감염이 더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왕 선생과 가오 선생은 엄청난 공격에 시달립니다. 일자리에서 잘리고 폭력과 협박에 노출되었으며, 결혼생활도 지속할 수 없었어요. 결국 2001년, 왕 선생은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해, 중국 정부는 중부 지방에 에이즈가 널리 퍼져 50만 명이 감염되었으며, 이것이 혈액 관리 체계의 잘못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지요.[4] 이후 왕 선생의 이야기는 “지옥 궁전의 왕(The King of Hell’s Palace)”이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쓰여 영국 런던 헴프스테드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지옥 궁전의 왕

그림. 연극 “지옥 궁전의 왕”의 한 장면. 정부의 잘못을 밝힌 왕 선생은 “인민의 적”으로 몰리고 결국 중국을 떠나야 했다. 그것은 개인과 집단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어떠한 보증도 없이 걸어가야 하는 위험한 길에 관한 서술이기도 하다. 출처: 헴프스테드 극장[5]

 

내부고발자로서 왕 선생은 단순히 한 부서의 잘못을 밝히는 것을 넘어, 국가와 싸웠어요. C형 간염 치료제가 나온 것이 2014년이고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는 아직 치료제가 없으니, 왕 선생의 노력은 수많은 사람을 살린 셈이지요. 또, 이 사례는 비용을 이유로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을 때 보건의료 영역에서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왕 선생은 주변의 모두가 부정할 때 끝까지 자신의 옳은 판단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는 결심이 주변 집단의 일관적인 야유에 허물어지는 일은 얼마나 많은지요.

 

내부고발자가 된다는 것

 

2005년 보건복지가족부는 ‘요양기관 내부종사자 공익신고 포상금 제도’를 도입했어요.[6] 요양기관에 근무하는 자가 건강보험 허위청구 사실을 신고하면 환수한 부당 이득금의 일부를 포상금으로 지급하여, 허위청구 신고를 유도하는 정책이지요. 덕분에 여러 거짓·부당청구가 적발되었고 2019년 포상금으로 지급된 금액은 총 3억6천만 원에 달합니다.[7] 하지만 내부고발이 악용될 가능성 또한 부정할 수 없지요. 이를테면 의원에서 종사하던 직원이 원장에게 불만을 품고 의원을 고발하는 일. 1996년 미국 제약회사 TAP를 고발한 내부고발자 더글러스 듀런드(Douglas Durand)는 1억 달러가 넘는 포상금을 챙겼지만 결국 회사는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었어요.[8] 이런 일은 내부고발이라는 사건이 지닌 난점을 보여줍니다.

즉, 내부고발이라는 행위가 자체로 선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 내부고발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철학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요. 한 체계 안에 속한 인물이 그 체계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것이 내부고발의 핵심입니다. 이때, 내부고발자는 체계의 부당성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벅스턴의 사례처럼 기관 내부의 다수가 아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때, 그가 옳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장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왕 선생이 처했던 상황은 더 복잡하지요. 자신이 속한 국가가 문제를 부정하는 사태 앞에서, 왕 선생이 자신의 옳음을 알 방법은 무엇일까요?

당연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벅스턴은 의료윤리를, 왕 선생은 과학적 진실을 좇았고 그것이 그들의 옳음을 보장했을 거니까요. 하지만 벅스턴이 뉘른베르크 재판 결과를 터스키기 연구에 적용하기 위해선, 모두가 “아니요”라고 하는 상황에서 왕 선생이 개인재산을 털어 감염 증거를 확보하려고 나서기 위해선 도약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의견에서, 자신을 보증해주는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났을 때, 그는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무협지 주인공이 허공답보, 하늘을 걷는 것처럼요. 누구도, 어디에도 자신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바닥이 없는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 또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곳에 받침이, 계단이 있다고 믿으며 내딛는 한 걸음.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인식하지만, 또한 세계로 인해 존재의 근거를 얻지요. 이렇게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결함을, 문제를, 이상을 발견하는 일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위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바깥을 딛는 일은 자신마저 부정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저는 이 한 걸음이 자칫하면 체계에, 담론에, 기준과 절차에, 학문과 그 성과에 매몰되기 쉬운 우리의 삶을 바로 잡아준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벅스턴의 이야기를 보면서 살폈던 생명윤리란, 생명과학이라는 거대한 체계 바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일이었죠. 왕 선생이 중국 보건의료 체계 바깥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기에 수많은 사람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하지만 그 도래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미래는 위험하지만 귀한 한 걸음을 내디딜 때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문헌

1. Reverby SM. Examining Tuskegee: The Infamous Syphilis Study and Its Legacy.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9.
2. McLaughlin K. My career as an international blood smuggler. The Guardian [Internet]. Sep 27, 2018 [cited Oct 23, 2019]. Retrieved from: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18/sep/27/my-career-as-an-international-blood-smuggler.
3. Langer E. Shuping Wang, whistleblower who exposed China’s HIV/AIDS crisis, dies at 59. The Washington Post [Internet]. Sep 26, 2019 [cited Oct 23, 2019]. Retrieved from: https://www.washingtonpost.com/local/obituaries/shuping-wang-whistleblower-who-exposed-chinas-hivaids-crisis-dies-at-59/2019/09/25/1dd6c1e2-dfa1-11e9-b199-f638bf2c340f_story.html.
4. Buckley C. Shuping Wang, Who Helped Expose China’s Rural AIDS Crisis, Dies at 59. The New York Times [Internet]. Sep 30, 2019 [cited Oct 24, 2019]. Retrieved from: https://www.nytimes.com/2019/09/30/world/asia/shuping-wang-dead.html.
5. The King of Hell’s Palace. Hampstead Theatre [Internet]. Undated [cited Oct 24, 2019]. Retrieved from: https://www.hampsteadtheatre.com/whats-on/2019/the-king-of-hells/.
6. 익명. ‘내부의 적’인가, ‘죽비 소리’인가? 청년의사 [Internet]. Jul 9, 2008 [cited Oct 23, 2019]. Retrieved from: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189.
7. 최영선. 건보공단, 요양급여 부당청구 신고포상금 3억6천만 원 지급. 의료일보 [Internet]. Aug 23, 2019 [cited Oct 23, 2019]. Retrieved from: http://www.medicalilbo.com/n_news/news/view.html?no=29496.
8. Weinberg N. The Dark Side of Whistleblowing. Forbes [Internet]. Mar 14, 2005 [cited Oct 23, 2019]. Retrieved from: https://www.forbes.com/forbes/2005/0314/090.html#5cf49ba87f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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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연구센터)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아치과 전문의가 된 다음, 새로 공부를 시작해서 국내에서 의료인문학 박사를, 미국에서 의료윤리 석사를 취득했다. 철학에 바탕을 두고 의학에 관한 서사적 접근과 의료 정의론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겨례>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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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물로 본 의학의 역사] 마거릿 생어, 피임의 권리를 위해 싸워 이긴 전사는 왜 우생학자라고 비난당했을까?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269조와 270조를 위헌 결정했습니다. 형법 269조는 자기낙태죄라고 하여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이고 형법 270조는 동의낙태죄로...
[문제적 인물로 본 의학의 역사] 헨리에타 랙스, 영원히 죽지 않는 세포는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최근 벌어진 인보사 사태가 아직 뇌리에서 잊히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성장촉진물질인 TGF-β1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넣은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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