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암 환자들은 결국 전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전이는 크게 혈관을 통해 폐나 간 같은 원격 장기로 전이되는 ‘혈행성 전이’, 림프관을 통해 림프절로 전이되는 ‘림프 전이’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그 중 일반적으로 의료진이나 환자들이 느끼기에 생존과 직결되는 원격 장기로의 혈행성 전이는 심도 있게 다루어져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암의 원격 장기 전이보다 선행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암 환자의 예후나 추후 치료방침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림프절 전이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습니다. 특히, 그 기전에 대해선 연구된 바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원격 장기로의 전이 관문인 림프절 전이의 기전을 알아보고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흑색종 (melanoma) 생쥐 모델에서, 원발 종양(primary tumor)과 림프절에 전이된 암세포를 단계적으로 (micrometastatic and macrometastatic tumor) 분리하여 RNA sequencing을 수행한 결과, 흥미롭게도 지방 대사, 특히 지방산 산화 (fatty acid oxidation)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실, 연구 초반, 림프절은 면역세포로 가득 찬 면역기관이기에 (최근 뜨거운 분야로 떠오른) 종양면역학 측면으로 접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실험 결과가 나왔고 그것이 오히려 제 연구를 더 빛나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추가 동물 실험들을 통해 흑색종과 유방암 생쥐 모델에서 림프절에 전이된 암세포의 대사(metabolism)가 지방산 산화를 통해 주로 에너지를 얻게끔 변화 혹은 적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방산 산화를 억제하는 약물인 Etomoxir를 처리할 경우, 림프절 전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기전적으로는 림프절의 암세포에 축적된 담즙산(bile acid)이 신호물질로 작용해 핵 수용체 (nuclear receptor)인 VDR (Vitamin D Receptor)를 통해 전사 인자 (transcription co-activator) YAP을 활성화 시키고, YAP이 지방산 산화를 촉진함을 확인했습니다. 실제 흑색종 환자에서도 림프절에 전이된 암세포의 YAP 활성화 정도와 예후가 연관성 있음을 확인하여 추후 실제 환자의 적용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림프절 전이에 대한 연구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매우 중요한 연구주제이나 그간 주목도가 떨어져 연구가 미비한 실정이었습니다. 본 연구는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가 어떻게 자라날 수 있는지를 대사변화를 통해 보여준 첫 번째 연구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암세포가 림프절 내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영역을 확장하는 동력을 마련하는지 탐구한 이번 연구는 최근 서서히 주목 받는 분야인 종양대사학 (tumor metabolism)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면들이 많습니다. 보통 암세포가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 (Warburg effect) 한다는 게 정설이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원발종양에서는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다가 림프절 전이 이후, 림프절에 풍부한 지방산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끔 변화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본 연구가 원격 장기 전 단계인 림프절 전이를 막는 약제의 개발까지 이어져 고통 받는 많은 암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내과 전공의로 근무하며 연세 암병원 종양내과 수석 전공의를 하던 중 제대로 된 기초 연구를 하고자 2015년 KAIST 박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본 연구는 군전문연구요원으로 4년간 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수행한 결과입니다. 의생명과학에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의사 출신 의과학자들과 의과학학제 전공 대학원생들이 모인 KAIST 의과학대학원은 국내 어느 곳보다도 더 열심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좋은 연구성과로 BRIC에 여러 차례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는 KAIST 의과학대학원 내에서 고규영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본 실험실은 서로 다른 장기에 위치한 혈관 및 림프관의 다양한 특성을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이 함께 연구하는 곳입니다. 혈관 혹은 림프관을 단순한 도관으로 접근하지 않고 조직의 기질세포 (stromal cell)들의 주변의 미세환경 (microenvironment)에서의 상호 관계까지 다루며 불철주야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교수님과 선배들이 발표한 좋은 연구 성과들이 인정받아 박사학위 1년차 중반 기초과학연구원 (IBS) 혈관 연구단으로 새로이 출범하게 되어 좋은 지원 하에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의대 학부시절 방학마다 실험실 생활을 병행하며 틈틈이 실험실 문화와 환경을 익혔었습니다. 전공의 시절 종양내과에서 고통 받는 수 많은 암 환자들을 보며 ‘꼭,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지체 없이 진학한 KAIST 의과학대학원, 처음엔 full-time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엔 마냥 행복했습니다. 획기적인 결과를 당장에라도 얻을 것처럼 꿈에 부풀어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과 마주했습니다. 실험들이 뜻대로 되지 않고, 연구 주제를 구체화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등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곤 했습니다. 추후 림프절 전이 기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때에도, 주로 혈관 생물학을 연구하는 실험실의 특성 상 암세포 자체에 대한 연구나 대사(metabolism)에 대한 연구에 대한 경험이 적어 연구 진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낌없는 지원과 KAIST의 수많은 연구자들과의 토의로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통 받는 암 환자들에게 근본적인 도움이 될 연구라는 생각은 연구에 매진하게끔 돕는 좋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운 좋게도 연구 결과들이 잘 나와서, 연구 중 결과가 하나 하나 나올 때마다 림프절 전이의 본질 (물론 아직 멀었지만) 에 다가가는 것 같아 너무나 신나게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환자들에게 직접 적용하기엔 요원한 연구 결과이나 추후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였다는 데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사실 full-time 기초 생명과학자로서의 경험이 4년 밖에 되지 않아 큰 조언을 해줄 위치에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짧은 시간 동안 느낀 몇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연구 주제를 잡거나 발전 시켜 나갈 때, 치열한 고민에 따른 진행이 아닌 상당 부분을 선배나 PI에게 의지하려는 모습을 목격하였습니다. 자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에 있어 최고 전문가는 본인이라는 믿음을 갖고,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학문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실험 하나를 계획하더라도 치열하게 고민한 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본인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가 세상에는 전문가가 많다는 것과 전문가들과의 수많은 토의를 통해 얻는 지식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워낙 기초 연구에 대한 토대가 부족하였기에 다양한 실험실 내의 선/후배 뿐만 아니라 KAIST 내 다른 실험실 연구자 분들과 토의를 진행했습니다. 외국에 계신 분들께는 이메일 등을 통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연락을 취하고 접근하기 어렵겠지만, 꼭 많은 분들과 본인의 연구 결과나 궁금증을 나누고 상의하기를 바랍니다. 저처럼 MD-PhD 과정을 밟고 싶은 의사 후배들에게는 기왕이면 전공의 과정을 거치며 본인이 실제 임상 과정에서 느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unmet needs)을 들고 와서 기초연구에 임하기를 추천합니다. 본인이 실제 임상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아 기초연구의 필요성을 느낀 부분을 학위과정 동안 연구를 수행하면 기초 연구를 자신의 분야와 접목시키기도 수월 할 뿐만 아니라 본인이 더 몰입하여 연구에 진지하게 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저는 2019년 2월로 KAIST 의과학대학원 박사학위를 수여 받고, 바로 연세 암병원 종양내과 임상강사로 일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임상에서 암환자들을 돌보는 데 대부분 시간을 쏟겠지만, 추후 의과학자로서 자리잡아 연구를 통해 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종양대사학 (tumor metabolism) 및 림프절 전이에 대해 기초와 임상을 넘나들며 암을 억제할 근원적인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우선, 기초가 부족한 저를 묵묵히 지원해주신 지도교수님이신 고규영 교수님 및 논문에 직/간접적으로 도와주신 KAIST 김인준 교수님, 김하일 교수님, 김준 교수님 및 연세대 신상준 교수님, 김상겸 교수님, 아산병원 김용섭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너무 훌륭한 실험실 선/후배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본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하여서는, 림프절 연구의 전초를 마련해주시고 지속적으로 연락 주셔서 도와주시는 최성용 선생님, 힘든 순간마다 신앙적으로나 연구적으로 최고의 조언자가 되어 준 배호성, 모든 귀찮고 힘든 실험들을 묵묵히 도와준 최고의 부사수 정승환, 부족한 실험들을 많이 도와준 김유형 및 박인태 박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 외에도 실험실 생활 내내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준 선배님들이신 김찬 선생님, 박진성 박사님, 고봉인 박사님, 한상열 박사님, 송주혜 박사님, 이혁종 박사님, 송석현 박사님, 박대영 선생님, 김일국 선생님, 이승준 선생님, 박도영 선생님, 김재령 선생님, 서상헌 선생님, 김균후 박사, 홍선표 박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실험실에서 사사로이 잘 도와준 후배들인 장승필, 양지명, 김서기, 배정현, 강석, 양명진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조언을 많이 해주신 KAIST 임대식 교수님 실험실의 최원영 선생님, 정선혜 박사님, 이다혜 박사님 및 김필한 교수님 실험실의 박인원 선생님, 최기백 박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에게는 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 만난 의과학대학원 동기들이 참으로 힘이 많이 되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감사하고 특히 힘들 때나 기쁠 때 여러모로 많이 도와준 노태욱, 신정환, 이슬기 박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아울러, 예상치 못하게 대전과학고등하교 선/후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기환 선배님, 임재석 선배님 감사하고, 동기 최원묵, 많은 조언을 해준 고현용 고맙습니다. 특히, 논문의 돌파구가 필요할 때 뉴욕 및 대전에서 직접 만나 너무나도 큰 도움을 주신 실험실 선배이자 대전과학고 선배이신 장철순 선배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꼭 연구 측면이 아니더라도, 실험실의 굳은 일을 도맡으시며 4년간 너무 잘 도와 주신 서수진 선생님, 유삼미 선생님, 배점일 박사님, 김현태, 그리고 연구 성과를 대중들에게 쉽게 잘 소개 해주신 IBS 커뮤니케이션팀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제가 의과학자로서의 꿈을 유지하도록 학생 때부터 지원해 주신 석사 지도교수님이신 연세대 라선영 교수님 및 Tumor Metabolism을 처음 접하게 해주시고 가르쳐주신 연세대 정재호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 MD Anderson Cancer Center 특성화 시절 처음 뵙고, KAIST 의과학대학원 진학 전 저의 꿈을 지지해 주셨던 故 홍완기 선생님. 매년 좋은 결과가 나오면 연락 드려야지, 했는데 이렇게 소식을 전하게 되어 아쉽습니다. 중간 중간 연락 달라며 큰 힘을 주셨던 선생님의 모습 꼭 기억하겠습니다. 종양내과 최고의 동료들인 연세대 허수진 선생님, 서울대 옥찬영 선생님, 삼성병원 박세훈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대전에서 같이 살며 저를 아낌 없이 지지해 주신 부모님과 미국에서 세계적인 건축가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는 동생 충효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사실 연구 수행 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연구실 내외의 일들로 힘든 시간이 많았으나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시간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이기게 해주시고 좋은 결과를 얻도록 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바칩니다.
평소 감사의 말을 잘 표현 못하여 말이 길어졌습니다. 더 감사드릴 분들이 많으나이만 실험실에서의 마지막 송별회 사진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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