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생명과학도들에게 수식은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 가지 기억하는 방정식이 있다. 이것은 ‘미켈리스-멘텐 방정식’ (Michealis-Menten Equation) 이다. 그러나 생화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이 방정식에 붙은 ‘미켈리스’ 와 ‘멘텐’ 이 과연 누구였는지 찾아본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
레오노레 미켈리스(1875-1949) 는 독일인으로써 의사로 출발하여 베를린대학에서 연구를 한다. 마우드 레오노라 멘텐 (1879-1960) 은 캐나다인으로 토론토에서 여성 최초로 의학을 공부하였다. 멘텐은 더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당시의 성차별의 한계에서 방황하다 베를린으로 가서 미켈리스와 함께 효소의 반응속도론에 대한 연구를 하고, 1913년 현재까지 생화학책에 그들의 이름으로 알려진 방정식을 출판한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여기에서 갈리고, 미켈리스와 멘텐은 다른 길을 걷는다. 미켈리스는 당시 학계 대가의 심기를 건드려 독일 학계에서 입지가 곤란해진다. 게다가 1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의 경제상황은 극히 악화되었다. 이 때 미켈리스가 선택한 것은 ‘헬독일’ 을 뜨는 것이었다. 그의 목적지는…지구 반대편에 있던 일본이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유학을 보내 과학을 익히던 상황이었으나 미켈리스와 같이 독일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과학자는 그가 최초였다. 그는 1922년 현재 나고야대학 의대의 전신인 아이치 의과대학에서 생화학 교수로 취임한다. 그러나 미켈리스의 일본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1926년 일본을 떠나 존스홉킨스 대학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록펠러 연구소로 이적한다. 그가 왜 일본을 떠나서 미국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51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가서 다시 활발한 연구를 수행한다. 막 투과성에 관한 연구부터 토코페롤의 산화까지 다양한 연구를 74세의 나이인 1949년까지 수행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해에도 몇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할 만큼 생산적인 과학자였다. 한편 멘텐은 미켈리스와 연구를 끝낸 후 미국으로 가서 시카고 대학에서 학위를 마친 후, 피츠버그대학에 27년 동안 재직하면서 69세에 정교수로 승진하기까지 꾸준한 연구활동을 한다. 말년에 멘텐은 캐나다로 돌아가서 연구를 계속한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에 연구를 한 이들의 생애를 보면 참으로 많은 나라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미켈리스의 경우에는 독일 – 일본 – 미국을 거쳤으며 멘텐은 캐나다 – 미국 – 독일 – 미국 – 캐나다를 거쳤다. 이 두 사람 이외에도 이 시절의 수많은 유명 과학자들은 최소 한두번은 활동 국가를 옮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특히 20세기 초반의 두번의 세계대전과 같은 역사적인 이벤트를 통하여 과학자의 대거 이동이 일어났으며, 유럽에서의 과학자의 대거 유입이 현재의 과학종주국으로 꼽히는 미국의 위상을 구축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즉 과학자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 적인 속성이 있다. 유목민은 근본적으로 한 곳에 정착해서 있지 않는다. 유목민은 데리고 다니는 가축이 먹을 풀이 있는 곳을 찾아서 끊임없이 방랑해 다니게 된다. 과학자 역시 과학의 근본적인 속성들이 과학자가 마치 유목민처럼 행동하게 한다.
첫번째는 과학자는 다른 전문직업인과는 달리 세계 어디에서든 통용되는 보편적인 언어인 ‘과학’으로 이야기한다. 가령 법률가와 의사 등의 상당수의 전문직은 국경을 넘어서는 자격을 다시 취득하기 전에는 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과학자의 직업인 과학은 근본적으로 범세계적이므로 웬만한 경우에는 국경을 넘어도 바로 활동 가능하다. 더욱이 오늘날의 과학자는 과학자로써 훈련 받는 과정에서 국제 학회 또는 학술지에 발표하는 등의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 있으며 지구 반대편의 연구자와의 공동 연구도 활발히 진행한다. 따라서 과학자는 세계 어디에 있건 통하는 ‘세계어’ 로써의 과학으로 대화하므로 문화적 – 언어적 장벽에 묶이는 경우가 많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타국으로 이주하기가 용이하다.
두번째 요소는 과학, 특히 당장의 응용성을 찾기가 힘든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의 분배는 일종의 ‘한정된 자원’ 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비록 기초과학에서 창출된 발견이 산업적으로 응용되는 산물의 근원이 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기초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산업이 발전하고 국부가 창출되는 것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국가에서 기초과학이 융성하는 쪽이 현실적인 편이다. 즉 과학자는 ‘과학에 대해서 투자를 할 만한 여유’ 가 있는 나라를 찾아서 떠도는 것은 과학의 발전과정 속에서 계속 있어왔던 일이다. 가령 유럽, 특히 독일이 세계 과학의 중심이던 19세기 말에는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유럽으로 몰려왔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미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과학의 중심지를 유지했지만, 2차 대전 이후 완전히 미국 중심의 팍스 아메리키나가 개막된 이후 과학의 중심은 미국이 되었고, 미국은 세계의 과학자, 그리고 과학자를 꿈꾸는 과학도를 흡수해 나갔다. 이러한 추세가 영원할까?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경제의 문제로 인한 과학 투자의 정체, 그리고 노골적으로 반과학적 태도를 표방하는 트럼프 정권의 출발로 인해 이제 미국이 모든 과학자를 흡수하는 그런 과학계의 진공청소기의 역할을 하던 시기는 끝나간다. 즉 바다 건너 어딘가에서 쏟아내던 과학 인력을 소화해주던 ‘버퍼’ 였던 미국의 역할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조만간 미국의 대학에서 연구하던 수많은 외국인 과학자들은 자신의 나라, 혹은 세계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 일부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자가 가지는 본연적인 유목민적인 성격에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원래 과학과 과학자가 가진 본연의 성격과 관련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자의 유목민적인 본질을 이해한다면 자신이 훈련을 받은 곳에 일자리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당신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과학자라면 어디서건 과학자로써 생계가 보장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대개 자신이 한 나라에서 쌓은 많은 것을 버리고 가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에 비해서 자신이 그 동안 쌓은 스킬과 지식을 그대로 들고 갈 수 있는 과학자만큼 해외 이주에 좋은 직업이 없다. 특히 ‘헬조선 탈출’ 이 마치 지상과제처럼 생각되기도 하는 요즘의 한국 상황에서 과학자라는 직업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메리트는 ‘세계 어디에서도 통용되는’ 과학의 보편성이 아닐까.
자신이 태어나서 교육받은 곳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과학자의 유목민적인 성격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즉,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많은 해외 출신의 과학자와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결코 이 흐름은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대학원에서 외국인 유학생의 비율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인구 절벽의 파급효과가 본격적으로 몰려오는 몇 년 후에는 아마 한국의 대학/연구소의 연구실에서 토종 한국인을 찾는 것이 매우 희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외국인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배타적인 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재능 있는 외국 과학자가 활약하고, 한국 과학계에 뿌리를 내릴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자국에서 고도의 교육을 받은 인적자원이 해외로 이주하고, 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인원이 귀국하지 않는 것을 ‘두뇌 유출’ (Brain Drain) 으로 칭하며 국제 경쟁력 하락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로 생각한다. 그리고 과학고급인력의 귀국을 어떻게 유도할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한 것은 국가와 사회가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과학의 발전단계에서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학 발전 없는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 사회는 과학 인력을 경제발전에 필요한 일종의 소모성 자원 정도로 생각했고 이를 위해 가장 경제적인 (값싼) 노동력인 대학원생 위주로 과학분야에서 양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과학의 양적인 발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증가한 대학원생들이 그 과정을 마치고 박사급 인력으로 증대하였지만,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뚜렷한 대책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배출된 많은 박사학위자들의 상당수는 안정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위치를 국내에서 확보하지 못하고 상당수 해외에서 연구생활을 이어나가거나 연구와는 상관없는 분야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외에서 연구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여 국내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극히 일부의 ‘운 좋은’ 연구자들도 최소의 연구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좌절하는 경우는 너무나 빈번하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출신 과학자들이 생존을 위해서 해외를 바라보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 정부와 사회는 한국 출신의 과학 인재가 한국을 이탈하는 현상 그 자체에 집착하기보다는 한국에 있어서 ‘과학’ 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될 때가 아닐까? 만약 한국 정부와 사회가 ‘과학’을 경제발전의 수단 정도로만 의미부여를 하는 현행의 세태가 계속된다면 결국 한국의 과학자들은 자연스럽게 대한민국보다 과학을 좀 더 잘 대접하는 국가에서 활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 연구 자체가 결코 쉬운 활동이 아닐진대, 과학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이해하는 사회에서 과학을 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쉽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자에게는 자신을 낳아준 조국은 있을지언정, 과학자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연구를 이해하고 지원해 줄 ‘제 2의 조국’ 인 셈이다. 대한민국이 한국 출신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유능한 과학자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터전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과학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구성원 전체가 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남궁석 (MadScientist in Secret Lab of Mad Scie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