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생물종의 진화를 이끄는 핵형의 변화는 염색체 간의 접합을 포함하는 다양한 구조적 재배열에 의해 발생합니다. 특히 진핵 생물의 선형 염색체의 말단 구조에 문제가 발생할 시 유전체 불안정성이 야기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선형 염색체는 말단을 DNA가 손상되면서 발생하는 분절과 구분하기 위해 특별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텔로미어라고 합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의 반복서열과 그에 결합하는 단백질 복합체를 통틀어 칭하며 말단을 DNA 손상 반응으로부터 보호하여 염색체가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텔로미어의 기능이 손상되는 경우 염색체 말단이 충분하게 보호받지 못해 손상으로 인지되어 DNA 복구 기전이 작동하게 되면서 염색체에 구조적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텔로미어 손상에 의한 염색체 말단 구조 변화의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핵형의 변화를 동반하는 종의 진화 과정을 추정하는 데에 이해를 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텔로미어 위기를 필연적으로 겪고 탈출하여 분열능력을 획득하는 암세포의 유전체 변화 방향을 이해하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유인원과 같이 이미 생물종의 분화가 완료된 이후의 핵형 및 염색체 구조밖에 없으므로 이들을 비교함으로써 공통 조상의 염색체가 어떤 변화를 거쳐 현재 생물종이 가진 각각의 형태를 구성하게 되었는지 추정하는 것은 큰 시간적 공백이 존재합니다. 또한 암세포의 유전체 불안정성이 유전자 발현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잘 알려져 있어 염색체의 구조 변화를 기술하고자 하는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으나 이전의 연구 결과들은 실험적 기법의 한계로 인해 대부분 microarray 또는 short-read sequencing 기술에 기반하여 텔로미어 손상 이후에 발생한 염색체 말단의 Copy Number Variation (CNV)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변화한 염색체의 구조를 추측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특히 염색체 말단은 반복 서열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short-read로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텔로머레이즈 유전자가 결실되어 텔로미어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기전(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s, ALT)을 통해 텔로미어가 다시 안정화된 예쁜꼬마선충 ALT 생존개체를 확립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ALT 활성화를 통해 새롭게 텔로미어를 구성하여 현재의 유전체는 안정화되었으나 그 이전에 겪은 텔로미어 결손에 의해 일어난 염색체 구조 재배열의 흔적은 모두 지니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유전체가 안정화되었기 때문에 염기서열 분석을 진행하기 위한 일관된 DNA를 확보하기에 적합하였습니다. 이를 이용하여 저희의 관심사인 염색체 말단의 구조까지 최대한 재구성하기 위해 read 하나로도 반복서열 전체를 포함하여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long-read sequencing을 진행하였습니다. 텔로미어 결손으로 인한 유전체 불안정성이 만드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4개의 서로 다른 ALT 생존개체의 유전체를 서로 비교하였습니다.
사실 ALT 생존개체의 long-read sequencing 진행하여 data를 얻은 것과 이번 논문을 구성하는 분석을 진행한 것은 사실 대략 3~4년의 간극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부터 제 사수님이셨던 김천아 박사님께서 염색체 말단 및 텔로미어의 반복서열 특성 상 long-read sequencing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고 실험을 진행하셨고 data를 얻었으나 그 당시엔 저희 실험실에서 분석을 진행한 경험이 많지 않아 원하는 만큼 sequencing data를 다양하게 만져보지 못 했습니다. 또한 wet lab 특성 상 분석보단 실험적 관찰에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저 또한 ALT 생존개체를 이용한 유전학 실험을 오랜 시간 진행해왔습니다. 그러나 유의미한 결과를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김천아 박사님께서 ALT를 이용하는 생쥐배아줄기세포 논문을 읽고 해당 연구자로부터 세포를 얻어 실험이 좀 더 용이한 생쥐배아줄기세포로 실험모델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실험모델을 바꾸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있긴 했으나 대학원에 입학한 후 약 3년의 시간이 쌓인 예쁜꼬마선충을 연구에서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했습니다.
이 즈음하여 김천아 박사님과 이번 논문의 공동 저자인 김준 박사님이 다양한 data 분석법을 공부하면서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했고, 두 분의 도움을 받아 저 또한 생쥐배아줄기세포의 DNA-seq, ATAC-seq 등 다양한 형태의 data를 스스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의 박사님이 예쁜꼬마선충 CB4856 strain의 유전체를 long-read sequencing 기반으로 de novo assembly하여 얻은 높은 수준의 reference genome를 보고하는 논문이 성공적으로 Genome Research에 실렸고 이 논문이 마무리되면서 김준 박사님의 제안으로 몇 년 전에 이미 확보했던 ALT 개체의 genome을 함께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실험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유전체 분석을 통해 제가 예쁜꼬마선충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고 기대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직 분석을 시작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을 안고 있긴 했으나 이미 경험이 있는 김준 박사님이 의지가 되었고, 저 또한 생쥐배아줄기세포 data를 분석해보았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원 입학 이래 변함없는 텔로미어팀의 일원으로서 텔로미어 한 우물만 꾸준히 파왔기 때문에 제가 텔로미어 인접 지역을 분석하면 흥미로운 변화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4개의 서로 다른 ALT 생존개체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이전 연구 결과들과 유사하게 텔로미어 결손에 의해 텔로미어 인접부위에 특이적으로 CNV이 누적되는 것이 관찰되었고, 서열의 삽입 및 결손은 텔로미어 인접부위에 국한되지 않고 유전체 전체에 널리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즉 텔로미어에서 발생한 손상이 국소적으로 유전체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것을 넘어 유전체 전체에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텔로미어 손상이 극심해져서 염색체 간의 접합까지 일어난 이후에야 유전체 전체에 걸쳐 삽입 및 결손이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처럼 텔로미어의 결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상 반응의 시간을 나누어서 관찰한 것은 최초입니다. 논문의 리비전 과정에서 리뷰어들이 매우 건설적인 조언을 다양하게 주셨는데 그 덕분에 유전체 전체에 퍼진 삽입 및 결손의 특징을 더 상세하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삽입된 서열들은 대부분 삽입된 위치에 인접한 곳에 그 주형이 있었으며, 결손 된 부분의 양 끝은 1 nt homology를 통해 접합되었습니다. 이는 polymerase theta-mediated end joining (TMEJ) 의 특징으로 보고된 바 있어 텔로미어 결실에 의해 발생한 유전체 내부 손상은 TMEJ 로 복구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직접적인 손상이 발생한 텔로미어와 그 인접 지역에 집중하여 구조를 재구성해보니 예상한대로 염색체 간의 접합이 발생했음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텔로미어는 반복서열이 완전히 결실되지 않더라도 일정 길이 이하로 짧아지면 기능을 잃기 때문에 염색체 접합점에 짧게나마 텔로미어 서열이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흥미롭게도 접합이 일어난 염색체 말단은 모두 텔로미어 반복서열이 완벽하게 결실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텔로미어에 인접한 염색체 내부 지역인 서브텔로미어 서열까지도 일부 결실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단순하게 염색체 간의 접합이 발생한 말단 외에도 염색분체 간의 접합 이후에 분절이 일어나고 다시 다른 염색체와 접합한 형태, 즉 Breakage-Fusion-Bridge (BFB) cycle이 발생한 말단 또한 존재했습니다. 이 외에도 말단의 copy number가 매우 복잡하게 바꾸어 Fork-Stalling and Template Switching 이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하는 복잡한 구조의 말단의 일부 구조를 재구성할 수도 있었습니다.
Long-read sequencing 분석을 통해 반복서열을 포함하는 염색체 말단을 재구성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텔로미어 결손이 만드는 염색체 구조 변화가 어떤 형태인지 뉴클레오타이드 단위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말단에만 국한되지 않은 유전체 전체의 변이를 탐색하여 텔로미어 결손이 전체 유전체에 손상반응을 유도할 수 있음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long-read sequencing은 short-read sequencing에 비해 error rate이 높다는 한계가 있어 염색체의 모든 말단을 재구성할 수는 없었습니다. 최신의 long-read sequencing 기술은 더 큰 발전을 이루어 PacBio 사의 circular consensus sequencing으로 만들어진 HiFi read의 경우 수십 kb 임에도 불구하고 error rate이 거의 short-read sequencing과 유사할 정도로 매우 높은 정확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반면 Nanopore sequencing은 error rate은 비교적 높으나 서열을 읽을 DNA library 만 충분히 길다면 1 Mb 단위의 read까지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최신 연구보고에 의하면 두 가지 long-read sequencing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X 염색체를 텔로미어부터 텔로미어까지, 즉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반복서열을 포함하여 완전하게 염기서열의 구조를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sequencing 기술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de novo assembly의 진입장벽이 낮아져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다양한 reference genome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모델생물에서의 연구가 활성화되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의 이준호 교수님이 이끄시는 유전과 발생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실험실은 전통적으로 예쁜꼬마선충을 모델로 하여 신경 발생, 닉테이션 행동, 스트레스 저항성, 텔로미어 등의 주제를 가지고 유전학적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는 모델 생물과 주제, 실험 방법이 모두 넓게 퍼져 한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채집된 선충들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팀도 있고, 제가 속한 텔로미어 팀은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생쥐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기전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연구도 여전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준호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이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많이 지지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덕분에 저희 연구실 구성원들 또한 새로운 실험을 도입하여 시도하는 것에 적극적이고 이번 논문 또한 저에게는 분석 논문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한 연구실 안에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어 공부하기 벅차기도 하지만, 연구실에만 있어도 이렇게 많은 분야의 지식과 새로운 실험방법들을 업데이트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의 성장에 바탕이 된다고 느낍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연구를 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어 기쁜 날 보다는 예상처럼 되지 않아 슬프거나 화나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질문을 찾는 것 자체도 쉽지 않고, 찾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하는 것도, 설계한 실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지 확인하는 작업도, 그렇게 확인된 실험을 마침내 수행하고 얻은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스텝이 없었고 공들이던 프로젝트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 과정을 수없이 거치고 좌절하고 다시 고민하고 시도해서 가끔 작은 성공을 거두고 이를 통해 짧지만 큰 기쁨을 쌓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아직 자부심을 느낄 만큼 연구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 한 것 같습니다. 다만 최소한 역사에 제 이름 한 자를 남길 수 있는 논문 하나가 무사히 나왔다는 것에 아주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작은 성공들을 긁어 모아 또 다른 논문을 무사히 만들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버티고 성공하고 계신 선배, 동료, 후배 연구자 분들로부터 항상 자극을 받습니다. 존경합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 또한 아직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번듯한 조언을 하기엔 경험치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다만 바로 앞에 말했듯 쉽지 않은 길이 앞으로 펼쳐질 테니 동료들과 서로 의지하고 존경하며 버티면 좋겠습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번 논문을 쓰면서도 생쥐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기전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다양한 Omics data를 얻어서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기전에 필요한 인자 또는 환경적 조건을 찾고자 노력했고 현재 몇 가지 후보 인자들을 좁혀서 개별 테스트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빠른 시간 안에 테스트를 마치고 표현형이 두드러진 인자에 집중하여 가능하면 올해 안에 논문으로 정리하기 시작하는 것이 현재 목표입니다. 박사 학위를 딴 이후에는 좀 더 일상 생활에 밀접하고 스스로 체감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제가 숱한 실패 속에서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힐링 캠프를 열어 응원해 주셨던 텔로미어팀 선배님들, 김천아 박사님, 성상현 박사님께 정말 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나 힐링 캠프를 시도 때도 없이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제가 보이기만 하면 해주셨던 제 평생의 원 앤 온리 사수님 김천아 박사님 아니었으면 전 정말 중간에 포기했을 겁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김천아 박사님의 가르침과 도움 덕분입니다. 실험실 선배님들을 보면서 연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많이 배웠고 입학 동기들이 심리적으로 큰 의지가 되었습니다. 저도 후배들한테 배울만한 선배가 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제가 도움 받는 날이 많은 것 같아 고마우면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구성원들끼리 활발하게 교류하는 연구실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고 언제나 학생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는 이준호 교수님, 선생님으로부터 연구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선생님처럼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타고난 성격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요...
마지막으로 논문이 나올 것 같다고 하니 저보다 더 기뻐해준 우리 가족들, 코로나 때문에 자주 만나러 갈 수가 없어서 더 보고 싶네요.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고 사람 간의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길 기대합니다.
#Long-read sequencing
#de novo assembly
#Telomere dysfu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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