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남자가 한번 사정할 때 평균 1-2억 개의 정자가 배출됩니다. 이 중 겨우 100 여 개만이 배란된 난자가 있는 나팔관까지 다다르게 되며, 그 중에서도 난자를 수정할 수 있는 시간 내에 도달하는 정자는 10여 개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중 하나만이 난자 안에 들어가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는 데 기여합니다. 그렇다면 수정에 성공하는 정자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요? 언뜻 생각하기엔 어떤 정자든 나팔관에 도달하기만 하면 난자를 수정시킬 수 있을 것 같지만, 포유류의 경우 정자와 난자를 단순히 섞어주는 것만으로는 체외에서 수정을 재현해 낼 수가 없습니다. 1951년 Chang 은 포유류의 정자가 수정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여러 생화학적, 기능적인 변화를 거쳐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여성생식기와 비슷한 조건에서 미리 배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Chang, M. C. (1951) "Fertilizing capacity of spermatozoa deposited into the fallopian tubes", Nature 168: 697-698). 이렇게 여성 생식기 내에서 보이는 정자의 생화학적, 기능적 변화를 "수태능력 획득 (capacitation)" 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로 인해 포유류의 체외 수정 (in vitro fertilization, IVF) 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Yanagimachi, R. and Chang, M.C. (1963) "Fertilization of hamster eggs in vitro", Nature 200:281-282). 또한 이를 바탕으로 인간에서 체외수정 기술을 성공시킨 Robert G. Edwards박사는 201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타게 됩니다. 현재까지 400만 명 이상이 체외수정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정자가 수태능력 획득 과정에서 겪게되는 여러 변화 중, 가장 큰 물리적 변화는 정자 꼬리 운동성의 변화입니다. 사정 직후의 정자는 놀랍게도 운동성이 거의 없습니다. 생리적인 배양 조건을 만나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꼬리가 대칭으로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이 비대칭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 움직임을 "과다활성화 운동성 (hyperactivated motility)"이라고 하는데, 꼬불꼬불한 난관을 지나 난자투명대 (zona pellucida)를 침투하는데 필요한 힘을 제공한다고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자의 과다활성화 운동성은 어떻게 조절되는 걸까요? 과다활성화 운동성은 포유류의 정자에서만 관찰됩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포유류의 수정과 초기발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생물학적 질문입니다. 한편 수태능력 획득 과정에 정자세포내 칼슘 증가가 필요하고 꼬리 내의 많은 단백질이 타이로신 인산화 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자는 최종분화된 세포로 전사(transcription)와 해독(translation)을 안 하기 때문에 그 분자기작과 이 현상들의 상관 관계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하였습니다.
제가 속한 하버드 의대의 David E. Clapham 실험실에서 2001년, Dejian Ren 은 정자 세포에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이온채널 유전자 (CatSper)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유전자 결손 생쥐를 만들었더니 정자세포의 발생, 분화와 일반 운동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과다활성화 운동성은 사라지고, 수컷은 불임이 되었습니다. 2006년에는 같은 실험실의 Yuriy Kirichok 이 움직이는 정자세포에서 직접 칼슘 전류를 측정하는데 성공하여 CatSper 채널을 통한 칼슘 전류가 과다활성화 운동성과 성공적인 수정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정자세포에서 이온 채널을 전기생리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CatSper 채널의 생물리적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heterologous system 에서는 CatSper 채널이 그 기능을 해야할 세포 표면에 발현하지를 않는데다, 정자는 인체내에서 가장 작은 세포인 까닭에 그 하위 신호전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저는 지름이 1 micron이 채 되지 않는 정자 꼬리에서, 빛의 회절 한계 (diffraction limit) 로 인해 해상도가 200-300 나노미터로 제한되는 일반 광학 현미경으로는 CatSper 채널과 그 하위 칼슘신호 전달 물질들의 공간 배열을 밝힐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있는 초고해상도 현미경을 적용하기 위해서 하버드대 Xiaowei Zhunag 실험실의 심상희 박사와 공동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저희는 CatSper 채널이 정자 꼬리를 따라 4줄로 배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칼슘신호전달 물질들을 같이 구획화하여 기능성 칼슘 도메인을 형성함을 보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 독특한 구조를 통한 편모내 신호전달이 정자가 수정능력을 획득하는 과정동안 나타나는 타이로신 인산화 (capacitation-associated tyrosine phosphorylation)를 운동기관인 축사 (axoneme)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Phosphoproteomics 연구 방법으로 이 타이로신 인산화가 65곳, 45개의 단백질에 이르며, CatSper 결손생쥐 정자의 인산화 정도와 정량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칼슘 의존적으로 조절되는 타이로신 인산화 사이트를 보고하였습니다. 체외에서 정자들을 수정과정획득 하도록 배양하면, 운동성면에서 여러 형질을 보이는 것 (heterogeneous population)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는 이 차이를 정자 세포 하나 하나의 칼슘 도메인 구성 단백질들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가정하였습니다. 정자의 운동성을 비디오로 기록한 후 이미징 (motility-correlative imaging)을 하였더니, 놀랍게도 과다활성화 운동성을 보인 정자들이 모두CatSper 4줄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CatSper 결손생쥐의 정자는 신체내에서 수정장소로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공적인 수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과다활성 운동성이 필수적이며, CatSper 4줄 배열을 끝까지 잘 유지하여 효과적인 칼슘 신호 전달을 할 수 있는 정자가 수정에 성공한다를 사실을 밝혀 Cell에 이번에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생리적인 환경에서 실제 수정능력을 가지게 되는 정자는 백만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분자생물학적인 연구는 최근까지 정자의 집단적, 평균적 변화 관찰에 의존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어 왔습니다. 제 연구 이후에는 실제로 수정에 성공하는 소수의 정자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중점을 두는 in vivo 연구가 더욱 중요해지리라 예상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제가 소속된 곳은 하버드 의대 (Harvard Medical School) 과 연계된 보스턴 어린이 병원 (Children's Hospital Boston) 입니다. 하버드 의대를 중심으로 다수의 전문 소속 병원들과 연구소가 밀집한 Longwood Medical Area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러 다른 분야에서 방대한 양의 연구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최첨단의 새로운 테크닉들이 발명되어, 주요 바이오텍 회사들이 새로운 기계나 시약을 출시하면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곳들 중 한 곳입니다. 나중에 획기적인 일로 평가받을 기술이나 발견들을 주변 실험실에서 들려오는 풍문이나 세미나 등으로 실제 해당 논문들이 출간되기 1-2 년전부터 미리 접해볼 기회를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연구와 직접 관계가 없는 주변 분야에서 자신의 분야에 남들보다 앞서 접목시켜 볼 새로운 실험 방법과 아이디어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번 논문은 캠브리지 캠퍼스와 하버드 의대에 위치하는 각기 다른 전문지식과 숙련된 기술 (expertise)를 가진 실험실들을 오가며 공동 연구로 진행되었습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대학원생 때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학업과 육아를 같이 하는 것이 참 버거웠습니다. 그리고, 제 연구 속도나 성과가 스스로 성에 차지 않아서 자괴감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그런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 다른 사람보다 실험실에 머무는 시간이 제한된 만큼 더 집중하는 법, 실험을 더 효율적으로 하는 법 등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박사 후 연구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2011년에 CatSper 연구로 Nature Communications 에 박사후 연구 과정 첫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때 비로소 대학원생 때 가졌던 제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고, 새로운 연구에 도전해 볼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박사 후 연구 과정 동안 두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감사하게도 제가 한 일들이 이 분야에서 필요한 일, 과학적으로 완성된 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일로 평가받는 경험을 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이번 연구 과정 동안 세 랩간의 공동연구를 주도하면서, 다른 전문지식을 가진 좋은 과학자들과 사귀고 배우는 귀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김경진 교수님 밑에서 석사로서 생식호르몬에 대해 연구하였고, 그 이후 박사과정 동안 이온 채널과 막수용체 연구를 하였는데, 지금은 정자세포에서 생식에 중요한 이온채널을 연구합니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던 생식과 이온채널을 아우르는 연구를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제 과학 여정의 필연이 아닐까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자기 분야의 최신 동향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긴 과학사적 안목을 가지면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학계의 전환점이 된 연구들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분야가 어떻게 시작했고 성장했는지 알고 있으면, 자기 연구의 의미도 찾을 수 있고, 남아 있는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지, 왜 지금까지 답을 구할 수 없었는지, 그 문제들에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은 무엇이 있겠는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후속연구로 다른 CatSper auxiliary subunits를 분석중입니다. 이 auxiliary subunit 유전자들의 일부는 진화 과정에서 포유류에만 특이적으로 나타납니다. 정자의 과다활성화 운동성 또한 포유류에만 특이적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저는 진화 과정 중 CatSper 채널이 더 복잡한 칼슘 신호전달체계를 구축하면서 과다활성화 운동성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CatSper 채널이 이온 채널 연구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칼슘 신호전달 물질들의 종특이적 네트웍 형성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CatSper subunits 들의 comparative and functional genomics 연구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보스턴 아동 병원과 하버드 의대 소속 전임강사 (instructor)로, 제 연구와 더불어 실험실 내 학생과 신임 포닥들 교육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곧 독립된 과학자로 제 연구실을 꾸리겠다는 꿈을 가지고, 여러 곳에 지원하고 인터뷰 받는 과정에 있지만, 현재 자리에서 한 단계 더 넘어서는 일은 어디서나 참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 독립적인 과학자로서 생식과 수정에 중요한 이온 채널들의 분자기작을 연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제 연구로부터 파생된 지식이 피임과 불임 해결에 이바지하기를 소망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그 불확실성 때문일 것입니다. 일정 시간이상 꾸준한 노력을 해야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실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은 노력을 더 한다고 해서 예상했던 결과가 꼭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생명과학 연구는 새로운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고, 기술 자체도 점점 복잡해지면서, 박사학위과정이나 박사후 연구과정 자체도 점점 길어지는 추세입니다.
연구 중 가끔씩 새로운 발견에 즐거워 하기도 했지만, 제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로 보상받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간다고 느낀 적이 더 많았습니다. 앞날을 계획할 수 없다는 점에 불안해 하며 좌절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친정 아버지께서 편지를 보내셔서 인생이란 게 여러부분 다 같이 가는 것이니 인생의 다른 부분도 살피고 조급해 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편지에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인생의 다른 계획들을 박사 받은 후, 포닥 끝낸 후, 직장을 잡은 후로 자꾸 미루고 계시다면, 잠깐이라도 숨을 고르고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학에 대한 열정이 너무 일찍 소진되지 않도록, 그래서 장거리를 뛸 수 있도록, 삶의 다른 부분과 연구생활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실 수 있기를 빕니다.
Cell 편집진에서 이번 연구 내용을 비디오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일반 대중들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RMfEJdWL1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