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인구 고령화는 이제 모두가 통계 자료를 통해 실제로 느끼는 다소 진부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회 경제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숫자 나이와 고령화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사실 삶의 질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지속하는 성공적인 노화에는 숫자 나이(chronological age) 보다 신체 나이(physiologic age)이나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 가 훨씬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20년 이상의 연구에 의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즉, 노인의학 연구를 하다 보니 숫자 나이와 신체 나이의 괴리가 존재하고, 이것이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래 그림).
이런 개념을 노쇠/허약(frailty) 의 스펙트럼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근육의 구조와 기능에 집중한다면 근감소증(sarcopenia) 의 스펙트럼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노쇠나 근감소증은 결국에는 신체 노화 정도를 보는 하나의 척도에 불과한 것이고, 적절히 구성된 척도는 대개는 같은 방향을 가르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척도를 손가락이라고 하면, 신체 노화 정도는 달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달을 보아야 하고 달을 잘 관찰해서 성공적 노화를 돕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 되야 하겠지요.
하지만, 노쇠와 근감소증을 바라보기 위한 척도를 정의하는데 많은 연구자들이 서로 맞네 틀리네 하면서 10년이 넘게 논란을 하고 있고, 아직까지도 수많은 조작적 정의들이 서로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 어찌 보면 건강 수명을 늘이기 위한 임상 중재 연구나 분자생물학적 기전 개발 연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기존 연구들을 바라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고, 저와 10년지기가 된 장일영 선생님과 2014년에 착안을 하여 시작하게 된 것이 평창의 ASPRA(Aging Study of Pyeong Chang Rural Area) 코호트 연구입니다. 2014년에 당시 평창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시던 장일영 선생님을 제가 직접 찾아가서 작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 인구 집단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건강한 사람이 선택되는 비뚤림을 줄이고) 노쇠와 연관된 신체기능 파라미터를 주기적으로 측정하면서 일부 대상자에 대해서는 중재 사업도 해 보자는 원대한 생각이었는데, 평창군과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의 지원으로 실제로 코호트가 구성되고 지난 5년간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ASPRA를 처음 시작할 때 그렸던 그림인데, 뜻이 있는 헌신적인 보건기관 직원들과 여러 공중보건의사, 연구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코호트가 잘 셋업되었고, 이후 지역사회에서 이미 존재하는 부족한 자원도 잘 모아서 운영하면 노쇠와 기능저하, 근감소증을 예방하고 또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역사회 보건 중재 연구(intervention study)을 통해 가시적으로 보여주었고 또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 연구는, ASPRA 코호트의 신체기능 파라미터와 근감소증 파라미터, 노쇠 지수(frailty index) 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 년간 사망과 어르신의 기능저하에 따른 입소 등의 예후를 분석하였는데, 사실 원래 제목은 "Sarcopenia as frailty spectrum" 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연구자들이 근감소증이나 몇몇 신체기능 파라미터, 또는 몇몇 척도에 의해 평가한 노쇠 스펙트럼을 따로따로 뗴어놓고 생각하지만, 사실 노화에 따라 변화되는 거시적인 신체 파라미터 (저는 이것을 매크로다이나믹 파라미터라고 부릅니다) 는 대부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며, 결국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신체 노화라는 같은 스펙트럼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말 하는 방식만 다른 것이라는 게 이번 연구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이번 연구는 근감소증(sarcopenia)을 질병으로 코드를 붙이고 선별 검사를 하게 하는 식으로 2018년 유럽 가이드라인이나 2019년 아시아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면서 오히려 어찌 보면 이런 자연스러운 연속 선상에 있는 신체 노화, 근감소증, 노쇠, 기능저하, 죽음에서 근감소증의 정의를 뚝 떼어내서 마치 독립된 개념인 것 처럼 학계가 흘러가는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환원론 (reductionist approach) 이 썩 적절하지 않은 노화의 표현형을 의료화 (medicalization) 하면서 환원론의 칼을 들이대다 보니 벌어진 일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ASPRA 연구는 통상적인 연구와는 달리 어떤 연구비를 가지고 진행한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평창보건의료원이 주가 되고 장일영 선생님이 몇 년 간 직접 발로 뛰어서 유지가 되어 온 연구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ASPRA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대학교병원과 한국과학기술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을 거쳐 지금 다시 서울대학교병원에 근무하고 있고, 장일영 선생님은 대화보건지소에 근무하시다가 지금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에 근무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한국 지역사회 어르신의 노쇠를 연구하고 중재 모델을 만들겠다는 노력을 ASPRA 를 중심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연구 디자인과 분석에 많은 도움을 주신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 에 계신 김대현 선생님은 한국에 계시지 않지만 초창기부터 꾸준한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ASPRA 연구가 이렇게 시작되어 천천히 유기적으로 성장해 오다 보니 유지, 발전에 있어서 어려움이 참 많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노쇠 중재 사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인플루엔자 시즌에 보건지소 등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노쇠를 평가하는 관찰 코호트로 시작했지만, 5년 정도가 지나면서, 아래 그림에서 보실 수 있는 것처럼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건강한 노후를 돕는 보건 사업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평창보건의료원이 노쇠 중재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모범 사례로 발전하고 있어서 무척 보람찹니다. 연구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시골의 코호트 데이터이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논문을 써서 투고해도 다들 떨어뜨리기 바빴는데, 이제는 학계에서의 인지도도 많이 올라간 느낌입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개체의 거시적 파라미터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연구하다 보면 과학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원론적 관점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어떤 단백질과 연관된 경로가 gain-of-function 이나 loss-of-function 모델에 의해서 한 조직에서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연구가 그동안 주류의 생물학적 연구이고, 이런 연구들을 바탕으로 많은 신약개발이 이루어집니다. 가장 많은 돈이 몰리는 종양생물학 영역에서는 이 접근이 잘 되어 왔어요. 여기에 high-throughput 기반의 discovery based approach 를 붙인 것이 현재 세상에서 각광을 받는 연구들입니다.
그런데, 신체 노화와 노쇠, 기능 저하를 설명하는 데는 이런 방식이 먹히지 않아요. 근감소증에 대한 많은 신약개발 연구가 있었지만, 지역사회에서 적은 예산으로 제공할 수 있는 운동, 영양, 불필요한 약의 제거, 밝혀지지 않았던 만성 질환이나 우울증에 대한 중재, 사회적 지지의 강화 등 ASPRA 에서 보였던 생물학자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보이는 것들의 집합이 그 어떤 근감소증 신약보다 월등한 효과를 보였어요.
사람의 건강 노화를 위해서 그러면 어떤 연구를 해야 할까요? 기존의 환원론적 접근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노인의학에서도 환자가 어떤 임상상으로 병원에 왔을 때, 생리학적 파라미터들이 틀어져 있기 떄문에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서 우리가 임상상에 접근하는 휴리스틱과 오컴의 면도날을 주의하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신체 노화와 노쇠에 대한 앞으로의 기전 연구나 신약 개발에 참고할 만한 부분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연구 파라다임의 hype-cycle 이 존재한다면 그 사이클의 정점에 그 분야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고, 정부의 연구 지원도 그렇게 추세 순행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흐름에 올라타려 합니다. 반면, 노인의학은 아직까지 연구재단에 과제를 낼 때 '연구분야' 로도 잡혀 있지가 않은, 무척 새로운 분야입니다. 아직까지 주목을 받아보지 못한 연구 분야이기도 하고, 노화와 노인의학 모두 분과 잡지의 인용 지수들도 무척 낮아요. 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보람있는 연구 분야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사람의 신체기능 파라미터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모델 동물과 조직, 세포의 노화 관련 파라미터들을 연결 (translation) 할 수 있는 중개연구를 진행해 보고자 합니다.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항 노화 신약 개발을 한다면 궁극적으로 뭐를 좋게 하고 싶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상 연구에 있어서는, 성공적 노화를 위해 두가지 시간 축 - 거시적 시간 축과 미시적 시간 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연구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거시적 시간 축 입니다. 이미 근감소증이 생긴 70대 어르신이 어떤 약을 12주만 맞으면 50년 간 쌓인 노화의 결과가 바로 좋아질 수 있을까요? 이러한 시간 차원의 문제가 고민이 됩니다. 30대에 내가 한 어떤 행동이 40년 이상의 리드 타임을 두고 나중에 어떤 표현형을 보이게 될 수도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연구를 해야 해요. 그 다음은 미시적 시간 축입니다. 보통 연구 디자인은 아주 연구자 편의와 행정적, 운송적(logistics) 편의를 위해서 셋팅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기초 연구에서는 쥐에서 12주간 어떤 인터벤션을 하는데 임상 연구에서는 사람에서도 12주간 어떤 인터벤션을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게 맞을 리가 없지요. 하지만 아직까지 얼만큼의 기간 동안 뭘 해줘야 그게 beta error 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인지는 잘 모릅니다. 많은 임상 연구에서 primary endpoint 와 참여자수만 중시하지만, 사람의 신체노화 중재에서는 연구 기간이라는 시간 축이 앞으로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기초 자료를 만들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ASPRA 연구와 관련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창의 노쇠 예방 사업과 코호트가 보다 큰 보건사업과 정책으로 발전하고 지속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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