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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로 읽는 과학자 이야기 2 『별마다 사람이 있다네』
종합 과학작가 박재용 (2019-08-13 09:50)

별마다 사람이 있다네

로베르토 벨라르미노는 판결을 내린다. 

“죄인 조르다노 부르노의 죄는 다음과 같다.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 또 다른 인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영혼이 윤회한다고 믿는다. 
마리아의 처녀성을 부인한다.

어느 것 하나 죽음보다 가벼운 벌로 다스릴 수 없는 죄이며, 죄인은 이러한 주장에 굽힘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자비로운 하느님도 용서하지 못할 죄를 스스로 지은 자 조르다노 부르노, 죄지은 자여, 너의 죄에는 화형조차 가볍구나. 
이 자의 간악한 혀에 구멍을 뚫고, 이 자의 입 천정에도 구멍을 내어라. 더러운 말을 내뱉은 입에 쇠재갈을 물리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화형에 처하라.“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조르다노 부르노, 15년간 이탈리아를 떠나 스위스로 프랑스로 영국으로 다시 독일로 떠돌던 그는 어느 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기다리는 사람이라곤 이단 심판관뿐인 곳으로 마치 예루살렘 성문으로 개선 장군인양 짓쳐들어온 예수처럼, 그 또한 당나귀를 타고 들어올 때부터 기다리던 순간이다. 그는 영국에서의 한 만남을 회상했다. 

1583년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넘어간 부르노는 토머스 디거스의 책을 발견한다. 원래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굳게 믿고 있던 부르노에게 디거스의 책은 새로운 지평을 연다. 

생각해보라. 그대여. 만약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면, 먼먼 항성들이 진정 천구에 박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왜 우리는 연주시차를 볼 수 없는가. 이유는 명백하다. 천구가 너무도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대여, 그대의 머리, 그대의 지성을 믿고 연역해보라. 저리도 멀리 있는 별들이 저리도 빛난다면, 저 별들이 태양과 같은 거리에 있다면 얼마나 환할 것인가? 실로 태양만큼이나 빛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대여. 우리의 머리 위를 밝히는 태양과 저 먼 별 사이에 인간으로부터의 거리 이외에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하다. 진정. 저 먼 수천의 별들은 모두 그 자체로 또 다른 태양이다. 그렇다면. 다시 그대의 지성을 믿고 연역해보라. 저 수많은 별들이 또 다른 태양이라면, 지금 우리가 하늘을 올려 태양을 보듯이 저 별에 속하는 행성에서 별을 보며 우리처럼 감탄하는 이가 없을 수 있겠는가? 

부르노는 세찬 벼락을 맞은 것처럼, 눈에 씌어진 비늘을 벗어버렸다. 

오 그렇구나. 진정. 그렇다면 예수는 무엇인가. 별마다, 별의 지구마다 예수가 존재하는가? 우리의 하느님이 어찌 수많은 우주의 지성체중에 오직 인간만을 이뻐해서 자신의 아들을 내려 보냈겠는가? 그렇다면 다시 용감하게 연역의 끝을 향해 나아가자. 부르노 너는 할 수 있다. 해내야 한다. 만약 수많은 지성체가 인간 이외에도 존재한다면, 한낱 인간에 불과한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할 어떤 필연이 존재하기나 할까? 예수가 만약 그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면,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예언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런 예수를 낳은 마리아 역시 자기 배로 아이를 낳은 다른 여인과 마찬가지로 남자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내 지성의 연역으로 내린 결론에 나 스스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을 제외하고 성경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성경의 오류는 어쩔 수 없는 일. 불완전한 인간이 아직 과학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써내려간 불완전한 책이기 때문이다. 나의 하느님은 우주 어디에고 있으며, 우주적 원리 그 자체이다. 

나의 지성은 나에게 명령을 내린다. 가서 붙으라. 이 거대한 기만에 맞서 너의 최선을 다해 저항하라. 가라, 이탈리아로. 가라 교황의 권좌에 조롱을 퍼부으러. 가라, 죽음을 맞이하라. 너는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처럼 가라. 너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이 너의 손바닥에 대못이, 너의 옆구리에 쇠창이. 그리하여 너는 우주의 비밀을 로마에서 밝혀라. 
온 유럽을 다니며 우주의 비밀을 설파하며 로마로 가라 부르노. 

이탈리아로 돌아온 부르노는 당연하게도 감옥에 갇혔다. 단 하나의 요구뿐이었다. 부인하라. 너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라. 그가 할 수 없는 단 하나를 요구하며 8년 동안 온갖 고문이 가해졌다. 이제 판결로 그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르다노 부르노는 기쁨에 차 입술을 연다. 터진 입술 여기 저기 조금씩 핏기가 배어 나오고, 통증이 온 몸 곳곳에서 감각신경을 타고 대뇌로 이어지지만 상관없었다. 
“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을 듣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나의 두려움보다 오히려 더 클 것이다. 화형이 대수랴. 더 가혹한 형벌이 있다면 그를 나에게 내리라”

1600년 2월 19일 일요일. 그는 ‘자비와 연민단’이 이끄는 수레에 실려 로마 전체를 돌았다. 오 자비여 오 연민이여, 진정 너희가 내게 자비와 연민을 베풀어 이 지상에서의 일을 끝낼 수 있도록 해주었구나. 조르다노 부르노는 여기 저기 끊어진 근육 사이로 새로운 힘이 솟는 걸 느낀다. 

벌거벗은 채 장작더미 위 말뚝에 묶인 조르다노 부르노. 횃불을 들고 온 예수회 사제들을 보며 웃음을 짓는다. 
“말뚝에 묶여 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는 당신들이 더 공포에 떨고 있구나. 자 지체하지 말고 그 횃불을 던져라. 영생을 원하는 자들이여 그 불로 내게 영생을 보여주라. 내가 불 탈 이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서 내 영원히 살아남으리라”
17세기는 그렇게 부르노를 태우며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기는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대신 프랑스에서 영국에서 과학 혁명으로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다만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은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붉게 타올랐다. 

그로부터 289년 뒤인 1889년 빅토르 위고, 헨리크 입센, 마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바쿠닌 등은 전 유럽의 기부로 캄포 데 피오리 광장, 화형의 장소에 부르노의 동상을 세운다. 동상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A BRUNO - IL SECOLO DA LUI DIVINATO - QUI DOVE IL ROGO ARSE
브루노, 그대가 불에 태워짐으로써 그 시대가 성스러워졌노라.

성 베드로 광장에선 늙고 힘 빠진 교황 레오 13세가 브루노를 추앙하는 이들에게 불벼락이 떨어지길 바라며 하루 종일 단식기도를 했지만 벼락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전자기력이 무엇인지 아는 시대가 되었고, 불벼락은 피뢰침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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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1548년 ~ 1600년 2월 17일

이탈리아의 사상가이며 신비술사, 철학자이다. 기존 기독교의 비합리성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고함으로 화형을 당한 순교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주장 가운데 가장 이단으로 여겨진 부분은 우주관이다. 그는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 있고 태양은 그 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다. 모든 별들은 태양과 같은 항성이며 그 항성들마다 지성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르다노 브루노
조르다노 브루노의 동상 © 위키백과

토마스 디거스 Thomas Digges 1546년 ~  1595년 

영국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영국에 소개했으며 멀리 있는 별들이 모두 태양과 마찬가지의 항성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무한히 많은 별들이 빛을 뿌리는데 왜 밤하늘이 어두운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흔히 '어두운 밤하늘의 역설dark night sky paradox'의 최초 제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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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 (오래된 공부 못하는 학생, 과학 작가, 사단법인 ESC 회원 )
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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