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을 읽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주인공의 상황에 잘 이입이 되지도 않고, 인물들간의 첨예한 대립 등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문제때문에 나는 좋은 소설을 여러 권 추천을 받아도, 매번 몇 페이지만 읽다가 덮는 일들이 많았다. 이런 내가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에 무작정 응모한 것은 출판사에게 큰 민폐를 일으킬까봐 걱정도 많이 했었다.
나는 이전에 김초엽 작가가 개인 페이스북에서 쓴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도전>으로 만드는가"라는 글을 보고, 기존의 나의 말습관 및 생각을 반성했던 기억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추천하는 글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쓴 김초엽 작가가 소설로 대상 및 가작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읽을 기회가 없어서 매번 뒤로 미루어두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란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한 걱정을 뒤로 한 채, 바로 서평단을 신청했고, 소설을 다 읽은 후 책 또한 구매를 했다.
이 소설 책은 총 7개의 단편소설들을 모아둔 것이다. 각각의 소설은 미래세계 또는 과학기술을 배경소재로 하고 있지만, 각각의 주제가 담고 있는 것은 소위 내가 보아왔던 일반적인 SF 영화와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었다. 모든 소설에 대해서 나의 감상을 쓰고 싶었지만, 나에게 최근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가 않아 소설 하나만 리뷰할 수밖에 없었다.
*이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맞춤인간을 만드는 설정은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흔한 소재다. 그렇지만 흔한 소재가 흔한 소설을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에게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라는 소설은 여러가지 생각을 낳게 하는 소설이었다.
미래에 우리가 자손의 유전자를 고쳐서 자손에게 더욱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는 것은 인류가 꿈꾸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그로 인한 세계가 과연 긍정적일까? 오히려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고 부의 빈부격차만 더 심해지지 않을까? 소설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병을 가진 바이오해커(배아 유전자를 조작하는 사람) 릴리가 자신의 유전자에서 자기가 주고 싶은 모든 긍정적인 것들을 유전자에 넣었다. 그러나 결과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릴리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폐기처분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소설에서 이 문장들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다.
'이로써 나는 태어날 가치가 없었던 삶임을 증명하는가?'
...
릴리는 자신의 삶을 증오했지만, 자신의 존재는 증오하지는 못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
그리고 릴리는 그의 자손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그 세상에서는 "서로의 결점"들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고, 어떤 결점들은 결점으로도 여겨지지 않는 곳을 만들었다. 이 세상에서 지구로 순례를 떠나고, 순례를 떠난 사람들이 다 돌아오지 않은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막바지에 풀리게 된다. 그 곳에 가서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연대,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 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나는 이 모습에서 단순히 소설속의 세상이 아닌, 현실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 현실속에서 자주 바라보는 차별적 언어와 행동. 그 모습을 서로 감싸고, 다독여주는 세상을 바라는 모습을 보았다. 연상된 것도 있고 더 느낀 게 있지만, 필자의 필력이 짧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게 아쉽다.
SF 소설에 그간 내가 가졌던 한 편견은, "상상치 못한 첨단기술에 대한 생각과, 독창적인 상상력이 있어야 SF 다운 것이다"였다. 그러나 김초엽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깨버렸다. 더불어, 그가 보여준 세계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에 대한 모습을 생각해보게 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