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베타수용체(β-adrenergic receptor)는 심장근육세포(심근세포)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수용체 단백질로서 심장 기능의 항상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양한 원인에 의해 심장기능이 저하되면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가 활성화되어 심근세포의 베타수용체가 자극되고, 이는 생리적으로 심근수축력을 증가시켜 저하된 심장기능을 일시적으로 회복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장기간 베타수용체의 자극이 지속되면 심근세포의 사멸이 촉진되어 심부전이 진행된다는 것이고, 지금까지 심근세포의 운명(생존 혹은 사멸)이 어떻게 베타수용체의 자극에 따라 상반되게 조절되는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았습니다. 심근세포에 존재하는 베타수용체는 크게 베타1수용체와 베타2수용체로 구분되며, 이들이 자극되면 각각 세포사멸과 세포생존이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심근세포에는 두 종류의 수용체가 복잡한 하위 신호전달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두 종류의 수용체를 모두 활성화시키는 호르몬자극(예: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주어지는 경우, 직관적으로 심근세포의 운명 결정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연구팀은 정보기술(IT)과 생명과학(BT)의 융합연구인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 연구를 통하여 베타수용체 신호전달경로에 의해 조절되는 심근세포운명 결정과정의 신호전달 메커니즘을 규명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본 연구팀은 먼저, 현재까지 알려진 문헌정보에 기반하여 베타수용체 신호전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래트(rat)의 심근세포를 이용한 실험데이터를 활용하여 수학모델을 개발한 다음, 수학모델에 기반한 대규모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베타수용체 자극의 세기에 따른 심근세포의 반응을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강한 베타수용체의 자극에 대해서는 Bcl-2(B-cell lymphoma 2; 세포생존 촉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호전달분자) 단백질의 발현량이 감소되었지만, 약한 자극에 대해서는 발현량이 오히려 증가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와 같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예측된 Bcl-2의 상반된 발현양상은 래트 심근세포를 이용한 세포생물학 실험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관찰되었고, 또한 세포생존율 실험을 통하여 Bcl-2의 발현량이 심근세포의 생존 및 사멸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 결과는 베타수용체 자극의 세기에 따라 Bcl-2의 발현양상이 조절되고, 이를 통해 심근세포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세포사멸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던 베타수용체의 자극이 실제로는 그 자극의 세기에 따라 세포사멸 또는 세포생존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약한 베타수용체의 자극에 의한 심근세포의 생존율 증가 및 이를 통한 심근세포 보호 효과는 이번 연구에서 처음으로 밝혀낸 사실이며 의약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심근세포의 운명(생존 혹은 사멸)이 어떻게 베타수용체의 자극에 따라 상반되게 결정되는 것일까요? 이러한 생명현상을 만들어 내는 설계원리(design principle)은 무엇일까요? 연구팀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개발된 수학적 모델에 대한 대규모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을 수행하여, ERK 신호전달경로와 ICER 신호전달경로가 형성하는 부정합 피드포워드 회로(incoherent feedforward loop)가 심근세포의 생존과 사멸을 결정하는 핵심 분자스위치임을 밝혀내었습니다. 즉, 약한 베타수용체의 자극에 대해서는 ERK 신호전달경로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하여 Bcl-2의 발현량이 증가되어 결과적으로 심근세포의 생존이 촉진되는 반면, 강한 베타수용체의 자극에는 ICER 신호전달경로의 활성을 통해 Bcl-2의 발현량이 감소하게 되어 심근세포의 사멸이 유발되는 것을 모델을 통해 예측하였고, 이를 실험으로 검증하였습니다.
이번 연구는 생명현상의 수학 모델링과 컴퓨터시뮬레이션 분석 및 세포생물학 실험을 통하여 베타수용체 신호전달경로에 의해 조절되는 심근세포운명에 대한 근본원리를 규명한 것으로써 시스템생물학 연구를 통해 복잡한 생명현상의 숨겨진 원리를 파악할 수 있음을 보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이번 연구는 향후 심근세포운명의 제어 및 이를 통한 심부전 등의 다양한 심장질환 치료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연구는 카이스트 조광현 교수님 연구실과 광주과학기술원 김도한 교수님 연구실과의 공동연구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기억 남는 것은, 연구초기 본 연구자가 수학적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극물의 농도에 따라 Bcl-2의 농도가 스위칭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광주과학기술원의 김태용 박사(공동 1저자)에게 실험 검증을 제안 했을 때 입니다. 그 당시 지속적인 베타수용체 활성화는 세포 사멸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본 연구자가 제안한, 즉, 낮은 농도에서 세포의 생존이 촉진될 수 있다는 가설을 실험생물학자 입장에서는 매우 급진적이어서 아마 받아 들이기 어려울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한달 후 김태용 박사가 제안한 실험을 수행해 주었고, 실험 결과는 모델에서 예측한 것 과 정확하게 일치하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모델러(modeler)인 본 연구자와 실험생물학자인 김태용박사에 사이에는 연구에 대한 강한 신뢰와 유대가 형성되어서 그 이후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특히 기억에 남근 것은, 연구를 모두 마무리하고 난 뒤에도 조광현 교수님과 함께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정말 힘들게 꼬박 수개월을 전념했든 기억입니다. 물론 힘들었든 기억이기도 하지만, 매일 오전 교수님과 함께 카이스트 캠퍼스를 걸으면서, 또는 교내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연구결과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든 기억은 본 연구자에게 있어서는 정말 즐거운 추억이기도 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연구는 카이스트 조광현 교수님 연구실과 광주과학기술원 김도한 교수님 연구실의 공동연구로 진행되었습니다. 조광현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수학적 모델링과 대규모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을, 김도한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세포생물학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본 연구자는 조광현 교수님 연구팀 (시스템생물학 및 바이오영감공학 연구실)에 속하여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카이스트 시스템생물학 및 바이오영감공학연구실 (조광현 교수님 연구팀)은 시스템과학(컴퓨터과학/물리학/수학/전자공학/기계공학 등)의 원리를 생명과학에 응용하여 복잡한 생명현상의 근본원리를 분석하고 제어하는 학제간 신기술융합연구인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실은 1999년에 전세계적으로도 최초로 시스템생물학 연구를 시작했으며, 현재는 분자세포생물학 실험실과 대규모 클러스터로 구성된 슈퍼컴퓨터실을 함께 갖추어 시스템생물학 융합연구를 실험실내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그야말로 세계적 수준의 연구실입니다. 이를 위해 연구실에서는 수학모델링과 대규모 컴퓨터시뮬레이션에 기반한 IT융합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이를 인체질환과 관련된 여러 생체신호전달네트워크에 적용하여 그 핵심원리를 규명하고 제어원리를 개발하는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새로이 규명된 생명체의 동작원리를 응용하여 새로운 공학시스템을 설계 및 개발하는 바이오영감공학(Bio-Inspired Engineering) 연구도 또한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GIST 시스템생물학 연구실(김도한 교수님 연구팀)은 심장질환과 그에 관련한 칼슘대사신호에 관한 시스템생물학 연구를 해왔습니다.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통합적 시각을 가지고, 좁게는 칼슘대사나 심장질환에 관여하는 각 분자(단백질, miRNA, lncRNA 등)의 기능 및 질병과의 연관성을 연구해왔으며, 넓게는 심장질환 동물모델에서 microarray, next generation sequencing을 이용한 발현전사체 데이터를 생산하고 분석하여 시스템 차원에서 심장질환 발병기전을 연구해왔습니다. 또한 다층적 데이터를 통합하고 시스템 수준에서 생체를 볼 수 있도록 돕는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하는 등의 시스템생물학 인프라 구축도 수행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시스템생물학 국책 과제 등을 수행하며 심장질환에 관한 시스템생물학 연구를 왕성히 수행 중입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본 연구자의 은사이기도 한 조광현 교수님께서 늘 하시던 '연구는 애정과 열정으로 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늘 어떤 문제에 부딪쳐서 좌절하고 싶을 때도 있고,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왜 내가 이 연구를 하는 지를 사심 없이 생각하다 보면, 이내 연구 주제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 연구자에게 있어 연구는 '연애' 인 것 같습니다. 연구자 잘 될 때는 연인이 밀월을 즐기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다가도,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면 심하게 다툰 연인처럼 다시 돌아보기 싫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문제를 다시 잡아드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연구자에게 있어 늘 그렇듯이, 새로운 사실의 발견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요. 마치 하얀 눈 내린 새벽,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고요히 혼자 걷는 기분, 이것이 연구자의 자부심이자 보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시스템 생물학은 지난 10여년 동안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연구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생물학은 다시 세부적으로 다양한 분야로 나누어 지는데, 본 연구자는 그 중에서도 특히 세포 신호전달시스템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과 대규모 시뮬레이션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생명현상을 탐구하는 모든 분야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겠지만, 수학적 모델링은 전통적인 실험기법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든 생명현상을 컴퓨터 모형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명현상의 지배원리를 탐구하는 분야로 참으로 매력적인 연구분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많은 문헌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생체 시스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분석은 21세기 생물학을 이끌고 나갈 혁명적 연구분야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본 연구자는 2013년 KAIST에서 이직하여 현재 아일랜드 시스템생물학 연구소에서 마리퀴리 펠로우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자에게 있어서 외국생활은 처음이라 이직 후 초기 정착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차차 유럽의 시스템을 익혀가며 나름대로 잘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혹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해외에서 포스닥를 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한국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제가 있는 Systems Biology Ireland 연구소도 그렇지만, 해외 유수의 연구기관에서는 이미 한국과자들의 연구 성과와 능력에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 있게 자신을 표현하고 당당하게 해외연구자들과 경쟁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현재까지 본 연구자는 cardiac 과 cancer systems biology를 주로 연구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듯, 앞으로도 이 두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cardiac systems biology 연구에서는 심근세포의 운명결정과정과 심부전 발생과의 관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탐구해 나갈 계획입니다. Cancer systems biology 분야에서는 cell cycle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 그리고 colon과 melanoma cancer signaling pathway에 대한 모델링 연구를, 항암제 내성 메커니즘 탐구와 함께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를 진행해나갈 계획입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본 연구를 끝까지 지도해주시고 지원을 아까지 않으신 카이스트 조광현 교수님과 광주과학기술원의 김도한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공동 1저자로서 가설 검증을 위한 모든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신 김태용 박사님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공저자로서 논문의 세부적인 부분과 크고 작은 오류를 발견하고 지적해 준 이호성, 강준혁 박사과정 학생에게도 깊이 감사 합니다.
<카이스트 조광현 교수님 연구실>
<GIST 김도한 교수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