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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물로 본 의학의 역사] 에밀 크레펠린, 정신질환을 두 가지로 구분하다
오피니언 글깎는의사 (2019-10-01 10:08)

근대 소설을 읽다 보면 조발성 치매(早發性 癡呆, dementia praecox)라는 표현을 마주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를테면 일본 메이지 시대의 천재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갓파(河童)」가 있지요. 주인공이 갓파(일본 민담에 나오는 물의 요정으로, 사람 같은 모습에 대머리, 새의 부리, 거북이 등껍질, 물갈퀴를 가지고 있다)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입원해 있습니다. 어느 날, 예전에 만났던 갓파가 찾아와 주인공의 병이 조발성 치매라고 진단하지요. ‘일찍 발병한다’라는 뜻의 조발이니, 이 병은 요새 4~50대에 찾아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초로기 알츠하이머병(early-onset Alzheimer’s disease)을 말하는 걸까요? 흥미롭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명칭은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 1856~1926)이 1899년 우울증으로 인해 나타나는 무관심과 부동 상태에 붙인 이름입니다.[1] 이것을 스위스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가 1908년 조현병(schizophrenia)을 명명한 뒤 이를 기술하는 데 전용(轉用)하면서 혼란이 발생합니다. 예컨대 프로이트는 1914년 발표한 「나르시시즘 서론」이라는 논문에서 ‘정신 분열증(조현병의 이전 명칭)’과 조발성 치매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으며,[2] 1960년대 반정신의학의 선두주자 로널드 D. 랭 또한 1960년 작 『분열된 자기』에서 ‘조발성 치매’와 ‘단순형 조현병’의 임상 양상을 구분하지요.[3] 반면, 최근 글은 ‘조발성 치매란 과거 조현병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하던 표현이다’라는 식으로 정리하는 편입니다. ‘조발성 치매’라는 명명 자체에 문제가 좀 있지요. 부동 상태(프로이트의 표현에 따르면 리비도, 즉 생을 향한 욕망의 억압)는 특정 질환에서만 나타나는 상태라고 보긴 어려우니까요.

이런 혼란이 발생한 것은 당시 크레펠린이 정신의학계에서 차지하던 중요성 때문일 거예요. 크레펠린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 블로일러의 새로운 용어 정의는 빠르게 퍼지지 못했어요. 정신질환에 대한 여러 생각이 난립하던 시절, ‘정신의학의 과학화’라는 기치를 들고 정신질환의 신체적 원인에서 출발하여 이를 분류해온 것이 크레펠린이었거든요. 그는 『정신의학(Psychiatrie)』 개정판을 계속 발간하면서 현대 정신건강의학의 토대를 쌓아 갔습니다.

 

크레펠린과 현대 정신의학

아니, 근대 정신의학하면 프로이트 아니냐고요? 정신건강의학은 일단 의자에 앉아서 내담자와 상담자가 나누는 대화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면 그 생각은 어느 정도는 맞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지금 기준으로 그야말로 ‘무식해’ 보이던 19세기의 정신질환 치료법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프로이트와 그 후계자들이 일군 정신분석학이 맞습니다. 당시 여러 사람은 정신질환이 발병하는 이유를 도덕적 원인에 돌렸죠. 나태와 탐욕 등 고전적인 ‘죄악’ 때문에 정신질환이 발생한다는 것이었어요. 따라서 사람들은 소위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을 치료법으로 선택, 운동과 자극요법(냉수마찰, 회전 기계 등 그 목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으로 정신질환자의 정신을 ‘개조’하려 했습니다. 여기에 프로이트의 ‘대화 치료’가 가져온 변화는 엄청난 것이었지요.

하지만 정신건강의학이 지금의 지위에 오르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1950년 합성된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이었습니다. 항히스타민제인 클로르프로마진은 중추신경 억제제로 작용하여 환자를 멍하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냈지요. 곧 상품화된 클로르프로마진은 전 세계의 정신병원에 보급되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장 환자들의 행동 통제를 할 수 없던 병원엔 구원과 같은 일이었지요. 이미 1831년 합성되어 마취, 진정에 사용되었던 클로랄 하이드레이트(chloral hydrate)가 있었지만, 정신약리학 또는 정신약학(psychopharmacology)이 도래했던 것은 클로르프로마진과 함께였습니다.

 

폴 샤르팡티에(Paul Charpentier)가 최초로 합성한 항정신제 클로르프로마진은 처음 마취 보조제로 사용되었으나, 연구자들은 정신질환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했다

그림. 폴 샤르팡티에(Paul Charpentier)가 최초로 합성한 항정신제 클로르프로마진은 처음 마취 보조제로 사용되었으나, 연구자들은 정신질환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했다. 1952년 1월 24세 조증 환자인 자크에게 투여되었고 극적인 결과가 나타나, 환자는 3주 뒤 퇴원했다. 점차 많은 정신질환자에게 사용되기 시작한 클로르프로마진은 정신약학의 시작이었으며, 정신질환의 신체적 접근을 부활시키는 신호탄이었다. 그림은 1962년 클로르프로마진의 상품명 소라진(Thorazine)의 광고로, 망상과 환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눈길을 끄는 것은 그림 한가운데의 커다란 눈이다. 사람들이 흔히 광기를 본다고 생각하는 그 ‘눈’ 말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이런 접근은 당연하지만, 정신분석학과는 무관합니다. 정신질환을 억압된 기억의 촉발로 인해 나타나는 이상 행동이라고 해석하는 정신분석학은 무의식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를 다룹니다. 반면, 정신약학은 정신질환이 신체적 원인(예컨대, 뇌의 구조적 이상)에서 나타나므로 이를 화학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과는 정신질환의 원인에 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 신체적 접근을 주장했던 크레펠린과 그의 분류가 다시 주목받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당연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정신분석학이 실제로 치료 결과를 가져오느냐와는 별개로, 차분히 앉아 오랜 상담을 통해 이뤄지는 진료의 특성상 비쌀 수밖에 없었거든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 모두를 상담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정신분석학은 중산층의 전유물이라는 후대의 비판은 정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크레펠린의 생각이 현대 정신건강의학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그는 실제로 알코올이나 커피 등이 미치는 심리학적 영향을 연구하였기에 정신약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죠.[4] 당시 아직 효과를 볼 만한 약물이 없었을 뿐. 무엇보다 그는 관찰을 통해 정신질환을 분류하고자 했어요. 증상 여럿이 공통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을 같은 질병으로 묶는 이 틀은 세계대전 이후 신크레펠린주의자(neo-Kraepelinian)들에 의해 주목받으면서 현재 정신질환 분류 체계의 기본이 되었죠.[5]

 

조발성 치매와 조울증이라는 분류

흥미로운 점은 그가 정신질환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는 건데요. 그는 정신질환이 자연적 존재라고 보았어요. 즉, 환자 안에서 질환의 존재를 어떻게든 찾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죠. 그 결과, 크레펠린은 정서적 요인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정서적 요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을 조울증(manisch-depressives Irresein, 현재 분류로 양극성 장애)으로, 정서적 요인이 아닌 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을 앞서 말한 조발성 치매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이죠. 정서적 요인 때문에 발생했으니 상대적으로 치료가 양호한 전자와 달리, 후자는 신체의 결함으로 인해 나타난 질병이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6]

이 분류를 크레펠린 이분법(Kraepelinian dichotomy)이라고 부릅니다. 이 분류는 최근 정신질환에 관한 유전학적 연구가 시작되기 전까지 정신건강의학의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었어요.[7] 이후 수백 가지로 정신질환이 분류되었지만, 여전히 이 이분법의 틀 안에서 질환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전학적 연구가 두 질환 밑에 깔린 유전학적 경향성과 질병 작용에 연관성 또는 공유되는 부분이 있음이, 신경생물학적 발견이 이런 이분법과 들어맞지 않음이 밝혀지면서 이 이분법은 그 힘을 조금씩 잃어가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크레펠린 이분법이 지난 100년간 정신건강의학 담론에 미친 영향이 쉽게 사라지진 않겠지요. 이런 질문도 떠오르실 것 같아요. 이분법이 틀릴 수 있지만, 그건 그냥 학문적 문제일 뿐이지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인가 하는. 하지만 이 분류는 우리가 정신질환을 어떻게 통제하려고 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신질환 통제의 목적은 사회의 안전일 거예요. 그렇다면, 그 안전은 어떤 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을까요.

 

프랑스 파리의 대형 정신병원이었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19세기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던 장-마르탱 샤르코가 진료하던 환자 사진

그림. 프랑스 파리의 대형 정신병원이었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19세기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던 장-마르탱 샤르코가 진료하던 환자 사진으로, 등에 “DEMENCE PRECOCE”, 즉 조발성 치매라고 쓰여 있다. 꽉 움켜쥔 환자의 양손,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환자의 뒷모습에서 ‘의욕 상실’을 특징으로 하는 조발성 치매의 특징을 담아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은 1878년 발간된 사진집 『살페트리에르의 사진(Photographique de la Salpètrière)』에 담긴 것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다시 조발성 치매와 조울증의 이분법으로 돌아가 볼까요? 크레펠린이 정의한 조발성 치매는 신체적 결함을 기원으로 하며 점차 신경 조직이 파괴되어 환자가 의욕과 인지 기능 상실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런 정의는 그 이름을 대체했다고 하는 조현병, 즉 망상, 환각, 언어 와해 등의 특징으로 정의되는 사고장애와는 차이가 있으며, 현재까지 크레펠린의 정의가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크레펠린의 분류는 조현병이 신경 조직 또는 구조의 이상일 거라는 접근에 남아있지요. 예컨대, 조현병을 설명하는 데 오랫동안 동원되어 온 도파민 가설은 질환이 나타나는 이유를 뇌에 위치하는 도파민 신경 세포의 과다 활성 때문으로 설명합니다. 이 신경 세포는 운동 신경과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도파민이 과다하게 분비될 경우 처음에는 두뇌 활동이 증가할 수도 있고 조현병 같은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파민 분비가 계속 유지될 경우 점차 뇌가 여기에 익숙해지면서 아무리 도파민이 분비되어도 효과가 없어지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조현병에 사용하는 주요 약물은 주로 도파민 수용체에 결합하여 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조울증은 세세한 부분은 많이 변했을지라도 큰 틀에서는 여전히 크레펠린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조증과 울증으로 기분 등이 양극단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장애라 양극성 장애라고 부르는데, 크레펠린은 이를 흥분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8] 일반인의 안정된 정서 상태와 달리 조울증 환자는 흥분에 정신을 내어 맡기며, 즐겁게 만드는 흥분이나 슬프게 만드는 흥분에 쉽게 영향을 받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죠. 이 경우엔, 흥분할 수 있는 능력을 없애면 되겠죠. 여러 항우울제는 세로토닌(serotonin)과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등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세로토닌 신경이 너무 흥분하거나 불안하지 않도록 만드는 기능을 하며, 항우울제는 이 신경 기능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아직 정신질환이 어떻게 발생하고 진행되는지에 관한 실체를 규명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방식이 있지만, 그에 상충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으므로 확답을 내릴 수 없는 상태인 거죠. 여기에는 앞서 말씀드린 정신약학의 성공도 영향을 미칩니다. 치료되는지 알 수 없었던 정신질환을 어쨌든 붙들어 맨 것은 약물이었고, 여전히 우리는 그 치료를 위해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여러 방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약물만큼 효과를 내는 방법이 또 있을까요.

 

크레펠린 이분법과 흥분의 통제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크레펠린의 이분법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한쪽은 과다한 흥분과 집중이 나타나는 것을, 다른 한쪽은 흥분과 불안으로 급격히 쏠리는 것을 막는 것을 치료법의 틀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임상으로 들어갔을 땐 이렇게 무 자르듯 나누지는 않을 것이고, 훨씬 섬세한 접근과 기술들이 활용될 거에요. 하지만, 조금 더 추상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이런 접근은 인간이 어떠한 과도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시각과 일치합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너무 집착하거나 외부 환경에 따라서 급격하게 마음이 변해선 안 됩니다. 존재의 평안과 사회의 평안은 일치하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그 평안을 확보할 때 가능합니다.

집착 또는 불안정이 일상이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은 맞지요. 하지만, 때로 집착이나 불안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진화인류학자 조한선은 2014년 논문에서 조현병의 특성이 수렵 생활을 하던 시기의 인류에게 있어 유리한 형질일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언급합니다.[9] 망상이나 언어 와해 등이 지도자의 특질로, 또는 신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로 이해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죠. 한편, 현대 사회는 사람들을 온건하게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드 쉬테르는 책 『마취의 시대』에서 크레펠린과 진정제에 관한 이야기에서 출발, 흥분을 옭아매어 사회를 통제하려는 전략을 고찰합니다. 흥분은 “군중의 이론가와 우울증의 의사, 밤의 경찰, 산아제한 운동가” 모두의 경계 대상이었습니다.[8] 우리는 몇 년 전, 거대한 재난 앞에서 흥분을 억제하려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광화문에 걸린 노란 리본을 치우려는 것은, 사회의 흥분을 막으려는 통제의 노력이었죠. 그렇지만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때로는 과도한 흥분이 현 상태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활용될 때도 있을 거예요.

 

잘못된 이분법의 오류 또는 흑백논리의 오류는 논리적 오류의 하나

그림. 잘못된 이분법의 오류 또는 흑백논리의 오류는 논리적 오류의 하나로, 다른 것을 무시하고 단 두 가지 선택지만 상대방에게 제시하여 선택을 강요하는 오류를 말한다. 논리적으로는 반대관계, 즉 둘 다 그를 수도 있는 관계를 모순관계, 즉 둘 다 옳거나 그를 수 없는 관계로 혼동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이분법은 중립적인 입장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며, 제3의 선택지를 악으로 규정하기까지 한다. 진영논리가 대표적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으며 최근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또한 문제를 바라보는 기존의 흑백논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다. 출처: 게티 이미지

 

또한, 이분법의 문제는 그 바깥에 여러 다양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극 만이 특권을 부여받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성(性)이 대표적이죠. 성적 지향은 남성 이성애자와 여성 이성애자 두 극으로만 분류되지 않지만, 이들이 다수라는 이유로 다른 성적 지향은 무시되거나 배척되기 일수입니다. 오랫동안 철학의 두 축이었던 주체와 객체는 어떤가요. 이성을 가진 인간 주체와 그 관찰, 조작 대상인 객체의 이분법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이슈를 인간과 사물로 나눠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일은 인간과 사물이 혼합된 하이브리드에 관해 생각하라고 요청하고 있지요. 예컨대, 총기 사고가 인간의 의지 문제만이 아니라 총과 인간의 매개로 인하여 서로의 속성이 변한 ‘총-사람’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0]

크레펠린의 이분법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정신질환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속한 사회문화에 따라 여러 형식으로 변화하여 표현됩니다. 그러나 조발성 치매와 조울증의 도식은 정신질환을 두 극에 위치시켜 이들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두 질환의 치료법은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우리가 정신질환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정신질환을 일소해야 할 것으로 보았던 일제강점기의 정신위생 개념이 미친 영향도 있지만,[11] 여전히 남아있는 크레펠린의 영향력도 무시할 순 없지 싶어요.

 

정신질환은 억제의 대상일 뿐일까

2019년 여름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우리는 떠들썩한 분위기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가 적격이냐 여부를 가르는 것이 가족의 범죄 사실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다 보니, 공약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요. 하지만, 조 장관의 공약 중 정신질환 관련 언급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12] 우리의 정신질환 관련 인식을 잘 보여주는 창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장관은 후보자였던 당시 정신질환자 강력사건이 안전을 위협하니 치료명령 등을 강화해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뜻을 밝혔죠. 현재 2018년 말 고(故) 임세원 교수 살해사건이나 2019년 진주 참사 등으로 국가적 경각심이 높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 장관의 공약이 정신질환자를 범죄자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정신질환 당사자 단체는 반발 의견을 표명했습니다.[13]

이것이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전달하며 기존의 편견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도 문제지만, 더 큰 일은 역시 정신질환 치료 기반을 확충하려는 의지 없이 규제와 명령만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겠죠. 정신질환은 억제할 대상일 뿐으로 규정되는 것. 환경의 개선을 통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정책 논의 바깥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사건으로 문제의식은 높아졌지만, 정작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재원 마련과 체계 보완에 관심이 가해지지 않는 것이죠.

그것은 아마도 앞서 살핀 것처럼, 여전히 우리가 정신질환을 붙들어 매야 할 어떤 것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은 정신질환의 대표적인 두 분류,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가 흥분을 가라앉히는 약물로 인하여 조절되면서 나타난 안타까운 결과일지도 모르겠어요. 크레펠린의 분류가 남긴 영향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정신질환은 모두 억제되어야 할까요. 오히려 많은 분이 지적하고 계신 것처럼 심하지 않은 질환은 함께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어려운 상황이 될 때만 타인에게 발생할 피해를 막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하여, 정신질환을 무조건 문제라고만 생각하는 관점을 바꿀 때가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참고문헌

1. 닐스 비르바우머, 외르크 치틀라우. 오공훈, 옮김.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너무 많은 생각이 당신을 망가뜨린다 [전자매체본]. 메디치미디어; 2018.
2. 지그문트 프로이트. 윤희기, 박찬부 옮김.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열린책들; 2004.
3. 로널드 랭. 신장근, 옮김. 분열된 자기: 온전한 정신과 광기에 대한 연구. 문예출판사; 2018.
4. Müller U, Fletcher PC, Steinberg H. The origin of pharmacopsychology: Emil Kraepelin’s experiments in Leipzig, Dorpat and Heidelberg (1882-1892). Psychopahrmacology (Berl). 2006;184(2):131-8.
5. 하지현. 정신의학의 탄생: 광기를 합리로 바꾼 정신의학사의 결정적 순간. 해냄; 2016.
6. Hoff P. The Kraepelinian tradition. Dialogues Clin Neurosci. 2015;17(1):31-41.
7. Craddock N, Owen MJ. The Kraepelinian dichotomy—going, going… but still not gone. Br J Psychiatry. 2010;196(2):92-95.
8. 로랑 드 쉬테르. 김성희, 옮김. 마취의 시대: 마취의 역사를 통해 본 자본주의의 두 얼굴. 루아크; 2019.
9. 박한선. 정신의학의 진화적 접근. J Korean Neuropsychiatr Assoc. 2014;53(6):347-357.
10. 김환석. Q: 21세기의 사상,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문화일보 [Internet]. 2019년 9월 3일 [cited at 2019년 9월 20일]. Retrieved from: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90301031712000001.
11. 임지연. 1960-1970년대 한국 정신의학 담론 연구—정신위생학에서 현대 정신의학으로. 의사학. 2017;26(2):281-214.
12. 김지환. 민변 “조국 정신질환 정책, 정신장애인 혐오·차별 조장”. 경향신문 [Internet]. 2019년 8월 28일 [cited at 2019년 9월 19일]. Retrieved fr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8281709001.
13. 김민호. 조국 공약에 반발… “정신질환자를 범죄자 취급하고 정책도 재탕”. 한국일보 [Internet]. 2019년 8월 22일 [cited at 2019년 9월 19일]. Retrieved from: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821162276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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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연구센터)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아치과 전문의가 된 다음, 새로 공부를 시작해서 국내에서 의료인문학 박사를, 미국에서 의료윤리 석사를 취득했다. 철학에 바탕을 두고 의학에 관한 서사적 접근과 의료 정의론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겨례>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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