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Institute of Molecular Biotechnology, Austrian Academy of Sciences (IMBA)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영화나 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공 생명체의 합성이 이제 인류의 눈 앞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십 수년 전 시작된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은 각 조직의 in vitro model, 즉 오가노이드(organoid)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직 뿐만 아니라 배아/태아의 in vitro model로서 실제 배아를 모방한 엠브리오이드(embryoid)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그림1. 쥐 배아의 착상 및 발달과정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 ESC)는 우리 몸의 모든 장기를 만들 수 있는 줄기세포로서, 착상 전 배아인 배반포(blastocyst)의 내부(inner cell mass, ICM)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림 1). 우리 포유류는 타 동물종(species)과는 달리 모체 자궁 착상 그리고 태반을 통한 영양분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타 동물종에게는 없는 배아외조직(extraembryonic tissue)을 새로이 만들어 내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영양막줄기세포(Trophoblast stem cell, TSC)입니다. 실제로 포유류의 영양막줄기세포는 발달 시기에 따라 여러 조직으로 분화하여 모체 자궁으로의 착상, 태아를 보호해 줄 탈락막 형성, 태반 형성을 조절하는 등 태아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태아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즉, 정교한 배아/태아 발달 연구를 위해서는 배아줄기세포 뿐만 아니라 영양막줄기세포 연구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배아 연구는 배아줄기세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영양막줄기세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그나마 현재 널리 사용되는 유일한 영양막줄기세포주(TSC line)는 배반포 시기의 성격과 매우 달랐을뿐만 아니라 태반 특이적 마커를 보이는 등 이미 상당히 분화된 성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제대로된 영양막줄기세포주 확보의 필요성을 뜻합니다. 분화되지 않은, 초기 배아의 영양막줄기세포를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 세포주 확보를 위해 저는 ‘실제 배아에서는 한 쪽에 치우친 배아줄기세포의 위치 때문에 영양막세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힌트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쥐의 경우, 배아줄기세포와 먼 원거리 영양막세포(mural TSC)는 분화된 성격을 보이며 자궁착상을 유도합니다. 반면, 배아줄기세포와 가까운 근거리 영양막세포(polar TSC or TESC)는 줄기세포의 성격을 띠며 착상 후 태반형성에 기여한다고 추정되죠(그림 1).
따라서 저는 배아줄기세포에서 분비되는 어떤 유도물질(embryonic inducer)이 영양막줄기세포의 분화를 억제하고 줄기세포의 성질을 유지한다고 가정하였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저는 수많은 배아줄기세포 유도물질 후보 중 5개의 factor로 이루어진 조합을 찾아내어 분화된 영양막세포를 착상 전 배반포 시기 영양막줄기세포(TrophEctoderm Stem Cell, TESC)로 되돌리는 방법을 새로이 제시하였습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C)의 영양막세포 버전이죠. 이렇게 얻은 영양막줄기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적절한 물리적/화학적 신호와 함께 융합하여 배반포 in vitro 모델인 블라스토이드(blastoid)를 제작하였습니다. 이 블라스토이드는 실제 배반포와 유사한 형태 그리고 transcriptome을 갖고 있음은 물론, 대리모 자궁 착상 및 태반 분화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그림 2).
그림2. 2세대 블라스토이드_blastoid
동물 실험을 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조직 특이적 혹은 세포 특이적 유전자 발현 조절은 정교한 실험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포 운명의 가장 큰 분기점인 배아줄기세포 – 영양막줄기세포를 구별하여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드뭅니다. 배아 발달속도가 매우 빨라 세포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매우 찰나의 순간일 뿐더러 시기에 따른 유전자 발현 변동이 심해 특정 순간을 정확히 포착해 세포군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는 연구의 정확성을 매우 떨어뜨립니다. 예를 들어 Wnt 신호 결손 배아는 태어나지 못하고 죽는데, 이것이 단순히 배아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착상 문제인지 태반으로 인한 영양공급문제인지 혹은 복합적 문제인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블라스토이드는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합니다. 배아줄기세포와 영양막줄기세포에 각각 다른 유전자를 결손시키거나 한 쪽에만 과발현시키는 등의 작업을 통해 두 세포군이 배반포 시기에 어떻게 교류하는지 또 착상 후 발달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등, 초기 배아 발달 및 착상 연구에 최적화 되어 있죠. 게다가 한 번에 수 천 수 만개의 블라스토이드를 동시에 제작할 수 있어, 시험관에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키는 IVF(in vitro fertilization)으로 배아를 얻는 방법에 비해 훨씬 윤리적이고 효율적입니다.
최근 줄기세포 관련 저명한 저널은 모두 배아의 in vitro 모델링 그리고 이를 이용한 착상, 발달 연구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쥐를 넘어서 인간 블라스토이드 모델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죠. 한국으로의 소개는 조금 늦었지만, 인공 생명체 제작에 대한 기대로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창 떠오르는 분야입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스트리아 IMBA (Institute of Molecular and Biotechnology, Austrian academy of sciences)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바로 IMBA 의 core facility 입니다. 연구원 숫자보다 많은 테크니션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연구를 돕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얻었던 것은 bio-informatics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RNA 샘플을 가져다 주면 core facility는 자체 scRNA-seq을 진행하고 기존에 알려진 데이터와 제 데이터를 merging하여 분석 후 UMAP 그래프를 만들어 저에게 보냅니다. 저와 자주 소통하면서 제가 어떤 분석을 원하는지 완벽히 이해 후, 목적에 따라 여러 분석 방법으로 그린 그래프를 저에게 먼저 제안 하기도 했구요. 그 외에도 키메라 배아 제작 실험을 도와준 transgenic facility, 조직 샘플링 및 이미징을 도와준 histology facility, bio-optic facility가 없었다면 제가 빠른시간 내에 논문을 정리하지 못했을겁니다.
연구비가 풍족하지 않은 연구실도 core facility를 통해 최소한의 실험을 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제가 core facility에서 도움 받은 대부분이 무료 였습니다. 또한, 모든 연구실이 공통으로 필요한 물건들 (tip, tube, disposable pipette, culture medium, LB plate 등등)은 연구소 차원에서 모두 ready-to-use 상태로 매일 각 연구실로 배달 됩니다.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전폭적인 지원이 바로 많은 PI 그리고 학생, 박사들이 IMBA 연구소로 모이고 있는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2018년, 세계 최초로 쥐 블라스토이드 제작에 성공한 사람은 바로 제 보스인 Nicolas Rivron 입니다. 저희 연구실이 이 분야의 leader인 만큼, 저희 이후 연구를 시작한 타 연구실과는 차별화되는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초에 저희 연구실에서 발표된 인간 블라스토이드, 그리고 올해 7월에 발표된 저의 2세대 쥐 블라스토이드는 타 그룹에 비해 현저히 높은 착상 및 발달 효율을 보입니다. 단순히 세포를 합쳐서 만든것이 아닌, 실제 생명에서 일어나는 세포간의 상호 작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합성을 시작하기에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이 범접하기 힘들었던 생명의 시작 그리고 창조라는 영역을 연구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제가 이 곳으로 포닥을 온 후 한국인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왜 미국을 가지 않고 유럽으로 갔느냐’ 였습니다.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적어도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 만큼은 이 곳이 최고라 생각했으니까’. 실제로 선배 세대 대부분은 미국에서 공부 하셨고, 지금도 많은 박사분들이 미국에 있으십니다. 하지만 최근 수 십년간 유럽 나라들이 과학에 많은 투자를 했고, 현재는 제가 있는 IMBA 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가 유럽에도 많습니다. 각자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포닥 혹은 박사과정 지원 시 미국의 유명 대학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연구소도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떨까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 2009년 시작된 오가노이드가 한국에서 주목을 받은지는 몇 년 되지 않았음에도 현재 중요한 모델로 자리잡았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죠. 2018년에 시작된 엠브리오이드는 미국과 유럽에선 한창 뜨겁지만, 한국에는 이제 막 소개되는 단계입니다. 몇 년 후엔 이것이 발생학에 사용되는 기본 모델이 될지도 모르죠. 사실 제가 3년 전에 블라스토이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멋진 모델임은 분명하지만 추후 이 분야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확신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었고, 지금은 여러분들이 보시다시피 그 당시 제 선택이 옳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분야를 접했을 때, 낯섬/익숙함이 아닌 그 분야가 가지는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커리어를 투자 하셨으면 합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생명과학의 최종 목적은 생명을 제대로 이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물의 발생 과정은 생명이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압축판 입니다. 때문에 배아/태아 발생학 연구는 생명의 근원적인 이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생명에 대한 이해의 끝은 제작이라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는 뜻과 같으니까요. 때문에 저는 배아발달 연구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합성생물학의 범위를 발달 가능한 개체수준으로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 배아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기에, 지금은 실제로 태어날 수 있는 인공 쥐를 만들고자 연구 중입니다. 얼마 전에 심장이 뛰는 인공 쥐 합성에 대해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죠. 이는 인간이 실험대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엄청난 성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두 그룹이 만든 배아 덩어리는 배반포 모델로부터 순차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착상 후 배아와 비슷한 모양으로 미리 세포 덩어리를 만들고 in vitro 에서 그대로 발달시킨 모델이기 때문에, 이들은 모체 자궁에 착상할 수 없고 더 이상의 발달이 불가능하며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두 그룹과 달리 저는 최근 실제 배반포와 세부적 세포 구성은 물론이고 발달능(developmental potential)까지 흡사한 인공 배반포를 새로이 제작하였으며, 현재 대리모 착상 및 발달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실제로 긍정적인 데이터를 얻고 있으며, 조만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저도 궁금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에 자리잡아 줄기세포와 배아 합성생물학 분야를 널리 알리고 한국 줄기세포 연구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먼저 제가 독립된 연구자가 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서울대학교 공영윤 교수님께, 그리고 저와 함께 박사과정을 함께한 발생 및 질환모델 연구실 동료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프로젝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이끌어준 보스 Nicolas Rivron과 연구실 동료들, 그리고 second mentor로서 연구 내외적으로 제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구본경 박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표합니다. 박사과정부터 포닥이 될 때까지 함께 고민하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염민규 박사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리고 타지 생활을 하는 제게 늘 힘이 되어주고 제편이 되어주시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Blastoid
#Stem cell
#Embryonic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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