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2012년 미국 질병관리본부 (CDC) 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미국 어린이 88명 중의 한 명은 자폐증 진단을 받는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대한민국의 경우 약 40명당 1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폐증 발병률 국가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높은 발병률에도 불구하고 자폐 증상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약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오직 행동 치료만이 유일한 치료 방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마저 효과는 제한적이어서 자폐 증상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약물의 개발이 간절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여, 미국 국립 보건연구원 (NIH)에서는 자폐증 관련 기초 연구 투자 비용을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시키고 있고, 이러한 전폭적인 투자로 인해 자폐증의 원인이나 발병 기작등의 지식들이 빠른 속도로 축적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자폐증은 신경 세포의 연결에 이상이 생겨서 생기는 질병이라는 이론이 대두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최근 가장 인기있는 가설로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흥분성 신경과 억제성 신경의 불균형 가설입니다. 우리 두뇌에는 두 가지 신호전달 체계가 있습니다. 흥분성 신호와 억제성 신호가 있는데, 이 두가지 신호간의 조화로운 균형이 깨져서 흥분성 신호가 더 강해지는 경우 자폐증이 발병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연구자들은 불균형 상태에 있는 자폐증 환자의 두뇌를 약물을 이용하여 균형 상태로 바꾼다면 자폐증 증상이 개선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시도한 방법은, 강해진 흥분성 신호를 억제하기 위해서 흥분성 신호를 직접 저해하기 보다는 약해진 억제성 신호를 약물 처리로 증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제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자폐증 유전자로 알려진 Scn1a gene의 돌연변이를 가진 마우스에 clonazepam이라는 억제성 신호를 증가시키는 약물을 처리해 보았는데, 기대를 뛰어넘는 자폐증상 개선효과를 관찰하였고 2012년에 Nature에 그 결과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 clonazepam이라는 약물은 오랜 역사를 가진 약물입니다. Benzodiazepine계 약물로서, 개발된 지 이미 반세기가 훌쩍 지나버린, 신경 정신과 질환에 가장 많이 처방 된 약물 중의 하나 입니다. 주로 간질 (epilepsy)나 불안 장애 (anxiety) 관련 질환의 치료약으로 처방되어 왔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질환들이 자폐증과 유사한 발병기작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간질이나 불안 장애도 흥분성 신경과 억제성 신경의 불균형에 의해 생기는 질병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병들을 대상으로 개발된 약물들이 자폐증 치료에 사용된 경우는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benzodiazepine계 약물은 주로 신경을 안정시킴으로써 간질이나 불안 증상을 완화시키게 되는데, 그 결과 sedative effect(진정 작용)가 너무 강해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부적합한 약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간질 발작이나 panic attack같은 간헐적 증상을 완화시키기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폐증같은 만성적인 질병에 장기 투여하기에는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이미 수 십년간 간질 증상이 있는 자폐증 환자들에게 간질 발작을 막기 위해 benzodiazepine계 약물이 처방 되어져 왔지만(적게는 1/5에서 많게는 1/3의 자폐증 환자들이 간질 발작을 합병증으로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누구도 이 약물치료로 자폐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보고를 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가설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 두가지 질문들을 대답하기 위해, 자폐증 연구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BTBR strain이라는 마우스를 이용하여 좀 더 깊이 있는 약물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benzodiazepine의 자폐 증상 개선 효과는 간질 발작에 쓰이는 양의 1/50 정도인 매우 낮은 농도에서만 관찰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농도에서는sedative effect(안정 작용)가 전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Benzodiazepine 계 약물은 억제성 신경 전달의 주 전달물질인 GABA의 수용체인 GABAA receptor에 작용하여, GABA에 의한 효과를 증가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GABAA receptor는 20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α2,3-subunit이 포함된 GABAA receptor를 선택적으로 활성시키는 약물은 뚜렷한 자폐 증상 개선효과를 보인 반면, α1-subunit이 포함된GABAA receptor를 선택적으로 활성시키는 약물은 자폐 증상을 개선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제가 사용한 clonazepam을 포함한 대부분의 benzodiazepine계 약물의 경우에는 위에 열거한 두 가지GABAA receptor를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활성화 시키는 비선택적 약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높은 농도의 benzodiazepine은 α2,3-subunit과α1-subunit이 포함된GABAA receptor 를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활성화 시킴으로써, 각각의 receptor에 의해 유도된 자폐 증상 개선 효과와 악화 효과가 서로 상쇄되어, 결과적으로 자폐증상 개선에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높은 농도의 benzodiazepine은 자폐 증상의 개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오직 낮은 농도 (α2,3-subunit에만 작용하는 농도 범위) 에서만 확실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α2,3-subunit에 선택적인GABAA receptor 조절 약물이 자폐증 치료제의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Astra Zeneca와 NIH가 함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시험이 계획되어 곧 진행될 예정입니다. (http://clinicaltrials.gov/show/NCT01966679)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 연구는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위치한 University of Washington의 Department of Pharmacology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이 연구를 수행한 연구실은 Dr. William Catterall lab입니다. Voltage-gated sodium channel과 calcium channel을 처음 동정하여, electrophysiology에서는 아주 유명한 연구실입니다. 최근에는 voltage-gated sodium channel의 3차원 구조를 처음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Catterall lab은 electrophysiology, x-ray crystallography, mouse genetics, behavior등 정말 다양한 방법들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폐증 연구는 연구실에서 저밖에 하지 않은 minor 연구 분야였지만, 지도 교수님의 이러한 분야를 가리지 않는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가 가진 과학적 질문들을 아무 부족함 없이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x-ray crystallography관련 열정있는 포스닥을 찾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제게 연락주시면 좋겠습니다. (최근 3년간 x-ray crystallography 분야에서 nature 3편을 publish한 훌륭한 연구실입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제 연구를 바탕으로 자폐증에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된다면, 아마도 기초 연구자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광과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곧 진행될 임상시험의 결과가 정말 궁금합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현실적인 성공이 전혀 담보되지 않은 이 분야로 대학원을 진학하시거나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좇는 훌륭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한 그런 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꿈을 현실과 타협한 삶과 비교해서 그 꿈을 좇는 삶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현실과 타협한 삶보다는 훨씬 흥미진진하고 행복한 것 같습니다. 대기업 연구원 자리를 그만두고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그것도 말 하나 안 통하는 이국 땅에서 매일 매일 좌절을 맛보며 지금까지 지내 왔지만, 지금껏 단 한번도 제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던진 질문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풀어가는 데 희열을 느끼시는 분들, 드라마 보는 것보다 쥐랑 (셀이랑, 콜로니랑, 식물이랑, DNS sequence랑.... 기타등등이랑) 씨름하는 것이 더 재미있으신 분들, 십중팔구 꽝날 것 알면서도 다음날 실험 결과가 기다려 져서 밤잠을 설치시는 분들,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들을 가장 먼저 알게 되었을 때의 그 희열의 크기를 잘 아시는 분들에게는, 제가 단언컨데, 현실과 타협한 삶 보다 비록 가난하지만 남들 안 알아 주지만 그 꿈을 좇는 삶이 훨~씬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과학 자체를 즐기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들 가운데서 세상을 바꾸는 훌륭한 연구가 나올 것이라 생각됩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자폐증 증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사회성이 떨어지는 증상입니다. 저는 이 증상을 anxiety와 연관 시켜서 설명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폐증을 neural circuit (신경회로) 관점에서 설명해 보고 싶습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작년 5월부터 연구실을 옮겨서 University of Washington의 Dr. Richard Palmiter's lab에서 second postdoc training을 받고 있습니다. Optogenetic, pharmacogenetic tool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genetic tool을 가지고social and anxiety 관련 neural circuit을 찿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이 연구가 가능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지해 주신 제 지도교수 Dr. William Catterall이하 Catterall lab 동료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과학자의 길로 인도해 주신 경북대학교 전창진 교수님, 포항공대 김경태 교수님께 진심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제 편이 되어 주시고 든든한 기도의 후원자 되어주신 양가 부모님, 동생 가족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아내 권혜원님과 주영 주은양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희생과 이해, 그리고 사랑이 없이는 지금까지 제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불가능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에게 생명을 주시고, 꿈을 주시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아들까지 주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