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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랩 걸'을 쓰자!
Bio통신원(곽민준)
2019년 현재, 마블 스튜디오는 전 세계 영화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제작사 중 하나다.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세계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2008년 영화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왔고, 지난 사월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기록적인 흥행과 수익을 올리며 12년간 진행된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했다. 흥미롭게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는 정말 많은 과학자 (혹은 공학자)들이 등장한다. 자신을 대표하는 명대사로 팬들과의 이별을 고한 사실상의 주인공 아이언맨을 비롯하여 영화 내에서 ‘괴물로만 변하지 않는다면 스티븐 호킹 같다’라는 소개를 들은 브루스 배너 혹은 헐크, 거기다 앤트맨을 만든 행크 핌 박사와 한국인 배우 수현이 연기한 헬렌 조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주요 인물들의 직업 중 가장 흔한 것이 과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 내 영화들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은 대중이 흔히 떠올리는 과학자의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헐크는 천재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감마선 연구 도중 탄생한 괴물이다. 지구에서 사람을 멸종시키려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악당 울트론 역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연구 도중 실수로 태어난 AI다. 이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악당 혹은 괴물들은 과학자의 연구가 엇나갔을 때 벌어지는 사회적 물의와 비극이 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과거 매체나 작품에서 흔히 묘사되던 과학자의 이미지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웠다. 때로는 악당 혹은 사회적 해악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최초의 과학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역시 과학자의 연구가 통제를 벗어나며 발생한 사회적 물의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이처럼 매체에서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에 미쳐 사회를 위기에 빠트리는 부정적인 존재로 여러 차례 묘사되어왔다. 그러나 이런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매체 속 영웅들 역시 대부분 과학자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인류와 우주를 여러 차례 구원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자가 <프랑켄슈타인>에서처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3년 진행된 한 국내여론조사에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직종 1위로 과학기술인이 뽑힌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지금의 과학자는 악당보다 오히려 영웅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국가와 사회는 과학자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룩해 국가경쟁력을 길러주기를 바라며, 대중은 엄청난 발견과 발명으로 자신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주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이들은 과학자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과는 다른 차원의 사람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과학자들과 함께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유명 정치인 출신 작가는 방송에서 과학자를 ‘21세기 제사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대중이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아주 오래전의 제사장, 혹은 주술사와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이들이 받던 시선과 아주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 관점에서 이렇게 자신을 영웅시 하는 사회가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셀링 사이언스>에서 도로시 넬킨은 과학자에 대한 동경의 시선이 조성한 과학에 대한 신비감과 권위가 오히려 과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보지 않게 만드는 부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른 출연진에게 ‘21세기 제사장’이라는 표현을 직접 들은 뇌과학자는 어떤 명제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과학 연구에 따르면’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기만 하면 그 명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가 상승했다는 연구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어쩌면 과학의 한계를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과학자가 악당이나 사회적 해악으로 소개되는 것보다는 물론 기분 좋긴 하지만, 대중에게 과학자가 영웅이나 신비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 역시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제일 좋은 것은 있는 그대로 표현되는 거다.
며칠 전 드디어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을 받은 책 중 하나인 ‘랩 걸(Lab Girl)’을 모두 읽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인간 ‘호프 자런’의 인생 중 과학자로 살아온 삶의 기록이라 말할 수 있다. ‘랩 걸’에 묘사된 호프 자런의 첫 실험실은 아이언맨의 거대한 저택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조그만 방 한 칸에 불과했다. 그 작은 방에서 그녀는 동료와 실험기구를 폭발시키는 사고를 치는 등의 사건을 겪으며 소박한 실험을 이어갔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의 과학자 호프 자런이 헐크나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킬 만한 위험한 연구를 하는 인물일 리는 없다. 그녀는 세상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영웅도 아니며, 일반인은 모르는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 신비로운 존재도 당연히 아니다. 과학자 호프 자런은 그저 식물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쑥스러운 한 명의 딸이자, 누군가의 아내이며, 또 어머니다. 그녀도 한때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힘겨운 시기를 보냈고, 여자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벽에 부딪히기도 하며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조금 많이 뛰어난 성과를 낸 학자이자 유명 작가라는 명예를 제외하면, ‘랩 걸’ 속의 과학자는 여느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이다.
과학자의 평범한 삶을 그린 베스트셀러 랩 걸
‘랩 걸’이 좋은 책인 이유가 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화려한 표현과 뛰어난 글솜씨 때문은 아닐 것이다. 평범하고 소박한 주인공 과학자의 인생이 독자의 마음을 얻었기에 ‘랩 걸’이 이토록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매체와 언론은 과학자를 일반인과 다른 악당 혹은 영웅으로 대하고, 이로 인해 대중은 과학자에게 거리감을 느끼지만, ‘랩 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과학자들이 스스로 알고 있듯이 과학자도 그저 그런 평범한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개인적인 사심을 조금 담자면, 과학자들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과 호기심이라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바라보는, 그저 조금 사랑스럽고 매력적일 뿐인 평범한 이들이다. 과학자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지 못한 것은 매체와 언론이 그 진짜 매력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호프 자런이 받은 사랑과 ‘랩 걸’의 성공이 바로 그 증거다. 그래서 필자는 과학자와 과학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악당도 아니고 영웅도 아닌 진짜 과학자의 순수한 본연의 모습을 사회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과학자들이 사회로 나갔으면 좋겠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과학자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을 대중에게 이야기해줬으면 한다. 만약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면, 또는 남들 앞에 서는 게 쑥스럽다면 살면서 ‘랩 걸’이든 ‘랩 보이’든 과학자로 살아온 인생이 담긴 책 한 권 정도만이라도 적어줬으면 한다. 스포츠에서도 잘 생기고 매력적인 몇몇 스타 선수의 인기가 그 종목의 열풍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과학자도 팬클럽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과학자의 팬은 곧 과학의 팬이다. 이것이 과학을 살리는 길이다. 과학을 진정 사랑하는 과학자라면, 그리고 스스로 과학을 살리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랩 걸’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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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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