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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과학자 이야기 10 『하노버에서 하노버까지』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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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가 멀어지고 있어. 밤바람이 차도 선실로 들어가지 못했어. 하노버를 바라보며 온갖 생각이 들었지.
이제 정말 하노버를 떠나는구나. 이제 정말 하녀의 삶이 끝나는구나. 작은 키를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왼쪽 눈이 보이지 않은 것을 원망한 적도 전혀 없었다. 원망스러운 것은 오직 어머니뿐이었다. 스무 살이 넘도록 집안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 그녀. 어머니 몰래 몰래 배운 프랑스어와 영어, 바이올린으로 대화를 나눌 사람은 오직 돌아가신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 삶은 어둠 그 자체였어.
나쁜 기억은 이 북해의 바다에 모두 버리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결코 하노버에 오지 않으리라. 별 참 예쁘다. 어릴 때 어머니 주무시면 몰래 빠져나와 아빠와 별을 보곤 했지. 윌리엄 오빠가 망원경으로 별 보는 게 취미라고 했지. 나도 영국에 가면 이제 질리도록 별을 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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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지나고 영국에서의 삶이 익숙해졌다. 아직 영어는 서툴러도 이웃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윌리엄 오빠의 평판이 좋아서인지 다들 친절하다. 다만.. 음식이 너무 맛이 없다. 영국이니 어쩔 수 없지.
하노버에선 여섯이 넘는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혼자 했는데 이곳에선 윌리엄 오빠와 단 둘이 사니 살림이랄 것도 없었다. 익숙해지니 하루 중 절반이 남는 시간이었다. 윌리엄 오빠의 서재에서 책을 꺼내 하나씩 읽는다. 읽다보니 이제 남은 건 <화성학 또는 뮤지컬 사운드의 철학>, <광학의 완전한 시스템-대중적, 수학적, 철학적 총론>이란 이상한 이름의 두꺼운 책들뿐이다. 어렵지만 잘 모르는 건 저녁에 돌아온 윌리엄 오빠에게 물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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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밤마다 윌리엄 오빠의 일을 돕는다. 그는 망원경으로 별들을 살피고, 나는 그가 부르는 데로 기록을 남긴다. 별을 보는 건 윌리엄 오빠에게 취미 이상의 일이었다. 그는 아무리 피곤해도 밤새 별을 보는 일을 미루지 않았다. 매일 매일의 기록이 쌓이고, 나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더 좋은 망원경이 윌리엄 오빠에게 필요하다. 메시에 목록을 살펴보면서 관찰하는데 지금 쓰는 걸론 제대로 확인이 되질 않는다.
망원경은 윌리엄 오빠의 벌이로 사기 힘들 정도로 비쌌다. 윌리엄 오빠는 휴일마다 직접 렌즈를 깎고 경통을 다듬어 망원경을 만든다. 나는 아직 서툴러 그를 돕지 못한다. 대신 윌리엄 오빠는 나에게 노래를 하라고 한다. 렌즈를 깎는데 집중하다가도 음이 틀리면 귀신 같이 지적을 해. 그래도 윌리엄 오빠 덕분에 노래가 많이 늘었어. 어제는 마을 음악회에서 내가 독창을 했지. 사람들 앞에 서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오빠가 미소를 짓고 있었어.
4.
야호! 오빠가 천왕성을 발견했다. Georgium Sidus라고 오빠가 이름을 붙였는데 내가 생각해도 별로다. 차라리 보데가 제안한 Uranos가 훨씬 낫다. 아마 훗날 사람들은 이 행성을 천왕성이라 부르겠지.
영국 왕이 오빠를 왕실 천문학자로 임명했어! 연봉은 200파운드밖에 안 되지만 말야. 이 돈으로 어떻게 살라는 건지. 하지만 오빤 천문학자가 되기로 했나봐. 음악 일을 모두 관뒀어. 그리고 말야, 이건 아주 획기적인 건데 나도 조지 3세로부터 연봉을 받아. 우와!! 이 캐롤라인이 말야, 하노버의 하녀가 국왕에게 정식으로 연봉을 받아. 50파운드! 오빠 조수로 임명되었어. 호홋 내가 천문학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왼쪽 눈도 보이지 않고, 키도 작은 쬐그만 여자애가 천문학자가 되었다고!
그래도 오빠와 내 연봉 250파운드 한숨만 나오지. 이 돈으로 어떻게 살겠어. 석달 살면 거덜나게 생겼어. 호호 하지만 우리에겐 망원경이 있지. 오빠 렌즈 깎는 솜씨가 끝내주거든. 낮에는 망원경을 만들어 팔고, 밤에는 별을 보고. 영국만이 아냐 프랑스에서도 독일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주문이 온다네.
5.
이제 내 망원경도 생겼어. 밤마다 우린 나란히 앉아 각자 자기의 망원경을 보지. 아무런 말도 없지만 별과 함께 우린 행복할 뿐이야. 몸은 힘들지. 밤에 별을 보곤 낮 동안 오빠는 렌즈를 깎고 난 정리를 하지. 오빠가 가르쳐준 수학과 천문학이 이제 익을 대로 익었어. 오전 나절이면 어제 밤 관측 기록 정리하는 데 무리가 없지.
하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하노버 시골집 부엌데기였지, 난. 매일 식구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지. 뜯어진 옷을 꿰매고, 물을 길어오고, 음식을 사고, 텃밭에서 야채를 캐야했지. 점심이며 저녁을 마치고 나면, 난 녹초가 되어서 그저 침대로 갈 뿐이었어. 수중엔 달랑 몇 페니히(pfennig)만 들어있었어. 어머닌 내게 말했지. 키도 작고 눈도 멀었으니 결혼은 글렀다. 넌 어차피 평생 이 집에서 사는 거다. 살림하는데 외국어가 무슨 필요고, 수학은 또 배울 일이 뭐 있냐고 했어. 그저 살림만 하다 죽을 운명이었지.
그런데 오빠가 왔어.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날 데리고 왔지. 이곳 영국에서 난 매일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성운을 본다. 기록을 하고, 궤도를 계산하고, 그 대가로 연봉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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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런 생활이었어. 뒤늦게 결혼한 오빠의 부인과 약간 마찰이 있었지만 그야 의당 겪는 일이지. 난 영원히 오빠와 둘만 살 줄 알았거든. 하지만 중년이 지난 오빠 마음에 불이 지펴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미친 듯이 별도 보지 않고 밤새 연애편지를 쓰고 지우고 쓰는 오빠라니.
그래도 덕분에 살림이 한결 폈어. 이제 더 이상 망원경은 팔지 않아도 돼. 망원경 만들던 시간에 휴식도 좀 취하고, 밤새 관측한 걸 정리하는 일에도 더 신경을 쓰니 훨씬 낫군. 더구나 귀여운 조카들이라니. 그 조그만 녀석들이 망원경에 한쪽 눈을 대고 목성이며 화성을 찾는 걸 보면 내가 다 애를 키우고 싶더라니까. 물론 난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말이야.
왕립 천문학회에서 날 가입시킬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뭐 그건 애초에 포기했어. 지금 시대에 여자가 그것도 외국인인데 가능하기나 하겠어. 그래도 논문은 낼 수 있으니 다행이지 뭐야. 아무래도 오빠 도움이 크긴 하지만
7.
하노버를 떠날 때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어. 어머닌 진즉 돌아가셨고. 오빠도 돌아가셨어. 오빠 없는 영국은 내겐 의미가 없지. 이제 하노버로 돌아갈 시간이야. 영국아 즐거웠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어. 홀로 지내긴 힘드니 조카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하노버에서도 오라고 어서 오라고 하니 다행이야. 그리고 오빠가 남겨준 숙제가 있거든. 오빠와 같이 찾았던 성운들의 목록을 완성시켜야해.
영국, 오빠, 그리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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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허셜 caroline herschel 1750 ~ 1848
독일의 천문학자. 하노버 출생이나 오빠 윌리엄 허셜을 따라 영국에 가서 그곳에서 윌리엄 허셜과 함께 별을 관측했다. 초기에는 윌리엄 허셜의 보조 역할이었으나 곧 독자적으로 관측하며 8개의 혜성과 11개의 성운을 발견한다. 월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한 공로로 왕실 천문학자가 될 때, 왕실에서 그의 조수로 정식 임명된다. 이는 여성으로선 최초로 천문학자로 인정받은 것.윌리엄 허셜이 사망한 후 하노버로 돌아가 그들이 발견한 2,500개의 성운과 성단의 목록을 작성하여 출판한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영국 왕립천문학회에서 ‘gold medal'을 수상했으며 여성 최초로 왕립천문학회 명예회원이 된다. 프러시아 왕으로부터도 ’gold medal of science'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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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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