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대뇌피질 (大腦皮質 cerebral cortex)은 인간 두뇌의 가장 큰 부분으로 전체 뇌 중량의 82%를 차지하며, 160억 개의 뉴런 (neuron), 600억 개의 비뉴런성 세포 (non-neuronal cell)를 갖고 있습니다. 언어를 비롯한 복잡한 고등 기능은 대뇌피질이 대부분 수행하므로, 인간 특유의 지적 (知的) 행동, 문화, 문명은 모두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편 대뇌피질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거나 손상되면, 환자들은 언어 장애, 인지 불능, 치매 등 수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160억 개 뉴런은 실로 엄청난 숫자여서, 코끼리와 고래조차 우리보다 더 적은 수의 대뇌피질 뉴런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영장류의 두뇌와 비교하면, 인간의 대뇌피질은 상대적으로 월등히 크고, 전두엽이 특히 확장되었습니다. 화석상 증거에 따르면 지난 2-3백만 년 간 인간 두뇌의 부피는 500 cc에서 1,500 cc로 세 배나 증가하였습니다. 두뇌는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장기인데도, 그 크기가 빠르게 세 배나 증가했다는 사실은, 큰 두뇌가 인간의 생존에 강력한 장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대뇌 발달과 진화는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인간 대뇌피질 발달의 분자적 메커니즘은 2000년대 들어 인간유전학적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비로소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전적 소두증 (microcephaly)은 두뇌 부피가 절반 이상 줄어드는 병인데 현재까지 20개 가까운 원인 유전자가 보고되었고, 이 중 하나인 ASPM (abnormal spindle-like microcephaly-associated, "비정상 방추사와 비슷하고 소두증에 관련된")은 중심체 (centrosome) 단백질을 코딩합니다. 포유동물 내에서 ASPM 단백질 서열은 종별로 다양한 변이를 나타내는데, 이 변이가 대뇌피질의 크기와 강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즉 ASPM 유전자는 대뇌피질의 크기를 조절하고, 돌연변이는 소두증의 원인이 되며, 진화적 변이가 대뇌 크기와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흥미로운 유전자입니다. 따라서 ASPM과 같은 원인 유전자를 연구하면 인간 대뇌피질이 어떻게 발달하고 진화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림 1. 인간 대뇌피질 이상 발달의 족제비 모델. (A) 족제비 (Mustela putorius furo)의 모습. 식육목류 (Carnivora)의 동물로 유전체는 개와 비슷합니다. 사진 제공: Petco.com. (B) 다빈치가 그린 '족제비를 안은 여인 (Dama con l'ermellino, 1489-1490)'을 통해, 족제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C) 족제비 뇌 단면도가 주름지고 회백질과 백질이 모두 풍부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D) 생쥐의 뇌 단면도. (E) ASPM 유전자에 동형접합 (homozygous) 혹은 복합이형접합 (compound heterozygous)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ASPM-/-) 심각한 소두증이 생겨 정상인 (ASPM+/+)에 비해 50% 이상 두뇌 부피가 감소합니다. (F) ASPM 녹아웃 생쥐는 소두증 형질을 잘 보여주지 못합니다. 소두증 뿐 아니라, 수많은 대뇌피질의 질병이 생쥐에서 재현되지 않습니다. (G) 본 연구에서 분석한 ASPM 녹아웃 녹제비는 심각한 소두증을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큰 문제가 있습니다. 생쥐 (Mus musculus)에서 병렬상동 (orthologous) 유전자를 똑같이 망가뜨려도, 별다른 표현형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쥐 모델이 표현형을 잘 안 보이는 문제는 소두증뿐 아니라 거의 모든 대뇌발달/퇴행 질환 연구에 걸림돌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유전학을 통해 유전병의 핵심적인 단서를 얻었다 한들, 발병 기작을 강력하고 의미있게 연구하기 어렵습니다. 생쥐에서 모델링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뇌피질이 생쥐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의문스럽습니다. 선단극성복합체 (apical polarity complex) 단백질인 Pals1을 생쥐 두뇌에서 제거하면 (Emx1-Cre conditional knockout) 대뇌피질이 거의 다 없어지는데, 놀랍게도 이 생쥐들은 실험실 사육 환경에서 멀쩡하게 살아 사료도 잘 먹고 교미도 잘 합니다 (Kim, Lehtinen, et al., 2010, Neuron). 해부학적으로 생쥐의 뇌는 인간 뇌의 1/1,000 크기밖에 안 되고, 표면이 매끄럽습니다. 따라서 뇌가 작아지거나 주름에 문제가 생기는 문제를 생쥐에서 재현하기가 원천적으로 어렵습니다. 또한 발생 과정 중 인간의 뇌에는 다양한 신경줄기세포 혹은 신경전구세포 (neural progenitor cell)가 관찰되고 유전자 발현 양상도 역동적인데, 생쥐의 뇌에는 신경전구세포의 종류와 유전자 발현 양상이 제한적입니다. 특히 바깥방사교세포 (outer radial glial cell)는 영장류와 식육목류 발달 과정 중 풍부한 신경전구세포인데, 생쥐의 뇌에는 거의 없습니다. 유전자 자체도 설치류만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설취류 유전체의 돌연변이 축적 속도가 다른 동물에 비교해 몇 배나 빠르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Ezran et al., 2017, Genetics).
생쥐 모델의 한계가 두뇌 질환 모델링에서 큰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은 저는, 포닥 초기부터 생쥐를 보완할 동물 모델을 조속히 도입하고 싶었습니다. 대안 동물은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생쥐보다 뇌가 크고 주름질 것, 새끼를 많이 낳을 것, 세대의 길이가 짧을 것, 이미 신경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연구됐을 것, 유지비가 비교적 쌀 것, 유전체가 분석됐을 것. 여러 동물을 고려한 끝에 저는 페렛 (ferret) 족제비 (Mustela putorius furo)이 적합하다 판단하였습니다. 족제비 뇌는 앞뒤로 3 cm, 옆으로 2 cm, 높이 2 cm, 무게 5-7 g으로 크며, 대뇌피질에 주름이 많고, 회백질과 백질 모두 풍부합니다. 두뇌 발달 양상이 인간과 비슷하고, 바깥방사교세포가 많이 관찰됩니다. 뇌 부피 확장과 주름 생성이 생후에 일어나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수월하며, 생후 40일 경이면 두뇌 발달이 거의 완성됩니다. 이미 신경발달/신경생리학 연구에 꽤 쓰였고, 작은 동물 사냥에 능하고 인간과 눈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 있습니다. 임신기간은 41일, 생후 5-6개월부터 교미와 번식이 가능하고, 새끼 숫자는 5-15마리입니다. 관리비용은 생쥐에 비해 15-30 배 정도로 비싸지만, 족제비 실험이 주는 강력하고, 유의미하고, 효율적인 데이터를 생각하면 오히려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납니다. 전문적인 관리 농장 (미국의 경우 Marshall Bioresources) 에서 위탁 사육할 수 있어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유전체 서열은 201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생쥐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에 페렛 족제비가 좋은 동물입니다.
유전병의 족제비 모델을 만드는 데 첫번째 난관은 유전자 조작 기술이었습니다. 아이오와 주립대 존 엥겔하트 (John Engelhardt) 교수팀이 2006년에 복잡한 체세포 핵 치환 기술을 이용해 낭포성섬유증 원인 유전자 (cystic fibrosis transmembrane conductance regulator, CFTR) 녹아웃 족제비를 만든 적이 있지만, 이 기술로 ASPM 녹아웃 족제비를 만드는 건 여러 면에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2월에 CRISPR/Cas9 유전자 편집 가위에 관한 논문이 나오면서 (Cong et al., 2013, Science; Mali et al., 2013, Science)에서 나오면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저는 엥겔하트 교수님께 재빨리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유전자 편집 가위를 만들어 공급할테니, 족제비 수정란에 주사하고 녹아웃 족제비를 만들어 생식세포 전달 (germline transmission)까지 담당해줄 수 있겠냐, 표현형 분석은 우리가 전담하겠다. 답장은 번개처럼 왔습니다. 엥겔하트 교수님도 유전자 편집 가위에 관심을 가지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단번에 공동연구팀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유전자를 녹아웃하고, 어떤 유전자 편집 가위를 쓸 것인지는 좀 더 고민했습니다. 만일 녹아웃 족제비를 만들었는데, 표현형이 너무 심해서 금방 죽거나, 새끼를 못 남기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A. 왈시 (Christopher A. Walsh) 지도 교수님과 토론 끝에 ASPM을 녹아웃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간에서 ASPM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심한 소두증, 언어장애, 정신지체가 생기지만, 그 외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또한 제가 ASPM 녹아웃 생쥐를 키워 본 경험에 의하면, 동형접합 녹아웃 수컷이 새끼를 잘 남겼습니다. 유전자 편집 가위로는 CRISPR/Cas9을 쓰려고 했으나, 당시 Cas9이 부정확할 수 있다는 키쓰 정의 논문 (Fu et al., 2013, Nat Biotechnol.)을 읽고, 정 교수와 이메일로 토론한 끝에 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 (TALEN)을 선택했습니다. (요즘 엥겔하트 교수님은 crRNA:tracrRNA:Cas9 ribonucleoprotein complex를 주로 쓰십니다.) 수 년간 꿈꾸던 실험에 불과 몇 개월만에 돌파구가 생겼습니다. ASPM 녹아웃 족제비를 만드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TALEN은 80% 이상의 효율로 ASPM 유전자를 망가뜨렸고, 저희 팀은 연구에 착수한지 10개월만에 동형접합 녹아웃 족제비 1세대 (F1)를 여러 마리 얻었습니다.
기술적 난관은 해결되었으나, 연구비를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족제비 모델을 처음 시도하는 일은 불확실성이 높고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NIH의 연구비를 처음부터 확보할 가능성이 아주 낮았습니다. 그래서 사립 연구 재단 (private foundation)의 지원을 통해 주도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우선 2013년에 앨런 재단 (Allen Institute)이 처음으로 연구비 지원을 시작했는데, 제가 주도해 ASPM 녹아웃 족제비를 주제로 초안을 쓰고 왈시 교수님이 마무리해 신청하신 제안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왈시 교수님은 하워드 휴즈 재단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에도 일회성 특별 연구비를 추가로 신청하셨는데, 당시 최고 과학 담당관였던 에린 오셰이 (Erin O'Shea) 교수가 승인해주었습니다. (오셰이 교수는 현재 하워드휴즈의 총장입니다.) 이 연구에서 나온 초기 데이타를 바탕으로 저도 NIH로부터 2년짜리 모험적/발전적 연구비 (Exploratory/Developmental Research Grant Program R21)를 받아서, 올해 초까지 걱정 없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연구비 따기 어려운 시절, 위험한 주제로 두 사립 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아 핵심적인 데이타를 우선 얻고, 추후에 NIH에서 연구비를 마련한 일은, 결국 생쥐 모델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는 인식이 학계 저변에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 2. 포유류 대뇌피질 발달. 발달과정 중 인간의 뇌를 보면 크게 3 종류의 신경전구세포가 있습니다. 뇌실대 (ventricular zone, VZ)에 위치하는 뇌실방사교세포 (ventricular radial glia, VRG), 바깥 뇌실하 영역 (outer subventricular zone, OSVZ)에 위치하는 바깥방사교세포 (outer radial glia, ORG), 안쪽 뇌실하 영역 (inner subventricular zone, ISVZ)과 바깥 뇌실하 영역에 위치하는 중간전구체 (intermediate progenitor, IP). 바깥방사교세포는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와, 족제비를 비롯한 육식동물에 풍부한 반면, 생쥐에는 거의 없습니다. ASPM 녹아웃 페렛에서는 VRG가 너무 빨리 뇌실대를 떠나 ORG와 IP로 분화합니다. 나머지 약어: IZ, intermediate zone (중간 영역); CP, cortical plate (피질판).
처음에는 과연 ASPM 녹아웃 족제비가 소두증 증세를 강하게 보일지 아니면 생쥐처럼 별 차이가 없을지 무척 조바심이 났습니다. 다행히 ASPM 족제비들은 아주 강한 표현형을 보였습니다. 적게는 25%, 많게는 40%까지 두뇌 부피가 줄어듭니다. 대뇌피질의 면적이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반면, 피질의 두께는 변하지 않습니다. 전두엽의 부피가 가장 많이 줄고, 변연계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체중도 줄지 않아, 소두증이 정말로 머리에만 국한됩니다. 발생과정 중에는 뇌의 앞쪽과 중간 부분에서 (along the anterior to dorsal axis) 신경전구세포가 조숙하게 뇌실 영역 (ventricular zone)을 떠나 바깥 뇌실하 영역 (outer subventricular zone)으로 가서 분화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주요한 신경전구세포인 뇌실방사교세포 (ventriular radial glial cell)는 뇌실 영역에 충분히 머물면서 대칭적 분열 (symmetric cell division)을 통해 자기 갱신 (self-renewal)을 하는데, ASPM 녹아웃 족제비의 뇌실방사교세포는 뇌실 영역을 서둘러 떠납니다. 따라서 뇌실방사교세포의 숫자는 줄어들고, 더 분화된 바깥방사교세포와 중간 전구체 (intermediate progenitor cell)가 대규모로 늘어납니다. 즉 ASPM이 없으면 신경전구세포가 분화 과정을 조숙하게 겪습니다. 단일 세포 RNA 염기서열도 분석해 보았는데, 면역조직화학적 염색 결과와 일치하였고, 새로운 종류의 신경전구세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중심체 단백질인 ASPM이 없을 때, 신경전구세포는 어떤 메커니즘으로 뇌실 영역을 일찍 떠나, 조숙하게 분화하는 것일까요. 선단극성복합체는 뇌실방사교세포가 뇌실대에 머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번에 저희는 ASPM 단백질이 선단극성복합체 단백질인 PKCz와 물리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ASPM이 없으면 PKCz, PAR6a, ninein 등이 중심체에 제대로 위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요약하면, ASPM 녹아웃 족제비는 생쥐 모델과 달리, 인간 대뇌피질 발달 질환인 소두증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재현하며, 뇌실방사교세포가 뇌실대에서 충분히 자기 갱신하지 않은 채, 바깥 뇌실하 영역으로 조숙하게 떠나 분화합니다. 논문 끝의 토론 단락에서는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서, ASPM 단백질 자체의 종간 진화는 뇌실방사교세포가 뇌실대에 머무는 시간의 길이를 조절할 것 같다고 예측했습니다.
족제비 모델이 인간 소두증 모델링은 잘 했지만, 과연 다른 두뇌 질환도 잘 모델링할까요? 저는 상당히 잘 될 것으로 짐작합니다. 왜냐하면 유전자/유전체/분자/세포 수준에서 보면 족제비와 인간의 뇌에 유사점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Johnson et al., 2015, Nature Neurosci.). 오히려 생쥐가 무척 특이한 동물입니다. UCSF의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가 광우병 단백질 프리온 연구를 할 때 생쥐 모델로는 안 되고, 햄스터 모델로는 잘 됐습니다 (Scott et al., 1989, Cell). MGH의 루돌프 탄지 교수와 김두연 교수도 치매 연구에 생쥐 모델이 잘 안 되어 인간 뇌세포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더니 아밀로이드-베타 플라크가 세포 바깥에 잘 생겼습니다 (Choi et al, 2014, Nature). Emory의 샤오지앙 리 교수도 헌팅턴 병 생쥐 모델이 잘 안 되어 돼지 모델을 만들어서 중간가시신경세포 (medium spiny neuron)의 집중적 퇴화가 재현된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Yan et al., 2018, Cell). 생쥐는 행동생태학적으로 우리와 다른 상황에 있고, 유전체의 변화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인간 질병 모델링에 특별히 부적합한 경우가 많습니다. 생쥐 모델의 대안 동물 중에는 족제비가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생쥐로 연구하기 힘든 질병 중 대부분을 족제비로 연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이미 생쥐로 연구가 가능하더라도 족제비 모델을 쓰면 더 정확히 모델링할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인간 대뇌피질이 어떻게 발달하고 기능하는지, 또 그 구조와 기능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우리를 영원히 매료시키는 주제이고, 따라서 영원히 연구될 것입니다. 제 연구실은 인간유전병이 주는 단서와 족제비 모델을 주로 이용해, 조금이나마 그 신비를 대담하고 집요하게 풀어낼 것입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저는 현재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에서, 4명 (석사급 연구원 한 분, 포닥 한 분, 일주일에 두번 오는 학부생 한 명, 그리고 저)의 작은 실험실을 이루어 기초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임상위주의 과에서 기초 연구를 하려니 과내에서 조금 외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이 점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다른 과, 다른 학교 교수들과 더 열심히 교류하고 저만의 독보적인 연구를 개척하려고 합니다. 제가 포닥으로 지낸 보스턴에서는 최신 기술이 개발되면 거의 즉시 도입되고 활용되어서 좋았지만, 이 때문에 중요한 생물학적 질문이 아닌 테크닉에 파묻힐 위험이 있었습니다. 테크닉은 왔다가 가며, 결국 중요한 과학적 질문만이 남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일은 보스턴에서 좀 떨어져서 차분하게 연구할 공간적 시간적 여유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한 규모의 과학자 집단이 있어서, 같이 토론해 줄 사람이 학교 내에 한 명쯤은 있습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생물학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과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연구 동안 수십 명의 과학자들과 교류했고, 이번 논문에는 저를 포함해서 25명의 공저자가 있습니다. 공동연구는 서로 도움이 되는 공생관계여야 가능하지, 한쪽만 이득을 보는 기생관계면 진행될 수 없다는 원론적 철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 사이에는 성격/지위에서 생기는 미묘한 역학 관계가 존재하고, 본인에게 중요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며, 또 각자가 처한 개인적/가정적/사회적 상황도 무척 다르고 변합니다. 공저자들 중에는 연구 초기의 흥미와 의욕을 잃고 다른 일을 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도 있고, 본인의 주요 연구가 잘 풀리지 않은 대신 공동 연구한 이번 논문이 네이처에 나가 달콤씁쓸한 감정을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5년 동안 다독이면서 이 프로젝트를 끌고 나간 경험이 제게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번 논문이 크리스 왈시 선생님께는 교수로서 첫번째 네이처 논문이라서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사이언스와 셀에는 많이 내셨는데 네이처와는 잘 안 됐습니다. 제가 그 징크스를 깨뜨려 기쁩니다. 이 논문은 올해 2월에 공식적으로 통과되었는데, 올해 5월에 왈시 선생님이 국립 학술원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회원으로 선정되신 일에 제가 작은 도움이라도 드린 것 같아 기쁩니다. 아마도 이번 논문이 왈시 선생님과 같이 내는 마지막 주요 논문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이어 포닥 때도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대뇌피질 발달 분야보다는 일반적인 얘기를 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2013년 4월에 엥겔하트 교수에게 연락했을 때, 저는 포닥 6년차였고, 주요 프로젝트를 끝내지 못해 다급한 상태였습니다. (주요 프로젝트였던 GPR56 연구는 1년 뒤에 끝났습니다. Bae et al., 2014, Science). 족제비에서 유전자 편집 가위가 시도된 적도 없고, 연구비를 다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몰랐고, 족제비가 강한 소두증을 보일지도 몰랐고, 족제비 두뇌의 자기공명영상분석이 가능한지도 몰랐습니다. 심지어 저희 데이타 분석에 핵심적인 족제비 두뇌 자기공명영상 모형이 작년에야 NIH에서 출판되었습니다 (Hutchinson et al., 2017, Neuroimage). 2014년에 한국에 가서 구직 관련 세미나를 할 때, 족제비 프로젝트는 그냥 사장되거나 남의 손에 넘어가겠구나하는 생각에 암울했습니다. 2013년에 누가 저더러 5년 후 네이처에 교신저자로 출판하게 된다고 말했으면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인간 대뇌피질 이상 발달 연구가 생쥐 모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대전제가 옳았고, 족제비 모델과 유전자 편집 가위의 기회가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이성에게 매력을 느껴 고백하는 것과 같이, 될지 안 될지 모르더라도 먼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중요한 실험이라면 그냥 저지르는 무모한 용기도 과학에서는 중요합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우선은 ASPM 녹아웃 표현형이 족제비와 생쥐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대뇌피질 발달상 종간 차이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더 여유가 생기면, 다른 대뇌피질 이상 발달 족제비 모델을 한두 가지 더 만들어서 서로 비교해가며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대뇌피질 발달과 진화의 새롭고 다양한 메커니즘, 그리고 그로 인한 기능적 변화를 규명하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이번 연구에 가장 연구비를 많이 투자한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 (Paul Allen)과 1976년 타계한 절세 미남 사업가 하워드 휴즈 (Howard Hughes)입니다. 지금은 ASPM 녹아웃 족제비의 결과가 당연해보이지만, 시작할 당시에는 불확실성이 높은 프로젝트라 NIH에서 처음부터 지원받기 어려웠습니다. 앨런 재단과 하워드 휴즈 재단이 왈시 교수님을 통해 저를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가진 아이디어는 남이 대신 하거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쥐 모델의 한계를 많은 과학자들이 절감하고 있기에 누군가는 저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겠지만, 저는 비옥한 환경에 있어서 이 일을 끝까지 밀고나갈 수 있었습니다. 과학의 가장 큰 지원자는 각국 정부, 그리고 결국 그 나라의 납세자이지만,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개인도 과학자들을 지원해 생명의 신비를 밝히고 인류의 복지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과학 재단이 많습니다 (뉴욕타임즈 관련 기사:
https://www.nytimes.com/2014/03/16/science/billionaires-with-big-ideas-are-privatizing-american-science.html). 한국에도 이런 좋은 사례가 많이 늘어나길 빕니다. 귀한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