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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문화로서의 과학, 그리고 사회 -(중)-
오피니언 곽민준 (2019-07-10 09:27)

문화로서의 과학, 그리고 사회

 ‘과학이란 무엇일까?’ 과학고에 입학한 직후 과학자의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떠오른 첫 번째 질문이었다. ‘과학(科學)’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일본의 사상가였던 니시 아마네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여러 개의 분‘과(科)’로 나뉜 학문이라는 조금은 엉뚱하고 어이없는 의미에서 이 이름을 붙였다. 흥미롭게도 영어 단어 ‘science’가 쓰이기 시작한 시기도 이와 비슷하다. 그 이전에는 지금의 과학을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 불렀다. 뉴턴, 갈릴레오, 보일 등 잘 알려진 17세기 무렵의 학자들이 당시 불리던 직업명 역시 자연 철학자였다. 그럼 자연철학이라 불리던 당시의 과학과 지금의 과학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과학과 science라는 단어가 등장한 19세기 무렵은 과학이 처음 제도화된 시기다. 정부와 대학 등의 기관이 본격적으로 과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과학과 기술이 융합되어 인간의 문명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직업적으로 과학을 하는 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시기 역시 이때쯤이다.

 19세기 제도화되고 팽창하기 시작한 과학은 21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된다. 과학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자면, 19세기부터 지금까지를 ‘제도화된 과학’이라는 한 틀로 묶을 수 있다. 19세기 국가와 사회가 처음 과학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이런 분위기가 더 강화되었다. 지금도 과학기술의 수준은 각 국가의 힘과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19세기 이전의 과학의 형태는 이와 매우 달랐다. 지금처럼 기관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전문적인 과학자는 많지 않았다. 당시 과학자들 대부분은 다음의 두 분류 중 하나에 해당했다. 엄청 돈이 많은 귀족이거나, 엄청 돈이 많은 귀족에게 지원받는 이들. 전자에 해당하는 유명한 인물에는 로버트 보일이 있다.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은 갈릴레오, 궁정 수학자로 활동한 튀코 브라헤와 케플러 등은 돈 많은 이들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자연 철학자들이다.

 로버트 보일처럼 자신의 돈으로 자신이 궁금한 질문의 답을 찾는 경우를 제외하면, 과학 연구는 돈을 지원해주는 이들이 원하는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당연한 논리인데, 과학 연구를 하고 싶은 이와 과학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에 관심이 많은 이가 만나, 후자가 전자에게 연구비와 연구환경을 제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19세기 이전에 과학 연구를 지원하던 이들의 목적은 대부분 순수한 호기심 또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고찰이었다. 그래서 당시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찾는 순수한 행위가 가능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주체가 대부분 국가와 사회로 바뀌며, 과학의 방향성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자에게 돈을 지원해주는 국가와 사회는 과학적 과정의 결과물이 공학적으로, 또는 의학적으로 활용되어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과학이 제도화된 이후 인류의 문명 발전 속도가 엄청났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실제로 과학은 그러한 역할을 매우 잘 수행해왔다. 문제는 사회가 과학에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고, 이에 따라 학자들이 점점 과학적 과정 그 자체가 아닌 사회가 원하는 그 이후 단계의 활용에만 집착하기 시작하며 학계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의 경계가 불분명해졌으며, 기초과학은 멸시받고 있다. 그리고 그 주된 원인은 학계와 사회의 지나친 성과주의로 생각된다-이는 직전 연재 글에서 자세히 다룬 내용이다-. 따라서 필자는 지금의 과학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과학을 지원해주는 이들이 과학에 바라는 가치가 편리한 삶과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야만 한다. 

 19세기 이전의 자연 철학자들에게 돈을 지원해준 이들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과학자들에게 투자했다. 돈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순수했으므로 과학자들도 순수하게 자연의 호기심을 탐구할 수 있었다. 현대 과학도 그런 후원자를 만나야만 한다. 과학을 공학적으로 활용해 돈을 벌고 편리한 삶을 사는 것도 좋고, 의학적으로 활용해 건강히 오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아무 목적 없이 과학을 지원해주는 이가 있어야 과학이 계속해서 살아남아 발전할 수 있고, 성과주의로 인한 여러 심각한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한 방안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돈 많은 부자가 개인적으로 과학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이 살아남기에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필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다. 바로 과학을 후원하는 국가와 사회가 과학을 순수하게 즐기게 만드는 거다. 국가와 사회의 주인인 시민들이 과학을 순수하게 사랑하게 된다면, 그리고 마치 과학을 하나의 문화로 여기게 된다면 지나친 성과주의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축구처럼 과학이 문화가 된다면, 과학과 과학자의 팬들도 생길 거고, 여가 활동으로 과학 공부와 실험을 즐기는 이들이 등장할 거다. 당연히 사회는 과학을 지지하기 시작할 거고, 과학 연구 결과가 만들어낼 돈이 아닌 연구 과정과 결과가 관심을 받는 사회가 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는 최고의 방안이다. 연구 부정행위, 유사 과학 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과학 시스템을 위협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문화로서의 과학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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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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