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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밖 과학읽기] 은여우 길들이기 (리 앨런 듀가킨, 류드밀라 트루트 저, 서민아 역/ 필로소픽)
Bio통신원(LabSooni Mom)
“시베리아 애완 여우 판매”
금액: $8,900 (배송 및 통관비 포함, 백신접종 완료)
종류: Silver/black, Red, Platinum, Georgian White
2007년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살던 여우 한 마리는 최초로 미국 플로리다의 한 가정으로 “애완용”으로 판매가 되었다. 개 처럼 목줄을 메달고 플로리다 해안가를 유유히 산책하고 주인과 키스를 하는 ‘개’가 아닌 ‘여우’를 볼 줄이야? 몇 일전 케이블 TV 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 프로그램에서 비슷하게 생긴 ‘은여우’를 목격하였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여우는 이제 한국의 미어캣 카페에 까지 입양되어, ‘희귀 동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야생의 늑대가 수 만년의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가축화’ 된 것이 현재 가장 사랑받는 애완동물인 개다. 개 뿐만 아닌 돼지, 소, 염소 등이 야생이 아닌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가축화’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은여우 길들이기]는 오랜시간에 걸쳐 이루진 야생 동물의 가축화 과정을 여우를 통해 실현시키고자 시작된, 60여 년 동안 실행되어 오고있는 러시아의 대규모 유전학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위험한 아이디어
1922년 레닌의 사망 후 독재정권을 수립한 스탈린에게는 더 불행하게도 유사과학의 신봉자인 트로핌 리센코가 과학분야의 책임을 맡았다.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고 부인 주의(Denialism)를 내세운 리센코는 승승장구하던 소련의 유전학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했고, 스탈린-리센코 정권 하에서 유전학 연구는 목숨을 거는 위험이 동반되었다. 1917년 러시아 프로타소보에서 태어난 ‘드미트리 벨랴에프’는 동물 육종을 연구했다. 19세기 모피산업의 발전으로 은여우의 은회색 털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러시아는 대대적으로 모피산업에 국가적 규모로 뛰어들기 시작해 모피로 외화벌이를 시작한다. 리센코의 유전학 철폐 정책에 반했던 벨라예프는 양질의 모피를 생산하기 위한 여우 육종 연구를 앞으로 내세우고, 뒤로는 늑대가 오랜 시간에 걸친 가축화 과정을 통해 개가 된 메커니즘에 의문을 품고 이 과정에서 분자 유전학적 변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그는 그의 옛 동료이자 탈린의 은여우 농장의 책임자였던 니나 소로키나를 설득한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사육하는 여우를 관찰해 “공격성이 덜한 여우”들을 골라 근친교배가 되지 않게 교배를 시키는 방법이었다.
Fig1. 드리트리 벨라예프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리센코는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고, 그해에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러시아의 유전학연구의 새 시대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는 기초과학단지를 조성하며, 세포학-유전학 연구소를 설립한다. 빌랴예프는 1957년 세포학-유전학 연구소의 부소장 겸 진화유전학 책임자로 발탁되며, 여우 프로젝트를 위해 ‘류드밀라 트루트’를 영입한다.
트루트는 처음 야생 여우들을 보고 ‘불을 뿝는 용’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야생 여우는 길들여지기 힘들 것 같은 동물이었다. 그는 일단 개체수를 늘리고, 늘어난 개체 중에서 근친교배를 피하며 가장 얌전한 수컷과 가장 얌전한 암컷끼리 교배를 시켰다. 얌전한 여우끼리의 교배가 행동유전학적 변화와 더불어 분자 유전학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 답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불과 4세대 만에 그는 꼬리를 흔드는 ‘엠버’를 발견하였고, 7 세대에는 더 많은 여우들이 꼬리를 흔들었으며, 8 세대에는 꼬리가 위로 말리는 개체가, 10 세대에는 개처럼 귀가 펄럭이는 개체와 얼굴에 얼룩무늬 반점을 보이는 개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Fig 2). 여우를 돌보는 여성 작업자들이 다 자란 여우들과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였고, 순한 여우들 가운데 일부는 은여우의 일반적인 경우보다 겨울에 며칠 더 일찍 짝짓기를 시작하였다.
Fig2. 세대에 따른 은여우의 변화 과정
이처럼, 야생동물 가축화의 특징은 반점, 얼룩 등의 얼굴의 털의 색깔 변화와, 늘어진 귀, 동그랗게 말린 꼬리 등의 “유형 성숙적 특징”을 보인다. 또한 야생 포유류는 1년 에 단 한 차례 짝짓기를 하는데 반해, 가축화된 포유류는 연중 아무 때나 몇 달 동안 여러 차례의 짝짓기가 가능하다. 가장 큰 특징은 ‘온순함’을 보이며, 이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기 용이한 온순한 행동이 ‘선택적 압력’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가축화’는 온순함으로 표출되는 표현형의 변화뿐만 아니라, 실제 가축화된 여우들의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켰으며, 이는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아닌 기존 유전자의 활성/불활성 기작 때문이라고 벨랴예프와 트루트는 생각했다. 또한, 인간과 함께 생활하고, 개별적으로 그들을 인지하고 유대감을 형성하고 보호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오래전 늑대가 개로 탈바꿈한 것이 “행동학습”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했다. 즉, '유전적 계통과 생활환경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행동을 유발한다'는 당시에는 혁신적인 증거를 그들은 은여우 실험으로 제시하였다.
함께하는 과학
냉전시대가 절정이었던 1971년 벨랴예프는 영국의 저명한 동물행동 유전학자인 오브리 매닝의 초청으로 러시아인 최초로 서방에서 개최되는 ‘동물행동 학회’에 초청을 받아 [은여우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그 후 세계에 소련의 유전학을 알릴 기회가 없던 벨랴예프는 매닝을 포함한 다른 유전학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연구를 소련 정부 몰래 서방 세계의 저널에 발표하기 시작한다. 벨랴예프의 이러한 노력으로 1977년 소련 당국은 소련 과학아카데미와 미국 국립과학원이 협력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서방 연구자들을 소련에 초청하고, 그들에게 여우농장의 길들여진 여우들을 보여준다. 1978년 소련 최초로 국제 유전학회를 유치하고 이 기회를 통해 세계 주요 유전학자들에게 소련이 과학계로 돌아왔음을, 리센코의 부인 주의가 완전히 사장되고,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 다시금 소련 유전학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벨랴예프와 매닝의 과학자로서의 우정은 과학이 ‘동서 대립’으로 인한 정치의 수단이나 철의 장막에 의해 희생이 되는 것이 아닌,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토론하고, 자연의 법칙을 알아가고, 지식을 쌓아가는 과학의 모든 과정은 이념을 넘어서는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매닝은 소련 방문 후 영국 정보국 MI5의 심문을 받기도 했다) 벨라예브는 자신이 죽기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친절해지십시오. 그리고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십시오. 모든 이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평화롭게 살고, 우리의 ‘형제들’-지구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전적으로 책임을 수행하십시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자연법칙을 연구하고 이 지식을 이용할 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또 한가지 국가를 넘어선 과학의 힘은 1980년대 말 트루트가 경험했다. 소련 경제가 격변하고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1998년에는 모든 종류의 국공립 기업 자금이 바닥나 버린다. 무려 40여 년을 지속해온 [은여우 프로젝트]에 위기가 찾아와 트루트는 세계를 향해 호소를 한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여우의 변화에 대해서 서술하였으며, 여우는 개 못지않게 헌신적이지만 고양이만큼이나 독립적이며 인간과 뿌리 깊은 유대를 형성할 줄 아는, 애완동물과 다름이 없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직 시도해 보지도 못한 여우의 게놈분석과, 길들인 여우의 특징과 그들의 독특한 인지능력에 대한 연구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여우의 가축화가 어디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에 기고했다. 이 기사를 접한 과학기사인 말콤 브라운이 [타임스]에 기사를 쓰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은여우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전 세계 동물애호가들과 일반인들이 후원을 시작했고, 전 세계 유전학자들과 동물행동학자들이 관심을 보이며 공동 연구에 손을 내밀었다. 트루트의 세계인을 향한 호소는 그렇게 많은 이들을 움직였으며, [은여우프로젝트]를 분자유전학적 연구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트루트는 다른 나라의 연구자들과 길들여진 여우의 행동 특성과 형태학적 특성이 여우의 염색체 12번이라는 구체적인 영역과 관련된 것임을 확인했으며, 염색체 12번의 유전자들이 개의 가축화와 관련된 유전자와 유사함을 밝혀냈다.
Fig 3. 류드밀라 트루트와 은여우
현재 80이 넘은 트루트의 꿈은 여우들을 위해 안전하고 사랑이 가득한 미래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 여우들을 새로운 애완동물 종으로 등록하길 희망합니다. 저는 언젠가 떠나겠지만 제 여우들을 영원히 살길 바랍니다.”
그의 꿈은 이미 시작되었다. 은여우가 러시아를 떠나 한국 땅에서, 사람들 뿐만아닌 다른 동물과 자유롭게 어울리고 있음이 그 것을 증명한다. 100세대가 지나고, 500세대가 지나서도 이 실험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여우에게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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