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헤이스의 편집후기: 열세 권의 책을 쓴 올리버가 출판 사랑을 멈추지 않은 이유
▶ 올리버 색스는 글쓰기(여기서 '글쓰기'란 '쓰는 행위' 일체, 즉 만년필에 잉크 채우기, 노란색 리갈패드 새로 시작하기, 떠오르는 단어 크게 중얼거리기를 의미한다)를 사랑한 것만큼이나, 출판을 사랑했다.
올리버에게 출판은 삶의 커다란 일부였다. 평생 동안 열세 권의 책과 수백 편의 에세이/칼럼을 출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리버는 자신의 원고가 출판되는 것을 여전히 일종의 '특권'으로 여겼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자신의 출판물은, 세상을 떠나기 불과 15일 전인 2015년 8월 30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안식일"이었다.) 그가 출판매체에 개의치 않았음을 안다면, 독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는 가장 저명한 대중매체, 즉 미국의 작가들에게 성삼위일체(holy trinity)로 여겨지는 <뉴욕타임스>, <뉴요커>, <뉴욕 리뷰 오브 북스>와 같은 곳을 굳이 원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원고가 그런 매체에 실린다면, 행운으로 여겼을 게 분명하지만.
자신의 에세이나 칼럼이 와 같은 문학저널에 실리든, 같은 전문 의학잡지에 실리든, 또는 발행부수가 비교적 적은 와 같은 상업잡지에 실리든, 그의 행복감은 동일했다. 모든 매체는 나름의 독특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해당 독자들에게 훨씬 더 심오하게 향유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 이제 33편의 다양한 에세이들을 한 권에 모은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가 출판되었다. 그의 사후에 출간된 『고맙습니다』(2015), 『의식의 강』(2017)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그 자리에』는 30년간의 개인 편집자이자 조력자인 케이트 에드거, 크노프(Knopf)에서 오랫동안 그의 책을 편집한 댄 프랭크, 그리고 그의 마지막 6년간을 곁에서 지켜본 내가 공동으로 편집했다. 우리 셋은 약 18개월 동안 100여 편의 에세이를 읽고 또 읽었고, 빈번히 모여 토론을 벌였다.
올리버의 생전에 그와 상의를 거쳐 출판된 두 권의 유고집과 달리,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는 그의 생각과 지침이 반영되지 않았다. 그는 『의식의 강』 이후에 한두 권의 에세이집을 추가로 발간할 생각이었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체계화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임무는 우리 세 사람에게 일임되었다.
1차 편집회의에서 우리가 제기한 첫 번째 의문은, 독자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우리는 "올리버가 뭘 원했을까?"를 자문(自問)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올리버 자신과 그의 저술을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하는 우리조차, 올리버를 제대로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또한 우리는 올리버가 편집자들을 깊이 존중했음을 기억했다. 그가 생각하는 편집자의 역할은 '판단 내리기', '비판적인 코멘트 하기', '단어가 됐든 문단이 됐든 전문(全文)이 됐든, 뭔가 잘못 됐거나 모호하다면 서슴없이 지적하기'였다.
자신의 비망록인 『온 더 무브』의 초고를 크노프(Knopf)에 제출한 후, 편집자 댄으로부터 교정지를 받았을 때 올리버가 보였던 반응이 생생히 기억난다. 댄은 올리버의 원고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누락되었음을 세심하게 지적했다. "당신의 사랑하는 형, 심각한 조현병에 걸렸던 마이클에 대해 뭔가를 써야 했어요." (올리버는 그 이전까지 마이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올리버는 전혀 새로운 장(章)을 하나 추가했다. 그것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담담한 글로, 자신이 돌본 환자들에 대한 공감을 심오하게 통찰했다. 그 환자들 중 상당수는 - 마이클과 마찬가지로 - 자신의 질환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거나 소외된 경험이 있었다.
올리버가 잡지와 신문에 기고한 글에는, 그를 완전히 돌아버리게 만드는 스타일의 편집관행이 몇 가지 있었다. 예컨대 미국의 출판사들은 그의 영국식 표현인 관계대명사 'which'를 'that'으로 바꾸는 게 상례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관행에 전혀 순응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NYRB는 그의 각주(footnote)를 미주(endnote)로 바꿀 것을 요구했는데, 상습적으로 각주를 사용하는 작가인 올리버에게 그런 요구사항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뉴요커>에 비하면 약과였다. 각주와 미주를 완전히 금지하고, 해당 내용을 삭제하거나 본문에 통합할 것을 요구했으니 말이다(올리버의 각주는 나중에 출판할 신간에 포함하기 위해 저장되었다).
▶ 그렇다면 올리버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올리버의 원고를 편집하는 우리의 기분이 어땠을까? 음, 가장 명백한 점(우리가 그를 몹시 그리워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로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올리버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으며, 그가 느낀 기쁨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었다. 각각의 글쓰기 단계는 제각기 보상을 제공했다. 맨 먼저 (아름답게 타이핑된, 하얗고 깨끗한 페이지로 구성된) 첫 번째 교정지를 받아들면, 그는 총천연색 사인펜 세트를 이용하여 재빨리 표시를 했다. 두 번째로 받는 것은 갤리 교정쇄(출판되기 몇 달 전 비평가들에게 배포됨)이고, 최종적으로 받는 것은 물론 완성본의 초판이었다. 생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는 "책을 출판할 때는 반드시 축하파티를 열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가 선호하는 것은 훈제연어, 신선한 청어, 샴페인,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었다.
나와 두 명의 공동편집자가 『모든 것은 그 자리에』를 편집할 때, 우리가 에세이를 선별할 때 따랐던 지도원리(guiding principle)는 "최고수준인가", 다시 말해서 "올리버 색스가 이미 출판한 책에 실린 에세이들만큼이나 훌륭한가?"였다. 운좋게도, 우리가 그 비교대상으로 사용할 올리버의 저술들은 방대하고 다양했다. 그러나 올리버가 수행한 사례연구의 경우, 결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그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화성의 인류학자』를 위해 선별했던 사례연구의 수준이 워낙 높았으므로,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 수록되는 사례연구도 그만큼 강력해야 했다.
우리가 편집과정에서 종종 떠올렸던 좌우명은 "이 에세이집이 스크랩북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스크랩북이란 - 일부 선집(選集)이나 유고집들이 그렇듯 - '무작위적이고 잡다한 에세이'로 가득 찬 책을 말한다. 에세이들을 일관되게 배열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책이 나름의 내러티브적 흐름을 갖고, 올리버가 평생 동안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보여주기를 원했다. 1부에서 올리버의 최초 기억 -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와 수영했던 일로 서두를 장식한 한 후, 화학·도서관·런던자연사박물관에 대한 소년기의 열정으로 넘어간 것은 그러한 의도를 반영한다. 2부는 독자들을 '신경학자인 올리버'의 삶으로 인도하며, 색스 박사의 마지막 사례연구 15편 모음집으로서 거의 '책속의 책(a book within a book)'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의 3부는, 한 노인의 관점에서 집필된 일련의 에세이로 끝을 맺는다. 그의 열정은 어린 시절에 못지 않으며, 연륜과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지혜가 가미되어 있다.
☞ 출처: https://lithub.com/on-editing-oliver-sacks-after-he-was-gone/
※ 필자 빌 헤이스는 구겐하임 펠로십 논픽션 부문 수혜자이고, <뉴욕타임스>의 빈번한 기고자이며, 『인섬니악 시티』·『해부학자』·『5리터』·『불면증과의 동침』의 저자다. 그가 촬영한 사진은 <뉴요커>와 <뉴욕타임스>에 사용되었고, 고(故) 올리버 색스의 인물사진은 색스의 에세이 모음집 『고맙습니다』에 사용되었으며, 뉴욕의 거리사진은 『뉴욕은 어떻게 당신에게 상처를 주나』(블룸스베리, 2018)로 출간되었다. 올리버 색스의 유고집을 공동으로 편집했으며,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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