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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예술 그리고 과학, 자연을 그리다.
오피니언 곽민준 (2019-10-02 09:43)

 ‘그리다’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연필이나 붓 따위를 이용해 어떤 대상을 선이나 색 등으로 나타낸다’라는 의미이며, 두 번째는 ‘생각, 현상 따위를 말이나 글 등으로 나타낸다’라는 뜻이다. 관찰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과학적 과정의 목표는 자연을 그리는 것이며, 이때의 ‘그리다’는 두 번째 의미에 해당한다. 그러나 과학이 언제나 자연 현상을 두 번째 의미대로만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자연을 첫 번째 의미대로 그리며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으며, 이는 대중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적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볼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얼마 전 런던에서 ‘사이언스 갤러리’라는 무료 전시관에 다녀왔다. 사이언스 갤러리는 말 그대로 과학과 관련된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한 번에 오로지 하나의 과학적 주제에 대한 작품들만 전시되며, 그 주제는 수개월에 한 번씩 바뀐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런던 사이언스 갤러리의 주제는 암흑물질이었다. 2층 전시실에 입장하자마자 DARK MATTER라는 커다란 글씨와 함께 검은 벽이 보였고, 그 벽에는 암흑물질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이 적혀있었다. 그곳뿐만 아니라 전시관 전체가 검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독특한 조명과 반사판 때문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어 더욱 흥미로웠다. 전시물들도 인상 깊었다.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전시물도 많았으며, 누워서 영상을 보는 공간도 몇 있었다. 매우 철학적이고 흥미로운 전시물도 있었다. 전시관 중앙에 텅 비어있는 투명한 유리 정육면체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아래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 안에 암흑물질이 들어있다. 그러나 암흑물질은 모든 것을 투과한다. 만약 누군가가 이 정육면체 안에 든 암흑물질을 샀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산 것이고, 그 사람은 무엇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가?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는 암흑물질의 소유권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이 전시물은 사이언스 갤러리가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드러낸다. 과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하고, 자신의 상상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 자연을 설명한다.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과학이 내리는 결론은 대부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다. 신이 아닌 우리는 정답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술가들은 정답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상상하지만, 정답을 맞히려 들지 않고 대신에 자신들만의 개성이 담긴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이러한 차이는 사이언스 갤러리의 작품들에서도 나타났다. 과학기술자들의 작품은 주로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과 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를 나타내고 있었던 반면, 예술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인류가 모르는 부분을 자신들의 상상력과 직관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에서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소리와 이상한 모양의 입체 도형들로 표현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겠지만, 예술가에게는 그 전시가 자신의 상상을 표현하는 소중한 작품이다. 때로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 발상의 변화와 생각의 발전에 도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과학자들이 사이언스 갤러리 등의 방식으로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것이 그들에게 매우 신선한 활기를 제공할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든다.

우주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런던 사이언스 갤러리 암흑물질 전시
우주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런던 사이언스 갤러리 암흑물질 전시

 최근 여러 자연사박물관과 과학관들이 전시보다는 체험 위주로의 관람 문화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자연사박물관은 19세기, 과학관은 20세기의 전시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요즘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다른 전시관들을 방문하면 관람객이 작품 일부가 되는 전시물도 있으며, 관람객이 새로운 작품을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전시도 많다. 최근 들어 유행하는 일명 ‘인스타 감성’을 지닌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전시관도 정말 많이 있다. 사이언스 갤러리에 다녀온 후, 과학 전시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전체가 암흑물질에 대한 이미지를 줄 수 있게 꾸며진 점, 곳곳에 누워서 영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점, 출구에서 ‘왜 암흑물질이 중요할까?’, ‘당신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관람객들이 과학적 문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 등을 통해,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과학 관련 전시관도 인스타그램 명소로 유명해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언스 갤러리는 관람객들에게 과학 주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사이언스 갤러리는 관람객들에게 과학 주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과학은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드는 행위를 과학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을 거다. 물론 과학 연구에 예술이 포함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과학의 영역도 아니다. 그러나 만약 관점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하는 과학으로 옮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자연 현상을 인간의 오감으로 느끼고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럴싸한 문장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하는 것은 모든 과학적 과정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이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이 하는 과학이 모든 과학 과정을 포함할 이유는 없다. 축구를 즐기는 사람 중 매주 조기축구회에 나가 직접 공을 차는 이들도 있지만, 축구경기관람만을 즐기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집에서 TV로 손흥민 선수의 축구경기만 골라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 축구선수는 아니지만, 자신을 스스로 축구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과학, 연구로서의 과학을 벗어나 ‘문화로서의 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술도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과학을 즐기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과학이 다른 분야와 조금 더 많이 소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딱딱한 학문적 통섭은 아니기를 바란다. 미술, 음악, 스포츠, 게임, 요리 등 사회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전혀 다른 영역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며 조금 더 많은 아마추어 과학자들을 길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 체육계는 얼마 전부터 아마추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엘리트 위주의 정책에서 생활체육 중심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가 살아야 저변이 확대되고 과학이 발전한다. 아마추어 과학인이 자연을 (첫 번째 의미대로) 자유롭게 그리는 문화로서의 과학이 발전해야 프로 과학자가 자연을 (두 번째 의미대로) 그리는 연구로서의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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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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