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본 연구의 관련 분야를 굳이 한정한다면 "human" T cell immunology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물 모델을 이용하는 고전적인 면역학에 비교하면 전세계적으로도 아직은 그 저변이 넓지 않은 것 같고, 특정 유전자의 조작을 통한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이 이야기하는 명쾌한 인과 관계를 밝히는데 어느 정도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연구를 진행하면서 힘겨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환자의 몸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생리적/병리적 현상을 그대로 보여 줄 수 있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기초 면역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면역학의 언어로 그것을 해석(translation)해 임상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쁨이 존재하는 분야입니다. 즉, 비록 명확한 인과 관계는 아니지만, 관찰한 현상의 결과나 통계적으로 명백한 상관관계를 기초의학적으로 그리고 임상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통해,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될 수 있는 지표를 개발/발견하거나 새로운 치료의 타겟을 발굴해 내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 연구의 주제는 "면역병리현상의 조절 기전"이고 소재는 "인간의 급성 바이러스 감염증"입니다. 면역병리현상이란 감염이라는 상황에서 병원체에 의한 조직의 손상이 아닌 감염에 이차적으로 활성화된 면역세포에 의한 역설적인 조직 손상입니다. 과거 다양한 조직 손상 모델 (감염질환, 자가면역질환 모델 등) 을 이용한 연구가 동물 실험을 통해 이루어져 왔고, 그를 통해 조직 손상의 조절자로서의 조절 T세포 (regulatory T cells, Treg cells) 의 역할은 많은 보고가 있었습니다. 반면, 실제 인간의 감염 (=환자) 에서의 유사한 맥락의 연구는 많이 이루어 지지 못해 왔었고, 특히나 급성기 감염을 소재로 한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마침 본 연구를 시행할 때에는 국내에서 급성 A형 간염이라는 감염증의 발생율이 수직적으로 상승하던 때였고, 그 원인 병원체인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조직 손상을 직접적으로는 일으키지 않고 오직 면역병리현상을 통해서만 간 손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인간에서 면역병리현상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유래 없이 풍부한 환자의 수를 가지고 특히나 간 이식을 받는 환자의 간내 림프구까지 이용하여 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환자의 급성기에는 Treg cell의 pool size가 굉장히 줄어 들어 있지만 회복기에는 다시 복귀가 되며, 그 감소 정도가 환자의 간 손상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관찰하였고, Treg cell population의 contraction의 원인이 TCR-dependent overexpression of Fas 에 의한 apoptotic cell death 임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은 임상 각과의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임상의사 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full-time으로 4년 내지는 5년의 시간 동안 기초 및 중개연구에 대해 교육 및 수련을 받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의사/과학자 양성 기관입니다. 그 안에서 제가 연구를 진행했던 실험실은 "면역 및 감염질환 연구실" 로 신의철 선생님의 지도 하에 현재 7명의 다양한 전공을 가진 전문의 학생과 생명과학을 학부에서 전공한 3명의 학생들이 응용면역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면역학이라는 학문이 대단히 광범위한 학문이지만, 그 중에서도 저희 실험실에서는 인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면역학적 질환 (감염성 질환, 심혈관계 질환, 종양질환 및 이식) 이라는 그 자체의 "human model" 을 이용하여, 인체 내 림프구들이 어떠한 병리적 변화를 겪게 되고 또는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확인하고 그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면역학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병태생리학적 기전을 밝히며 나아가 새로운 임상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이러스가 숙주를 감염시킬 때 숙주가 나타내는 고전적인 면역 반응을 효과적으로 회피하는 세포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연구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레지던트 시절 처음 실험 논문을 "해독"하고, 간단한 실험 술기들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접하면서, 임상의학 영역에서 중시 하는 근거-중심 의학이라는 통계의 강건한 힘과는 전혀 다른 실험 의학이 요구하는 세밀한 논리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동경으로 전문의 취득 후 실험실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대학원생들이 그렇듯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가는 학위 초기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기쁘고 감격스런 순간보다는 오히려 힘겹고 외로운 싸움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지도 교수님의 격려와 신뢰, 그리고 Lab mate들과 대학원에 함께 입학한 동기들과의 인간적인 관계가 있었기에 작은 주제 하나 하나를 완성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건전한 인간 관계와 그를 통해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어찌 보면 실험 외적인 것이지만,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는 임상의사이기 때문에, 중개연구를 수행하는 의사/과학자를 목표하는 후배 레지던트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은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1) 의사/과학자는 동시 통역자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동시 통역자가 외국어에 원어민과 같이 능하듯, 기초 생명과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심도 있는 경험이 좋은 의사/과학자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일 것 같습니다. 결국 충분한 시간을 기초 연구에 투자하지 않고는 상식적으로 그 조건을 충족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학위 과정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고 저 역시 아직도 그런 모습을 갖춰가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물론, 임상의사들이 가고 있는 일반적인 tract을 따라가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결국 몇 년은 동료들보다 천천히 갈 수 밖에 없다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심적 부담을 극복해야만 하겠지만, science에 헌신하는 일정 기간 이상의 시간이 의사/과학자로의 형질전환(transformation)에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2) 전문의 취득 후에는 본인의 전공이 정해지기 때문에 많은 후배들을 보면 본인의 전공과 가장 적합 내지는 일치하는 주제의 실험실을 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한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같지는 않아도 조금의 차이가 있는 주제의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본인의 평생 연구 분야를 색다르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전통적인 연구자들이 수행하지 못한 새로운 연구를 의미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실험 의학만이 진정한 연구라는 그릇된 생각도 경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욱이 모든 의과학자가 기초의학/중개의학 연구자일 당위성은 없습니다. 다른 성격의 연구를 존중하고 임상 시험의 디자인이 갖는 엄정성과 수행 과정의 객관성에 대한 이해가 깊다면, 혹은 임상 시험 연구자와의 건전한 협력관계가 전제된다면, 이를 적용한 더 좋은 중개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재 저는 혈액종양내과 의사로 림프계 악성질환 (악성 림프종 및 다발성 골수종)과 연부조직육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료하는 환자들의 도움으로, 그리고 학위 과정 중의 지도 교수이신 신의철 선생님의 배려로, 각 해당 질환에서 종양-특이 T세포의 기능적 변화 및 그 임상적 의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종양이라 상황에서 "항-종양 면역 기능이 억제 및 조절되는 기전" 등에 대해 림프구의 역할 및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며, 특정 질환에서 발생하는 기회 감염에 관련된 요소들을 밝히는 연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기초 과학적 사고 및 실험에 익숙하지 않은 임상 의사가 비교적 수월하게 기초 및 중개연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의 존재가 본 연구를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도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실험을 위한 하드웨어 뿐 만 아니라, 각 분야 별로 유사한 전공의 교수님들이 협력적 경쟁 관계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향후에도 후배들이 좋은 연구를 수행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면역학 분야의 경우는, 세부적으로 서로 다른 특성의 연구를 진행 중인 면역학자 교수님들의 활발한 의견 교환을 통해 시너지가 발생하고 그 결과물들이 브릭을 통해서도 수 차례 소개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후배 임상의사들이 이러한 소중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에 참여하여 흔쾌히 혈액 및 간 검체를 제공하여 주신 환자 분들과, 본 연구를 지도해 주신 신의철 선생님 그리고 훌륭한 조언을 아끼지 않아 주셨던 KIS (KAIST Immunology Seminar) 교수님들, 참여 병원 임상 선생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힘겨운 시간이지만 늘 긍정적인 모습으로 지지하고 응원해 해주고 있는 가족들, 아내와 세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